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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 주제의식에 함몰된 현실감각, 동화같은 해피엔딩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피노키오

'피노키오' 주제의식에 함몰된 현실감각, 동화같은 해피엔딩

빛무리~ 2015. 1. 16.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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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큰 기대를 걸었다가 중반부터 급격히 실망했지만, 그럼에도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끝까지 시청했던 '피노키오'가 종영을 맞이했다. 이 드라마의 젊은 주인공 기하명(이종석)과 최인하(박신혜)는 수많은 고난과 역경 속에도 흔들림없이 굳건한 초심을 지키며 달려온 진실과 정의의 수호자들이다. 결국 그들은 완벽하게 승리했다. 숨겨졌던 진실을 세상에 알림으로써 기자의 소명을 다했고, 개인적 복수가 아니라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악을 응징했다. 심지어 마음에 품었던 원망과 복수심을 내려놓고 용서까지 했으며, 의외로 너무나 손쉽게 마음을 돌린 노인네의 허락을 받아 일사천리로 결혼까지 골인했다. 



당연한 것처럼 쉽게 이루어지는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이며, 부모를 죽음으로 몰아간 원수조차 사랑으로 가뿐히 용서하는 주인공의 성자같은 모습은 마치 동화같았다. 어쩌면 '피노키오'는 이 시대 청춘을 위한 동화로 쓰여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삭막하고 더러운 세상이지만 그대들이 굳건한 마음으로 노력해 나간다면 결국은 승리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격려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작가는 이 드라마 속에서 특히 '언론'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그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진실'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거짓말은 물론 숨기는 것도 옳지 않다고, 우리가 진정 행복하기 위해서는 언제 어디서나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면 볼수록 그 주제와는 정반대의 생각을 품게 되었을까? 초반에는 오히려 여주인공의 '피노키오 증후군'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며, 그 무엇보다 진실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생각에 동의하던 나였다. 그런데 정작 드라마를 보면 볼수록 어느 경우에나 무조건적인 진실 규명이 반드시 옳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는 의외로 하얀 거짓말과 하얀 비밀이 많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도대체 그 이유가 뭘까? 어쩌면 나는 지나칠만큼 노골적으로 드러난 주제의식에 거부감을 느꼈던 것 같다. 마치 도덕교과서처럼 강요하는 듯한, 그래서 숨막히고 재미없는 느낌.



 

여주인공 최인하를 원수의 딸로 설정한 이유는 '진실'과 더불어 '용서'라는 주제도 함께 녹여내고 싶어서인 듯한데, 그게 또 만만찮은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남녀주인공이 사랑을 이루고 해피엔딩을 맞이하려면 필연적으로 '용서'가 선행되어야만 하는데, 그 설정 자체가 너무 뻔하고 지겹게 느껴지는 것이다. 더욱이 작가는 극도로 주제에만 몰입한 나머지 현실감각을 잃고 인물 캐릭터들을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만들었는데, 그것이 '로미오와 줄리엣' 설정 못지않게 몰입을 방해하며 종종 실소를 머금게 했다. 


첫째, 악역을 제외한 캐릭터들이 모두 지나치게 정의롭다. 너무 이상적이라 도저히 현실 속에서는 발견할 수 없을 듯한 인물들이다. 특히 기하명, 최인하, 서범조(김영광) 세 사람의 머리 위에는 성인들처럼 후광 표시라도 해주어야 할 것 같다. 최인하와 서범조는 진실과 정의를 위해 친어머니와 용감히 맞섬으로써 악인의 회개를 이끌어냈고, 기하명은 예수님같은 사랑으로 원수를 용서했다. 기재명(윤균상)은 부모의 복수를 위해 살인을 저질렀으나 동생의 미래를 위해 순순히 죗값을 치르겠다며 자수했다. 선배 기자인 황교동(이필모), 김공주(김광규) 등도 역시 안락한 현실을 외면하고 험난한 진실 규명을 선택하는 용감하고 정의로운 인물들이다. 



둘째, 악인이 너무 쉽게 뉘우친다. 단역을 제외하면 이 드라마에 단 둘뿐인 악역 송차옥(진경)과 박로사(김해숙)는 '언경유착'의 추악한 현실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엄청난 악의 세력처럼 묘사되엇던 이들은 의외로 너무나 싱겁게 무너지고 말았다. 출세를 위해 딸까지 버렸던 비정한 엄마 송차옥은 기하명의 몇 마디 말에 급격히 부끄러움을 느끼고 눈물 속에 참회하며 내부고발자로 거듭났다. 악의 끝판왕이던 박로사마저도 아들 서범조가 대신 죄를 덮어쓰고 자수하자 애끓는 모정에 굴복하고 말았다. '어머니'라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면 그뿐이지만, 너무 쉽게 갔다. 악을 무너뜨리기가 그토록 쉽다면, 이 세상이 어찌 고난의 바다겠는가? 


정의로 철벽같이 무장한 젊은이들과 너무 쉽게 몰락하는 악인들은 어쩌면 만화에 나오는 허깨비들 같기도 했다. 이것이 청춘을 위한 동화라면 아마도 '희망'을 주기 위해서 그랬을 것이다. 끈질긴 진실 규명의 대가로 부장검사 문희만(최민수)이 살해당하고 멋진 남주인공 구동치(최진혁)가 검사직에서 물러나야 했던 '오만과 편견'의 결말처럼, 어둡고 처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어서는 희망을 갖기가 어려워질 테니까, 차라리 동화처럼 비현실적인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희망을 품게 해주고 싶었던 걸까? 기하명과 최인하의 멜로에 꽂혀서든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에서든 몰입할 수만 있었다면, 나 역시 그 희망을 선물받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끝내 몰입하지 못한 내게는 기대에 턱없이 못 미친 아쉬운 작품으로 남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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