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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세끼' 차승원, 담담해서 더욱 가슴저린 사망부가(思亡父歌)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삼시세끼' 차승원, 담담해서 더욱 가슴저린 사망부가(思亡父歌)

빛무리~ 2015. 1. 31.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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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시리즈에 이어 방송중인 나영석 PD의 예능 '삼시세끼' 열풍이 식을 줄 모르고 있다. '꽃보다' 시리즈의 경우는 낯선 외국을 여행하는 내용이라 자체적으로 볼거리와 이야깃거리가 풍성했던 반면, 고정된 한 장소에서 세 끼 밥을 차려먹는 과정으로 구성되는 '삼시세끼'는 그 단조로움 때문에 쉽게 지루해질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어떤 마법이 작용했는지 '삼시세끼'의 시청률은 '꽃보다' 시리즈를 넘어 공중파의 아성까지 넘보고 있는 중이다. 개인적으로는 '삼시세끼'가 무난히 볼만한 예능이라고 생각될 뿐 꿀재미는 느끼지 못하는 터라 이토록 뜨거운 열풍이 좀 의아하지만, 대략 현대인의 내면에 잠재된 일종의 향수를 일깨웠기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하긴 바쁘고 삭막한 생활 속에서 매끼를 인스턴트 음식으로 때워가는 도시의 삶이 염증난다고 느낄 때쯤이면, 고요한 시골 풍경 속에서 느릿하게 흘러가는 시간과 자연산 먹거리를 손수 채취하여 요리해 먹는 삼시세끼가 그리워지기도 할 터이다. 그런데 당최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인지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상... 눈 뜨면 아침 준비하고 먹고 설거지 및 뒷정리를 하고 나면 또 점심 준비하고 먹고 뒷정리하면 또 저녁 먹을 시간이 되고... 솔직히 나는 그걸 보면서 때로는 오히려 더 답답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현대 문명이 발달하기 전까지는 대부분 인간의 삶이 그랬을텐데, 나는 아무래도 도시의 삶에 너무 길들여진 모양이다.


원도 정선편에 이어 만재도에서 촬영된 '삼시세끼 어촌편'은 방송이 시작되기 전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더랬다. 차승원, 유해진과 더불어 고정 멤버로 합류했던 장근석의 탈세 혐의가 뒤늦게 다시 불거지면서 급격히 하차가 결정되었고, 제작진은 이미 촬영된 분량을 모두 재편집해서 장근석의 분량을 삭제하느라 첫방송을 일주일 연기했다. 순수청년 손호준의 합류가 결정되면서 장근석의 빈자리를 훌륭히 채워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앞서 참가했던 타방송사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과 방송 시간이 겹치게 되면서 또 한 차례의 잡음이 불거졌다. 뚜껑을 열기도 전에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각종 기사들은 '삼시세끼'를 향한 대중의 관심을 증명하고 있었다. 


거센 바닷바람과 눈보라가 몰아치는 어촌 만재도의 '삼시세끼'는 비교적 평온했던 강원도 정선의 '삼시세끼'보다 훨씬 역동적이면서도 고생스러워 보였다. 추위 속에 몇 시간을 기다려서 물고기 2~3마리를 잡아와도 한 끼 먹으면 남는 것이 없고, 다음 날이면 또 낚싯대를 들고 갯바위로 나가야 하는 것이 아빠(?) 유해진의 일상이었다. 아빠가 낚시를 간 동안 엄마(?) 차승원은 혼자 깍두기를 담그고 김장을 하면서 허리 끊어지게 먹거리를 준비한다. 하지만 펄떡이는 우럭이며 장어가 낚싯대에 끌려 올라오는 장면은 생동감이 넘쳤고, 바위에서 거북손과 홍합과 김을 채취하는 과정도 독특한 신비로움으로 흥미를 자극했다.




