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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친구' 맥빠진 해피엔딩,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여친구' 맥빠진 해피엔딩,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

빛무리~ 2010. 10. 1.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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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을 위한 준비 작업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해야 했던 15회가 너무 실망스러웠기에, 솔직히 엔딩에 대한 기대감도 높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막판에 최대의 반전과 감동을 주려고 일부러 템포를 늦추는 건가 싶어서 한 가닥 희망은 놓지 않고 있었지요. 엔딩만 제대로 뽑아 낸다면 홍자매의 작품 중에서도 최고로 꼽을만한 걸작이 되리라 생각했기에, 기대를 놓아버리기는 아쉬웠던 탓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악이라고까지 할만한 엔딩은 아니었습니다. 일단 구미호(신민아)와 차대웅(이승기)의 애달픈 사랑이 이루어졌으니까, 그리고 다른 인물들도 모두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변화를 보이며 행복해졌으니까 대략 흐뭇하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뭔가 영 개운치 않아서, 걸작이라고 해주기는 힘들 것 같아요.

작가의 원래 의도는 해피엔딩을 이끌어내면서도 담고 싶은 메시지를 빠짐없이 표현하고자 했던 듯한데, 그게 오히려 마지막회의 초반부터 결말에 대한 기대와 긴장감을 90% 가량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엔딩의 결정적 열쇠를 쥐고 있는 삼신할미의 존재가 너무 일찍 드러나는 바람에, 우리는 이미 해피엔딩이 정해져 있음을 뻔히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이후로는 이별을 앞둔 대웅과 미호가 아무리 슬픈 장면을 연출하더라도 편안하고 담담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멋진 대사들로 인한 감동은 있었으나, 앞일에 대한 궁금증도 없었고 긴장감도 제로였습니다.


일찌기 삼신할미는 구미호에게 "너에게 자기의 목숨까지 줄 수 있는 신랑을 만나면 인간 세상에 살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었군요. 하지만 그 사실은 맨 마지막에 드러나야 했습니다.

이를테면... 가슴 아픈 이별을 준비하던 연인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뒤, 미호가 사라져야만 할 시간이 닥쳐왔는데 뜻밖에도 미호는 사라지지 않는 것이지요. 어떻게 된 일인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는 대웅과 미호의 모습에서 화면이 바뀌고... 바로 그 때 삼신각에서 아주머니들을 모아 놓고 삼신할미와 구미호의 오래된 약속을 이야기하는 스님의 모습이 보이는 것입니다. "약속을 어길 수는 없지..."라고 중얼거리면서 입을 삐죽거리는 삼신할미도 그 때 등장해야 했어요.

만약 그랬다면 충격적인 반전과 더불어 해피엔딩의 감동이 몇 배로 커졌을 텐데, 너무 일찍 샴페인이 터지는 바람에 김은 다 빠지고 말았습니다.


어차피 해피엔딩은 정해져 있는 것인데도, 100일째 되던 날 미호는 예정대로 사라졌고, 몇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도대체 왜 그런 유예기간이 필요했던 것일까요? "목숨 아홉 개를 다 빼먹고, 구슬까지 인간에게 내어 준 구미호를 다시 그냥 돌려보내 줄 수는 없다."는 삼신할미의 이유는 참으로 궁색했습니다.

"지치지 않고 기다린다면, 하늘이 깜박 정신줄을 놓을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말에서, 작가가 고집스럽게 담으려 했던 메시지를 짐작할 수는 있었지요. 처절한 아픔 속에서도 지치지 않고 기다리는 차대웅을 통해, 소망은 결코 한 순간에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꾸준한 인내와 기다림의 시간을 거쳐야만 이룰 수 있음을 나타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엔딩의 긴장감을 버리면서까지 표현해야 했던 것일까요? 기다림의 메시지 하나 담기 위해서 이토록 큰 희생을 치러야 한다면, 아무래도 포기하는 게 나았을 듯 싶은데 말이죠.


속절없이 다가오는 죽음(소멸)을 기다리며 대웅과 미호가 나누는 사랑의 대화는 애절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너를 처음 만났을 때도 굉장히 무서웠지만, 헤어짐을 앞두고 있는 지금이 100배 정도는 더 무섭다."고 말하는 대웅에게 미호는 손을 뻗어 그의 눈을 가려 줍니다. "다 꿈이라고 생각해... 내가 처음 네 앞에 나타났던 순간도, 지금 이렇게 사라지는 순간도, 다 꿈이라고 생각해... 깨고 나면 하나도 아프지 않을 거야... 무서웠던 것은 다 잊고, 너무너무 좋았던 꿈으로만 기억해 줘."

