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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 이재용의 눈물에 왜 가슴이 저렸을까?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대물

'대물' 이재용의 눈물에 왜 가슴이 저렸을까?

빛무리~ 2010. 10. 1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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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중견배우 이재용의 연기를 아주 많이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는 명실상부한 정극 배우입니다만, 처음으로 그의 존재가 제 머릿속에 각인되었던 작품은 놀랍게도 시트콤 '달려라 울엄마' 였지요. 작품 자체도 워낙 재미있었고 김영애, 이보희, 이원종 등 쟁쟁한 중견배우들이 대거 포진해 있어서 그들의 연기를 보는 즐거움이 적지 않았는데, 그 중에도 이재용의 독특한 캐릭터는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재용은 그 시트콤을 계기로 '쟁반노래방'에도 2차례나 출연했었는데, 연기할 때 못지 않게 실제로도 만만치 않은 예능감을 지닌 것을 보고 새삼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의 출연작은 워낙 많아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해신', '주몽', '이산' 등의 사극에서 특히 그의 연기가 돋보이더군요. 최근 종영한 '동이'에서도 초반에 살해당하는 대사헌 역할로 등장해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 주었고, 현재는 '성균관 스캔들'에서 병조판서 하우규로 분하여 악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연기력의 중견 배우들은 대부분 그렇지만 이분도 끊임없이 다작을 하며 카멜레온처럼 변신하시는군요.

'대물'에서 이재용이 맡은 역할은 하도야(권상우)가 근무하는 검찰청의 청장 '공성조'입니다. 정확히는 남송지청의 지청장이지요. 지금은 한적한 시골 지청에서 웅크리고 있지만, 강태산(차인표)을 통해 중앙으로 진출할 기회를 엿보는 중입니다. 얼핏 보면 그저 그런 속물적 근성을 지닌 중년 검사에 지나지 않아 보였어요.


그런데 3회에서 하도야가 민우당 대표인 조배호(박근형) 의원을 뇌물 수수 혐의로 소환하겠다 고집하자, 그에 호통치는 공성조의 대사가 왠지 가슴을 찡하게 만들더군요. "이봐, 나... 딸, 딸, 딸이 아빠야. 나만 쳐다보고 사는 가스나가 마누라까지 합쳐서 넷이야!" 저 말 속에는 평범한 가장으로서의 애환이 모두 들어가 있었습니다.

천성이 비뚤어진 사람도 없잖아 있기는 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올바르게 살고 싶은 욕구를 지니고 있습니다. 일부러 타락하고 싶어서 타락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혼탁한 세상 속에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때가 묻고 더러워지는 것이지요. 공성조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부패한 권력에 한 방 먹이고 싶은 마음 속 열망이야 젊은 하도야 못지 않게 뜨겁지만, 줄줄이 딸린 가족들을 먹여살리기 위해서는 원칙만 고집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결국 4회에서 조배호를 심문하기 위해 직접 서울로 올라간 하도야는 골통 검사의 진면목을 제대로 과시합니다. 조배호의 법정대리인으로 출석한 변호사는 작년까지 대검찰청 중수부장으로 근무하던 법조계의 거물인데, 하도야는 그 앞에서 조금도 기죽지 않고 피내사자 본인이 출두할 것을 요구합니다. 햇병아리 검사가 까마득한 선배에게 공적인 원칙을 내세우며 "왜 아까부터 반말이십니까?" 라고 쏘아붙이는 것을 보니 속시원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군요. 현실적으로는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상위 1%의 인사들만이 출입한다는 헤리티지 클럽에 찾아가 장세진(이수경)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기 방식대로 깽판을 친 끝에, 하도야는 조배호를 출두시켜 심문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런데 기껏 검찰의 소환에 응해서 출두한 조배호가 검사의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고 거드름을 피우는 모습은 너무 유치하더군요.

