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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세끼' 차승원, 그래도 잘 버텼다는 한 마디 뭉클한 말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삼시세끼' 차승원, 그래도 잘 버텼다는 한 마디 뭉클한 말

빛무리~ 2015. 10. 10.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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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눈보라가 몰아치던 지난 겨울에도 만재도의 세끼집은 따뜻했다. 참바다 유해진의 아궁이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과, 차줌마 차승원의 손끝에서 기적처럼 만들어지던 맛깔스런 음식들은 모진 추위에 웅크렸던 마음들을 편히 쉴 수 있게 해 주었던 것이다. '삼시세끼 어촌편'이 다시 시작된다는 소식에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성을 올렸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계절은 겨울이 아니지만 당최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퍽퍽한 세상살이에 여전히 마음들은 잔뜩 웅크린 채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여름이다. 화사한 에메랄드빛으로 일렁이는 만재도의 바다에는 형형색색의 물고기가 한가득 헤엄친다. 오랜만에 다시 만나서 반가웠던지 차승원과 유해진이 도착하던 날은 격한 환영 인사처럼 비바람이 몰아쳤지만, 다음 날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 따스한 햇살로 감싸주는 만재도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참바다씨는 아궁이에 불을 피웠고, 차줌마는 생선과 채소를 다듬어 식사 준비를 했다. 첫날부터 유해진의 통발에 걸려든 우럭 한 마리는 차승원의 손길 아래 즉시 고급 물회로 변신했다. 


훌쩍 커 버린 산체와 벌이는 더 이상 예전처럼 귀엽지는 않았으나, 이미 오랜 친구이며 가족이기에 마냥 정겹고 반가울 뿐이었다. 혹시 산체는 유해진 아빠를 알아본 것일까? 끝없이 꼬리를 흔들며 품으로 안겨드는 애교가 장난 아니다. 머지 않아 손호준 형아가 돌아오면 예전처럼 쌩하니 달려가 버리겠지만, 아직은 아빠가 최고인 모양이다.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하겠다며 티격태격 결투를 벌이는 산체와 벌이의 모습을 보니, 다시 돌아온 만재도의 일상이 더욱 실감나게 느껴진다. 



푸른 바다를 가르는 뱃전에 걸터앉아 만재도로 향하는 첫번째 게스트 박형식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져간다. 차승원과 유해진이라는 대선배들과의 만남을 앞두었으니 긴장도 몰려오고, 익숙치 않은 뱃길로 긴 시간을 달려왔으니 지치기도 했으련만, 여름 만재도의 따사로운 풍광은 얼어붙은 마음을 저절로 녹이기에 충분했던 모양이다. 박형식의 설렘 가득한 얼굴을 보니, 마치 내가 그 작은 배를 타고 만재도를 향해 달리는 것 같았다. 기분 좋은 두근거림과 평온한 설렘이 느껴졌다. 


박형식이 도착하기 전에 차승원과 유해진은 이미 그를 골려줄 몰래카메라를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첫째는 그가 인사를 해도 반갑게 맞아주지 않고 건성으로 대하기였으며, 둘째는 장독 뚜껑에 '뱀'이라 써놓고 진짜 뱀이 있으니 조심하라며 겁주기였다. 마침내 세끼집에 들어선 박형식은 깍듯하면서도 반가운 인사를 넙죽 올리는데, 본체만체 하는 두 선배님의 태도에 몹시 당황하여 쩔쩔매기 시작했다. 첫번째 몰카는 대성공이었다. 유해진이 킥킥거렸다. 



그런데 몇 번 맞장구치던 차승원이 오래 버티질 못하고 "이제 그만 해, 애한테!" 하면서 파투를 낸다. "장난친 거야" 유해진이 웃으며 박형식의 어깨를 두드린다. "아, 장난치신 거죠?" 그제야 진땀을 닦아내며 유해진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는 박형식. 하지만 곧바로 두번째 몰카가 기다리고 있었다. "장독 안에 정말 뱀이 있어요? 그것도 독사예요?" 가뜩이나 하얀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렸다. 유해진은 씨익 웃으며 "너 뱀 무서워하냐?" 하고 놀려댄다. 그런데 차승원이 또 파투를 낸다. "그만 좀 해, 애한테!" 


