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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 거짓말은 때때로 살인보다 나쁘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피노키오

'피노키오' 거짓말은 때때로 살인보다 나쁘다

빛무리~ 2014. 11. 13.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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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너의 목소리가 들려'(이하 '너목들') 이후 박혜련 작가의 차기작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드디어 오랜 갈증을 해결할 수 있게 될 듯 싶다. '너목들' 첫방송 만큼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피노키오'의 첫방송을 시청한 후 최근 거의 1년 동안이나 잊고 지냈던 두근거림이 되살아났다. 이 드라마 때문에 차후 2개월 동안은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 좋은 설렘... 아무래도 '너목들'은 박혜련 작가의 화려한 전성기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던 모양이다. 더불어 '너목들'의 남주인공 '박수하' 역을 멋지게 소화해서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종석까지 다시 만나게 되니 더욱 정겹고 반가울 뿐이다. 



'너목들'의 박수하에게는 타인의 눈빛만 보면 그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는데, '피노키오'에서는 그 능력(?)이 여주인공 최인하(박신혜)에게로 넘어갔다. 거짓말을 하면 곧바로 딸꾹질을 하면서 티가 나게 되는  '피노키오 증후군'이란 작가의 상상으로 창조된 가상의 병일 뿐 실재하지 않는 것인데, 사실상 능력이라기보다는 약점에 가까운 특성이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능력' 그 이상의 역할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온통 거짓 투성이인 세상에서, (비록 본인이 원해서는 아니라 해도) 언제 어디서나 진실만을 말하는 최인하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아주 특별한 위로가 아니겠는가! 


어두운 불행의 늪 속에서 어린 최달포(이종석)는 동갑내기 소녀 최인하를 만났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그녀와 만나자 마자 삼촌 조카 사이로 얽히게 된 사연은 무척이나 기구했다. 소년 최달포의 본명은 '기하명'이라고 했다. 모범 소방관으로서 표청까지 받은 아빠 기호상(정인기)과 다정한 엄마(장영남), 그리고 사이좋은 형제 기재명과 기하명은 남부러울 것 없이 행복한 가정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소방대장으로서 부하 대원 9명을 사지로 몰아넣고 혼자만 도망쳤다는 오명을 쓴 채 사라지면서, 남은 가족의 삶도 180도 바뀌고 말았다. 이 불행의 시작은 바로 '거짓말'에서 비롯되었다. 



기호상과 부하 소방대원들이 폐기물 처리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신고를 받아 출동했을 때, 신고자는 공장 안에 사람이 두 명이나 갇혀 있다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 말을 들은 팀장 기호상은 팀원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잠시 후 공장 안에 있는 줄만 알았던 2명의 직원이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나 신고자에게 말했다. "과장님, 저희가 당직실에서 오징어를 구워 먹다가 그만... 어떻게든 불을 꺼 보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아서 일단 저희 몸만 도망쳤습니다!" 신고자는 혼비백산해서 거대한 불덩이가 되어버린 공장 건물을 올려다보는데, 이미 공장 안 곳곳에서 폭발물이 터지며 9명의 소방대원은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자신의 실수 때문에 9명이나 되는 사람이 생명을 잃었다면, 죄책감과 양심 때문에라도 진실을 고백했어야 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것이 인간으로서 마땅한 도리였다. 하지만 신고자는 새빨간 거짓 증언을 했다. "저는 공장 안에 사람이 없다고 분명히 말했죠. 그런데도 화재 진압을 해야 한다면서 들어가시던데요!" 실수로 불을 낸 2명의 직원에게도 엄히 입단속을 시켰음은 물론이다. 결국 이 사건은 소방대장 기호상의 과욕에서 비롯된 참사로 귀결되고 말았다. 게다가 사건 이후 생존해 있는 기호상을 목격했다는 증인까지 나타났는데, 그 증인이 피노키오 증후군 환자라서 여론은 더욱 악화되었다. 



여론 악화의 중심에는 MSC 여기자 송차옥(진경)이 있었다. 그녀는 가장 냉혹하면서도 자극적인 방식으로 사건을 보도했고, 기호상의 어린 두 아들에게까지 잔인한 인터뷰를 강요했다. "왜 무리한 진압 작전을 요구한 걸까요? 혹시 진급에 관심이?" 어린 하명이 울면서 외쳤다. "우리 아빠 그런 분 아니에요!" 송차옥은 계속 마이크를 형제 앞에 들이밀었다. "그러실 분이 아닌데 왜 안 나타나는 거죠? 당당하면 숨어있을 이유가 없지 않나요?" 고등학생인 재명이 항의했다. "왜 확실히 알아보지도 않고 사람을 매도합니까? 그거 다 헛소문이에요!" 송차옥이 물었다. "헛소문이라는 거 증명할 수 있어요?" 


"그걸 왜 우리가 증명해야 합니까?" 재명이 울부짖는데, 어디선가 날아온 계란이 하명의 머리에 맞고 깨져서 흐른다. 사실 이 장면은 지나치게 과장된 드라마적 허구가 아닐까 싶다. 아무리 기자들의 취재 경쟁이 심하다 해도 아이들을 그렇게까지 추궁할 이유는 없으며, 부하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소방대장을 향한 시민들의 분노가 아무리 뜨겁다 해도 아이들한테 계란까지 던질 이유는 더욱 없는 것이다. 게다가 송차옥은 "아버지가 살아계셔서 기쁘죠?" 라고 묻기까지 했는데, 어린애가 솔직히 "그렇다"고 대답하면 그 장면을 방송에 내보내서 자극적 이슈를 만들려는 속셈이 여실해 보였다.



