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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회담' 타일러의 분노에 공감하는 이유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비정상회담' 타일러의 분노에 공감하는 이유

빛무리~ 2015. 3. 19.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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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 방송된 '비정상회담 - 티끌 모아 부자?' 편에서는 이제껏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진풍경이 발생했다. 각기 다른 문화 속에 성장한 세계 각국의 청년들이 모여 민감한 이슈에 관해 토론하는 만큼 일촉즉발의 분위기는 흔히 조성되곤 했지만, 누군가가 정색을 하며 불쾌감을 드러내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더욱이 감정 조절에 실패한 그 멤버가 항상 차분하고 이성적이던 타일러(미국)였기 때문에 생소한 느낌은 더욱 크게 다가왔다. 게다가 타일러의 기색이 심상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유럽 연맹'을 결성하여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대다수의 모습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로빈(프랑스)에게서 비롯되었다. '부자'에 관한 토론을 하던 중, 로빈은 자기 나라의 사르코지 대통령이 명품 시계를 과시하는 듯한 모습을 자주 드러냄으로써 비난을 받았노라는 말을 꺼냈다. 그런데 말 끝에 "너무 미국식으로 보여주니까..." 라고 덧붙인 것이 문제였다. 순간 타일러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뭐가 미국식이냐?" 물었고, 로빈은 당연하다는 듯 "블링블링(?) 문화는 미국에서 온 것이다" 라고 응수했다. 원래 유럽의 귀족 문화에서는 돈이 있어도 숨기는 것이 예의였는데, 돈 있는 것을 보여주면서 자랑하는 문화는 미국에서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줄리안(벨기에)과 알베르토(이탈리아)가 로빈의 말에 적극 동조했다. 


미국인 타일러가 혼자 외롭게 유럽 연맹에 맞섰다. 물론 미국인들 중 패리스 힐튼처럼 부를 과시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소수에 불과하며, 헐리우드 영화 등에서도 그런 모습들이 많이 나오지만 어디까지나 대중매체 속의 캐릭터일 뿐이라고 했다. 돈을 숨기거나 과시하는 것은 개인차일 뿐이며, 유럽에도 분명 과시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했다. 로빈은 "미국에선 그래도 (돈 자랑을 해도) 욕 먹지 않지만, 유럽에서는 그러면 욕 먹는다" 고 답변했다. 그러자 다른 대륙의 청년들까지 나서서 유럽 연맹에 가입하기 시작했다. 



블레어(호주)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이유가 미국에 가서 성공한 사람들 때문이며, 그 의미는 "내가 돈 벌고 성공한 것을 보여주겠다!"는 뜻이라고 나름 정의했다. 일리야(러시아)와 샘 오취리(가나)도 블레어의 주장에 100% 동의했다. 돈 자랑하는 문화가 생긴 것은 '다 미국 때문' 이라는 것이었다. 유럽(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뿐만 아니라 오세아니아(호주)와 아프리카(가나)와 유라시아(러시아) 대륙의 청년들이 모두 힘을 합쳐 미국을 공격하는 모습은 약간 섬뜩하기까지 했다. 결국 그 장면에서 느껴지는 것은 현재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가 하는 깨달음이었다. 


느닷없이 장위안(중국)이 타일러를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비정상회담' 초창기부터 미국과 일본에 거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던 그가 웬일인가 싶어서 귀를 기울였는데, 논점에서 살짝 빗나가기는 했어도 장위안의 발언은 객관적 진실에 가장 접근한 내용이었다. "미국이 신흥강국으로 떠오르기 전까지 유럽과 중국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계 1등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그 1등을 미국에게 빼앗겼기 때문에 경계심이 있다." 역시 장위안의 솔직함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여과 없는 속마음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그 요령부득의 솔직함이 때로는 불편함으로 다가오지만, 때로는 이렇게 정곡을 찌르면서 짜릿한 쾌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타일러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미국에 가서 성공한 사람들 때문에 '아메리칸 드림'의 개념이 생겨났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미국 이민자의 목적이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며, '아메리칸 드림'의 진정한 의미는 '미국에 정착하는 것'이지 '돈을 벌어 과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좋지 않은 기색을 느낀 MC 성시경이 나섰다. 미국에도 겸손한 부자들이 많이 있겠지만, 우선 '자본주의'라고 하면 떠오르는 나라가 미국이다 보니 그런 인식들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자본주의? 토론의 물결은 느닷없이 '자본주의 비판' 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타일러는 영국인인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부터 자본주의가 발생했음을 주장했다. 


자본주의가 영국에서 유래되긴 했으나 현대적 자본주의의 완성은 대부분 미국이라고들 생각한다며 MC 전현무도 나섰다. 타일러의 마음이 진짜 상했음을 비로소 눈치챈 듯, 선량한 알베르토가 정리하겠다며 나섰다. "미국 덕분에(^^;;)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난 후, 유럽에는 미국의 문화가 급속도로 흘러들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이 넓은 땅 신천지인 미국으로 떠났고, 미국에 다녀 온 사람들은 그 이전까지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들을 보였다. '부의 과시'도 그 달라진 모습들 중 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절대 미국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미국식 생활 방식은 전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제는 누구나 그렇게 살아간다." 



줄리안이 타일러를 향해 "왜 그렇게 예민해요" 하면서 웃는다. 유럽인들의 입장에서는 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문제이며, 미국인인 타일러의 면전에서 그 얘기를 꺼낸 것도 악의가 없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타일러의 분노를 충분히 이해하며 공감할 수 있었다. 유럽인들 자신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뿌리박혀 있는 전통적 우월감을 나는 느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몰락한 양반의 자존심이랄까? 늘 과거의 명예와 영광을 되새기며, 현실의 부와 권력을 얕보거나 비웃는 자세... 그들이 보기에는 돈을 숨기는 자신들(유럽)의 문화는 고상하고 귀족적이며, 돈을 자랑하는(?) 미국의 문화는 천박하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진짜 속마음은 장위안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현재 미국이 가장 돈 많고 힘 있고 세계 1등이니까 배가 아픈 것이다. 이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자신들이 세계 1등이었던 과거의 찬란함을 되새기며 한껏 고상한 척하는 것뿐인데, 오래된 가문의 명예로운 귀족임을 아무리 강조해봤자 노예 출신의 졸부 앞에서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그저 쓰라릴 뿐이다. 대통령이 돈자랑을 해서 욕 먹었다고 말한 후 '미국식으로 그러니까' 라고 덧붙일 때 로빈의 마음속에 특별한 의도는 없었겠지만, 타일러가 들을 때는 자신의 조국이 한칼에 매도당하는 느낌과 더불어 은연중에 멸시당하는 느낌도 들었을 것이다. 



'부의 과시'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열패감과 불쾌감을 조성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화려한 눈요기와 가벼운 재미로 유쾌하게 넘길 수도 있다. 따라서 굳이 옳다 그르다를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파리 여행 후 그 곳 사람들의 어마무시한 차가움과 오만함에 질려버린 나로서는, 애써 자존심을 세우며 미국을 낮추어 보려는 그들의 뿌리깊은 귀족 의식이 좀 우습게 느껴졌다. 화해 모드 조성을 위해 '손에 손 잡고' 음악이 흘러나올 때 "안 잡을래!" 하며 거부하던 타일러는 미국인으로서 순간 화가 치밀었겠지만 잠시 후 깨달았을 것이다. 그 모든 공격은 1등으로서 감당해야 하는 질투의 화살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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