박형식은 또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멍한 표정을 짓는데, 유해진은 차승원에게 눈을 흘긴다. "우쒸, 그렇게 하기로 해 놓고선 안 하고 있어!" 차승원이 멋쩍게 웃으며 말한다. "애 얼굴을 보니까... 그게 맘대로 되나?" 웬일인지 손호준 때보다 훨씬 마음 약한 모습이다. 잠시 후 세 사람은 함께 둘러앉아 채소 가득 넣은 우럭 물회로 식사를 하는데, 박형식을 물끄러미 보던 유해진이 불쑥 말한다. "근데 너 되게 순둥이처럼 생겼다!" 하얗고 여릿한 외모가 어지간히 아기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차승원이 쉽게 마음 약해진 이유도 그런 첫인상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참바다씨와 차줌마의 막내아들(?)로 인정받은 박형식은 순식간에 엄마 아빠의 귀여움을 독차지한다. 특히 엄마의 각별한 사랑은 잠시도 그를 혼자 놔두지 않고 하루종일 "형식아~ 형식아~" 불러댈 것이니 다음 주의 만재도 세끼집은 더욱 화기애애하고 시끌벅적해질 듯 싶다. 박형식과 함께 '나인'에서 열연했던 이진욱의 모습이 잠시 화면에 비춰지며 다음 번 게스트의 등장을 예고했는데, 이진욱은 또 새로운 방식의 조화를 보여줄 듯하여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그런데 '삼시세끼 어촌편2'의 첫방송에서 내 마음을 가장 뭉클하게 했던 순간은 따로 있었다. 흔들리는 배를 타고 6시간이나 달려 만재도에 도착한 첫날, 비바람 속에 천막을 치고 불을 피우고 김치를 만들며 파란만장한 하루를 보낸 차승원과 유해진은 밤이 되자 고즈넉한 자세로 툇마루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굳이 입을 열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고단함을 이해한다는 느낌이 전해졌다. 배우로서 존경하는 선배 송강호의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의 건강도 염려해 주다가 문득 차승원이 말했다. 



"그래도... 그래도 잘 버텼어... 잘 버틴거야, 우리는 잘 버틴거야..." 유해진이 조용히 끄덕이며 맞장구친다. "잘 버텼지... 잘 버틴거야, 진짜..." 무엇을 잘 버텼다는 건지, 어떻게 잘 버텼다는 건지,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왠지 모두 알 것 같았다. "우린 행복한 거야, 이건 진짜..." 라고 차승원이 말하자 유해진은 "그럼, 당연하지!" 라고 대답한다. 순간 내 가슴이 뭉클하면서 끝없이 먹먹해졌다.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늘어놓지 않아도 왠지 그 마음 다 알 것 같아서 눈물이 났다. 


어렸을 때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이제는 세상살이가 어떤 것인지를 좀 아니까, 한겨울 만재도의 거센 파도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결코 못하지 않은 인생의 매운 바람을 이젠 좀 아니까, 얼마든지 그 바람에 휘말려 먼 곳으로 떠내려갈 수도 있었는데 굳건히 자리를 지킨 것만으로도 정말 잘 버텨낸 것임을 이젠 좀 아니까 그런 것 같다. 죽지도 않고, 크게 아프지도 않고, 작은 실수는 있었지만 큰 실수는 저지르지 않고, 성인처럼 살지는 못했어도 나쁜 짓 안 하고 열심히 살았으면, 그만하면 아주 잘 버텨낸 것임을 이제 좀 아니까 말이다. 



물론 차승원과 유해진이 워낙 잘난 사람들이어서 공감이 약간 덜 되기는 했다. 둘 다 자기 직업에서 인정받아 명예를 얻었고, 경제적으로도 윤택하며, 게다가 인품까지 훌륭해서 뭇 사람들의 칭송을 받고 있는데, 그만하면 잘 버텨낸 정도가 아니라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차승원과 유해진의 고즈넉한 목소리에서는 성공한 사람 특유의 자부심이나 허세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인생의 풍랑 속에 힘겨워했던 평범한 사람들이란 게 느껴졌다. 


남들 눈에는 무척이나 화려해 보이지만, 대중 앞에 노출되어 있는 유명인의 삶이라는 게 어찌 좋기만 하겠는가? '죽은 시인의 사회'와 '굿 윌 헌팅' 등의 영화에서 훌륭한 스승 역할로 주목받은 후, 온 세계 젊은이들의 멘토처럼 여겨지던 명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충격적인 자살로 생을 마감할 거라고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겉으로는 여유롭고 평온해 보일지언정, 사람의 내면에 휘몰아치는 고통은 감히 타인이 짐작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 쓰러지지 않고 살아 있으면, 지금 우리는 아주 잘 버텨내고 있는 것이다. 



오랜 친구 유해진에게 무심히 건넨 말이었지만 "그래도 잘 버텼다"는 차승원의 한 마디는 큰 위로를 전해 주었다. 짐작컨대 그 말에서 위로를 느낀 사람이 나 혼자뿐은 아니었을 듯 싶다. 어디에든 기대고 싶지만 받아주는 곳은 없고, 나름 열심히 노력해도 손에 쥐는 것은 없고, 대박을 꿈꾸거나 희망에 부풀기는 커녕 하루하루를 간신히 살아내기만도 버거운, 언제부턴지 포옹과 칭찬보다는 외면과 질책에만 익숙해져버린 사람들에게, 누군가 "그만하면 잘 버텼다"고 어깨를 토닥여 준다면... 왠지 꼭 그런 느낌일 것 같았다. 차줌마의 그 한 마디는 춥고 허기진 날 뜨끈한 배추된장국 만큼이나 정겹고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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