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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남이시네요' 장근석의 슬픈 이야기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미남이시네요

'미남이시네요' 장근석의 슬픈 이야기

빛무리~ 2009. 10. 22.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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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황태경(장근석)은 세계적인 지휘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음악 귀족 가문의 귀한 자식답게 천재적인 작곡 실력과 피아노 연주 실력을 지녔지요. 게다가 성장할수록 빛을 내뿜어 주시는 이 멋진 외모까지 갖추었으니 나는 더 바랄 것 없이 축복받은 인생입니다.

그런데 알고보면 나는 황금칠을 한 성냥개비로 지은 집처럼 허술한 녀석입니다. 스트레스성 위염에 결벽증, 야맹증, 불면증, 몽유병, 게다가 온갖 종류의 알레르기를 버리지도 못하고 끌어안은 채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겉보기에는 번쩍거리지만 언제 부서져내릴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인생입니다.

남들은 나의 겉만 보며 칭찬하고 부러워합니다. 나는 그런 겉모습이라도 지키려고 기를 쓰면서, 누구 한 사람이라도 썩어 문드러지는 내 속을 알아차릴까봐 겁을 냈습니다. 아니, 사실은 좀 알아주기를 바랬었는지도 모르겠군요.


어릴 때부터 나는 그랬습니다. 남들은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진다는데, 나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에 찬바람이 불었습니다. 남들은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는데, 나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허탈한 웃음이 났습니다. 남들이 어머니를 부르며 사랑으로 가슴저려할 때, 나는 어머니를 부르지도 못하고 외로움에 떨었습니다. 이제 원망조차 오래 묵어서 빛이 바래고 말았으니 아무 의미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미워해서 떠나버린 어머니는 그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나를 미워했습니다. 아니, 차라리 미워하기라도 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어머니의 마음속에는 나의 그림자조차도 없었던 것 같군요.


엄마가 갑자기 집을 나가버린 후 어린 나는 매일매일 그리워하며 울다가, 정말 오랜만에 엄마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시켜 준 음식은 새우요리였습니다. 엄마가 모처럼 사준 음식인데 나는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어서 새우를 먹으면 안되는 아이였어요. 그런데 엄마는 나보고 편식을 한다며 화를 냈습니다. 내 아버지가 나를 자기처럼 까다롭게 키웠다면서 말이예요.

엄마에게 미움받기 싫었던 내가 억지로 새우를 먹고 호흡곤란이 와서 캑캑거리자 엄마는 싸늘하게 말했습니다. "엄마 곤란하게 만들지 말고 조용히 화장실 다녀 와!" 그때나 지금이나 선녀처럼 아름다운 내 어머니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십수년이 흘러 내가 어른이 된 후에 다시 만났어도 어머니는 나의 알레르기를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에게서 외면받은 나는 허울좋은 인기라도 붙잡고 일어서야 했습니다. 어차피 아무도 나를 이해해 주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나는 누군가의 시선이 필요했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무리 많아도 헛헛한 내 마음을 채울 수는 없었지만, 그조차도 없으면 나는 부서져 버리고 말 테니까요.

내가 만들어놓은 껍데기에 갇혀, 그것을 무너뜨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때때로 나에게 물었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살고 있느냐고. 하지만 나 자신조차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애가 불쑥 나타났습니다. 계집애처럼 해사한 얼굴에 어린아이 같은 눈동자와 천사의 목소리를 가진 녀석이었지요. 나라는 놈은 원래 누구에게도 친절하지 않지만, 그 아이에게는 처음부터 더욱 못되게 틱틱거렸습니다. 아마도 위기의식을 느꼈었나봅니다. 간신히 버티고 있던 나의 성냥개비 집이 그애 때문에 부서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입니다.

역시 그 녀석은 위험했습니다. 내 욕실에 숨어 있다가 변기의 비데를 틀어놓고 샤워를 하지 않나, 술에 취해 나를 안고 쓰러지다가 내 입에 토하기도 하고, 내 방에 촛불을 가지고 들어와 수선을 피우다가 장식장을 넘어뜨려 난장판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늘 조용한 호수처럼 고여있던 나의 일상은 그 아이 때문에 거친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처럼 소란스러워졌습니다.


알고 보니 녀석은 정말로 계집애였습니다. 그렇다면 더욱 위험하지요. 나는 녀석을 쫓아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모질게 굴어도 녀석은 전혀 나를 미워하거나 멀리할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오히려 강아지처럼 내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알레르기가 있는 나에게 새우죽을 끓여다 주는 식으로 끊임없이 사고를 쳐댔습니다. 정말 대책이 안 서는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사이엔가 녀석이 나를 보고 있지 않으면 허전해졌습니다. 수천 수만명이 나를 바라보고 있어도 채워지지 않던 내 마음을 그 아이가 채워주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불길한 예감은 그대로 들어맞았습니다. 이렇게 나의 황금 성냥집은 차츰 그 아이 때문에 부서져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안에 들어있는 나의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 없는데... 그 아이에게는 자꾸 들키게 되는군요.


또 다시 만난 어머니 앞에서 악연처럼 새우 요리를 먹고 괴로워하던 나를 발견했을 때, 그 아이는 단 한 번 말했던 나의 알레르기를 기억해 주었고, 아파하는 나를 혼자 내버려두지 않고 곁에 있어 주었습니다. 녀석의 설레발이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경우는 없었지만 신기하게도 그애가 옆에 있으면 나는 더이상 아프지 않았습니다.


엄마도 모르는 내 모습을 그애는 벌써 많이 알고 있습니다. 왠지 녀석 앞에서라면 울어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점점 더 위험해집니다. 이제 초라하게 헐벗은 내 속살이 다 드러날 지경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나는 오늘도 그 녀석의 맑은 심연 속으로 속절없이 빨려들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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