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역적' 아모개(김상중)의 매력, 채널을 고정시키다 본문

종영 드라마 리뷰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

'역적' 아모개(김상중)의 매력, 채널을 고정시키다

빛무리~ 2017.02.07 21:15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 2회의 엔딩을 볼 때까지만 해도 노비 부부인 아모개(김상중)와 금옥(신은정)의 운명에는 비극 외에 남은 것이 없을 줄만 알았다. 과연 금옥은 만삭의 몸으로 조생원의 희롱에 저항하다 태중에 상처를 입고는 피비린내 가득한 난산 끝에 세상을 떠났다. 이에 누구보다 아내를 사랑했던 아모개는 정신줄을 놓고 말았다. 게다가 주인 조참봉(손종학)과 그의 숙부인 조생원이 자기의 재산을 가로채려 의도적으로 꾸민 일임을 알게 된 아모개는 끝내 주인을 살해하기로 결심한다. 스스로 삶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내릴 수 없는 결단이었다. 2회 엔딩까지는 정말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런데 3회의 전개는 예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조참봉을 살해한 후 즉시 체포되거나 아니면 도망치다가 체포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운명 밖엔, 아모개의 또 다른 앞날은 없을 줄만 알았는데 뜻밖에도 아모개는 도망치지 않고 정면대결을 선포했다. 조참봉 살해는 우발적으로 행한 일이 아니라, 치밀한 계획하에 몇몇 조력자의 도움을 얻어 행한 일이었다. 금옥의 비참한 죽음을 지켜본 후에도 아모개는 정신줄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고통 속에서 그의 정신은 더욱 맑아졌고, 아모개는 통쾌한 복수를 이룸과 동시에 두 아들 길현(이도현), 길동(이로운)과 함께 하는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조참봉의 아내 박씨(서이숙)는 자기 남편을 죽인 자가 도적이 아니라 씨종 아모개라 주장했다. 고을 사또는 자기가 다스리는 지역에서 역모에 버금가는 강상죄가 발생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치를 떨었지만, 그럼에도 재판은 천민 아모개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천한 장사치와 어린아이들의 증언은 가차없이 묵살되고, 오직 양반들의 증언만 유효하게 채택되면서 아모개는 끝없는 고문과 죽임의 협박에 시달렸다. 하지만 털끝만큼도 굴하지 않는 아모개의 기상은 그야말로 천하 영웅의 그것이었다. 노비로서 움추리고 살아갈 때조차도 이따금씩 빛을 번뜩이던 그의 지혜와 기개는, 굴욕의 삶을 떨쳐내기로 결심한 후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펼치고 날아올랐다. 


명백한 증거가 없어 남편을 죽인 아모개를 처형하기 어렵게 되자, 박씨부인은 아모개의 아들 길동이 아기장수라는 소문을 들어 협박하기 시작했다. 다름아닌 자식의 일인지라 아모개도 순간 움찔했다. 그러나 잠시 눈빛이 흔들렸을 뿐 곧바로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일찌기 조참봉은 세자가 보위에 올랐을 때를 대비하여 폐비 윤씨와 연줄을 대고 있었는데, 복권될 것이라 믿었던 폐비는 사약을 받아 죽었고 그녀와 왕래하던 양반들에게까지 불똥이 튀고 있는 풍운의 시기였다. 아모개는 감옥에서도 저잣거리의 친구를 통해 그 소식을 먼저 듣게 되었으니 그의 손에는 박씨부인을 공격할 칼자루가 쥐어진 셈이었다.


 

40년 동안 조참봉을 섬기며 그에 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었던 아모개, 그는 조참봉이 폐비와 주고받은 서신 중 어린 세자를 옹호하며 현재의 임금을 능멸하는 내용이 있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큰아들 길현이 영특하여 글을 깨쳤기에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자칫 멸문지화를 당하고 온 가족이 노비로 끌려가게 될 최고의 강상죄, 역모죄에 덜미를 잡혔으니 살기등등하던 박씨부인도 결국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사또 앞에서 자신의 오해였다 말하고 자기 남편은 도적에게 살해당했다고 증언한 후, 아모개에게 직접 사과까지 했다. 당당한 걸음으로 관아를 걸어나오며 서늘한 미소를 짓는 아모개. 그의 곁에서는 어린 두 아들이 아버지의 무사귀환을 반기고 있었다. 


이제껏 '홍길동'을 소재로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가 만들어졌으나, 그 모든 작품의 주인공은 조선시대 양반 작가 허균의 창작 소설 '홍길동전'에 등장하는 양반가의 서자였다. 하지만 '역적'의 주인공 홍길동은 다르다. 그는 연산군일기와 중종실록에 큰 도적의 이름으로 기록된 실존인물 홍길동이다. 반쪽이나마 양반가의 피가 흘렀던 소설 속 홍길동보다, 대대로 천대받는 노비였던 씨종 아모개의 아들이기에 홍길동이 겪어야 했던 어린 날의 비극은 더욱 처참했다. 어린 길동은 억울하게 매맞는 부모를 늘 속수무책 바라보았고, 끝내 억울하게 죽어가는 어머니의 최후를 지켜봐야 했으며, 결국 살인을 저지르고 처형 직전까지 몰리는 아버지를 지켜봐야 했다. 

이와 같은 어린 날의 경험이 아기장수로 태어난 홍길동의 심성을 더욱 담금질했을 것이니, 그는 과연 백성의 마음을 훔치는 진정한 역적이 될 것이다. 이제 아역으로부터 바통을 이어받는 윤균상의 연기력이 또한 나쁘지 않고 그 외모와 분위기가 홍길동에 잘 어울리니 차후의 전개가 매우 기대된다. 하지만 극 초반을 장식했던 부친 아모개의 강렬한 캐릭터와 김상중의 출중한 연기력이 없었다면 결코 '역적'은 이만큼의 시청률과 호응을 확보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 또한 3회의 통쾌한 사이다 반전을 본 후, 월화드라마의 채널을 '역적'에 고정하기로 마음먹었다. '제왕의 딸 수백향' 이후 오랜만에 선보이는 황진영 작가의 필력은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신고
4 Comments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