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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자' 가벼운, 너무나 가벼운 정지훈의 연기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도망자 Plan.B

'도망자' 가벼운, 너무나 가벼운 정지훈의 연기

빛무리~ 2010. 9. 30.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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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자 Plan.B'의 첫방송은 전체적으로 어수선하긴 했지만 충분히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여주인공 이나영의 캐릭터 '진이'는 영문도 모르는 채 거대한 음모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필사적으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려 한다는 점에서, 아주 미스테릭하고 역동적이더군요. 그녀의 조부모와 부모, 양부모까지 살해하고 이제는 그녀의 목숨마저 노리는 '멜기덱'이라는 인물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지 벌써부터 무척이나 궁금해졌습니다.


곽정환 감독과 천성일 작가의 전작 '추노'에서 여주인공 이다해의 배역이 '민폐언년'으로 불리울 만큼 변변치 않았기에, 오랜만에 컴백하는 이나영을 위해 약간의 염려를 했었는데, 결코 '민폐진이'가 될 것 같지는 않아서 다행이었습니다. 진이는 언년이와 달리 강인한 여전사의 체력을 지녀서 웬만한 경우라면 자신의 안위를 스스로 지킬 수 있을 것이며, 남주인공 '지우'(비, 정지훈)를 고용하여 자신의 복수에 이용하려 하는 주체이니 만큼 오히려 남주인공보다 더 극의 중심에서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어딘가 신비로워 보이는 이나영의 외모는 배역에 아주 잘 어울렸고, 대체적으로 연기도 무난했습니다.


다니엘 헤니의 등장은 다음 회로 미루어졌으나, 냉혈 수사관 '도수'로 변신한 이정진의 새로운 모습 덕분에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악역으로 규정하기는 좀 애매하지만 어쨌든 남주인공과 대립각을 세우며 사사건건 그의 앞길에 걸림돌이 될 인물이니, 일단은 악역의 범주에 포함시켜도 되지 않을까 싶군요. 그 역할 자체만 놓고 보면 '레미제라블'의 '자벨 경감'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투철한 직업 의식을 지닌 원칙주의자일 뿐 결코 악인은 아니지만, 따뜻한 인품이 좀 결여되었다고나 할까요. 언제나 진중하면서도 부드러운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던 이정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야비한 웃음을 짓는데, 그것이 꽤나 신선해 보였습니다.

남주인공 지우는 탐정 활동을 하면서 크고 작은 범법 행위를 저지르는 데다가, 언젠가 의문의 죽임을 당했던 친구 '케빈'의 살해범으로 지목당하면서 도수의 추격을 받게 되었지요. 한 번은 거의 꼼짝없이 붙잡혔다 싶었는데 그 순간 "방탄복 입었지?" 라는 질문과 동시에 도수의 손을 잽싸게 뿌리치면서 총을 꺼내 사정없이 방아쇠를 당겨 버렸네요. 그 사건으로 도수는 갈비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었고, 그 이후로도 몇 차례나 지우를 눈앞에서 놓치며 승진에서 탈락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지우를 향한 도수의 분노는 더욱 새파란 불꽃처럼 타오르게 되었군요.


그리고 '도망자' 1회에서는 수많은 카메오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마치 '추노'의 인물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현대극으로 날아 온 것처럼 신기하고 반가웠어요. 죽은 케빈 역할의 오지호를 비롯하여, 지우의 옛 여자친구로 등장한 이다해, 지우의 조력자로 등장하는 공형진과 성동일, 도수의 상관으로 나오는 데니안, 게다가 예고편을 보니 한정수와 이종혁의 얼굴마저 비치더군요. 정말 대단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쟁쟁한 배우들이 제작진과 맺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기꺼이 카메오로 출연해 주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복 많은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희망적인 작품인데 한 가지 안타깝게 여겨지는 것은, 연기자 정지훈에 의해 너무나 가볍게 표현되고 있는 '지우'의 캐릭터였습니다.


