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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 연애조작단' 최다니엘은 천생 배우다 본문

책과 영화와 연극

'시라노 연애조작단' 최다니엘은 천생 배우다

빛무리~ 2010. 9. 21.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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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일까? 남들은 다 좋다는데 유독 내 마음에는 와닿지 않는 이 영화가 나는 원망스러웠다. 엄태웅, 이민정, 최다니엘, 박신혜, 네 명 모두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배우인데다가, 본 사람마다 좋았다고, 오랜만에 접하는 제대로 된 로맨틱코미디라고 칭찬이 자자하기에 꽤나 기대를 하고 본 영화였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그저 그렇고 지루한 멜로물일 뿐이었다. '광식이 동생 광태'는 정말 재미있게 보았었는데, 지난 4년 동안 감독의 스타일이 변한 것일까? 아니면, 나의 감성이 달라진 것일까?

나의 취향에는 등장인물들도 그 연애의 설정도 하나같이 매력이 없었다. 연애를 도와주는 것도 정도껏이라야지, 자기 본연의 모습과 상관없이 너무 작위적으로 꾸며대면서 사랑을 시작한다는 설정부터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남이 불러주는 멋진 대사를 이어폰에서 들리는 대로 받아 읊어대며 사랑을 시작해 봤자, 이어폰만 떼어 버리면 그만인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싶었던 거다. 일단 자기 것(?)으로 만들고 나면, 그 다음에는 실망을 하든 말든 상관 없다는 건가? 과연 그렇게 이루어진 커플 중에 속절없이 파탄을 맞이하는 경우가 영화 속에서도 당장 나타난다.

그리고 소심함이 지나쳐서 시종일관 국어책 읽듯이 말하는 남자라든가, 외국 유학 중에 사귀던 연인을 보고 "우리 한국에 돌아가서도 만나는 거야? 우리 그냥 엔조이 아니었어?" 라는 대사를 (비록 농담이었을망정) 거침없이 던지는 여자라든가, 하여튼 처음부터 나는 주인공들을 내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실패했다. 인물 설정이 잘못되었다기보다는 그냥 둘 다 너무 내 취향이 아니었다. 감정이입이 되지 않으니 감동도 없었다. 유머 코드조차 나와는 잘 안 맞는 건지, 시원스레 웃음을 터뜨린 장면도 없었다.

그래도 내 친구들이 본다고 하면 말리지는 않을 생각이다. 왜냐하면 막판에 가서야 병훈(엄태웅)의 입을 빌어 진지한 어조로 형상화된 이 영화의 주제가 충분히 마음에 새겨둘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무엇을 우선순위로 두어야 하는 것일까?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주제였다.


개인적 취향에 안 맞았다는 이유로 악평을 할 생각은 없고, 그렇다면 무슨 리뷰를 쓰겠다고 펜을 든 걸까? 나는 참으로 독특한 이미지의 배우 최다니엘에게 주목했다. '지붕뚫고 하이킥' 이후로 늘 관심있게 지켜보던 인물이기도 하지만, 최근 모 일간지에 실린 그의 인터뷰를 읽었기에 더욱 그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천주교인들 중에는 세례명을 호적에 올리는 경우가 드물지 않아서, 나는 최다니엘 역시 나와 같은 천주교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아닌 듯 싶다. 기자가 이름의 배경을 물었을 때 "낳을 계획이 없던 아들이어서, 하늘이 준 아이라는 뜻으로 기독교식 이름을 지었다" 라고 대답했다니 말이다. 만약 천주교인이라면 저렇게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네 살 때 어머니를 잃은 그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어서, 모성애를 다룬 영화를 보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후 아버지는 하는 일마다 실패를 거듭하면서 집안은 완전히 몰락했다. 아버지와 형, 그리고 어린 최다니엘은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다. 고등학교 때는 지하철을 탔다가 그 안에서 볼펜을 팔고 있는 아버지와 마주치기도 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창피할까봐 모른 척 외면했고, 아들은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는 '시라노 연애조작단'을 "처음으로 행복하게 촬영한 작품"이었다고 말했다. 배우가 놀기에는 TV보다 영화가 더 편하고 좋다는 것을 느꼈단다. 한 번도 배우였던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런가보다 할 뿐이지 별다른 의견이 없었다. 그러나 시트콤 '지붕킥'을 촬영할 당시에 대한 그의 회상은 무척이나 의외였다. "많이 슬펐어요. 나를 유혹하고, 물들게 하고, 변질시키려는 것들도 슬펐고... 어딘가에 가둬지는 것 같고, 기대에 못 미칠 것 같고... 가진 게 없을 때 절실했던 마음이 더 나았던 것 같아요."

대체 저 말이 무슨 뜻일까? '지붕킥'은 최다니엘의 연기 인생에 크나큰 기회였으며, 결과적으로도 대박이었던 작품인데, 정작 그의 마음에는 즐거움이 아니라 괴로운 기억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이 적잖은 충격이었다. 대체 왜일까? 잠시 생각해 보니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최다니엘이 연기했던 '지붕킥'의 이지훈은 상당한 연기 내공을 필요로 하는 캐릭터였다. 아니, 베테랑급의 연기자였다 해도 그 역할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개성과 희노애락이 뚜렷했던 다른 인물들과 달리 오직 이지훈만은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그 마음이 모호했다.

매우 시크하고 담담한 듯 하지만 그 속에는 대체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점점 더 궁금해지고, 미스테릭한 만큼 그 인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갔지만, 정작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을 일이었다. 최다니엘은 자기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감정 몰입을 하고 이지훈이 되도록 강요받았던 셈이다. 어쩌면 잔인한 일이었다.

인기가 높아질수록 부담은 커져 갔고,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도 커져만 갔다. 스스로 파악할 수 없는 인물을 연기하고 있으니, 어딘가에 갇힌 것만 갇고 변질되는 느낌이 드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신인 배우 최다니엘은 그 어려운 캐릭터를 완벽하게 형상화시켰다. 다른 어떤 연기자가 맡았다 해도 이지훈 역할을 그만큼 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에 비해 '시라노 연애조작단'의 순박한 청년 이상용은 심리구조가 단순 명쾌해서 쉽게 많은 부분을 공유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가 왜 처음으로 행복하게 촬영했다고 말했는지가 느껴질 만큼, 이상용이라는 인물 안에 녹아들어간 최다니엘은 편안해 보였다. '지붕킥'의 이지훈을 연기했던 사람과 동일인물이라고는 얼핏 보면 상상조차 못할 정도로 그는 이상용에 동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직 연기 경험이 일천한데도, 이렇게 맡는 역할마다 놀라운 싱크로율을 보여주는 최다니엘은 천생 배우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취미도 없고 꿈도 없었던 학창시절, '스타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라는 전단지를 보고는, 반 장난으로 연기학원의 오디션에 참가했다는 최다니엘... 배가 고픈데 문득 처음 보는 음식이 눈에 띄어 "이건 뭐지?" 하면서 일단 집어먹는 것 같은 심정으로, 그렇게 시작했다는 연기 생활... 하지만 허황된 꿈이라고 생각했던 그것은 천생(天生)의 길이었다.

좀 불편하게 살기는 했지만 불행하지는 않았다고, 그런 어린시절이 지금의 자기를 만들어 주고 작은 것의 소중함을 알게 해 주었다고 말하는 최다니엘... 그는 반짝 스타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누구보다도 앞날이 기대되는 진짜 배우 중 한 명이다. 그의 젊은 나이를 생각하면 앞으로 얼마나 더 큰 발전을 이룰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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