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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남이시네요' 사랑은 별 것을 다 기억하는 것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미남이시네요

'미남이시네요' 사랑은 별 것을 다 기억하는 것

빛무리~ 2009. 10. 29.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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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수녀님, 저... 젬마예요. 잘 지내고 계시죠? 저는 요즘 젬마도 아니고 미녀도 아닌, 미남이가 되어서 살아가고 있어요. 쌍둥이 오빠의 이름이었던 미남이가 어느새 제 이름처럼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네요. 그런데 남자가 되어서 살아가는 삶에는 쉽게 익숙해지지 않아요.


남자의 옷을 입는 것도, 남자들의 말투를 따라 하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은데... 제 안에서 솟구쳐오르는 여자로서의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너무 힘들어요. 이제껏 저는 제가 여자라는 사실조차 잊고 살았는데,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이런 감정들이 제가 여자임을 자꾸만 일깨워 주네요.

거짓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살아가는 건 죄악이겠죠? 아무리 오빠를 위해서, 그리고 엄마를 찾기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지금의 제 모습은 진실이 아니라 거짓이니까요. 저는 죄를 짓고 있는 거겠죠? 하느님은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저는 요즘 하루종일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남자라고 말하면서 남들을 속이고, 그리고... 누군가를 향한 마음을 애써 부정하면서 저 자신을 속이고 있으니까요. 저는 죄를 짓고 있는 거겠죠?


원장수녀님, 저는 무서워요. 제 안에서 자꾸만 고개를 쳐드는 이 낯선 감정이 무서워요. 생각하려 하지 않아도 제 머릿속에는 온통 그의 생각뿐이예요.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그의 모든 것들이 다 기억나요. 그가 했던 말들 하나하나가 다시 귓가에 울리고, 그의 얼굴 표정 하나하나가 모두 눈에 보이는 듯 생생해요.

이제와 생각하니 고모를 만나서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저는 떠나야 했어요. 제가 더이상 이곳에 남아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져버렸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그의 곁에 남아있고 싶었어요. 그가 지어준 노래를 제 목소리로 부르고 싶었어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남아있겠다고 말했던 거예요. 그의 곁에 남아 있기 위해서는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았어요. 왜 그랬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제가 어떻게 된 모양이예요.

아버지의 고향을 찾아가는 저의 길에 그가 동행해 주겠다고 했을 때 저는 날아갈 듯 기뻤어요. 다른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어요. 언제나 덤벙대고 남에게 폐를 끼치는 저는 또 다시 음료수를 튀겨서 그의 옷을 더럽혔지만, 까칠하게 투덜거리는 그의 목소리도 제 귀에는 노래소리처럼 들렸어요. 차에 준비되어 있던 옷이 마실장님 것밖에 없어서 그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짧은 옷을 입혔지만, 그 모습조차 제 눈에는 성전 앞마당의 다비드상 만큼이나 멋져 보였어요. 원장수녀님, 어떻게 이런 이상한 일이 있을 수가 있는 거죠?


제가 아버지의 산소에 다녀오는 동안 기다리던 그는, 사나운 돼지에게 쫓겨서 실종되고 말았어요.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지만 그가 얼마나 약한 부분이 많은 사람인지를 잘 알고 있기에 저는 너무나 걱정이 되었어요. 그는 방향감각이 없어 서울의 익숙한 길에서도 헤매는 일이 잦은데 이 낯선 시골에서 어찌 길을 찾을 수 있겠어요? 더구나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해가 지고 밤이 되면, 야맹증이 있는 그는 한치앞도 볼 수 없게 될 거예요. 저는 무조건 그를 찾아나섰어요. 다른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어요.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저는 그를 생각했어요. 어두운 곳을 싫어하는 그의 발자취를 따라 햇빛이 더 잘 비치는 밝은 길을 택했고, 더러운 것을 참지 못하는 그이기에 쓰레기를 피해서 깨끗한 길로 따라갔어요. 가다보니 중간에 소똥을 밟은 것이 분명한 그의 발자국이 보였어요. 너무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깔끔한 그가 몸서리쳤을 것을 생각하니 안스러웠어요. 그는 참지 못하고 신발을 씻으러 갔을 거예요. 저는 물을 찾아 근처의 계곡으로 걸음을 옮겼어요. 그리고 드디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를 만났어요. 저는 너무나 기뻤답니다.

그가 물었어요, 어떻게 자기를 찾아냈느냐고... 저도 참 신기했어요. 그를 생각하자 저절로 그의 모든 것이 기억나면서 그의 발자취를 정확히 따라올 수 있었던 거예요. 원장수녀님, 저에게 이런 신기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저는 모르고 있었답니다.


그와 함께 산을 내려오다가 날이 저물었습니다. 저는 이제껏 달도 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스스로 빛을 내는 것만이 별이기 때문에, 남의 빛을 흡수하여 빛을 내는 달은 별이 아니라고 말하더군요. 순간 저의 존재가 달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밝게 빛나는 그의 곁에 빌붙어서 빛을 내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에게 말했더니, 그는 무심한 듯 대답하더군요. 자기는 하늘에 아무리 수많은 별들이 떠 있어도 오직 달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그의 야맹증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저는 괜시리 기뻤습니다. 제 눈에도 환히 빛나는 별과도 같은 그의 모습밖에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의 눈에도 저밖에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나봅니다. 원장수녀님, 젬마는 정말 이기적이고 나쁜 아이입니다. 그에게는 엄연히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있는데, 게다가 저는 남자라는 거짓 껍데기를 덮어쓰고 있으면서 어떻게 그런 욕심을 부렸을까요?


잠시 후 그의 여자친구인 유헤이양이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그와 단둘이 있을 시간을 방해하지 말아 달라고 친절하게 부탁하더군요. 정말 미안한 일이었습니다. 저의 욕심 때문에 두 사람이 사랑할 시간을 빼앗고 있었다는 사실을 저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어요. 두 사람을 먼저 서울로 올려보내고 혼자 남은 저는 그를 잊으려고 있는 힘을 다해 노력했지만, 제 안에 떠오르는 것은 오직 그의 얼굴뿐이었어요.

며칠 후 저를 찾으러 온 신우형을 따라 저는 다시 가수 고미남으로서의 생활로 복귀했습니다. 가슴이 너무 아파서 노래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제 노래를 들은 사람들은 많이 좋아졌다고 기뻐하더군요. 사랑의 노래는 이렇게 가슴이 아파야만 제대로 부를 수 있는 건가 봅니다. 원장수녀님, 제가 정말 사랑에 빠진 걸까요?


더 이상 죄를 지으면 안되겠지요. 그의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면 저는 또 그와 유헤이양의 사이를 방해하게 될겁니다. 하지만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어요. 다행히도 그때 신우형이 다가왔습니다. 신우형은 정말 고마운 사람입니다. 마치 친오빠처럼 저를 따뜻하게 감싸주었지요. 눈물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저는 신우형의 어깨에 기대었습니다. 멀리서 바라보고 있던 그의 눈에는 제 눈물이 보이지 않았을 거예요.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원장수녀님, 저는 두려워요. 제가 너무 많은 죄를 지어서 하느님이 벌을 주시는 걸까요? 용서를 청하고 싶은데 이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원장수녀님, 젬마는 너무 아파요. 원장수녀님, 저를 도와 주세요. 저는 오늘도 낯선 사랑의 아픔에 이렇게 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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