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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챔프' 그들의 솔직함은 왜 특별한가?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닥터 챔프

'닥터 챔프' 그들의 솔직함은 왜 특별한가?

빛무리~ 2010. 10. 2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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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거짓이나 숨김이 없이 바르고 곧다"는 뜻입니다. 아주 좋은 말이지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저는 이 말에 묘한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솔직하다'는 말의 의미를 "거짓이나 숨김이 없다"는 쪽으로만 해석할 뿐 "바르고 곧다" 쪽과는 전혀 관계 없는 듯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단어의 잘못된 해석의 전형적인 예를 발견한 곳은 다름아닌 '채팅'에서였습니다. 
 

한 잔의 차를 마시며 고정방에 들어가 익숙한 이름의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고 같은 음악을 들으며 가벼운 담소를 나누는... 채팅은 한동안 저에게 있어 여가 시간을 즐기는 소중한 취미생활이었습니다. 이제는 아이디조차 잊어버릴 만큼 예전의 일이지만요. 그런데 저와 제 친구들처럼 단순한 대화나 휴식을 목적으로 그 곳을 찾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아주 다른 목적을 가지고 들어오는 사람들도 많았지요. 세간에 채팅의 이미지가 얼마나 부정적으로 인식되어 있는지를 아시는 분이라면 모두 짐작하시는 그대로입니다.

대화방 목록에는 유난히 '솔직한 여자'를 찾는 제목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것을 볼 때마다 생각했습니다. "과연 누가 다른 사람의 솔직함을 판단할 수 있을까? 그들은 자기들이 생각하는 솔직함에 대단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 누구나 마찬가지로 그럴 거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누군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 그들은 고개를 저으며 가식이라고 우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저는 그렇게 잠시의 일탈과 쾌락을 즐길 상대를 찾기 위해 '솔직함'이라는 단어를 남용하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짜 솔직함이 아니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는 제가 무척이나 사랑하던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을 통해서 '솔직하다'는 단어가 잘못 사용되고 있는 예를 또 한 번 발견했습니다. 제 블로그에 자주 오셨던 분이라면 당연히 아시겠지만, 저는 '지붕킥'이 방송될 당시 굉장히 집요하게 황정음의 캐릭터를 비판했었지요.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까지 거부감을 느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연기자의 화려한 외모와 매력 때문에 차츰 그 캐릭터의 인기가 높아가면서, 결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는 그 캐릭터의 부정적 성향까지 칭찬의 대상이 되는 것을 보면서 조금씩 참을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후반에는 아주 달라졌지만, 초반의 황정음 캐릭터는 확실한 경제적 민폐형이었습니다. 쇼핑 중독자인 그녀는 아무리 비싼 물건이라도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은 일단 사고야 말았지요. 스스로 감당할 수도 없으면서 말입니다. 매달 카드결제일이 돌아오면 벌벌 떨면서 주변에 손을 벌리러 다녔지만, 그렇게 빌린 돈도 약속한 날짜에 갚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당시 그 캐릭터를 다루었던 인터넷 기사들의 제목은 한결같이 "그녀의 솔직한 매력"을 운운하더군요. 자기의 욕망을 숨기지 않는 그녀의 솔직함이 매력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것을 매력이라고 느끼는 사람에게 그렇지 않다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매력이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것이니까요. 하지만 '솔직함'이라는 단어를 그런 곳에 사용한다는 사실에 저는 심한 거부감을 느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것은, 대화방 목록에서 자주 보았던 '솔직함'과 마찬가지로 진짜 '솔직함'이 아니었거든요.

'솔직함'이 아니라면 무슨 말로 대체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 자리에 '무절제함'이라는 단어를 대입시켜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아주 꼭 맞아떨어지더군요. 자신의 욕망을 주체하지 못해 잠시의 쾌락을 즐길 상대를 찾는 행동에 더 잘 어울리는 단어는 무엇일까요? 어차피 감당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면서 그저 갖고 싶은 욕망에 마구 물건을 사들이는 행동과 더 잘 어울리는 말은 무엇일까요? 솔직(率直)이라는 단어는 꾸밈없고 소탈하다(率)는 뜻과 더불어, 곧고 바르다(直)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 사람들의 행동을 곧고 바르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잘못 사용된 '솔직함'의 예를 너무도 많이 보면서, 저는 어느 사이엔가 염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물론 저도 자제력이 썩 뛰어난 편은 못 되지만, 최소한 무절제함이 자랑거리가 되는 세상이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공중파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허벅지를 드러낸 채 다리를 벌리고 골반댄스를 추는 소녀를 보면서, 삼촌뻘의 MC가 대놓고 박수를 치며 "이런 거 좋다!" 하고 외칠 수 있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은 모두 '무절제함'을 '솔직함'으로 미화시키며, 부끄러움이 아니라 오히려 자랑거리로 삼는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

그러던 중, 최근 드라마 '닥터 챔프'를 보면서 저는 엄청나게 커다란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닥터 챔프'는 제가 시청률에 상관없이 가장 애타게 기다리고, 진심으로 애정을 기울이며, 제 주변의 모든 친구들에게 권하고 있는 드라마입니다. 이 드라마의 인물들이 특히 저를 사로잡은 이유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진짜 솔직함'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도욱(엄태웅)은 태릉선수촌으로 돌아온 이유를 묻는 옛 애인 강희영(차예련)에게 거침없이 말합니다. "내가 너를 못 잊었어. 14년 동안 매일 너를 생각했어. 날마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너를 원망했어. 부상당한 것만으로도 지옥에 떨어진 것처럼 죽을 것 같은데 여자에게까지 버림받는, 나 같은 선수가 또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 여기에 온 거야."

