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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트' 오남숙의 쓸쓸한 죽음, 그 비극적 의미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자이언트

'자이언트' 오남숙의 쓸쓸한 죽음, 그 비극적 의미

빛무리~ 2010. 10. 20.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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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섭(이덕화)의 아내 오남숙(문희경)이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굳이 선인과 악인으로 구분한다면 드라마 속에서는 악녀로 그려졌지만,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녀만큼 불행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중학교 졸업 학력을 지닌 오남숙은 남편 황태섭을 사랑하고 아들 황정식(김정현)을 사랑하는 것만이 삶의 전부였던, 그저 단순한 여자였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그녀를 배신하고 다른 여자에게서 아이를 낳아다가 그녀에게 맡겼습니다. 그녀가 아들을 낳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오남숙은 명석한 두뇌도, 품위 있는 교양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돈 잘 버는 남편 덕에 호화롭게 살기는 했지만, 그녀 본인은 아무 능력도 없었습니다. 이런 그녀가 자기 아들 황정식과 더불어 남편의 사생아인 황정연(박진희)을 함께 키웠습니다. 둘은 동갑내기인데 언뜻 보아도 정식이보다는 정연이가 훨씬 똑똑하고 야무지니, 오남숙의 속에서는 날마다 울화가 치밀어 올랐겠지요. 남편에 대한 미움의 화살을 어린 황정연에게 돌린 것은 잘못이었지만, 이해하지 못할 일만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정연의 생모인 유경옥(김서형)은 비록 화류계 출신이지만 오남숙보다 훨씬 머리가 좋았습니다. 게다가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고 나니 운까지 따라 주어서 사채업계의 대부 백파(임혁)의 양녀로 들어가게 되는데, 백파에게서 받은 교육과 상류 계층 인사들을 고루 접하면서 얻은 경험은 그녀를 교양있고 유능한 사업가로 변신시켰습니다. 비록 황태섭의 아내라는 공식적 지위를 차지하지는 못했으나 지금 황태섭은 그녀의 곁에 있으며, 어느 새 훌륭히 성장하여 사업의 후계자가 되어 주는 딸 정연이도 그녀의 곁에 있습니다. 어찌 보면 유경옥은 불행해 보이지만 모든 것을 다 가진 여자입니다.

그에 비해 오남숙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남편에게 사랑받기를 포기한 그녀는 오직 아들만을 바라보고 살았으나, 남편은 평생 일구어 온 사업을 정식이가 아닌 정연이에게 물려주려고 했지요. 오남숙은 분노했습니다. 어떻게든 아들의 몫을 지켜주고 싶었지만, 똑똑하지 못한 그녀는 잘못된 방법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조필연(정보석)수하에게 습격당해 생사의 고비를 오가는 황태섭의 인감을 도용하여 유언장을 조작했지만 적시에 깨어난 황태섭과 황정연에게 발각되었지요. 나중에는 끔찍한 악녀로 돌변하여 남편을 살해하려고까지 했으나 역시 실패했습니다.


오남숙의 악행을 단지 돈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아들에 대한 모정이었습니다.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살아 온 보상심리는 아들에 대한 비뚤어진 집착으로 나타났던 것이지요.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쳐봐야 그녀는 슬픈 운명의 올가미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유일한 사랑과 희망이었던 아들은 그녀를 꼭 닮아서 기품도 없고 무능한데다가, 어려서부터 절제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터라 오갈데 없는 파락호가 되고 말았지요. 황태섭에게서 이혼당한 후 그나마 남아 있던 재산은 황정식이 도박으로 거의 다 탕진했습니다.

