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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비담의 두번째 편지 - 문노에게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선덕여왕 편지시리즈

'선덕여왕' 비담의 두번째 편지 - 문노에게

빛무리~ 2009. 12. 5.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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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서라벌을 떠나 유람을 하실 때에도 사람들은, 국선이 태백산에 들어가 신선이 되었노라고 말했었지요. 그런데 이제는 정말로 신선이 되어 영원히 살고 계시는군요. 지금도 저를 내려다보면서 "못난 놈" 이라 탄식하고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못난 놈입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니 저는 한 번도 잘난 놈이 되고 싶었던 적이 없군요. 잘났거나 못났거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제가 원한 것은 오직 따뜻한 시선과 따뜻한 손길뿐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저는 너무나 추웠고, 지금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춥습니다. 못난 놈이라서 이렇게 평생 추워야만 하는 거라면, 어떻게든 잘난 놈이 되어야 했을까요?

대체 잘난 놈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유신과 같은 자입니까? 아마도 그런 모양입니다. 스승님께서 못난 저를 외면하고 그에게 삼한지세를 물려주려 하셨듯이, 지금은 제가 사랑하는 여왕이 간절히 애원하는 제 손을 뿌리치고 그의 손을 잡고 있습니다. 이 못난 놈은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니, 처음부터 가질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지요.


어머니 태중에 잉태되던 순간부터였을 것입니다. 서로에게 털끝만큼의 애정도 없었던 부모의 결합으로 잉태된 저는 뱃속에서도 너무 추웠습니다. 어미에게서 버려져 차가운 바닥에 누워있던 제 모습을 기억하십니까?

그런 저를 품어 안아주신 분이 스승님이셨습니다. 오직 스승님만이 따뜻한 눈빛으로 저를 보셨고, 저에게 따뜻한 손길을 뻗어주셨습니다. 어머니는 끝내 단 한 번도 저를 쓰다듬어주지 않았고, 어머니라 부르지도 못하게 하였으며, 왕좌에 앉은 덕만공주는 끝내 저를 이용만 하고 버리려 합니다. 이 순간 저는 먼 길을 떠나시면서 제 얼굴을 어루만지던 스승님의 손길을 그리워합니다. 죽도록 아팠지만, 그래도 따뜻했으니까요.


대체 신국이 무엇입니까? 신국을 연모하는 사람이라야 잘난 놈이 되는 것입니까? 사람으로서 사람을 연모하고, 사람을 목표로 삼으면 못난 놈이 되는 것입니까? 여리디 여린 사람의 마음으로 푸른 꿈을 꾸면, 못난 놈이 되는 것입니까? 못난 놈은 결코 사랑받을 수 없는 것입니까?

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이 못난 놈은 아직도 정말 모르겠습니다. 자나깨나 형체도 없는 신국만을 연모하여 감옥에 쭈그리고 앉아서도 지도를 그리며 방어진을 구상하는 유신과 같은 자만이 잘난 놈이라서 믿음과 사랑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까?


어차피 사람으로 태어나 여린 마음을 지닌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인데, 아닌 척 하고 강한 척 하며 보다 큰 꿈을 꾸어야만 잘난 놈이 되는 것입니까?
싫습니다. 저는 그런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어머니도, 스승님도, 여왕도, 모두가 저에게 강요하는 그 보다 큰 꿈이라는 것을 저는 원하지 않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오직 따뜻한 온기일 뿐인데, 그 허울좋은 신국인지 대의인지가 제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들을 없애려 합니다. 신국을 쓰러뜨리고 대의를 무너뜨려서라도 제가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한번쯤은 발버둥쳐 보려 합니다. 결국 어머니의 아들일 수밖에 없는 저는, 그녀의 방식대로 아낌없이 빼앗으며 제 사랑을 완성시켜 보려 합니다.


이런 제가 다시 스승님을 뵙게 되는 날, 스승님은 "못난 놈" 이라고 저를 부르시겠지요. 그래도 저는 스승님을 다시 뵙고 싶습니다. 저에게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며 이 못난 놈을 따뜻하게 안아주시던 그 손길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습니다.


* 문노는 엄하고 냉정하던 스승이지만... 그래도 비담을 가장 인간적으로 사랑했던 사람이지요. 어머니인 미실도, 연모의 대상인 덕만도, 그를 권력과 연관지어 이용할만한 도구라고 생각했을 뿐, 한 번도 인간적인 사랑을 준 적이 없었는데... 문노는 그래도.. 비담의 성품이 정치적으로 대성할만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고 크게 실망한 후에도 자기가 데리고 다니면서 키웠고, 마지막까지 그와 함께 하려고 했으니까요... 가장 비담을 사랑했던 인물이 문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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