그 말을 들은 강희영은 참담한 기분에 잠겼다가, 몇 시간 후 일부러 이도욱을 찾아가서 항변합니다. "난 그 때 스무살도 채 안 됐었어. 그렇게 어린 내가 뭘 어쨌어야 하는 거야? 하반신 마비되었다는 판정 받고 평생 걸을 수 없다는 오빠 옆에 붙어 있어야 했어? 대소변이라도 받아 내면서? 만약 내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오빠는 어땠을 것 같아? 평생 내 옆에 있었을까? 그건 오빠도 자신할 수 없는 일 아냐? 나를 더 이상 죄인 취급하지 마."

한편 이도욱을 짝사랑하는 김연우(김소연)는 우연히 이도욱과 강희영의 대화를 듣게 되는데, "내가 너를 못 잊었어..." 라고 말하는 초입부만 듣고 돌아섰기 때문에 깊은 실의에 잠겼습니다. 김연우를 짝사랑하는 박지헌(정겨운)은 그녀의 우울한 모습을 보며 이유를 묻지요. 그런데 대답하지 않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김연우는 선선히 대답합니다. "실장님... 좋아하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다행이에요, 지금 알게 돼서... 지금이라면 마음 접을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은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한 비를 피하는데, 얇은 옷이 젖어서 김연우의 몸이 드러나자 박지헌은 침을 꿀꺽 삼키면서도 외면하며 자기의 겉옷을 벗어서 건넵니다. 저의 예상으로는 "지금 떨고 있잖아요. 감기 걸리겠어요" 라는 대사가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박지헌의 입에서 나온 말은 "입어요. 다 보여요" 였습니다. 김연우는 민망함에 몸을 돌리며 "됐어요. 보는 사람도 없잖아요!" 라고 거절하지만, 박지헌은 "내가 보여서 그래요, 내가!" 라고 외치면서 그녀의 어깨에 옷을 둘러 줍니다.

위의 내용에서 뭔가 느껴지는 게 있으십니까? 그들은 항상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모든 말을 털어놓습니다. 저는 이런 방식의 대화를 무척 좋아합니다. 우리가 그들만큼만 솔직할 수 있다면, 일상 생활 속에서 오해 때문에 힘들어지는 일은 많이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이도욱과 강희영도 서로에게 솔직해서 보기 좋았지만, 그보다 더욱 예쁜 것은 김연우와 박지헌의 대화였습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누군가를 자기 혼자 짝사랑하고 있다는 것... 사실 그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왠지 자존심이 상해서 남에게 솔직히 털어놓기 어려운 이야기지요. 그런데 김연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친한 친구도 아닌 박지헌에게 선선히 그런 자신을 내보였습니다. 요즘 드라마에는 툭하면 어장관리녀가 등장하는데, 그 와중에 김연우처럼 소탈한 여자를 볼 수 있게 되니 그야말로 안구정화가 따로 없습니다.

박지헌, 이 사람도 김연우 못지 않습니다. "입어요, 다 보여요" 라고 단번에 솔직하게 말해 버리는 남자라니... 순간 저는 김연우의 입장이 되어 몰입을 하고 말았습니다. 순간적으로 민망함을 느꼈지만, 다음 순간에는 마음이 아주 편안해지더군요. 박지헌은 남자로서 자신의 욕망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억누르며 김연우를 배려하고 예의를 갖추려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진짜 솔직함은 이렇게 좋은 것입니다. 그것은 마음을 더없이 편안하게 해 주고, 서로를 오해 없이 가까워지게 해 줍니다.


현재 이도욱과 강희영의 감정선이 비교적 애매하게 표현된다면, 김연우와 박지헌의 감정선은 아주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저는 초반 이도욱의 캐릭터에 몰입했었는데, 대단한 능력을 갖춘 남자인데다가 두 여자에게 모두 무심한 듯 시크해 보이는 그 모습이 꽤나 멋있었지요. 그런데 갈수록 그 속마음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요즘은 투명하기 이를 데 없는 박지헌 쪽으로 더욱 끌리고 있습니다. 김연우에게 명백히 거절당했지만 삐치지도 않고 좌절하지도 않는 이 남자의 씩씩함이 볼수록 사랑스럽군요.

항상 뒤에서 김연우를 돕던 박지헌은 오히려 그녀의 실수 때문에 태릉선수촌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사과하는 의미에서 그의 부상당한 다리를 자기가 책임지고 치료해 주겠다며 애원하는 김연우의 마음을 그는 거절했었지요. 하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고 다시 그녀를 찾아 옵니다. "치료 당신한테 맡길게요. 2차 선발전 한 달 남았어요. 나 거기 출전할 수 있게 해 줘요." 그러자 감격한 김연우는 눈물을 흘리면서 말합니다. "박지헌씨, 진짜 골통이네... 죽을 때까지 나 용서 안한다고 해놓고는..." 이에 박지헌은 대답합니다. "그래요. 용서하기 싫은데, 나도 이런 내가 싫은데... 당신을 좋아해, 내가... 미치도록"


박지헌은 이렇게 극도의 솔직함으로 그녀에게 다가서고, 김연우도 그에 못지 않은 솔직함으로 천천히 자기의 마음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내비치는 투명함... 아무런 꿍꿍이도 없고 복잡한 계산도 없는 순수함... 그들을 지켜보노라면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솔직함의 탈을 쓴 무절제함이 아니라, 진정한 솔직함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이들의 사랑은 오늘도 제가 아름다운 드라마 '닥터 챔프'를 기다리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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