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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귀에 캔디' 유부남 뮤지 출연, 독이라 생각하는 이유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내 귀에 캔디' 유부남 뮤지 출연, 독이라 생각하는 이유

빛무리~ 2016. 9. 2.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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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을 시청하지 않고 쓰는 글이기에 '리뷰'라는 표현은 쓰지 않겠다. 이 글은 리뷰가 아니라 오직 뉴스를 통해 접한 해당 프로그램의 한 가지 문제와 그에 관한 내 생각을 서술한 글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해당 프로그램을 시청할까 고민했지만, 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아서 안 보기로 결정했다. 생면부지의 이성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며 설레고 위로받는다는 설정 자체가 나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첫째는 허무하다 생각했고, 둘째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만남에도 얼마든지 거짓이 침투할 수 있지만, 자기 실체를 완벽히 숨길 수 있는 전화 통화에서는 그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진다. 

'내 귀에 캔디'는 시작되자 마자 장근석과 유인나라는 출연자를 통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들의 통화와 만남에서 짜릿하고도 감미로운 설렘을 느꼈다는 사람들이 꽤 많기에 어떤지 궁금해서 한 번 볼까도 싶었지만, 역시 내키지 않아서 그만두었다. 그와 같은 설렘 자체가 얼마나 허무하고 부질없는 것인가를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혼의 여배우 경수진을 출연시키고, 그녀의 통화 상대로 '연애요정'이라는 남성을 붙여 주었는데 그의 정체가 알고 보니 유부남 뮤지였다는 사실을 뉴스로 접하고는 새삼 충격받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애인'이 아니라 '친구'를 만나는 프로그램이라 강변해봤자 소용없다. 


'내 귀에 캔디'와 같은 프로그램은 '설렘'을 미끼로 시청자를 유혹한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영화나 드라마와는 다르다. 출연자들은 진심 없이 연기만 할 수도 있겠지만, 시청자는 그들의 모습에서 단 1%의 진실 가능성을 찾으며 설레는 재미로 시청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예능 프로그램인 '불타는 청춘'을 통해서 김국진과 강수지가 실제 커플로 발전하며, 시청자들의 이와 같은 몰입과 설렘이 결코 불가능한 환상만은 아님을 증명해 주었다. 그런데 '낯선 이성과의 전화 통화'라는 자극적인 콘셉트를 설정해 놓고, 달콤한 목소리와 다정한 대화를 통해 시청자의 설렘을 한껏 고조시켜 놓고, 나중에 짠~하고 정체를 드러낸 사람이 유부남이라고? 


기사 내용을 보니 통화 중 경수진이 결혼 여부를 물었을 때 '연애요정'은 음악과 결혼했다는 둥 하는 말로 대충 얼버무렸다고 한다. 비록 악의가 있어 속인 것은 아니라 해도 어쨌든 속인 것은 맞다. 그 상황에서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밝히면 '설렘'이 와장창 깨어질 것이기에, 프로그램을 위해서라도 숨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차피 나중엔 밝혀질 일이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부남인 줄도 모른 채 이성적 설렘과 달콤한 감정을 느낀 시청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작 출연 당사자인 경수진의 감정은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내 생각엔 결코 유쾌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최소한 유부남인 것을 모른 채 전화 통화만 할 때의 감정과, 그의 실체를 알고 난 후의 감정은 무척 달랐을 것이다. 뮤지가 통화 중에 오직 경수진만을 위한 노래를 불러주겠다면서 김동률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를 열창할 때, 그 노래를 듣고 감동한 경수진은 눈물까지 흘렸다고 한다. 뮤지의 매혹적인 목소리와 뛰어난 가창력을 알고 있기에, 그리고 김동률의 원곡 자체가 얼마나 감동적인지를 알고 있기에, 나는 방송을 안 보고도 경수진이 왜 눈물을 흘렸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감동으로 펑펑 울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유부남한테 홀린 거였다고? 여우같은 마누라에 토끼같은 자식이 둘이나 딸린 남자였다고?