 

생사가 불분명한 기호상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험악한 여론과 경찰 조사에 시달리던 엄마는 결국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 어린 막내 하명을 꼭 끌어안은 채 "우리 아빠 만나러 가자!" 던 엄마는 바닷가에 운동화 한 짝만 남겨둔 채 영영 사라졌고, 뒤늦게 소식을 들은 장남 재명이 달려와 통곡하는데 기자들은 비정한 플래시 세례를 퍼붓는다. 순식간에 부모와 동생을 잃고 홀로 남겨진 재명... 그런데 5개월 후 외딴 섬 향리도에서 '최달포'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더벅머리 소년이 발견되었으니, 바로 엄마와 함께 실종되었던 기하명이다. 짐작컨대 하명은 엄마와 함께 바다에 빠졌던 것 같다. 


간신히 숨결만 붙은 채 파도에 떠밀려 온 하명을 발견하고 구해낸 사람은 최공필(변희봉) 노인이었다. 30년 전 바다에 빠져 죽은 장남 달포를 평생 그리워하던 최노인은 어린 하명을 보는 순간 죽은 아들이 살아돌아왔다며 기뻐한다. 그런 최노인을 보고 남들은 모두 치매라며 혀를 찼지만, 사실 최노인의 병명은 기억의 왜곡과 전환 장애였다. 아들이 살아 돌아왔다고 철석같이 믿는 그 기억을 바로잡으려 할 때마다 전환 장애가 발작해서 기절하는 바람에, 최노인의 가족들은 어쩔 수 없이 하명을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이렇게 해서 기하명은 최달포라는 이름으로 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최달포는 이 머나먼 향리도에서 다시 송차옥과의 얄궂은 인연을 이어가게 된다. 최달평(신정근, 죽은 진짜 최달포의 친동생)의 이혼한 아내이자 최인하의 생모가 바로 송차옥이었던 것이다. 송차옥처럼 야심만만한 여자가 왜 평범해 보이는 최달평과 이른 나이에 결혼했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기자와 앵커로 성공하고 싶었던 그녀는 남편과 딸이 자신의 출세에 방해가 된다 생각했고, 일밖에 모르는 그녀에게 질린 최달평이 이혼에 동의하면서 최인하는 엄마와 헤어졌다. 처음 만났을 때 인하에게 다정히 대해주던 달포는 그녀가 송차옥의 딸임을 알게 된 후 냉정해졌다. 


거친 세상에 홀로 남겨진 어린 하명에게 어쩌면 거짓말이란 삶의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수단이었다. 아빠가 아닌 최노인을 아빠라 부르고, 생판 남인 달평과 인하를 동생과 조카라 부르면서 그렇게 기하명은, 아니 최달포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정작 그의 친아버지에게 누명을 씌워 파렴치범으로 몰아가고, 엄마를 자살하게 만들고 형제를 뿔뿔이 흩어지게 만든 그 원인도 바로 '거짓말'이었으니, 최달포의 인생은 어쩌면 '너목들' 박수하 만큼이나 처절하다. 거짓말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 후, 거짓말에 기대어 살아가야 했으니. 



앞으로 최달포와 최인하는 기자가 될 것이며, 궁극적으로 이 드라마는 진실을 쫓는 젊은 사회부 기자들의 이야기다. 그러므로 '기자'라는 직업이 중심에 있을 수밖에 없으며, 초반에는 기자들의 과도한 취재 경쟁과 왜곡 보도로 인한 폐해가 적나라하게 다루어졌다. 하지만 차후 최달포와 최인하가 기자로서의 사명감을 갖고 사회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면, 각종 부작용이 있더라도 기자는 현대 사회에 필요 불가결한 직업이며, 본질적으로 숭고한 직업임을 시청자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피노키오' 1회에 나의 시선을 잡아끈 것은 기자들의 과도한 취재 경쟁이나 송차옥의 냉혹한 인터뷰보다, 뻔뻔한 얼굴로 남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거짓말을 하던 화재 신고자의 얼굴이었다. 그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왜곡 보도는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송차옥의 모습이 매우 부정적으로 그려지긴 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녀 역시 신고자의 거짓 증언 때문에 기호상을 파렴치한 범죄자라 믿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훗날에라도 진실은 밝혀질 수 있을까? 



어쩌면 거짓말은 때때로 살인보다 나쁜 죄악이다. 신고자는 정말로 불타는 공장 안에 직원들이 갇혀있는 줄 알았던 것이며, 소방관들은 숭고한 직업적 사명감으로 그 불길 속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9명의 소방관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발생했지만, 그저 운이 나빴을 뿐 신고자의 책임이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불을 낸 후 도망쳤다가 뒤늦게 돌아온 2명의 직원에게는 물론 책임이 있지만, 그 역시 겁 먹고 당황해서 벌어진 실수였으니 진실을 밝혔다면 과중한 처벌은 받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신고자는 거짓말을 했고, 진실은 감춰졌고, 기호상은 진급에 눈 멀어 부하 직원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파렴치범이 되었다. 기호상의 아내는 자살했고 어린 두 아들은 고아가 되었다. 가벼운 책임을 면하기 위한 거짓말 때문에 한 가정이 이토록 풍비박산나고 말다니 이보다 원통한 일이 있을까? 뻔뻔한 얼굴로 거짓말을 하는 신고자의 모습을 보니, 현실 속의 몇몇 사람들이 떠올랐다. 수백 명을 태운 채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버린 어느 거대한 배의 선장... 최근 생떼같은 사람이 죽어나간 어느 큰 병원의 원장... 사람을 죽게 만든 실수보다 더 용서받기 힘든 죄악이 바로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그들도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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