이렇게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오남숙은 유경옥이 바로 정연의 생모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치밀어오르는 억울함과 상대적 박탈감에 치를 떨며 그들에게로 차를 몰아 달려가다가, 그만 어이없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 아들, 내 새끼... 잘 살아야 해... 무시당하지 말고, 사람들한테 칭찬 들으면서... 정연이보다 훨씬 잘 살아야 해... 불쌍한 것... 내 아들!" 이것이 그녀가 떠나면서 황정식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이었습니다. 잘나지 못해서 언제나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치이는 아들, 배다른 누이 황정연과 평생 비교되면서 속으로 기죽어 살아 온 아들에 대한 연민이 얼마나 그녀의 가슴에 사무쳤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뜬금없는 죽음의 설정은 오남숙의 인생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들어 주는군요. 임종을 지킨 못난 아들이 있었고, 쓸쓸한 장례식에 찾아온 무정한 남편이 있었으나, 그녀를 가엾이 여기는 제 마음에는 별다른 위로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황
태섭의 방문은 그저 최소한의 예의였을 뿐입니다. 그는 다시 유경옥의 곁으로 돌아가 그녀의 도움을 받으며 자기 사업에 치열하게 몰두하겠지요. 오남숙에 대한 연민은 잠시 그의 마음을 스치는 바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영정 앞에서 눈물을 흘리다가 아버지를 매섭게 노려보는 황정식의 눈빛은 왠지 몹시 불안합니다. 오남숙의 죽음은 다른 누구보다 황정식에게 큰 영향을 끼칠 터인데, 그의 변화가 아무래도 좋은 방향은 아닐 듯해서 말이지요.

오남숙이 생전에 집과 땅을 팔아서 미리 유산을 마련하고 변호사에게 위탁해 두었던 것을 황정식은 그녀의 죽음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전재산을 묶어 놓으면 어떻게 생활을 하겠느냐고 만류하는 변호사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했었군요. "우리 아들, 나 때문에 망쳤어요. 내가 첫번째 원인이고 두번째가 돈이에요. 정식이만 정신차리면 아무리 헐벗고 굶주려도 나 고생이라고 생각 안 해요. 우리 아들이 정신차렸다고 생각되면 그 때 주려고요."


가끔씩 노름 밑천 떨어진 황정식이 집으로 돌아와 보면, 언제나 오남숙은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썰렁한 집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굶주린 채 극도의 가난을 견디며 살고 있었지요. 이제 황정식의 손에 쥐어진 통장은 오남숙이 그렇게 지켜낸 마지막 유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왠지 이 못난 놈은 어머니의 고마운 사랑에 감동하여 새 삶을 살기보다는, 어머니를 그렇게 만든 것이 아버지라는 생각에 또 다른 방향으로 비뚤어져 나갈 것 같으니 정말 안타깝습니다. 결국 오남숙은 죽어서도 평안히 쉬지 못하겠군요.

저는 오남숙의 쓸쓸한 죽음에 적잖이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이제 와 생각하니 그녀는 원래 끔찍한 악녀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어머니였습니다.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특별히 잘나지도 못했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만은 지극했던 어머니, 그 자식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희생하며 발버둥쳤던 그런 어머니였습니다. 그녀를 아내로서 존중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는 황태섭에 의해, 그리고 주변의 상황에 의해 조금씩 악녀로 변해갔지만,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사랑을 갈구했으나 철저히 외면당했던 슬픈 여인이었습니다. 남편이 외도로 낳아 온 딸을 반평생이나 곁에 두고 살면서, 자기 아들을 외면하고 자꾸만 그 아이에게로 쏠리는 남편의 눈길을 보면서, 누군지 모를 그 아이의 생모에게 끊임없이 질투를 느껴야 했던 불행한 아내였습니다. 그녀는 가족을 사랑하고 행복한 가정을 꿈꾸었지만, 끝내 모든 사람에게서 철저히 버림받았습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도 어느 곳에선가, 그녀처럼 살다가 그녀처럼 죽어가는 평범한 여인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생 바랬던 것은 오직 사랑일 뿐인데, 따뜻한 마음 한 자락 덮어주는 사람 없이 쓸쓸하게 말이지요. 그녀의 삶만큼이나 외롭고 허무했던 죽음... 너무 특별하고 잘난 주인공들 사이에서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던 평범한 캐릭터 오남숙은 그렇게 사라져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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