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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남자' 딸들보다 어머니가 매력적인 이유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나쁜 남자

'나쁜 남자' 딸들보다 어머니가 매력적인 이유

빛무리~ 2010. 7. 3.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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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결방의 영향이 너무 컸던 모양입니다. 마치 꿈을 꾸다 깨어난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아무리 감미로웠던 꿈도 일단 잠에서 깨고 나면 급격히 빛이 바래는 것처럼, 초반에는 꽤나 강렬한 매력으로 저를 유혹하던 드라마가, 약 한달 동안 각성의 시간을 거친 후 다시 만나니 헛점 투성이로 보이는 겁니다.

예전에는 김남길과 김재욱, 그리고 한가인의 출중한 비주얼만으로도 아름답게 느껴졌고, 드라마 전체에서 은은히 풍겨나오는 비극적이면서도 신비한 분위기가 마음을 사로잡았었지요. 그런데 꿈에서 깨어났다가 일부러 다시 꿈꾸어 보려 하니 잘 안 되더군요. 건조해져 버린 시선으로 그 예쁜 배우들을 바라보면서 한편으로는 꽤나 아쉬웠더랍니다.


사실 명색이 복수극인데 주인공의 입장에서 반드시 해신그룹을 상대로 복수를 해야 할만한 타당한 이유를 찾지 못했기에, 기본 구조가 탄탄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예전에도 안했던 것은 아닙니다. 해신그룹 사람들은 이 드라마에서 결코 '악인'으로 표현되고 있지 않아요.

그들의 잘못이라면 어린 심건욱을 자기네 핏줄로 착각하여 입양했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서 파양시킨 것, 단지 그 하나뿐입니다. 심건욱의 양부모가 빗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책임까지 해신그룹 일가에게 지우기는 무리가 있습니다. 어린애를 빗속으로 내몰았던 무자비함에 대해서는 비호의 여지가 없으나, 지금 심건욱이 그들을 상대로 계획하고 있는 만큼의 처절한 복수를 당할만한 이유가 되는지는, 글쎄 잘 모르겠군요.

어른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아무 죄없는 젊은 자녀들에게까지 심건욱은 치밀한 계획으로 접근하여 그들을 파멸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유부녀인 홍태라(오연수)를 유혹하여 가정을 흔들려 하고, 심약한 홍태성의 곁에서 그의 모든 것을 빼앗으려 하고, 순진한 모네(정소민)의 마음을 이용하여 해신 일가의 견고한 벽을 깨뜨리려 합니다. 어찌 보면 심건욱의 이러한 행동 기반은 복수심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야심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반드시 복수를 해야 할 이유가 불충분하다 보니, 그저 가진 자의 것을 빼앗고 싶어하는 못 가진 자의 야망 정도로 보이거든요.


심지어는 최선영의 죽음까지도 심건욱으로 인한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합니다. 최선영은 자기가 사랑하는 홍태성을 향해 심건욱이 복수를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죽을 힘을 다해서 만류하지만, 심건욱은 멈출 수 없다며 거절했지요. 고아원에서 함께 자란 친누나같은 선영이었지만, 그의 복수심인지 야망인지를 말리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겁니다. 최선영이 죽기 직전에 옥상에서 "태성아!" 라고 소리쳤다는데, 애인 홍태성에게는 늘 "태성씨"라고 부르던 선영이므로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은 또 다른 태성이, 즉 심건욱임이 확실해 보입니다.

이렇게 오버스런 주인공의 복수심도 설득력이 없거니와, 심건욱에게 너무 쉽게 넘어가버리는 재벌집 딸들의 캐릭터 또한 저에겐 공감되지 않았습니다. 아직 어리고 철없는 모네의 경우는 그래도 이해하기가 쉬웠는데, 원숙한 홍태라가 별 이유도 없이 심건욱을 볼 때마다 억눌렸던 욕망을 불태우는 모습은 당황스러웠어요.


심건욱이 그녀에게 했던 말이나 행동들을 돌이켜 보아도, 특별히 그녀가 반할만한 이유는 찾지 못했거든요. 아무 가진 것 없는 남자가, 그저 굉장히 잘 생겼고, 상당히 무례했던 것 뿐입니다. 이렇게 '전형적인 나쁜 남자' 컨셉이 어린 모네에게 마약처럼 작용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미 세상을 알 만큼 알아버린 홍태라마저 그런 매력에 대책없이 빠져버린다는 건 좀 이해가 안되더군요.

하여튼 배우들의 외모와 연기력은 아직도 출중하건만, 내용상의 공감대가 부족하다 보니 캐릭터의 매력 또한 급속도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모성애를 일으키던 '약한 남자' 홍태성도 6회와 7회에서는 강렬한 임팩트를 잃어버린 채 밋밋한 남자가 되었고, 심건욱은 비극적인 복수 멜로의 주인공이라기보다 냉혈한 야심덩어리로 비춰지며, 문재인은 여전히 된장에 한 발을 담근 채 눈치만 엿보는 중이고, 유혹에 약한 재벌집 딸들은 좀 바보스러워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도 빛을 발하는 역할이 있었으니, 바로 이 드라마에서는 제일가는 악인이라고 볼 수 있는 신여사(김혜옥)였습니다. 젊은이들이 어딘가 흐리멍텅해 보이는 데 비해, 신여사의 캐릭터는 아주 확실하게 자기만의 색깔을 찾고 있으니 홀로 빛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여사는 뼛속까지 투철한 계급의식을 지녔으며, 그 비뚤어진 자부심이 대단한 여인입니다. 자기 집안의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과 그 테두리 밖에 있는 사람을 철저히 구분합니다. 밖에서 누군가가 그 테두리를 넘어오려고 하는 행동이야말로 그녀에게 있어서는 최대의 도전이며 분노의 이유입니다. 이로써 신여사의 존재는 심건욱의 복수심과 문재인의 야망이 바라보는 꼭지점에 위치합니다. 그들은 어떻게든 그 테두리를 넘어가려고 하는데, 누구보다 강렬하게 막아서고 있는 견고한 벽이 바로 신여사니까요.

