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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을 향한 정치적 비판이 부당한 이유 본문

책과 영화와 연극

'국제시장'을 향한 정치적 비판이 부당한 이유

빛무리~ 2014. 12. 2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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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균 감독의 신작영화 '국제시장'은 대중의 열광 속에 나날이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기이하게도 글깨나 쓴다는 칼럼니스트들에게는 큰 호평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 견해가 철저히 배제되었다는 이유로 악평들이 난무하며, 심지어 역사 왜곡이라든가 명배우를 허수아비로 만들었다든가 하는 극단적 발언까지 튀어나오는 중이다. 하지만 과연 그들의 비판이 타당할까? 정치적 견해를 첨가하지 않고, 그저 한 사람의 인생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영화는 과연 무의미한 것일까? 



한국의 현대사를 순차적으로 다루면서도 4.19라든가 5.16 등 정치적 사건을 전혀 다루지 않고 주인공의 정치적 사상도 언급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윤제균 감독은 '선택과 집중을 위해서'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필자의 견해부터 밝힌다면 윤제균 감독의 그 답변은 자체로서 완벽하며 더 이상의 이의제기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명답이다. 아무리 위대한 화가도 거대한 코끼리의 앞모습과 뒷모습, 옆모습까지를 한꺼번에 그릴 수는 없다. 오직 '선택'하고 '집중'하는 특정 부위만을 그려낼 수 있을 뿐이다. 


'국제시장'에 정치적 이슈가 담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판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윤제균 감독의 선택과 집중이 자신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생각에는 옆모습이나 뒷모습을 그려야 하는데 '국제시장'은 철저히 앞모습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입을 모아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또는 '관점이 부재한다'고 신랄하게 외친다. 그러나 풍랑의 시대를 헤치며 살아온 가난한 민초의 한 사람으로서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윤덕수(황정민 분)의 일생은 그 자체가 관점이며 완성도 높은 예술이다. 반드시 정치 사회적 사상과 견해만을 관점으로 간주하는 그 편협한 틀이 문제다. 



'국제시장'은 생존 그 자체가 이슈였던 시대의 가난하고 못 배운 민초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고달픈 삶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베트남 전쟁은 과연 어떤 이유로 발생했는지 등등 정치 사회적 이슈를 다루었다면 전혀 다른 시각의 영화가 탄생했을 것이다. 고통 그 자체보다는 억울함과 부당함이 강조되었을 것이며, 한 사람의 인생 자체보다는 그 인생의 정치 사회적 의미가 부각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윤제균 감독은 그 방향을 선택하지 않았다. 


주인공 윤덕수와 그 아내 오영자(김윤진 분)의 이름은 윤제균 감독의 실제 부모님 이름이라고 한다. 부모님의 이름을 작품에 차용했다는 것은, 영화 '국제시장'을 제작하면서 윤제균 감독이 품었던 심정과 의도를 명확히 드러내는 부분이다.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충돌과 화합은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언제 어디서나 있어 온 과제다. 기성세대와 신세대는 필연적으로 정치적 성향이 다르고,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고, 그 외의 모든 부분에서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소수의 예외는 있지만 대다수가 그러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성세대와 신세대는 서로를 사랑하며 화합해야 할 의무가 있다. 



