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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친구' 여우비 속의 사랑은 애달픈 측은지심이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여친구' 여우비 속의 사랑은 애달픈 측은지심이다!

빛무리~ 2010. 8. 27.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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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에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아름다운 OST들이 있습니다. 이승기의 '정신이 나갔었나봐'에서 풍겨나오는 싱그러운 젊음과 경쾌함도 좋고, 생각지도 못한 노래솜씨를 뽐내는 신민아의 '샤랄라'도 청순한 매력을 그대로 전해 주더군요. 그런데 제 가슴에는 특히 이선희의 목소리로 들려오는 애절한 '여우비'가 제대로 꽂히고 말았습니다.

"난 당신이 자꾸만 밟혀서... 그냥 갈 수도 없네요... 이루어질 수도 없는 이 사랑에... 내 맘이 너무 아파요..."

'여우비'의 가사 중 일부입니다. 그런데 "난 당신이 자꾸만 밟혀서... 그냥 갈 수도 없네요" 라는 부분이 끊임없이 저의 머리에, 가슴에, 귓가에, 입가에 맴돌며 왠지 눈물을 차오르게 합니다. 그 사람이 자꾸만 밟혀서 그냥 갈 수 없는 마음이란, 사랑이면서 또한 측은지심(惻隱之心)입니다.

'찬란한 유산'에서 장숙자 여사(반효정)는 특별히 고은성(한효주)을 자기의 후계자로 삼는 이유에 대해 "그 아이는 측은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하지요. 불쌍한 사람을 보며 불쌍하다 생각하는 것은 동정심이고, 그 불쌍한 사람을 보며 차마 그냥 돌아서지 못하는 마음이 측은지심이라고, 동정심은 누구나 갖고 있지만 측은지심은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장숙자 여사는 말합니다.

차마 돌아서지 못하는 마음... 나는 당신이 자꾸만 밟혀서 그냥 갈 수도 없네요... '여우비'의 가사에서는 그대로 측은지심이 느껴집니다. 어쩌면... 사랑은 측은지심의 또 다른 말인지도 모르겠어요.

1. 차대웅(이승기)의 사랑


차대웅은 촐싹맞고 가벼워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측은지심을 지닌 캐릭터입니다. 산 속에서 멧돼지를 발견했을 때, 대웅은 구미호를 연약한 소녀라 생각하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달려갔지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단 자기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태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다른 사람을 걱정하고 그녀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는 것은 그의 인품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나타냅니다.

미호가 원하는대로 고기를 사주며 끌려다닌 이유는 물론 그녀의 여우구슬을 이용해 자기의 생명을 부지하기 위함이었지만, 그것뿐이라고 하기에는 여러가지의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대웅이 미호를 유람선에 버리고 달아났을 때, 공포스러운 물 위에서 구슬도 없고 능력도 떨어진 미호는 그를 쫓아올 기운이 없었지요. 단지 구슬이 필요해서였다면 그대로 영영 도망쳐버리면 그만이었을 텐데, 대웅은 미호가 혼자 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곧바로 그녀에게 돌아옵니다. 맑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여우비를 맞는 순간, 차대웅의 가슴 속에 가득 차오른 것은 바로 측은지심이었습니다.


대웅의 눈에 비친 구미호는 힘 세고 무서운 애물단지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쌍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녀는 아무 죄도 없는데 '사람의 간을 파먹는다'는 무서운 악플의 희생자가 되어 누명을 쓰고 500년 동안이나 답답한 그림 속에 갇혀서 지내왔습니다. 고기를 탐하고 식욕이 좋은 것은 맹수의 특성이니 그녀를 탓할 수도 없는데, 자기가 아무리 고기를 사주어도 성에 차지 않은 듯 매일 쓰레기통이나 뒤지고 있으니 그것도 불쌍합니다. 처음에는 귀찮고 돈 아깝고 싫었지만, 이제는 그녀를 위해 고기를 잔뜩 사들고 (또는 할아버지 집에서 얻어 들고) 돌아가는 길이 즐겁기만 합니다. "오늘은 최고급 한우를 실컷 먹여주마, 구미호!" 배고픈 미호가 맛있게 고기를 먹는 모습이 그저 흐뭇한 대웅입니다.

술김에 미호에게 떠나라고 해버렸지만, 자꾸만 그녀 생각이 납니다.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이 아직도 낯설고 적응하기 힘들 텐데,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자기 하나뿐이던 어리버리 구미호가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또 어딘가에서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게 아닐지 너무도 신경이 쓰입니다. 열심히 치킨 쿠폰을 모으더니만, 마지막 1장을 채우지 못하고 떠나가 버린 것도 딱하고 안스럽습니다. 대웅은 그렇게 미호가 자꾸만 밟혀서 돌아설 수가 없었습니다. 단지 구슬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2. 박동주(노민우)의 사랑


이 인물의 확실한 정체는 알 수 없지만 대충 도깨비(?)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구미호를 잡아 오면 스님이 무슨 상금을 주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녀를 잡아서 다시 그림 속으로 돌려보내려 했는지 그 이유도 역시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대충 수백년간 그런 임무를 띠고 살아 왔던 존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상 속으로 도망쳐 갖은 사고를 저지르고 다니는 요괴들을 붙잡아다가 제자리로 돌려보내는 임무 말이에요. 그런데 본인 자신도 사람이 아니라 일종의 요괴이니 그것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그런데 평소처럼 자기 임무를 수행하려던 그의 건조한 마음에, 생각지도 않은 젖은 바람이 불어 옵니다. 구미호의 얼굴이 그로 하여금 아주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게 했거든요. 수백년 전의... 잊은 줄 알았던... 아니, 애써 잊으려 덮어둔 채 그 오랜 세월을 지내 왔지만 아직도 잊지 못한... 사랑했던 여인 '길달'의 기억이었습니다.