그녀는 이제껏 남편의 혼외자인 홍태성을 한 번도 아들로 대한 적이 없었습니다. 심약한 홍태성은 그녀를 향해 따뜻한 모정을 갈구했지만, 그녀는 냉혹한 무관심과 멸시로 일관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일단 외부인과의 마찰이 일어났을 때 그녀가 보여준 행동은, 신여사라는 인물의 속성을 아주 극명하게 표현해 주었습니다.


류선생의 걸작인 유리가면은 (사실 소품이 그것밖에 없었나 싶을 정도로 빛깔이나 모양은 영 아니었지만) 신여사에게 있어서도 꽤나 중요한 물건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유리가면을 이번 전시회에 진열하고 싶어서 애태우던 그녀의 마음은, 일본까지 가서도 그것을 입수하지 못하고 돌아온 문재인을 수시로 닥달하는 모습에서도 충분히 드러났었지요. 그런데 집안의 천덕꾸러기 홍태성이, 그저 '반항하고 싶다'는 유치한 이유 하나로 그것을 신여사의 눈앞에서 내던져 깨뜨리고 맙니다. 신여사의 분노를 폭발시키고도 남을만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자리에 있던 문재인이 나서서 홍태성을 질책하기 시작합니다. 손을 휘둘러 그의 뺨을 치려다가 팔목을 잡혀서 제지당했지만 날카로운 어조로 말합니다. "류선생님이 만드신 작품이야. 이렇게 쉽게 깨져서는 안될 작품이라고! 그쪽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몰라도, 아무렇게나 함부로 할 수 있는 물건 아니야!" 얼핏 보면 예술품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의감처럼 보이지만, 이미 문재인의 한쪽 발에 된장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는 것을 알고 보는 제 눈에는, 신여사가 귀히 여기는 물건을 깨뜨린 망나니 아들을 자기가 대신 야단침으로써 신여사에게 점수를 얻으려는 그녀의 속셈이 보이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신여사는 가까이 다가와서 문재인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칩니다. "건방지게, 어딜 주제넘게 끼어들어, 여기가 네가 끼어들 자리야? 사람한테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어. 자기 주제에 맞는 선... 감히 네까짓 게, 내 아들 따귀를 날리려고 해? 네까짓 게, 그것도 내가 보는 앞에서! 저까짓 유리가면 10개라도 깰 수 있어. 필요하면 돈 주고 다시 사면 돼. 이것 때문에 네가 감히 내 아들을 무시해? 네 따위가 뭔데!"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깨진 유리가면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태도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홍태성을 두고 몇 차례나 '내 아들' 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 의외였습니다. 그렇게 홀대하고 냉대하던 남편의 혼외자이건만, 외부인과의 마찰이 일어났을 때는 거침없이 '내 아들'이라고 표현할 만큼, 자기 집안의 테두리를 지키려는 신여사의 마음 속 기준은 뚜렷했던 것입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살짝 감동한 홍태성은 (역시 약한 남자..;;) "왜 갑자기 엄마노릇 하세요? 방금 하신 말... 진심이세요?" 하고 굳이 신여사에게 묻습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신여사는 대답합니다. "착각하지 마. 이제와서 너한테 엄마노릇 하려는 거 아니니까. 단지 저 아이한테 알리고 싶었을 뿐이야. 감히 해신그룹을, 나를 무시하지 말라고... 그리고 선을 넘어오는 인간 따위는 내가 용납할 수 없어."


수십년간이나 그녀를 겪어 왔으면서도, 저런 대답 외에 도대체 무슨 따뜻한 대답을 기대했던 것인지, 바보같은 홍태성은 다시 한 번 상처받고 돌아섭니다. 그렇게 두 젊은이의 가슴에 비수를 꽂아 놓고, 신여사는 태연히 인터폰을 눌러 지시합니다. "여기 치워!" (깨진 유리가면으로 어질러져 있으니까) 무심하고 담담한 태도가 오히려 소름끼칠 정도로 냉혹했습니다.

지금으로 봐서는 철없는 모네보다, 우유부단한 홍태라보다, 그녀들의 어머니가 훨씬 매력적입니다. 어설픈 된장녀 문재인보다도 신여사가 훨씬 멋있습니다. 중견탤런트 김혜옥의 연기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는 젊은이들의 캐릭터가 제대로 살아나지 못하고 있어서입니다. 복수의 이유가 불충분하다는 기본 구조의 문제가 있어서 극복이 쉽지는 않아 보이지만, 그 외의 부분에서라도 좀 더 공감대를 형성하고 설득력을 확보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사실은 깨어나고 싶지 않을만큼 감미로운 꿈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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