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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씨남정기' 옥다정(이요원), 존재 자체가 판타지인 그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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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씨남정기' 옥다정(이요원), 존재 자체가 판타지인 그녀

빛무리~ 2016.04.02 14:38


"자부심 없는 밥그릇은 먹으면서도 비참한 겁니다!" 라고 옥다정(이요원)은 외친다. 언제 어디서나 그녀의 행동과 마음가짐은 한결같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며, 부당하거나 불공정한 것을 절대 참고 넘어가지 않는다. 분명 자신이 '을'인 상황에서도 결코 '갑'에게 숙이지 않는다. 을이 갑에게 대들다가는 곧바로 와장창 깨지는 것이 현실인데, 신기하게도 옥다정은 깨지긴 커녕 오히려 갑에게 상처를 입힌다. 그러니 같은 을의 입장에서 보는 시청자들로서는 이 시원스런 사이다녀에게 홀딱 반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아니 오히려 현실을 알기 때문에 옥다정의 성공적인 반란이 더욱 통쾌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옥다정이 '욱다정', 혹은 '욱씨'라고 불리는 이유는 걸핏하면 욱하기 때문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신념하에 꾹 참고 살아가는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그 와중에 아닌 것을 아니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면 곧바로 욱하는 사람, 참을성 없는 사람, 성격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만다. 하지만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든 옥다정은 상관치 않고 큰 소리로 외친다. "좋은 게 좋은 건, 누구한테 좋은 겁니까?" 따지고 보면 '좋은 게 좋다'는 논리야말로 얼마나 비상식적인 개념인가? 어쩌면 그것은 강자와 악인의 방패막이에 지나지 않는다. 먼저 때려 놓고, 먼저 부당함을 강요해 놓고, 약자와 피해자가 항의라도 해볼라치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하면서 입을 틀어막는다. 


하지만 그 말에서 큰 위로를 받는 사람들이 약자들임은 또한 슬픈 아이러니다. 힘이 없어서 실컷 얻어맞고 반항조차 못했다는 현실을 그대로 직시하면 너무 아프기 때문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내가 꾹 참았지" 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안하는 것이다. 한 쪽에서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능글맞은 미소를 지을 때, 한 쪽에서는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차마 흘리지 못한 눈물을 삼킨다. 이것은 아주 오래된 세상의 법칙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웃기는 논리에 대놓고 반항하는 인물이 나타났다. 공평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결코 '좋은 게 좋은 거'일 수 없다고, 그래서 나는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을 거라고 외치는 옥다정이다. 


그녀를 보고만 있어도 참 속이 시원하긴 한데, 이 유쾌함이 오직 판타지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씁쓸해진다. '시그널'의 이재한(조진웅) 형사 역시 '갑'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을'이었지만, 그는 용감함의 대가로 수없이 다치거나 죽거나 도망자가 되었다. 감히 '갑'과 맞서려는 '을'에게 이 세상은 설 자리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그널'은 '시간을 초월하는 무전기'라는 일종의 판타지 소재를 차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현실적인 드라마였다. 하지만 '욱씨남정기'는 비현실적인 소재 하나 등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는 가장 판타지스런 드라마이다. 주인공인 옥다정, 그녀의 존재 자체가 속속들이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첫째, 옥다정 그녀는 잘나도 너무 잘났다. 머리가 좋아서인지 업무 능력이 워낙 탁월하여, 그녀가 옮기겠다면 두 팔 벌려 환영할 회사가 부지기수다. 게다가 판단이 빠르고 정확하다. 하청업체 과장 남정기(윤상현)가 개발한 토닥토닥 세럼이 얼마나 가치있는 상품인지를 한 눈에 알아보고, 그 제품에 자신의 새로운 인생을 걸 만큼 과감하기도 하다. 그녀의 선택이 만용에 머물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그만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좋은 머리와 용기와 자부심이 결합하여 창출된 옥다정의 업무상 능력은 거의 완벽에 가까워 세상의 그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둘째, 옥다정은 엄청나게 강인한 멘탈과 평정심을 지녔다. 부당한 사회 질서에 애완견처럼 길들여진 사람들은 모두 그 부당함에 맞서는 옥다정을 미워한다. 황금화학 김상무(손종학)와 같은 강자들은 물론이거니와, 김상무의 발 아래 짓밟히는 약자들도 마찬가지다. 건방지다고, 무례하다고, 까탈스럽다고, 피곤하게 군다고 옥다정을 비난하면서 차라리 김상무의 편을 드는 것이다. 굴욕적이더라도 그냥 해왔던 대로 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존 질서에 반항하는 옥다정은 자신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몸로비 등의 악의적인 루머를 퍼뜨리며 옥다정에게 상처를 입히려 한다. 