구미호는 길달과 참 많이 닮았습니다. 얼굴만 닮은 것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그렇습니다. 길달도 미호처럼 인간을 사랑했고, 인간을 믿었고, 그래서 인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그리고... 흔적도 없이 소멸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박동주는 그녀를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미호에게서 길달의 모습을 발견한 박동주의 메마른 가슴이 그녀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젖어들기 시작합니다. 어리석게도 인간을 믿다가 소멸되어 버린 가엾은 길달의 기억이, 그로 하여금 미호를 냉정하게 바라볼 수 없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아주 쉽게 구슬을 빼앗고 무력해진 구미호를 꼼짝 못하게 붙잡아다가 그림 속에 가둘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서도, 그러지 않는 이유는 측은지심 때문입니다. 그는 미호가 소원을 이루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그토록 인간이 되기를 소망했던 길달... 그녀를 대신해서 말이지요.

인간에게 가장 슬픈 죽음은 자기의 죽음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라는 것을 알면서, 100일 후에 구슬을 꺼내면 차대웅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미호에게 말해주지 않은 것은 박동주의 잔인함이라 여길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미호를 괴롭히기 위해서 그랬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첫째로는 길달을 배신해서 소멸되게 만들었던 남자에 대한 증오심이 그대로 차대웅에게 연결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길달을 사랑한 동주로서는 그 남자를 죽이고 싶었을 테니까요. 둘째로는 길달을 닮은 미호에게 벌써 사랑을 느꼈기 때문에, 연적으로서의 차대웅을 없애고 싶었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둘 다에 해당될 것 같군요. 그녀를 기다리며 자기는 먹지도 않는 고기를 구워서 만찬을 준비하는 동주의 모습은 부인하려 해도 사랑에 빠진 남자였습니다. 동주는 자꾸만 미호가 밟혀서 그림 속으로 돌려보낼 수가 없습니다.

3. 구미호(신민아)의 사랑


지극히 여성적인 이선희의 목소리로 울려퍼지는 '여우비'는, 사실 남자들의 테마가 아니라 미호의 테마겠지요. 그러면 미호는 대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힘도 없는 주제에 자기를 멧돼지에게서 구해 주겠다고 휘적휘적 달려오던 허당스런 녀석이었지요. 자기가 당장이라도 구슬을 꺼내면 죽을 수밖에 없는 약한 녀석이었지요. 고마운 줄도 모르고 귀찮다면서 제발 가라고 바락바락 성질을 부리기에 될 대로 되라 하면서 구슬을 빼어 버린 적도 있었지만, 그림에 꼬리를 그려서 자기를 해방시켜 준 은혜가 있으니 한 번은 더 봐주기로 했을 뿐이었어요. 그런데 속절없이 정이 들어 버렸네요. 매일 고기도 사주고 친구도 되어주는 대웅이가 미호는 너무나 좋아졌어요.

차대웅 이 아이가 마냥 좋아서 계속 함께 있고 싶은 것이 미호의 마음입니다. 아직은 그녀가 대웅을 바라보는 시선에 측은지심은 들어 있지 않아요. 하지만 앞으로는 어떨까요? 머지않아 미호는 알게 될 것입니다. 자기가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자기가 소멸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웅이가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우선 자기가 살고자 하는 것이 모든 생명체의 본능인데, 미호가 아무리 대웅이를 좋아한다 해도 일단은 그를 죽이고 자기가 살겠다는 생각을 할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착한 구미호의 가슴 속에 측은지심이 생기게 될 거란 말이지요. "나는 당신이 자꾸만 밟혀서 그냥 갈 수도 없네요..." 이것이 바로 차대웅을 바라보며 구미호가 부르게 될 노래입니다. 그녀는 도저히 대웅을 죽게 내버려두고 혼자 갈 수 없을 거예요. 아무리 떠나려고 해도 발이 떨어지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서 결국 미호는... 대웅을 살리고 스스로 영원히 소멸되는 길을 택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경쾌한 드라마는 어쩌면 새드엔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홍자매는 이 작품에서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을 그리고 싶다는 말을 했다던데... 그래서 더욱 슬픈 예감을 지울 수가 없군요.

반드시 미호가 죽으리라는 법은 없지요. 미호를 사랑하게 된 박동주가 나중에 어떻게든 그녀를 살려주지 않을까 싶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무엇이든 공짜는 없는 법이니, 미호를 살리고 나면 오히려 동주 자신이 소멸되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또한 슬픈 결말이기는 한데, 만날 수 없는 길달을 그리워하며 영원히 사는 것보다는 그편이 행복할지도 모르겠어요.


세상 모든 존재는 고통을 지니고 있으며, 사랑한다면 상대의 고통을 이해하고 측은히 여겨야 합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즐거움만 추구하고 아픔을 나누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래서 측은지심이 없는 사랑은 결코 진정한 사랑이 아니며, 측은지심이 깊어지는 것은 사랑을 의미합니다.

"난 당신이 자꾸만 밟혀서 그냥 갈 수도 없네요... " 되뇌일 때마다 이상하게 눈물이 맺혀오는 이 노래를, 저는 앞으로 한동안 입에 달고 살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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