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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보감' 끔찍한 건 흑주술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이다 본문

드라마를 보다

'마녀보감' 끔찍한 건 흑주술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이다

빛무리~ 2016. 5. 14.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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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씨남정기' 후속 드라마 '마녀보감', 동시간대에 함께 출발한 '디어 마이 프렌즈' 쪽으로 일찌감치 마음을 굳힌 터라 큰 관심은 없었지만, 방송 후 내 블로그에 '흑주술'이라는 키워드로 유입량이 급증했기에 검색하다가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해당 포스팅은 드라마 '해를 품은 달'과 관련하여 4년 전에 썼던 것인데, '마녀보감' 1회에 흑주술이라는 소재가 다뤄짐으로써 대중의 관심이 다시 집중되었던 모양이다. 갑자기 궁금해져서 시청해 보았는데, 무녀 홍주 역을 맡은 염정아의 열연과 더불어 흑주술 부분은 제법 임팩트 있게 표현된 것 같지만 차후의 내용 전개에는 크게 끌리지 않는 터라 계속 시청할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다. 

시대 배경은 조선 명종 때이다. 실록에 따르면 명종의 유일한 아들이었던 순회세자가 13세라는 어린 나이에 사망한 후, 조선의 왕위는 중종의 서자이며 명종의 이복동생인 덕흥군의 셋째 아들 하성군(선조)에게로 이어진다. 하지만 드라마의 내용은 90% 이상이 픽션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명종(이다윗)과 인순왕후 심씨(장희진) 사이에 후사가 없자 대비 윤씨(김영애)는 흑무당인 홍주(염정아)를 궁으로 불러들이는데, 중전이 불임의 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홍주는 흑주술을 벌이기로 결심한다. 먼저 다른 여인의 몸에 왕의 자식을 잉태시킨 후, 흑주술을 이용하여 그 태아를 중전의 몸으로 옮겨놓는 것이다. 


중전을 대신하여 잉태하게 될 여인은 흑주술을 받아내기 위해 신력이 강한 무녀라야 했고, 훗날의 분쟁을 차단하기 위해 흑주술이 시행된 후에는 반드시 죽어야만 했다. 이에 희생양으로 결정된 여인은 바로 성수청의 무녀 해란(정인선)이었다. 유난히 뛰어난 신기로 홍주에게 낙점된 해란은 항거할 수 없는 명에 따라 왕과 합방하여 쌍둥이를 임신하고, 홍주는 흑주술을 통해 그 쌍둥이를 중전 심씨의 태중으로 옮겨놓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는 계획대로 해란과 그녀의 가족을 죽여 후환을 없애려 하는데, 강한 신력으로 저항하는 해란에게 제압당한 홍주는 오히려 자기가 목숨을 잃게 될 지경에 처한다. 하지만 그 광경을 지켜보던 중전이 해란의 등 뒤에 칼을 꽂는다. 

평소 자신에게 친절히 대하던 중전을 추호도 의심치 않았던 해란은 배신감에 치를 떨며 죽어간다. 그리고는 마지막 힘을 다해 중전의 태중에 들어있는 쌍둥이에게 저주를 내린다. 그 아이들은 17세가 되는 생일에 죽음을 맞이할 것이고, 행여 죽음을 피한다면 죽음보다 더 고통스런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며, 그 아이가 사랑하거나 그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죽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 끔찍한 저주를 뒤집어쓰게 된 아이들은 결국 해란 본인의 자식들이었으니, 참으로 간담 서늘한 비극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 후 수개월이 흘러 중전 심씨는 과연 남녀 쌍둥이를 출산하게 된다.