하도야가 심문의 순서에 따라 이름과 주소를 물었을 때, 부드러운 미소와 날카로운 눈빛으로 선선히 대답하는 것이 훨씬 잘 어울렸을텐데 말이에요. 비록 악역이라도 여당 대표쯤 되는 거물이라면 그 정도의 외유내강함은 지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햇병아리 검사에게 자기 입으로 이름 하나 말해주는 것이 그토록 자존심 상해서 한 시간이나 버티고 앉아있었다는 것은, 너무 유치해서 보기가 민망했습니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심문에 응하지도 말았어야지요.

사실은 이것 또한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사회 생활을 해 보니 이 세상은 원칙이나 논리가 아니라 절대적인 힘(돈과 권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확실하더라고요. 현실이라면 하도야가 아무리 원칙을 내세웠다고 해도 조배호를 그렇게 물먹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차피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현실이 아닌 유토피아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정치의 정 자도 모르던 뽀미언니 출신의 서혜림(고현정)이 대통령이 된다는 것 자체가 현실적인 설정은 아니니까요. 어떻게든 시청자들의 답답한 속을 뻥 뚫리게 하여 대리만족감을 주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실에서는 좀처럼 통하지 않는 원칙주의가 이 드라마에서는 잘도 먹혀들어갑니다. 그러니 약자도 충분히 강자를 이길 수 있게 됩니다.

하여튼 사고를 제대로 치고 남해로 돌아온 하도야를, 뜻밖에도 공성조는 뜨거운 눈물과 포옹으로 맞이합니다. "네가 검찰의 자존심을 제대로 세웠구나! 조배호를 장장 6시간이나 붙들고... 정말 잘했다. 자랑스럽다!"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숨죽이고 있었지만, 공성조의 가슴 속에도 정의로운 열망은 살아 있었던 것입니다. 


이재용의 연기는 아주 코믹했는데, 저는 이상하게도 그의 눈물을 보니 덩달아 눈시울이 뜨거워지더군요. 공성조의 모습은 청운의 꿈을 접고, 가족들을 위해 날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시달리며 혼탁한 세상에 속절없이 물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 시대 수많은 가장들을 대변하는 듯 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3회에서 하도야의 꼬임에 넘어가 혹독한 '모기 체험'을 하고 돌아왔을 때도 공성조의 인간적인 매력은 여실히 드러났었지요. 검찰청 앞에서 난동을 부리고 서혜림을 납치했던 자들을 모두 구속하라고 그렇게 버럭질을 하더니만, 모기에 잔뜩 물리고 와서는 군민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두말없이 모두 풀어주라고 지시하는 모습이 꽤나 귀여웠습니다.


4회의 후반부에는 보궐선거에 출마하라는 강태산의 요청을 거절하던 서혜림이, 결국 정계에 입문하기로 결심하게 되는 계기가 드러났습니다. 의문의 괴한이 서혜림을 납치해서 하도야를 유인하고 살해하려 했던 것이지요. 다행히 하도야가 걸고 있던 펜던트에 막혀서 칼날은 주요 장기를 피해갔습니다. 아버지(임현식)가 청와대의 숙수로 불려가며 "내가 없어도 너를 지켜 줄 거다" 라는 말과 함께 목에 걸어 주었던 바로 그 펜던트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서혜림은 자기 힘을 이용해 악행을 일삼는 자들을 벌하고, 약한 사람들을 지켜 주고자 정치에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어린 시절부터 하도야를 위해 어떤 굴욕도 마다하지 않았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절치부심하여 검사가 된 하도야, 이제 멀리 떠나 있으면서도 아들의 목숨을 지켜주는 아버지... 이렇게 하도야에게 있어 아버지는 참으로 애틋한 존재인데, 어디선가 그 선량한 노인에게 뻗어오는 시퍼런 마수가 느껴지니 벌써부터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머지않아 하도야의 앞날에는 크나큰 비극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 사건은 모든 인물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나중에 공성조는 중앙에 진출하여 강태산을 구속하는 역할까지 하게 된다는데, 이재용의 끝없는 연기 변신이 무척이나 기대가 됩니다. 대검찰청에서 한 자리 차지하게 되면, 남송지청에서 보여주던 헐렁한 모습과는 좀 다른 색깔의 연기를 보여주지 않을까 싶거든요. 그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네 명의 가스나를 위해서라도, 점점 더 멋있어지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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