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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석품랑의 편지 - 보종에게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선덕여왕 편지시리즈

'선덕여왕' 석품랑의 편지 - 보종에게

빛무리~ 2009. 11. 14.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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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자네는 알고 있었는가? 내가 왜 항상 자네의 곁에서 그림자처럼 살아가고 있는지... 자네의 어머니이신 미실 새주님께 대한 나의 충성심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를 말일세. 이제껏 나 자신조차도 모르고 있었지만, 어쩌면 자네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나는 이제껏 나 자신이 꽤나 처세에 능한 자라고 생각해 왔네. 최고 권력자이신 새주님께 충성하는 것은 나의 앞길을 평탄하게 하기 위함이라 여겼으며, 그분의 아들인 자네와 가깝게 지내는 것은 나의 출세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 왔네. 그러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자 스스로도 몰랐던 나의 마음을 깨닫게 되었네. 나는 가식이라고 생각해 왔으나 사실은 진심으로 자네와 새주님을 신뢰하고 있었던 걸세.

나는 한미(寒微)한 가문 출신일세. 내 어린시절, 아버지는 상관을 대신하여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참형될 위기에 처했으나 그 어느 곳에도 손을 내밀 곳이 없었네. 우리를 힘써 도와준다 해도 아무런 이득이 없기에, 그 누구도 우리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네. 우리는 한스러워도 하소연할 곳조차 없었네. 그렇게 아버지의 목숨과 우리 가문의 운명은 풍전등화(風前燈火)와도 같았는데... 그 때 미실 새주님께서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주셨네.


새주의 은혜는 한이 없었네. 내 아버지의 누명을 벗겨 살려 주셨고, 우리 가문을 다시 일으켜 주셨네. 더불어 당시 십여세의 어린아이에 불과하던 나를 발탁하여 화랑 수업을 받게 하셨고, 금쪽같은 막내아들인 자네의 곁에서 벗으로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네.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 눈앞에서 현실로 일어났네. 새주께서는 아무런 댓가도 바라지 않고 우리 가문에 그토록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던 걸세.

내가 10화랑에 뽑히면서 우리 가문의 영예는 극에 달했네. 나의 부모님은 재력과 명예를 더불어 얻으며 천수를 누리셨고, 나의 처자식은 궁핍했던 내 어린시절과 달리 풍족한 생활에 뽀얗게 살이 올랐네. 이토록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으면서도 새주께서는 이날까지 나에게 별다른 댓가를 요구하신 바가 없었는데... 이제 눈앞에 닥친 일들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나는 생각해 보았네.


나는 신라의 백성으로 태어났으나, 신라는 나에게 해준 것이 없었네. 신라는 출생부터 나에게 한미한 신분과 궁핍한 생활만을 선물했을 뿐이네. 오직 새주만이 곤궁한 나에게 손을 내밀어 아무 댓가도 없이 구해 주셨네. 일평생 그분을 위해 살아왔으나, 어찌 새주께서 베푸신 은혜의 만분지 일이라도 갚았다고 하겠는가?

이제 덕만공주와의 대결중에, 스스로를 포기하신 새주님을 보며, 나는 깊은 생각에 잠기네. 새주님의 결단은 이 신라와 백성을 위한 것이었네. 그렇다면 이제 누군가가 새주님을 위한 결단을 내려야 하지 않겠는가? 우물에 독이 풀리기도 전에 겁을 먹고 미리 도망쳐버린 그 겁쟁이들처럼, 이번에도 모두가 도망쳐 버린다면 그 누가 새주님의 마지막 뜻을 받들 수 있겠는가? 떠날 자들은 떠나되, 남을 자들은 남고, 떠맡을 자들은 떠맡아야 할 것이네.


보종, 자네는 정말 좋은 친구였네. 어머니이신 새주님을 닮아 굳건한 성정을 지녔고, 아버님이신 설원공을 닮아 고아한 풍류를 즐길 줄도 아는 멋진 벗이었네. 자네의 재능이라면 새로운 세상에서도 충분히 그 능력을 발휘하며 이름을 남길 수 있을 것이네.

그러니 자네는 남아 있도록 하게. 이미 새주님께서 떠나신 이상, 덕만공주는 남은 사람들을 처단하기보다는 중용하려 할 것일세. 지금은 그 언제보다도 인재에 목말라있는 시대이며, 공주는 그 정도의 현실을 충분히 꿰뚫어 볼 줄 아는 지혜를 지녔네. 그렇다면 누군가가 피의 댓가를 짊어지고 떠나야 하겠지.


내가 그 짐을 떠맡아 짊어지고 가겠네. 나라고 해서 이 짐을 달갑게 받아 안은 것은 아닐세. 누구보다도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은 내가 어찌 쉽게 결정했겠는가? 그러나 ... 상대등 세종공의 시해 소동을 위해, 나의 손에 칼을 쥐어 주시던 새주의 모습에서 나는 이미 결심했네.

새주께서는 나를 완벽히 믿어 주셨던 것일세. 털끝만큼이라도 나를 믿지 못하셨다면, 어찌 내 손에 칼을 쥐어주며 상대등을 찌르라 하셨겠는가? 나의 심성만이 아니라 나의 능력에 대해서도 새주께서는 완벽히 신뢰하고 계셨네. 자네도 알지 않는가? 대장부는 자기를 알아주는 자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걸 말일세.


"끝까지 새주를 받드는 자, 끝까지 새주의 의를 함께 하는 자만이 남아... 새주를 지킬 것이다." 대야성의 우물에 이미 독이 풀렸을 거라고 생각하며 탈영을 고민하는 병사들 앞에서, 그 우물물을 호기롭게 들이키고 내가 장담했던 말은 결코 식언이 아니었네. 나는 스스로 '끝까지 새주를 받들며 그 의를 함께 하는 자'가 되기로 이미 오래 전에 결심했던 것이네.

보종... 나의 가족들을 부탁하네. 칠숙공께는 남은 가족이 없으나, 내게는 목숨보다 더 아끼는 가족들이 있으니 걸음이 무겁기 한량없네. 그러나 사내의 한평생,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였으며, 더불어 크나크신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길이니 후회는 없네. 알겠는가? 나는 이렇게 떠남으로써 끝까지... 영원히 자네의 좋은 벗으로 남아 있고자 하는 것일세. 


* 이 블로그에 게시된 '선덕여왕' 관련 모든 편지들은 저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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