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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비담의 마지막 편지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선덕여왕 편지시리즈

'선덕여왕' 비담의 마지막 편지

빛무리~ 2009. 12. 23.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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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대에게 전하지 못한 말이 있었기에, 꼭 전하려 하였습니다. 이미 살고 죽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산들 어떻고, 죽은들 어떻겠습니까? 다만 삶과 죽음의 강이 그대와 내 사이에 가로놓여, 차마 나의 말을 전하지 못하게 할까봐 그것이 두려울 뿐이었습니다.

덕만(德曼), 그대가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대는 알아 주셨는데 오히려 내가 몰랐습니다. 내가 그대에게서 등을 돌리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그대는 믿어 주셨는데, 오히려 내가 그대를 믿지 못하였습니다. 미안하다는 한 마디 말로야 어찌 이 아픔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누구보다도, 나 자신보다도 나를 알아주셨던 그대이기에, 이 못난 사내의 어리석음조차 이해해 주시리라 믿으며 이렇게 달려갈 뿐입니다.


그대는 아무것도 모르던 나의 손을 잡고 끌어내어, 세상을 알게 하였고, 사랑을 알게 하였습니다. 그대를 알게 되면서 많은 괴로움을 겪어 왔으나, 이제 돌이켜보니 그 모든 순간에, 고통보다 기쁨이 훨씬 더 컸던 것을, 왜 지나온 동안에는 깨닫지 못했을까요? 웃어도 모자랄 시간을 눈물로 채우며 보냈을까요?


그대가 돌아와야 할 황궁에, 그대보다 먼저 돌아온 것은 나였습니다. 나는 그대의 앞길을 열어 주기 위해, 일식의 비밀을 가슴에 품고, 나를 버린 내 어미를 만났습니다. 드디어 달이 태양을 덮고, 하늘이 어두워지며 일식이 시작되는 순간, 이미 나는 그대의 커다란 존재에 그처럼 뒤덮이고 말았습니다.

나는 그대로 인해 어미를 만나, 하마터면 평생 모르고 지나갈 뻔했던 그 잔인한 정을 사무치게 누려도 보았고... 심지어는 연모하는 그대를 품에 안은 채, 벅차게 뛰는 심장의 고동도 느껴 보았습니다. 한 끼의 굶주린 배를 채울 닭고기만을 탐했던 내가, 평생 꿈조차 꾸지 못했던 행복을 그대로 인해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더 이상 바라는 것은 없었습니다. 미워하면서도 가여워 했고, 미워하면서도 사랑했던 내 어미 때문에... 아낌없이 빼앗으려고도 하였으나, 내가 원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그대의 눈빛, 나를 어루만지는 그대의 손길 하나에도 나의 온 몸은 저절로 전율하였습니다. 이토록 작은 그릇으로 태어난 나의 어깨에, 어미는 왜 이토록 커다란 짐을 지웠던 것일까요?

그러나 이제 원망도 빛을 잃었습니다. 오직 남은 것은, 그대에게 전해야 할, 한 마디의 말 뿐이었습니다. 연모한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은 이미 오래 전부터 끊임없이 전하였으나, 아직도 전하지 못한 한 마디가 있었습니다.

비담은 진정 어리석은 자입니다. 다른 그 어떤 말보다도 가장 먼저 했어야 할 것을 아직도 이 가슴에만 품고 있었을까요? 그대는 나에게 더 이상 베푸실 것이 없습니다. 그 귀한 믿음까지, 제가 그대에게서 받을 것은 이미 다 받았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내가 그대에게 드리려던 그 말은......


그대를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아직 그대를 알아보지 못하였을 때... 쫓기던 그대를 내 손으로 꽁꽁 묶어, 설원랑에게 팔아넘겨 스승께서 명하신 약재를 구하려고 하였을 때... 그대가 나에게 했던 말... 그대가 처음으로 나의 마음을 두드렸던... 바로 그 말이었습니다.

"고마워."

스승님을 따라 전염병이 도는 마을을 헤치고 다니면서 내 손으로도 수없이 많은 사람을 구하였으나, 그들은 모두 스승님만을 바라보며 고맙다고 했었지요. 아무도 나에게는 고맙다고 인사하지 않았습니다. 나도 그것을 당연히 여겼습니다. 나 같은 놈에게 어찌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있을까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대는, 그대를 죽음으로 몰아넣으려는 나에게, 고맙다고 말하였습니다. 내가 살려준 자들은 내게 고맙다고 하지 않았는데, 내가 죽이려던 그대는 나에게 고맙다고 하였습니다. 그대를 죽여 남을 살려주니 고맙다고 하였습니다. 그 한 마디의 말이... 나의 가슴을 열었습니다.


그대는 그렇게 나의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아무도 나에게 그렇게 해주지 않았는데, 오직 그대만은 나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아 주었습니다.
스승님조차 어린 나를 차갑게 외면하고 안아 주지 않았는데, 그대만은 나를 안아 주었습니다. 버림받은 후, 수십년만에 만난 어미조차 나를 어루만져 주지 않았는데, 그대는 나를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그대의 손으로 나에게 반지를 건네며 사랑을 약속해 주었고... 그대를 믿지 못한 이 사내를 끝까지 믿어 주었습니다.

그런 그대에게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전하지 못하였으니, 구천(九泉)을 향하는 발길인들 떨어지겠습니까? 그대에게로 향하는 걸음 걸음이 아무리 힘겨워도 나는 포기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유신에게 애원할 힘만 있었더라도 나는 애원했을 것입니다. 그대에게 꼭 한 마디만 전하고 가겠노라고 애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못난 놈에게는 애원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대의 눈 앞에 맥없이 쓰러지는 것만이, 내가 고마운 그대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대는 다시 나를 보아 주시는군요. 내 곁에, 이 차가운 땅 위에 누워, 나의 얼굴을 마주보며, 염치없이 먼저 떠나가는 나의 길을 하염없이 전송해 주시는군요.

고맙습니다. 언제나... 고마웠습니다.

그토록 가까이 있었으니, 그대를 향해 마지막 숨결을 쏟아내며, 내가 마음으로 전한 말이 그대에게 닿았겠지요? ... 이렇게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니, 또 한 번 사무치게 고맙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떠나지만, 언젠가 내세(來世)에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내가 그대에게 고마운 사람이 되어 주겠습니다. 반드시, 내가 꼭 그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주겠습니다.


* 그 동안 부족한 저의 필력으로 무리하게 시도해 보았던 '선덕여왕 편지 시리즈' 에 과분한 사랑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이것이 우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드리는 인삿말과 비담이 전하는 마지막 인삿말이 똑같게 되었군요. 약간 흠칫합니다만 ;; .......
정말... 고마웠습니다. 앞으로 좀 더 발전하여, 더 좋은 글로 보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부디,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 이 블로그에 게시된 '선덕여왕' 관련 편지들은 모두 저의 졸작입니다. 결코 퍼가시는 일이 없도록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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