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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설원랑(薛原郞)의 편지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선덕여왕 편지시리즈

'선덕여왕' 설원랑(薛原郞)의 편지

빛무리~ 2009. 9. 21.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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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늦기 전에 이 말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나 설원(薛原)이 그대 미실(美室)에게 편지를 씁니다. 물론 그대는 알고 계시겠지요. 하지만 이제 점점 약해져가는 그대를 보니 내 마음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내로 태어나 그대와 같은 여인을 만날 수 있었으니 나는 이 생에 아무런 여한이 없습니다. 예전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할 것입니다. 그대의 곁에서라면 나는 한 번도 죽음을 두려워한 적이 없습니다. 처음 만나던 순간부터 그대는 나의 삶이었고, 꿈이었고, 모든 것이었습니다.

내가 좀 더 잘난 사내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내가 그 허울좋은 성골로 태어났거나, 보다 출중한 능력을 타고났더라면, 그래서 당신의 첫번째 꿈을 이루어 줄 수만 있었더라면... 당신은 그 황후라는 작은 꿈에 얽매여 울먹이지 않고 환히 웃으며 그 다음의 꿈을 꿀 수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한미한 출신에 가진 능력조차 오직 그대를 보필하는 정도에 불과한 몸이니 언제나 그대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길 없습니다.


그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평생 향가(鄕歌)를 짓고 옥적(玉笛)을 불며 속세를 떠나 유람이나 하며 살아갔을 것입니다. 원래의 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낭도들도 나를 닮아 향가와 청유를 즐기곤 하였지요.

그러나 그대와의 만남은 나의 전부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대가 아니었다면 사내치고는 나약한 편이었던 내가, 무협의 호탕한 기운을 뼈속까지 타고난 문노와 감히 대적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하지만 나는 두려움없이 문노의 호국선도에 대항하여 운상인도를 이끌며 그대를 보필하였습니다.

우리 아들 보종을 처음으로 정치에 입문시킬 때, 그대는 평소답지 않게 약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이며 말했었지요. "보종이 혹여 설원공처럼 음지의 일만 맡아서 하게 될까 생각하니 그것은 싫습니다."


그대는 보종을 염려하면서 한편으로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하지만 나에 대한 미안함을 티끌만큼이라도 품고 있다면 그러지 마시라고, 내가 음지의 일을 하든 양지의 일을 하든 그대의 곁에 있는 한 그 모두가 내게는 더없는 기쁨인데, 그대가 나에게 미안해하면 내 마음이 아파진다고 나는 그대에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보종을 매섭게 훈련시키면서 그대가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는 것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세종공의 아들 하종에게는 그렇게까지 않으셨습니다. 세종공은 그대의 신분을 높여주는 부군이시나 단지 그뿐이었지요. 언제나 그대 곁에 있는 남자는 이 설원이었고, 그대가 가끔씩 힘겨워할 때마다 의지하는 사람도 이 못난 설원이었습니다. 그대는 나를 믿고 의지하는 만큼 우리 아들을 귀하게 여겼고, 그래서 강하게 키우고자 하였습니다.


이제 문노의 제자 비담을 만나 생전 처음으로 비재에서의 처참한 패배를 맛본 보종에게 그대는 숨겨두었던 모정을 드러내십니다. 내가 그대를 위해 충분히 강한 남자가 되어 주지 못한 것처럼, 우리 아들도 그대를 위해 충분히 강한 자식이 되어 주지 못했군요. 보종을 안아주는 그대를 보며 내 가슴이 쓰라렸던 것은 감동과 더불어 미안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대를 언제나 존경하였지만, 아무리 강해 보여도 그대 또한 여린 속을 지닌 여인임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그대를 안스럽게 여기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오랜 세월 패배를 모르고 지내왔던 그대가 이제 어린 덕만공주와의 대결에서 거듭 패배를 맛보게 되니 그 아픔이야 오죽할 것입니까? 청랑하게 울리던 그대의 연주가 날카로운 굉음으로 변해갈 때, 그 깨어지는 유리잔처럼 그대의 마음이 산산이 부서져 내리는 소리를 나는 들었습니다.


내 손이 피투성이가 될지라도 그 마음 조각들을 주워 모아서 다시 빛나게 해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이 못난 사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다만, 무너져내리는 그대의 손을 잡고 곁에 있어 주는 일, 그것뿐이었습니다.

평생 그대를 바라고 존경하고 사랑해 온 이 설원(薛原)이 그대에게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은, 끝까지 그대 곁에 있겠노라는 맹세입니다. 그대가 병에 걸리면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늘을 감복시켜 그대의 병을 나에게로 옮겨 오게 할 것입니다. 죽음이 그대를 덮쳐오면 내가 먼저 그 죽음을 덮어쓰고 도망칠 것입니다. 그대가 나를 잃고 서러워할 것을 생각하면 또 한번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으나, 그대와 같이 아름다운 사람은 잠시나마 이 세상을 더 오래 밝혀 주어야 하기에 내가 먼저 떠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나는 그대 앞에 우뚝 서서, 그대에게로 불어오는 피바람을 온 몸으로 막고 있습니다. 이렇게 서서히 하늘의 뜻이 그대에게서 멀어져 간다 해도 나는 결코 그대의 손을 놓지 않을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이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니 나의 영원한 천신황녀, 기운을 내세요.


*펌글이 아니라 저의 개인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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