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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와이프' 1회, 전도연의 힘 뺀 연기에 빠져들다 본문

드라마를 보다

'굿와이프' 1회, 전도연의 힘 뺀 연기에 빠져들다

빛무리~ 2016. 7. 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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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의 여인' 전도연이 오랜만에 브라운관 복귀를 선언하며 화제를 모은 드라마 '굿와이프'의 첫방송이 전파를 탔다. 전도연 뿐만 아니라 유지태, 김태우, 윤계상, 김서형 등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의 묵직한 이름만으로도 '굿와이프'는 관심이 끌리는 작품이었다. 더욱이 최근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미드(미국 드라마)의 한국판 리메이크작이라는 점에서도 궁금증이 일었다. 

'굿와이프'는 15년 동안 남편 이태준(유지태)의 그늘에서 살아왔던 김혜경(전도연)이 갑작스레 남편의 그늘 밖으로 밀려나와 홀로서기를 하게 되는 과정부터 시작되었다. 강직하고 실력있는 검사로서 장래가 촉망되던 이태준은 금품 비리와 성상납 혐의로 구속되었고, 설상가상 매춘부와의 은밀한 관계가 찍힌 동영상까지 외부로 유출되며, 가정주부 김혜경의 평화롭던 일상은 산산히 부서졌다. 


이태준은 무죄를 주장했지만 결국 실형을 선고받아 감옥에 갇혔고, 두 아이와 함께 남겨진 김혜경은 생활을 위해 15년 동안 손에서 놓았던 법전을 다시 펼쳐 들었다. 사실 그녀도 15년 전 연수원 시절에는 천재 소리까지 들어가며 주변의 기대를 모으던 젊은 예비 법관이었지만, 연수원에 강의를 나왔던 검사 이태준의 카리스마에 홀딱 반해서 결혼하며 진로를 변경했던 것이다. 


연수원 시절부터 친했던 동기 서중원(윤계상)의 도움을 받아 변호사 자격으로 로펌에 들어갔으나, 늦은 나이에 처음 시작하는 사회생활이 결코 만만할 리 없었다. 혜경의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며 첫 의뢰인은 불안 가득한 눈으로 "변호사는 맞아요?"라고 묻기도 했다. 그러나 혜경은 의외로 놀라운 침착성과 굳건한 배포를 드러내며 첫 사건을 승리로 이끈다. 

재판 과정이 흥미롭기는 했지만 쉽게 공감할 수 없었던 이유는 현실적이지 않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김혜경의 주변에는 아무 이유 없이 그녀의 편이 되어 도와주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일단 연수원 동기였을 뿐 애인도 아니었다는 서준영은 로펌의 공동 대표인 친누나 서명희(김서형)과 부딪히면서까지 무리해서 혜경을 받아 주었다. 


그리고 로펌 조사원 김단(나나)은 혜경이 첫 출근을 하던 날 아침에 처음 만났을 뿐인데,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언니 동생처럼 삽시간에 친해져서 혜경의 든든한 조력자가 된다. 나이는 많지만 신입 변호사에 불과한 혜경이 감히 로펌 대표인 서명희의 강력한 제안을 거절하고 의뢰인의 무죄를 주장하겠다는데, 김단은 무조건 혜경을 신뢰하고 지지하며 그 편에 섰던 것이다.


 

김단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증거 자료를 확보하고 법정에 섰으나, 만약 담당 판사가 이미 검찰측에 매수된 상태였다면 혜경의 승리는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손쉬운 사건 해결을 위해 증거 자료 일부를 누락시키기까지 했던 검찰측인데, 현실적으로 담당 판사에게 손을 뻗지 않았을 리가 없다. 하지만 억세게도 운이 좋아, 담당 판사는 틱틱거리는 말투와 달리 매우 공정하고 깨끗한 인물이었다. 


