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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을 극복하고 평화를 이룩하십시오

빛무리~ 2016. 1. 1.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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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성당에서 12시 미사에 참석하며 주보를 펼쳤을 때, 확 눈에 들어온 문구였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신년맞이 담화문의 제목 "무관심을 극복하고 평화를 이룩하십시오!" 그 '무관심'이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머리가 띵 했다. 이어서 "하느님께서는 무관심하지 않으십니다!" 라는 첫 문장을 읽었을 때는 연달아 가슴이 쿵 했다. 처음부터 인식하지는 못했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무관심'은 세상을 향한 나의 방어막이 되었고, 그러다가 언젠가부터는 나라는 인간의 특징처럼 되어버렸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애써 '초연하다' 든가 '시크하다'는 좋은 말로 포장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누구보다 나 자신이 알고 있었다. 절대 초연하거나 시크하지 못하다는 것을, 그저 상처가 두려워 무관심의 방패 뒤로 숨어있는 비겁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살면서 조금씩 켜켜이 가슴에 상처가 쌓여가면서부터는 무의식중에 무관심의 방벽을 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쓸데없이 예민한 성격과 좀 희한하게 좋은 기억력은 아주 작은 일에도 상처를 받고 또 그것을 오랫동안 잊지 못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행복이란 건강이 좋고 기억력이 나쁜 것이다" (알버트 슈바) 라든가 "망각하는 자에겐 복이 있다. 자신의 실수 또한 잊기 때문이다" (니체)라는 명언도 있듯이, 속절없이 과거의 크고 작은 상처와 죄책감과 그 기억들에 얽매여 있는 나는 매우 불행했다. 필사적으로 무디어지려고, 기억력을 둔화시키려고 노력하다 보니 조금씩 효과가 있는 것도 같았지만 부작용은 세상 모든 일에 무관심해진다는 것이었다. 인간들에게는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고통'을 초래하는 일이 무척 많았다. 타인에게 관심을 갖고 잘해 주었지만 그 응답이 냉랭함이나 뒤통수치기로 돌아올 때, 혹은 나름 좋은 뜻으로 행했던 일이 엉뚱한 오해와 극심한 비난을 불러 일으켰을 때,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어처구니 없을 만큼 나빴을 때, 본의 아닌 실수로 남에게 피해를 주었을 때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경우가 있었다. 쿨하게 툭툭 털어버리고 잊으면 될텐데 그러질 못하니, 어느 순간부터는 크고 작은 기억들이 내 영혼을 압도하여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되곤 했다. 6세 무렵의 어린 시절부터 사춘기와 학창시절을 거쳐 어른이 된 후까지 만났던 사람들과 겪었던 일들 중 특히 상처가 되었던 기억들은 아주 생생하게 고스란히 기억되어 천년이 지나도 소멸되지 않는 비닐뭉치처럼 내 가슴에 쌓여 있었다. 어쩌면 일종의 '과잉기억증후군'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러니 되도록 사람과 접하지 않고 매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며 관심을 끊은 채 조용히 사는 것만이 나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길인 것 같았다. 일상 속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최소한 추가되는 끔찍한 기억이나 상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이 결코 인생의 해답이 될 수는 없었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듯이 '살아있으면 뭐라도 해야 하는 거'니까. 그런데 알면서도 쉽지가 않았다. 내게 있어 '관심'은 '위험한 일' 이었고, 가장 큰 적은 '두려움'이었다. 또 상처받을 게 뻔한데 다시 '관심' 속으로 뛰어든다는 것은 나에겐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그러니 '무관심'을 '악'으로 규정하며 '관심'과 '사랑'을 강력하게 요구하시는 교황님의 신년 담화문 말씀이 나에겐 매서운 채찍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해볼 수밖에. 잘 되든 안 되든 그렇게 하라시니 해볼 수밖에. 아주 조금씩이라도 세상 속으로, 타인과의 관계 속으로 걸어들어가 볼 수밖에. 또 다른 상처가 추가되면? 뭐 어떻게든 되겠지. 잊을 수 없다면 그냥 끌어안고 살아야겠지.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기억하면서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시지 않을까? 진정 초연할 수 있는 해탈의 경지를 선물해 주실 날도 있지 않을까? 아주 오래 걸리겠지만,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것을 희망하면서, 새해 붉은 원숭이의 해에는 '무관심 극복 = 관심 갖기'를 목표로 설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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