옥다정이 거대 기업인 황금화학 임원직을 그만두고 하청업체인 작은 회사 러블리 코스메틱을 선택한 이유는 본인의 자부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정기를 비롯한 러블리 직원들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절대 갑인 황금화학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짓밟히는 러블리 코스메틱을 보며, 그녀의 정의감에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탓이다. 본인의 자부심을 다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굳이 러블리를 위해 희생했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 하여튼 옥다정 덕분에 가장 큰 이익을 얻고 새 인생을 시작하게 된 사람들은 러블리 직원들이다. 모두 함께 좋자고 힘들게 벌이는 일인데 직원들이 마구 반항하며 자신을 욕할 때, 아무리 마녀라도 어찌 무심할 수 있었으랴. 하지만 옥다정은 강자의 탄압에도, 약자의 발악에도, 심지어 치욕스런 소문에도 눈 한 번 깜박이지 않는다. 거의 인조인간 수준의 평정심이다. 


셋째, 옥다정은 상당한 미인이며 여자로서 매력적이다. 얼핏 생각하면 너무 강한 스타일이라 남자들이 안 좋아할 것 같은데, 이혼한 두 남편이 한결같이 그녀를 잊지 못하고 아직까지 주변을 맴도는 것을 보면 그녀에겐 뭔가 마약같은 매력이 있는 게 분명하다. 연애하다 헤어진 것도 아니고 결혼해서 함께 살아봤으면 서로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는데, 전남편들이 아직도 그녀에게 호감과 사랑을 느낀다는 사실은 옥다정의 인품과 매력을 가장 뚜렷이 증명하는 것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이성에게 어필하는 매력은 언제 어디서나 유리하게 작용한다. 황금화학의 임원으로 재직중인 첫번째 남편 지윤호(송재희)와 JJ 홈쇼핑 사장인 두번째 남편 장시환(이정진)이 옥다정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만은 솔직히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 않은가? 


세상 어디에 옥다정 같은 여자가 있을까? 그녀의 존재가 판타지인 이유는 단지 갑에게 당당히 맞서는 을이라서가 아니다. 엄청난 능력이 있고, 무쇠처럼 강인한 멘탈이 있으며, 그에 더해 고혹적인 매력까지 갖추었기 때문이다. 사실 막무가내로 반항하고 맞서는 행위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그러지 못하는 첫째 이유는 부조리한 사회구조 때문이지만, 둘째 이유는 옥다정 만큼 대단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능력있는 을이 타조알이라면, 능력없는 을은 계란이다. 절대 갑인 바윗돌이 내려쳐도 타조알은 쉽게 깨지지 않지만, 계란은 여지없이 박살난다. 그러니 깨지기 싫다면 납작 엎드리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남정기처럼 능력은 있지만 멘탈이 약해서 빛을 못 보는 사람도 무척 많다. 남정기는 좋게 말하면 섬세하고 배려심이 깊지만, 안 좋게 보자면 소심하고 비겁한 사람이다. 오직 자기 능력으로 훌륭한 제품을 개발했으면서도, 마땅히 주장해야 할 자기 권리조차 포기하고 주저앉아 버릴 만큼 나약하다. 모험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이 너무 강해서 안일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탓할 수도 없는 게 남정기는 아내도 없이 아직 어린 아들을 혼자 키우며, 늙은 아버지와 사고뭉치 백수 동생 남봉기(황찬성)의 생계까지 혼자 감당해야 하는 서글픈 소시민 가장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밥그릇이 중요해도 최소한의 자부심은 지키세요!"라는 옥다정의 외침은 어쩌면 배부른 소리에 불과하다. 부딪히면 깨질 것이 뻔하기 때문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계란의 입장을 타조알인 옥다정은 이해 못 한다. 


능력과 인품과 멘탈까지 갖추고도 오직 부조리한 사회구조 때문에 좌절하게 되는 경우가 없지는 않겠으나, 절대 다수의 을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날개가 꺾이는 이유는 옥다정만큼 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옥다정은 '을'치고 가진 게 너무 많은 사람이다. (심지어 돈도 많아 보인다.) 절대 갑에 당당히 맞서는 옥다정의 행위를 보며 아무리 시원해 한들, 그녀가 가진 것들을 못 가진 사람들로서는 시도조차 해 볼 수 없는 일들인 것이다. 옥다정의 행위뿐만 아니라 존재 자체가 판타지인 것을, 어쩌면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그 판타지에 속아서라도 한 번쯤 통쾌하게 웃고 싶어진다. 가짜인 줄 알면서도 한 번쯤은 속시원해 보고 싶다. 그 소박한 소망을 이루어 준다는 것만으로도 '욱씨남정기'는 참 고마운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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