김혜경의 변론 중에 검찰은 몇 번이나 이의를 제기했지만, 판사는 거의 모두 기각시키고 혜경의 변론을 끝까지 귀담아 들었다. 공정한 판사가 이처럼 혜경에게 힘을 실어주니 검찰측의 음모(?)는 더 이상 진행될 수 없었고, 결정적 증거를 확보한 혜경은 손쉽게 승리한다. 검찰측에서 공소를 포기함으로써 죄없는 피고는 무사히 풀려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도 혜경의 일거수 일투족을 훤히 꿰뚫어 보는 남편 이태준의 모습은 화면에 비칠 때마다 섬뜩함을 자아냈다. 사실 혜경이 맡은 첫번째 사건의 결정적 실마리 - 검찰에서 증거를 누락시켰다는 - 를 제공해 준 사람도 이태준이었다. 혜경의 승리가 확정되자 그는 갇힌 몸으로 자유롭게 전화를 걸어 축하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도대체 그의 정체는 뭘까? 


이태준의 정체가 매우 아리송하기 때문에, 아직은 이 드라마의 방향이 어디로 흘러갈지를 종잡을 수가 없다. 미드 원작을 시청하지 않은 나로서는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모든 상황은 이태준의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목적을 위해 스스로 감옥에 들어갔고, 그 안에서 은밀한 수족을 움직여 바깥 세상을 조종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혜경 역시 아무것도 모른 채 남편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게 아닐까? 또한 혜경의 주변에 이유 없이 그녀를 돕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까지도 이태준의 계획일 것이다... 아무튼 몇 가지 미심쩍은 부분이 있기는 해도 전체적인 설정과 캐릭터는 흥미롭게 느껴졌으며, 추후 계속 이만큼의 재미와 긴박감이 보장된다면 또 하나의 웰메이드 드라마가 탄생할 듯한 예감이 든다. 


무엇보다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역시 전도연의 연기였다. 언제부턴가 전도연은 카메라 앞에서 완전히 힘을 빼고 연기하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힘 빠진 모습은 그녀를 영화배우가 아니라 실제 그 상황에 처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어쩌면 화려하고 특출한 미모가 아니라 비교적 평범한 외모를 가졌다는 사실이 배우로서의 그녀에게는 큰 플러스 요인이 되는 것도 같다. 

올해 초 영화 '남과 여'를 관람한 후, 나는 전도연의 텅 빈 눈빛과 지친 표정을 아주 오래도록 잊을 수 없었다. 극 중 전도연은 자폐아를 키우는 엄마였는데, 아들의 국제학교 캠프 때문에 핀란드에 갔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남자 공유와 불륜의 사랑에 빠진다. 만약 전도연의 연기가 아니었다면 두 남녀의 사랑은 결코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도연의 지친 얼굴과 공허한 눈빛은 그녀의 미친 일탈과 사랑을 이해하게 만들었다. 핀란드의 눈 덮인 산장에서의 하룻밤은, 무거운 현실과 책임감을 떨쳐내고 머나먼 그 곳에서 잠시나마 스스로를 풀어놓아 자유롭고 싶은 마음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힘겨워도 일상을 지키려 했지만, 너무나 지쳐 있었기에 마음의 휴식처가 되어주는 그 남자를 점차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굿와이프'의 전도연은 약간 다르다. 15년 동안 믿어왔던 남편에 대한 배신감 - 그가 한 번의 실수라고 주장하는 매춘부와의 동영상 - 때문에 일말의 공허함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남과 여'에서처럼 지쳐 있는 모습은 아니다. 그녀는 새로 시작한 변호사 일에 신념과 열정을 쏟고 있으며, 그 어떤 권력과 강압에도 굴하지 않을 만큼 강인하기도 하다. 

이와 같은 스타일의 여주인공은 자칫 과도하게 힘이 들어간 모습으로 비취질 수 있다. 너무 씩씩하고 활발하고 무대포스럽게 그려질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전도연의 힘 뺀 연기는 김혜경을 아주 현실적이고도 살아 숨쉬는 캐릭터로 탄생시켰다. 김혜경이 그토록 용감할 수 있는 이유는 과도한 에너지를 지녀서가 아니라, 강인한 신념과 모성애 때문임을 느낄 수 있게 만든 것이다. 


15년 동안 평온히 지내다가 느닷없이 험악한 세상과 홀로 마주 선 김혜경은 결코 만화 속 원더우먼이 아니다. 그녀는 가냘픈 체격 만큼이나 여린 마음을 지녔고, 막막한 현실 앞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때로는 뼈아픈 좌절과 실패도 경험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일어설... 평범한 그녀 김혜경의 성장 스토리는 전도연의 명품 연기와 함께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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