'국제탐정협회 태평양지부 아시아지회 대한민국 사무소장' 이것이 남주인공 지우의 공식 직함입니다. 저 긴 이름의 사무소는 대단한 규모와 첨단 시설을 갖추고 있더군요. 수많은 부하직원을 거느리고 그 사무소를 이끌어나가는 대표가 바로 지우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무게를 잡고 거드름을 피울 것까지야 없겠지요. 저렇게 큰 집단의 대표 중에서도 유머러스하고 가벼운 성품을 지닌 사람은 분명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장난기 가득한 성격이라도 그 정도 위치에 있는 인물이면, 순간 순간 타인을 굴복시키는 카리스마가 저절로 번뜩이며 뿜어져 나와야 하는데, 정지훈의 연기에서는 그런 것을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시종일관 너무 가볍기만 했어요. 

옛 여자친구 혜원(이다해)을 앞에 놓고 청혼하는 와중에 다른 여자들을 대놓고 힐끔거리는 장면에서는 오히려 뻔뻔할 만큼 당당한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었습니다. 막판에 돈을 3억이나 빌려달라고 해서 차이는 것을 보니, 그의 청혼은 진심이 아니라 뒤탈 없이 헤어지기 위한 계책이었던 것 같거든요. 세상에 어떤 남자가 진짜로 사랑하는 여자에게 청혼하는 자리에서 옆에 지나가는 여자들을 입을 헤 벌린 채 바라볼 것이며, 하필 그 자리에서 돈을 빌려달라고 하겠습니까? 어차피 헤어질 생각이었다면 굳이 혜원에게 비굴한 태도를 보일 필요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비가 아주 당당한 태도로 연기했다면, 지우는 뻔뻔해 보였겠지만 적어도 천박해 보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치 신발이라도 핥을 것처럼 비굴한 모습을 보이는 바람에, 남주인공의 캐릭터는 유머러스한 매력남이 아니라 보면서 저절로 혀를 끌끌 차게 되는 초라한 인물로 탄생하고 말았습니다. 

혜원의 앞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인물들을 대할 때에도, 지우에게서는 조금의 기품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사또가 아니라 이방 같았고, 왕이 아니라 간신 같았으며, 이도령이 아니라 방자 같았습니다. 명실상부한 주인공인데 너무 가볍기만 해서 도대체 분위기가 안 살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표정과 말투가 지나치게 오버스러워서 다른 연기자들과 좀처럼 융화되지 않더군요.

특히 공형진, 성동일에게 업무 지시를 하며 화상 통화를 하는 장면에서는 연기력의 차이가 너무 극명하게 드러나는 바람에 오히려 혼란스럽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차라리 모두 비슷한 수준의 어색한 연기를 보인다면 일관성이 있을 텐데, 공형진과 성동일이 화면에 비칠 때는 드라마에 99%의 몰입도를 느끼다가, 비에게로 화면이 전환되면 퍼뜩 잠에서 깨어난 듯 현실로 돌아와 오글거리는 손아귀를 움켜쥐곤 했지요. 계속 그런 식이었습니다.


사람을 보는 눈이 남들과 달라서인지 저는 드라마를 볼 때, 남자 배우가 아무리 복근이 좋고 수영을 잘 하고 멋진 액션을 보여도 그런 것에는 별로 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 인물의 내면에 깃든 품성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표현되는지가 저에게는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정지훈에 의해 형상화된 주인공 '지우'는 첫방송에서 엄청난 분량을 혼자 소화하면서도 내면의 깊이는 조금도 내비치지 못했습니다.

물론 속단하기는 이릅니다. 이제 시작이니까요. 회를 거듭할수록 지우의 캐릭터는 숨겨졌던 인품을 드러내며 매력을 발산하겠지요. 이대길이라는 남자 주인공을 만들어냈던 천성일 작가의 필력은 신뢰할 수 있겠지요. 다만 정지훈에게서 장혁 수준의 연기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 듯 싶으나, 차츰 무게중심을 잡아 가며 이번 작품을 통해 많은 발전을 이루기를 바래 봅니다. 좋은 제작진과 좋은 동료 배우들의 도움을 받으면 가능하리라고 믿어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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