그런데 '삼시세끼 어촌편' 2회에서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부분은 따로 있었다. 세 끼 밥만 해먹기도 버거운 와중에 차승원과 유해진은 굳이 등산을 하겠다며 허위허위 산을 오르는데, 흰 등대가 있는 산 정상에서 만재도의 그림같은 풍경을 감상하고 내려오던 중 차승원이 느닷없이 산비탈에 과일 몇 조각과 소주 한 잔으로 제삿상을 차려놓고 절을 올리는 것이었다. 어쩌다 보니 '삼시세끼' 촬영 도중에 차승원은 아버지의 기일을 맞이하게 되었고, 일에 매인 몸이라 여의치는 못해도 그렇게나마 기일을 지키고 싶었던 모양이다. 산비탈에 차려진 제삿상은 서럽도록 간소했지만, 말 없이 두 번 절을 올리는 차승원의 모습은 그저 담담할 뿐이었다. 



"에휴... 좀 더 오래 사시지"... "우리 어머니도 일찍 돌아가셨는데"... "그렇지, 나는 알지" ... "잘 되는 거 못 보고 가셔서 속상하지" ... 간소한 제사를 올린 후 차승원과 유해진은 잠시 하산을 멈추고 산기슭에 앉아 대화를 나눈다. 카메라는 그들의 모습을 비켜 무심한 하늘과 구름을 담는다. 바람속에 담담히 흩어지는 그들의 목소리가 요란한 통곡과 절규보다 오히려 더욱 저릿하게 가슴을 메운다. 그 순간 나는 문득 정태춘의 노래 '사망부가(思亡父歌)'를 떠올렸다. "저 산꼭대기 아버지 무덤... 거친 베옷 입고 누우신 그 바람 모서리... 나 오늘 다시 찾아가네..." 가사를 되새길수록 너무나 절묘하게 그 상황과 어우러지니 신비한 느낌마저 들었다. 


저 산꼭대기 아버지 무덤

거친 베옷 입고 누우신 그 바람 모서리

나 오늘 다시 찾아가네

바람 거센 갯벌 위로 우뚝솟은 그 꼭대기

인적 없는 민둥산에 외로워라 무덤 하나

지금은 차가운 바람만 스쳐갈 뿐

아, 향불 내음도 없을

갯벌 향해 뻗으신 손발 시리지 않게

잔 부으러 나는 가네


머나먼 만재도의 산기슭에서 올려드린 제삿상을 어쩌면 아버지는 가장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주지 않으셨을까? 비록 조촐했지만 아들 곁에는 대신 술을 따라주는 친구가 있어 외롭지 않았다. 무릎 꿇고 혼자 술을 따르려는 자기를 만류하며 대신 술을 따라주던 유해진을 떠올릴 때, 내내 담담하던 차승원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정반대의 성향 탓에 늘 티격태격하면서도 기묘하게 친숙하고 편안해 보이던 동갑내기 차승원과 유해진은 사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친구였다. 



강원도 정선편에서 활약했던 이서진은 차승원 유해진과 같은 또래면서도 전혀 달랐다. 곱게 자란 서울집 도련님이 시골에 와서 험한 일을 하려니 썩 내키지 않는 듯 투덜거리는 모습이 예능적 재미를 발산했었다. 그에 비해 차승원과 유해진은 둘 다 만만찮은 풍파와 인생역정을 거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웬만한 고생에는 끄덕도 하지 않는 강철멘탈과 능란함이 돋보인다. 평온한 정선에는 이서진이 제격이었다면, 풍랑이 몰아치는 어촌에는 차승원 유해진이 더 잘 어울린다. 나영석 PD의 출중한 섭외력에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눈보라 속에서 낚시를 하고 김치를 담그면서도 한치의 흔들림 없는 중년 베테랑들의 노련함과 긍정적 태도는 보는 마음을 편안하게 했지만, 어딘지 가슴을 울리는 재미와 감동은 덜한 편이었다. 하지만 우연인 듯 필연인 듯 만재도의 산기슭에서 이루어진 망부의 제사는 담담한 중년 남성들의 가슴 속 깊은 곳이 은연중에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고, 늘 똑같은 일상 속에서 가끔씩 돌아보는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 주었다. 이제 까마득한 후배 손호준이 첫 게스트로 방문했는데 차승원과 유해진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까칠왕자 이서진과는 또 다른 스타일의 대선배를 두 분이나 모셔야 하는 손호준은 어떻게 이 난국을 헤쳐나갈지, 그들의 새로운 어울림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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