기사의 댓글을 보니 유부남인 뮤지의 출연 자체가 문제라는 의견도 많았지만, 애인이 아니라 친구를 찾는 콘셉트이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는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정말 진심으로 100% 그런 거라면, 왜 동성 친구는 배제하고 이성 친구만 연결시켜 대화하게 만드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통화 중에 유부남이라는 정체를 숨겼다는 사실이다. 처음부터 밝히고 대화를 시작했다면 여자 쪽 입장에서도 마음가짐을 달리 할 수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음악과 결혼했다는 둥 하면서 (싱글의)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는 사실은 이 프로그램의 진정성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려주는 대목이다. 


아무리 친구 찾기니 뭐니 해봤자 '내 귀에 캔디'는 기본적으로 '이성간의 설렘' 없이는 존속될 수 없는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아무런 방어막 없이 (유부남 또는 유부녀라는 사실을 모른 채) 속마음을 털어놓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위로받고 가까워진다는 것은... 당연히, 지극히 위험하다! 이걸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내가 볼 때는 도덕성에 좀 문제가 있다. 세상의 모든 불륜은 그런 식으로 시작된다. 처음부터 "난 작정하고 불륜해야지!" 라는 마음으로 시작되는 관계는 거의 없을 것이다. 특히 힘든 사람은 누구에게든 위로받으면 기대고 싶어지는 법이기 때문에, 이성간에는 위로도 조심해서 선을 지키며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성적인 끌림이란 미묘하고도 지독한 것이다. 안 되는 줄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불가항력적으로 그 미친 감정 앞에 무릎 꿇고 무너지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더욱이 '안 되는 사람인 줄을 모른 채' 시작했다면? 나중에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고 안간힘을 써봤자, 벌써 걷잡을 수 없이 끌려버린 마음을 어떡할 건데? 물론 이것은 방송 프로그램이니까, 그리고 여배우 경수진은 프로니까, 어디까지나 '공적인 일'을 하던 중이었으니까, 별로 큰 충격을 받지 않고 그러려니 했을 수 있다. 하지만 유부남과 미혼 여성을 이런 식으로 연결시켜 놓고 설렘의 분위기를 조장하는 이 프로그램을 나는 이 사회의 '독(毒)'이라고 생각한다. 


방송에서 출연자의 개인적 감정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회적 영향이다. 친구와 마음 터놓고 대화하며 위로받는 콘셉트일 뿐 썸타는 것도 아니고 우결도 아닌데 상대가 유부남인 게 무슨 상관이냐는 의견이 많은 것을 보고 나는 무척 놀랐다.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며 위로받는 것은 오히려 썸타는 것보다도 백 배 위험하고, 우결처럼 가짜 부부를 연기하는 것보다도 천 배 위험하다. 무엇보다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속였기 때문에, 이건 친구라고 할 수도 없다. 거짓으로 시작한 관계는 결코 친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방송이니까, 일회성이니까 정말 괜찮을까? 범죄를 다루는 방송 후에도 끔찍한 모방 범죄가 잇따르곤 하는데, 이건 정말 괜찮을까? 


유부남의 입장에서 보면 전혀 손해날 것이 없는 일이다. 상대는 젊고 예쁜 미혼 여성이다. 내가 유부남인 것도 모른 채 자신의 힘든 이야기를 조잘조잘 털어놓는다. 내가 한껏 달콤한 말로 위로해 주자 상대는 점점 마음을 열고 기대어 온다. 내가 멋진 목소리로 위로의 노래를 불러주자 상대는 눈물까지 흘리며 감동한다. 사실 엄청난 도덕성을 지닌 남자가 아닌 다음에야, 이렇게 기분 좋고 짜릿한 체험의 기회를 거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불륜도 아니고 범죄도 아니기 때문에, 남들 앞에서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척 당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마음 속 깊은 곳까지 떳떳하고 당당할지는 각자의 양심에 맡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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