홍주는 두 아이에게 씌워진 저주를 알아보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자신의 신력으로 그 저주를 둘 중 한 아이에게 몰아놓을 테니, 그 아이만 없애고 나면 다른 한 아이는 무사히 지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왕위를 이을 세자의 존재는 결코 포기할 수 없으니, 죽어야 하는 쪽은 당연히 공주였다. 다만 저주가 씌워진 몸이라 쉽게 죽일 수도 없으니 저주를 정화하는 삼매진화로 태워 죽여야만 하는데, 삼매진화는 소격서 주관이므로 소격서의 수령인 최현서(이성재)만이 그 권한과 능력을 갖고 있었다. "조선의 앞날을 위해 반드시 죽어야만 하는 아이다!" 대비 윤씨는 최현서에게 명령하지만, 충신 최현서는 화형식을 집행하는 척 하면서 어린 공주를 몰래 빼돌린다. 

명종의 딸이며 순회세자의 쌍둥이 누이인 서리공주는 그렇게 저주받고 버려진 후, 최현서의 양녀가 되어 연희라는 이름으로 키워진다. 이렇게 살아남은 공주의 존재와 그녀에게 걸린 저주는 17세가 되는 생일에 무섭게 발현하어, 결국 쌍둥이인 순회세자의 목숨을 앗아가게 될 예정이다. 하지만 실록에 따르면 순회세자는 명종의 유일한 자식이었기에, 친형제 자매는 물론 이복 형제나 자매도 없다. 다만 순회세자가 어린 나이에 사망하여 조선 왕조의 적통 혈손이 끊기고, 왕위가 첫 방계 임금인 선조에게로 이어졌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일 뿐이다. 또한 대비 윤씨의 악랄한 캐릭터는 실존 인물인 문정왕후의 악녀 이미지에서 비롯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최현서는 저주가 발현되지 않도록 막기 위해 연희를 결계에 가둬놓고 키우는데, 그 안에서 어린 공주는 극도의 외로움과 존재론적 불안에 시달린다. 그래서 양오빠가 해 준 말 한 마디를 끝없이 되뇌이며 자기를 격려한다. "세상에 태어나지 말아야 할 사람은 없다고 했어. 우리 오라버니가 말씀하셨어. 어떤 사람이든, 그 신분이 귀하든 천하든, 병이 있든 없든 간에 태어난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하나씩 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이유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그것을 찾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드는 연희(김새론)의 모습은 이미 17세의 꽃다운 소녀로 성장해 있다. 희망 없는 나날 속에서도 애써 희망을 찾는, 티없이 밝으면서도 아련한 눈빛이다.  

지나치게 마른 체격이었던 김새론은 예전보다 약간 살이 붙은 듯한데, 그래서 더 화사하고 예뻐지긴 했지만 예전처럼 핏기없는 얼굴이 아니라선지 별로 비극적인 분위기가 배어나오지는 않는다. 게다가 외모는 그런대로 성숙해졌대도 아직 목소리가 너무 어린애 같으니, 이 처절한 사극의 여주인공으로서 과연 어울릴까 하는 우려가 생긴다. 어쨌든 캐스팅은 이미 끝났으니 남주인공 허준(윤시윤)과의 세대불문 호흡을 기대해 볼 수밖에...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마. 너도 분명 태어난 이유가 있을 테니까!" 라고 중얼거리던 연희의 마지막 대사는 아마도 허준에게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마녀보감' 1회를 시청하는 동안 나는 계속 밀려드는 끔찍하고 서늘한 느낌에 몸서리를 쳤는데, 잠시 후 생각하니 그 느낌의 원인은 흑주술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에 있었던 것 같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중전의 몸에서 적통 세자를 얻고야 말겠다는 대비 윤씨의 욕심, 자기가 불임의 몸이라는 걸 알면서도 타인을 죽이면서까지 아들을 낳고자 했던 중전 심씨의 욕심, 그리고 대비에게 빌붙어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흑주술이 불러올 끔찍한 결과를 예상하면서도 그것을 실행한 홍주의 욕심... 차후에 벌어질 커다란 비극은 이 세 여인의 가공할 욕심이 빚어낸 참사였다. 흑주술이 아무리 무섭다 한들 인간의 욕심을 넘어설 수 있을까? 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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