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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 딸 향한 박정환의 솔직한 고백, 진정한 인생을 가르치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펀치

'펀치' 딸 향한 박정환의 솔직한 고백, 진정한 인생을 가르치다

빛무리~ 2015. 2. 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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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자업자득이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8살 예린이(김지영)는 그토록 사랑하고 믿어왔던 아빠가 뜻밖에도 올바르게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말았다. '부정입학'이라는 단어의 뜻조차 모르는 어린아이였지만, 이 똘똘한 녀석은 신문기사의 전체적인 맥락을 썩 잘 이해했다. 자기를 국제초등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서 아빠가 나쁜 일을 했고,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빠를 비난하고 있으며, 친구들은 자기 엄마로부터 "예린이와 놀지 말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는 뼈아픈 현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예린이는 울며 소리쳤다. "할머니, 아빠 불쌍한데... 미워!" 



박정환(김래원)은 한 달 남짓한 인생의 마지막 시간 동안, 잘못 살아 온 지난날을 조금이나마 만회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온갖 나쁜 짓을 하면서 제 손으로 검찰총장 자리에 앉힌 '나쁜 놈' 이태준(조재현)을 끌어내리려는 것이다. 박정환의 처절한 싸움을 응원하면서도 마음이 안타깝고 헛헛한 이유는 과연 이태준을 끌어내리는 데 성공한들, 그 이후에 좀 '덜 나쁜 놈'이 그 자리에 앉아 조금이나마 덜 나쁜 세상을 만들어 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정국현(김응수)이 그나마 청렴해 보이지만, 윤지숙(최명길)과 이호성(온주완)에게 엄청난 뒤통수를 맞은 후로는 누구에게도 전혀 신뢰감이 생기질 않는다. 


그러나 박정환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그의 생명은 촌각을 다투며 사그러져 가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보든가 아니면 그냥 포기하고 드러눕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박정환의 목표는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자기 인생의 후회를 조금이라도 덜어내는 데 있다. 비록 뒤늦게나마 잘못 살아왔음을 깨달았는데, 그걸 알면서도 무력하게 포기하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치 않기 때문이다. "무슨 인생이 이러냐, 하경아..."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박정환을 감싸안으며 신하경(김아중)도 눈물을 흘렸다. 사랑하면서도 그의 추락을 막을 수 없었던 지난날이 하경에게도 무거운 회한으로 남는다. 



백척간두에서 피투성이 싸움을 벌이면서도 박정환이 끝내 지키고 싶었던 것은 한 가지였다. "내 얼굴에 침뱉는건 참겠는데, 예린이 몸에 먼지 묻는 건 못 참겠다!" 어떻게든 딸자식만은 상처받지 않게 하고 싶었다. 진흙탕과 피고름은 물론 가벼운 먼지조차도 묻지 않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적들은 비열함을 무기삼을 수 있는 자들이기에 더욱 강했다. 어린아이의 상처를 염려하여 공격을 멈출 만큼 양심적인 사람들이라면 애초에 싸움은 시작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 박정환은 예린이 몸에 진흙탕이 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시퍼런 분노가 타올랐지만, 적은 여전히 너무 강했다. 


복수보다 시급한 것은 상처받은 딸의 마음을 다독이는 일이었고, 박정환이 딸을 위해 준비한 마지막 선물은 솔직한 고백이었다. "고모가 TV하고 신문에 나오는 건 다 거짓말이래. 아빠하고 사이 안 좋은 사람들이 아빠 죽는다고 아빠가 그랬다고 하는 거래!" 아빠를 향한 조카의 믿음을 지켜주고 싶었던 누이 현선(이영은)의 마음을 어찌 정환이 모르겠는가? 예린이도 아빠가 누명을 썼다는 고모의 거짓말을 믿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정환은 거짓말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진실을 들려주었다. "아니, 아빠가 그랬어. 아빠가 돈 많이 벌고 싶어서 안 좋은 일도 하고, 예린이 좋은 학교 보내주고 싶어서 나쁜 일도 했어!"



