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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구' 팔봉 선생은 '신언니' 구대성보다 행복하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제빵왕 김탁구

'김탁구' 팔봉 선생은 '신언니' 구대성보다 행복하다

빛무리~ 2010. 8. 26.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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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언니'의 구대성(김갑수)이 '국민아빠' 였다면 '제빵왕 김탁구'의 팔봉 선생(장항선)은 '국민스승' 이라고 할만했습니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젊은 주인공의 곁에서 더없이 든든하게 자리를 지키며 인생의 멘토가 되어 주던 이 성스러운 인물들은 그 존재감만으로도 가슴을 꽉 채워 주었지요. 이제 팔봉 선생이 불현듯 세상을 떠나고 보니 저절로 구대성의 서글펐던 최후가 머리에 떠오릅니다. 두 사람의 죽음은 그들의 삶 만큼이나 여러모로 비슷하지만, 그래도 팔봉 선생은 구대성보다 운이 좋은 편이었어요.


구대성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아들처럼 아끼던 홍기훈(천정명)이었으나, 산소호흡기를 달고 병원으로 실려가던 엠블런스 안에서 구대성은 "괜...찮...다..."는 최후의 한 마디로 그를 용서했습니다. 팔봉 선생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형제와 자식처럼 아끼던 춘배(최일화)와 구마준(주원)이었으나, 팔봉은 또 다른 제자 김탁구(윤시윤)에게 남기는 유언 속에서 이미 그들을 용서했음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태조는 너의 하나뿐인 동생이 아니더냐? 네가 평생 안고 가야 할 네 동무니라... 내 평생 후회되는 한 가지는 하나뿐인 친구를 그리 떠나보낸 것이다. 내가 더 이상 봉빵을 만들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친구를 잃은 아픔 때문이었지. 이 세상에 사람보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도 없느니라."


춘배를 잃은 것이 팔봉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처음으로 표현하는 대사가 바로 그의 마지막 말이었으니, 아픔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그를 배신하고 떠나간 춘배에 대한 분노 때문에 그가 춘배의 일을 입에 담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으나, 사실은 분노가 아니라 슬픔 때문이었습니다.

"그럼 이제 너는 어찌 하겠느냐, 탁구야?" 팔봉의 질문을 받자 탁구는 빵 모양으로 만들어진 반죽을 오븐에 넣고 대답합니다. "기다려야죠. 빵이 다 구워질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그렇지요. 빵이 구워지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듯이, 사람이 변화하는 데에도 시간은 필요할 테니까요. 기다리겠다는 탁구의 말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이며, 용서하겠다는 뜻이며, 또한 끝없이 노력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니 팔봉 선생은 꼭 원했던 대답을 탁구에게서 들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드디어 시대의 명장 팔봉 선생의 손으로 만들어낸 최후의 빵들이 따끈하게 구워졌습니다. 탁구는 그 빵들을 정성스레 담아 스승에게 갖다 바치며 "스승님, 빵이 다 구워졌습니다." 하고 아뢰었지만 스승은 더 이상 대답이 없었습니다.

팔봉은 빵이 다 구워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으나, 탁구가 남아서 빵을 완성시켰지요. 마찬가지로 구마준도 팔봉의 생전에는 변화하지 못하였으나, 결국은 김탁구로 인하여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아, 그리고 춘배는 이미 탁구가 만든 봉빵을 맛보고는 지난 시절을 뉘우치며 눈물을 흘렸으니, 팔봉의 한 가지 소원은 벌써 이루어진 셈이었습니다.

그래서 팔봉 선생은 구대성보다 훨씬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죽음을 준비할 시간이 있었고, 가슴 속에 담아 두었던 말들을 털어놓을 수 있는 좋은 제자가 최후의 순간에 곁에 있었습니다. 그토록 좋아하던 빵도 마지막으로 직접 만들어 보았고, 그 빵이 익어가는 달콤한 냄새를 맡으며, 자기가 평생 몸담아 온 요람과도 같은 제빵실에서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있겠습니까?


그의 딸과 사위는 이미 장년에 이르렀으며, 하나뿐인 손녀 양미순(이영아)과 더불어 그의 후계자가 되어 줄 사람은 "내 인생 끝자락에 너를 만나, 참으로 즐거웠다."고 되뇌일 만큼 그가 사랑하는 제자 김탁구였습니다. 자칫 박탈당할 뻔했던 그의 명장 타이틀을 지켜 준 것도 바로 김탁구였지요. 이렇게 팔봉 선생은 모든 것이 다 갖춰진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했기에 떠나면서도 한이 남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에 비해 구대성에게는 죽음을 준비할 시간도 없었고 유언을 남길 시간도 없었으며, 가슴 속의 말들을 털어놓을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외로운 그의 고통은 고스란히 일기장에 담겨졌고, 그가 떠난 후에야 남은 가족들의 가슴을 찢어지게 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그토록 사랑했던 가족들 중 한 사람도 구대성의 최후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에게는 아직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아들 준수가 있었고, 몸은 장성했으나 아직도 철없는 딸 구효선이 있었습니다. 버팀목 하나 없는 그 아이들을 세상에 두고 떠나야 했으니 어찌 눈이나 감을 수 있었을까요? 사업적인 면에서도 은조(문근영)가 대성참도가를 성공적으로 이어 받기는 했지만,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간 남자와 굳이 결혼을 강행하는 염치없는 의붓딸에게 넘겨 주기에는, 구대성이 평생 심혈을 기울인 대성참도가가 많이 아까웠습니다.