해피엔딩을 미리 알고 있는 상황에서 들었는데도 가슴이 너무 저려오더군요. 망설이지도 않고 미호를 위해 자기의 목숨을 온전히 내놓으려던 대웅의 사랑과 더불어, 소멸되는 순간까지도 대웅이가 자기의 기억으로 인해 아파할까봐 염려하는 미호의 사랑은, 그야말로 완전한 사랑, 최고의 명품 사랑이었습니다. 그런데 미리 해피엔딩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저 대사를 들었다면 얼마나 더 감동적이었을까 생각하니 무척 아쉽습니다.  


미호가 없는 동안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었는지, 카메라는 차례차례 비추어 주었지요. 은혜인(박수진)은 계산적인 사랑의 방식을 버리고 미호의 순수한 사랑을 배워서, 좋아하는 사람(이홍기)에게 먼저 다가서는 용감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박동주(노민우)는 차대웅의 진실한 사랑을 보며, 수백년간 품어 왔던 인간에 대한 불신과 증오를 떨쳐버릴 수 있었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던 생활에서 벗어나 인간들과 어울려 살기 시작했습니다. 대웅의 고모 차민숙과 반두홍 감독은 결혼해서 귀여운 아기 계란이를 낳고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고 있으며, 물론 할아버지도 건강하시고, 주인공 차대웅은 영화배우로 성공하여 스타가 되어 있었습니다.

해피엔딩을 위한 해피엔딩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작위적인 느낌이 솔솔 밀려드는 것을 어쩔 수가 없더군요. 물론 다 잘 되었으니까 좋기는 한데, 무슨 심술보 때문이 아니라...;; 현실이 이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던 것이지요. 중반까지 강렬한 존재감을 자랑하던 박동주가 막판에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고 거의 단역 수준으로 전락해 버린 것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고, 사람 중의 여우였던 은혜인이 마치 순진한 유치원생처럼 미호가 하던 대로 따라하는 것을 보니 참 이상했답니다. 혜인이만이라도 변함없이 계산적이고 세속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차라리 좀 나았을 것 같아요. 사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거든요.


뭐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이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는 굳이 미호가 사라지고 없었던 기간을 통해 보여 주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100일째 되는 날, 뜻밖에 미호가 죽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들이 마음껏 기뻐하게 해 준 후, 그대로 몇 년이 흘러서 "모두 이렇듯 잘 살고 있답니다." 라는 식으로 보여 주어도 아무런 차이가 없었을 거예요. 삼신할미를 너무 일찍 드러내고, 해피엔딩까지 중간에 불필요한 유예기간을 두었던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 안타까운 선택이었습니다.

지치지 않고 몇 년을 기다려 준 대웅이 덕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미호는, 지금 대체 무엇일까요? 꼬리가 한 개 남았다고 하면서 그녀가 스르륵 내밀어 대웅의 허리를 감싼 것은, 이제껏 우리가 보아 왔던 미호의 눈부신 파란색 꼬리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여우털 목도리(?) 같은 거였잖아요? 분명히 100일째 되는 날, 마지막 꼬리가 사라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는데 왜 아직도 꼬리 하나가 남은 것인지, 미호가 장난을 치는 것이고 사실은 인간이 된 것인지 알쏭달쏭합니다. 삼신할미의 약속은 "신랑을 만나면 인간 세상에 살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것이었을 뿐 "인간이 되도록 해 주겠다."는 아니었으니까요. 이 부분은 열린 결말로 남겨둘 테니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라는 뜻일까요?


그런데 어느 사이엔가 대웅이를 닮아 버렸는지, 저는 그녀가 무엇이든 상관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이든 구미호든 반인반요든... 무엇이라도 좋으니 대웅이 곁으로 돌아와 주어서 고맙기만 하네요. 부분적으로 억지스럽고 많은 아쉬움을 남긴 결말이긴 했지만, 예쁜 두 아이가 그렇게 서로 기대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아가리라는 것을 믿으며 마무리할 수 있어서 저도 행복합니다. 맑은 가을 하늘에서 내리는 여우비처럼, 밝고도 촉촉한 감성으로 가슴을 적셔 주었던 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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