주인공 윤덕수의 나이는 대략 70대 중반으로 추정되는데, 그 인물을 기성세대라고 본다면 올해 46세인 윤제균 감독은 신세대도 아니고 기성세대도 아닌 중간 세대라고 봐야 할 것이다. 어찌 보면 직접 소통하기 어려운 10~20대의 신세대와 60~70대의 기성세대 사이에서 중간 세대는 양쪽을 최대한 포용하고 이해하며 화합시켜야 할 중대한 의무를 띠고 있는 것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윤제균 감독은 먼저 기성세대의 노고를 인정하고 칭송하며 고개를 숙인다. 정치적 견해나 옳고 그름의 비판에 앞서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하며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살아남는 것 자체가 전쟁이었던 시대에, 명확한 사회 인식과 정치적 견해를 가진 자보다는 못 가진 자가 훨씬 많았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설령 인식과 견해를 갖고 있었어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버릴 수밖에 없는 세대였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시대 젊은이들은 더 이상 꼰대들의 케케묵은 옛날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으며, 이해하려는 노력보다는 날선 비판의 시각만을 들이댈 뿐이다. 이러한 젊은 세대의 비판적 가치관을 담은 예술 작품들은 어느 덧 시대의 주류가 되었지만, 기성세대의 신산했던 삶을 아무런 비판적 시각 없이 담백하게 보여주는 영화는 참 오랜만이다. 그래서 오히려 신선하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모두에게 정치꾼이 되기를 강요하는 사회가 되었다.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노골적인 비난과 지탄을 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물론 그 논리에도 일말의 타당성은 존재한다. 민주 정치의 발전을 위해서는 보다 많은 사람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노력할 필요가 있으니까. 하지만 개인차를 무시하고 모든 사람에게 정치적 관심을 강요한다면, 오히려 그 자체가 심각한 독재일 수 있음은 왜 모르는 것일까? 어째서 모든 예술 작품까지도 정치적 이슈를 담아야만 가치가 있는 것일까? 정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은 그 방향을 선택하면 되는 것이고,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은 윤제균 감독처럼 또 다른 '선택과 집중'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예술가의 자유 영역이며 고유 권한이다. 


(이후 간추린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음. 원치 않는 분들은 두 단락만 건너뛰시길 바람.) 



6.25 전쟁과 1.4 후퇴를 어린 나이에 겪은 청년 윤덕수는 자신의 꿈을 포기한 채 가족의 삶을 위해 파독 광부로 떠나고, 독일의 탄광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후 파독 간호사로 근무하던 오영자와 인연을 맺는다. 하지만 흥남부두에서 혼란중에 헤어진 아버지와 여동생을 기다리기 위해 부산 '국제시장'의 '꽃분이네'를 꼭 지켜야만 했던 윤덕수는 경제적 이유 때문에 가족을 남겨둔 채 다시 베트남전에 기술자로 합류한다. 베트남에서 다리에 총탄을 맞고 장애인이 되어 돌아온 후,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으로 입양된 여동생 막순이를 찾았으나 끝내 부친의 소식은 듣지 못한다. 


윤덕수는 70대 노인이 되고 그 자녀들이 성장하여 손주들을 데려오며 대가족을 이룬다. 국제시장이 재개발되는 와중에도 홀로 '꽃분이네'를 꿋꿋이 지키고 있던 윤덕수는 결국 오랜 기다림을 포기한다. "이제는 못 오시겠지? 너무 늙으셔서..." 그런 윤덕수의 쓸쓸한 마음을 위로라도 하는 듯 6~7세쯤 된 손녀가 '굳세어라 금순아'를 불러준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피눈물을 흘리면서 1.4 이후 나 홀로 왔다~♬" 어린 시절 흥남부두에서 필사의 발버둥으로 탈출하던 윤덕수의 처절한 기억이 손녀의 앙증맞은 노래소리와 겹쳐지며, 그렇게 한 인간의 삶과 고통이 담담히 조명된다. 



'비판'과 '주장'은 그것이 옳건 그르건 필연적으로 '다툼'과 '대결'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윤제균 감독이 이 영화에서 철저히 정치적 이슈와 비판적 시각을 배제한 이유는 그래서가 아닐까? 비판과 다툼에 지쳐버린 사람들을 위로하며, 한 번쯤은 비판 없이 서로를 포용할 수 있기를 바랐던 것 아닐까? 언성을 높이며 삿대질하기를 멈추고, 한 번쯤은 무조건 껴안으며 다독일 수 있기를 바랐던 것 아닐까? 그렇게 만들어진 이 영화를 오히려 정치적으로 해석하며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미 싸움에 너무 길들여져서 포옹하는 법을 잊어버린 듯하다. 안타깝지만, 그래도 대다수의 관중이 '국제시장'을 감동의 영화로 인식하고 있음은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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