 

예린은 살짝 충격받은 모습이다. "아빠는 검사잖아? 나쁜 사람을 잡는 사람이잖아?" 박정환은 딸 앞에 무릎이라도 꿇고 싶은 표정으로 말한다. "예린아, 아빠가 잘못했어. 아빠가 잘못했어, 예린아!" 그리고 간절한 눈빛으로 당부한다. "그런데 예린아, 아빠 미워하지 마... 아빠 미워하면 예린이가 힘들어. 할아버지 사진 봤지? 할머니 방에 걸려있잖아. 아빠한테 아버지... 아빠도 예린이 할아버지 미웠거든. 그래서 그렇게 안 살려고 돈도 많이 벌고 예린이 좋은 학교도 보내주고 싶었는데... 아빠가 바보같았다, 예린아... 예린이는 아빠 미워하지도 말고 아빠 닮지도 말고... 아빠 가고 나면 예린이는 엄마처럼 살아라. 알았지? 


어린 마음에도 아빠가 너무나 불쌍해 보였던 걸까? 예린이는 조그만 팔로 정환의 여윈 몸을 안으며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며칠 후, 침대에 누운 예린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러 정환이 다가가자 어린 딸이 말했다. "아빠, 나... 아빠 안 미워할게. 아빠 안 닮을게. 아빠 없어도 매일매일 아빠 생각하면서, 나 엄마처럼 살게, 아빠!" 비록 명확한 개념은 알지 못하겠지만, 예린이는 벌써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상당부분 깨우친 듯 보인다. 타인과 어울려 살다 보면 감정과 신념의 문제가 종종 충돌할 수 있으며, 그런 경우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으나 인생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세상 그 누구도 유혹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또는 나 자신까지도 언제나 옳을 수는 없다. 잘못임을 깨달았을 때 바로잡기 위해서는 먼저 잘못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잘못을 부인하는 한 비뚤어진 것을 바로잡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죄를 인정하고 대가를 치르고 바로잡아야 하는 것은 신념의 문제다. 그런데 신념을 지키기도 쉽지 않지만 더욱 어려운 것은 감정의 문제다. 신하경도 예린이도 남편이며 아빠인 박정환을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잘못을 저지른 그를 용서하기가 쉽지 않아서 한때는 그를 미워했었다. 그러나 미움은 영혼을 좀먹으며 때로는 그 인생을 망가뜨린다.  


박정환은 가난하고 무능한 아버지 때문에 어렵게 살다 보니, 남자로서 제 가족을 고생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를 사랑하면서도 미워한 이유는 아버지의 인생이 자기 신념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움은 판단력과 균형감각을 무너뜨렸고, 급기야 박정환은 돈과 권력을 붙잡기 위해 가족을 외면하기에 이르렀다. 처음 시작은 그게 아니었는데, 과도한 미움의 반작용으로 주객이 전도되고 말았던 것이다. 짧은 인생의 황혼에 서서 박정환은 "내가 바보같았다"며 뒤늦은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어린 딸에게 "아빠처럼 살지 말라"며 피맺힌 유언을 남긴다. 아빠를 미워하지도 닮지도 말고, 균형을 유지하며 현명하게 살아가라고. 



부디 예린이가 아빠의 유언을 따라 강인하고 현명한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냉철한 신념을 지키되 감정의 늪에 휘말리지 않는 굳건함을 지녔으면 좋겠다. 타협하지는 않되 용서할 줄 아는 따스함도 지녔으면 좋겠다. 어린 딸의 작은 두 어깨에 이토록 과중한 기대를 걸쳐놓으며, 어둡고 갑갑한 세상 속에서 그렇게라도 희망의 불씨를 발견하고 싶은 것은 어른들의 이기심일까? 설령 그렇더라도, 박정환의 애달픈 마지막 소원은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한 때 적잖이 비열하고 악랄했던 사람이지만, 많든 적든 그에게서 자신의 모습 일부를 발견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 삭막한 시대를 헤쳐가는 우리 모두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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