이렇게 구대성의 안타까운 죽음은 보는 사람의 가슴을 미어지게 했으나, 팔봉 선생이 떠나가면서 환하게 짓는 미소는 가슴을 따뜻하게 해 주었습니다. 정말 다행이었지요. 팔봉의 죽음을 알리는 스포일러를 접했을 때, 혹시라도 그가 춘배와 구마준에 대한 원망을 품은 채 한스럽게 떠나는 것이 아닐까 염려했거든요. 물론 팔봉의 인품으로 보아 그럴 것 같지는 않았으나, 그대로 쓰러져 누운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떠난다면, 외면적으로는 충분히 그렇게 여겨질 수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팔봉 선생은 평생 이룰 업적을 다 이루었고, 맺혔던 응어리를 모두 풀어 놓았고, 든든한 후계자로부터 앞날에 대한 다짐까지 받으며 안심하고 떠났습니다.


팔봉 선생이 퇴장하면서 저는 이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을 거의 접었습니다. 초반부터 중반까지 범상치 않은 기세로 명품 드라마의 포스를 내뿜으며 질주하던 '신데렐라 언니'도 구대성의 죽음 이후로 갈짓자 행보를 거듭하더니 결국 졸작으로 전락했지요. '제빵왕 김탁구' 역시 팔봉 선생의 죽음 전후로 벌써 갈짓자 행보를 시작한 것이 눈에 보입니다. 물론 그 양상에 있어서는 뚜렷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지만 말입니다.

'신언니'가 불필요한 멜로에 과한 욕심을 부리다가 무너져 내렸다면, '김탁구'는 선과 악의 대립 구도에 지나치게 집착하면서 자충수를 두고 있습니다. 중반까지 나름대로의 빛깔을 지니고 훌륭히 성장해 오던 캐릭터들을, 미리 구축해 두었던 양쪽 진영에 억지로 콱콱 집어넣고 있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인간이라면 선과 악의 이중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지요. 중반까지는 구마준이나 구일중이나 서인숙 등에 대해서, 보는 사람마다 다른 시각으로 해석할 만큼 캐릭터의 구현이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이들은 모두 선악의 구분이 더없이 명료한, 촌스러운 캐릭터가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개인적 취향의 문제이지만, 저의 관점으로는 몰락의 지름길입니다.


어쨌든 팔봉 선생이 지극히 아꼈던 제자들이니, 모두 다 함께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가족에 대한 염려가 깊어 선뜻 저 세상으로 떠나가지 못하고 다시 찾아왔던 구대성과 달리, 팔봉 선생은 편안히 손을 흔들며 떠나시는군요. 구대성의 혼이 나타나 어린 준수와 놀아 주면서 "엄마와 누나들... 그 불쌍한 여자들을 이제 네가 지켜 주어야 한다"고 당부하던 슬픈 장면을 기억하십니까? 그런데 팔봉 선생은 숨을 거두기 전에 탁구에게 직접 그 당부를 전하고 가실 수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의 곁에 무릎을 꿇고, 싸늘하게 식어가는 그의 손을 붙잡은 채 하염없이 전송하는 김탁구의 짙은 슬픔이... 너무도 리얼하게 전해져 와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는 없었으나, 그래도 팔봉 선생은 행복한 최후를 맞이했기에 저도 행복했습니다.


글을 마치면서 생뚱맞은 소리 하나 덧붙이려 합니다. '남자의 자격 - 하모니' 에서 새로 맞춘 핑크색의 합창단복으로 갈아입은 이경규가 말했지요. "이렇게 옷까지 맞춰 입고 나니까, 정말 이젠 우리가 하나라는 생각이 들고, 열심히 하고 싶다는 의욕이 막 솟구칩니다. 아주 행복합니다." 그러자 박칼린이 반색을 하면서 대답했지요. "정말요? 진짜요? 그럼 됐습니다. 이경규 쌤만 행복하시면 다 된 겁니다." 물론 농담식으로 한 말이지만, 그 속에는 단순히 해석할 수 없는 진심도 들어 있더군요.

물론 그것과는 다른 의미이지만, 저도 지금은 같은 말을 하고 싶습니다. 비록 드라마는 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지만, 팔봉 선생이 행복하게 떠나셨으니까... 그러면 다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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