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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사랑이야' 공효진 모녀의 슬프고도 따뜻한 유전자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괜찮아 사랑이야

'괜찮아 사랑이야' 공효진 모녀의 슬프고도 따뜻한 유전자

빛무리~ 2014. 9. 5.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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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열(조인성)의 정신분열증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다양한 반응들이 나타났다. 조동민(성동일)과 이영진(진경)은 정신과 의사로서 객관적 판단과 차분한 결단력을 보였다. 그들 역시 장재열과의 친분이 있었기에 충격을 면할 수는 없었지만, 가족이나 연인처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기에 한 발 물러서서 침착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다. 장재열의 죽마고우인 양태용(태항호)은 지극히 친구다운 태도를 보였고, 재열 모(차화연)는 지극히 엄마다운 태도를 보였다. 너무나 슬프고 믿어지지 않는 현실이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에 차츰 감정을 억누르고 이성을 찾아갔다. 투렛 증후군으로 오래 고통받은 박수광(이광수)은 아파 본 사람으로서 깊은 연민을 느끼며 장재열의 곁을 지키고, 동생에게 복수심을 품고 있던 장재범(양익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생각에 잠긴다.

 

 

폭력은 인간의 정신을 병들게 한다. 계부의 지속적인 폭력에 노출되었던 연약한 세 모자는 한 명도 빠짐없이 정신질환을 갖게 되었다. 그 날도 술에 취해 어린 형제를 폭행하다가 반항하는 재범에게 밀쳐진 계부는 과도를 들고 있던 재열 쪽으로 넘어지면서 칼에 찔렸으나 치명상은 아니었다. 갑작스런 상황에 겁많은 순둥이 재열은 정신을 잃었고, 때마침 들어선 엄마는 처참한 현장에 경악한다. 피가 흥건한 방바닥에 쓰러져 있는 막내를 안고 절규하던 엄마는, 재범이 재열을 업고 병원에 간다면서 뛰쳐나간 후 충동적으로 집에 불을 놓는다. 이 모든 비극의 원흉인 남편을 없애려는 것이었다. 그 순간 재범의 등에서 정신을 차린 재열은 거울에 비쳐진 엄마의 범행 현장을 똑똑히 목격한다. 불을 지른 후 엄마는 집을 뛰쳐나왔고, 계부는 홀로 집 안에서 질식사했다.

 

계부의 사인이 자상이 아닌 질식사로 밝혀지자, 재열은 엄마를 보호하기 위해 형 재범이 칼로 계부를 찔렀다고 증언한다. 청소년 범죄에 유난히 엄격했던 판사와 영웅심리에 휩싸였던 검사의 합작품으로 재범은 십여년의 중형을 선고받게 되고, 형이 억울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재열은 그 날 이후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정작 범행을 저질렀던 엄마는 무의식적 자기 방어기제의 일종인 해리 증상 때문에 당시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긴 세월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하던 재범은 급기야 동생을 향한 복수형 인격장애를 갖게 되고, 모범수로서 외박을 나갈 때마다 재열을 찾아가 상해를 입힌다. 그토록 망가진 형의 모습에 재열의 죄책감은 날로 더해가고, 끝내는 정신분열증을 앓게 되었다.

 

 

한강우(도경수, 디오)의 존재는 장재열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투영해서 만들어낸 환시다. 장재열은 한강우를 통해, 극심한 폭력에 노출된 채 약하고 의지할 곳 없었던 어린 시절의 자신을 본다. 계부의 폭력에 시달리는 엄마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무력함의 고통도 강우를 통해서 다시 느낀다. 이제 어른이 되었고 힘을 갖게 된 재열은 있는 힘을 다해 그런 강우를 보호하려 한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 감춰진 어린아이, 즉 자기 자신을 지키려는 행동이다. 의사 조동민은 재열과의 상담을 통해 강우의 존재가 환시임을 알리려 하지만 재열은 부인한다. "아니, 강우는 있어요. 강우는 나만 믿으니까... 내가 없으면 강우는 아무도 없어요. 가진 게 없는 아이는 모든 사람들이 불편해하고 외면해요!"

 

조동민이 물었다. "네가 맞을 때, 엄마가 맞을 때 사람들이 그랬어? 불편해하고 외면하고... 그럼 재열아... 강우가 너니?" 재열은 다시 고개를 젓는다. "아니, 깅우는 강우..." 환시에 대한 집착이 너무 심해서 치료가 쉽지 않은 지경에 이른 것이다. 게다가 장재열의 경우는 정신분열의 원인이 죄책감에 있기 때문에, 자신이 행복하면 행복할수록 그 반작용으로 죄책감도 심해지고 병세가 악화된다. 지해수(공효진)를 만나 진정한 사랑의 기쁨을 찾고 인생 최대의 행복을 누리게 되면서, 장재열은 더욱 자주 한강우를 만나게 되고 그 아이를 지켜주려다가 번번이 자신을 다치게 한다. 가상의 상대와 몸싸움을 벌이며 자해를 하거나, 운전 중에 강우를 보게 되면 위험천만한 차량 사고를 내기도 한다.

 

 

장재열의 병세를 접한 지해수는 심퍼시(대상에 감정을 이입하며 현실을 부정하는) 상태가 된다. 정신과 의사로서 객관적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명백한 스키조(정신분열) 증세를 보이는 장재열을 다른 병일지도 모른다면서 극구 부인하려 했던 것이다. 스키조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치료가 어려운 병인지를 잘 알기 때문에, 차라리 가벼운 뇌종양일 거라면서 자신을 위로하기도 한다. 하지만 머지 않아 이성을 회복한 지해수는 선배 조동민 이영진과 협력하여 장재열을 강제 입원시킨다. 한강우의 존재가 환시라는 이야기를 듣고도 장재열이 심한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은 약물 치료 덕분이었을 것이다. 약 때문에 어렴풋이나마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직시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장재열은 무리해서 자신을 면회하러 온 지해수를 붙잡고 제발 이 곳에서 내보내 달라며 애원한다. "말이 잘 안 나와... 걷기도 힘들고... 해수야, 나... 내보내 줘. 여기 있는 나는 나 같지가 않아. 강우를 보는 게 병이면 내 의지로 고칠게. 날 믿고 내보내 줘. 여기 있는 내가... 너무 초라해. 이런 기분 싫어. 날... 내보내 줘!" 약물 치료의 영향으로 목소리가 잘 안 나오는 탓에, 장재열은 매우 작고 쉰 소리로 애원하며 눈물을 뚝뚝 흘린다. 보기만 해도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강인하고 자신만만하고 활력이 넘치던 인기작가 장재열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겁많은 순둥이... 어린 시절의 장재열이 그 곳에 있었다. 애써 구축해 왔던 견고한 껍질이 깨어지고 자신의 드러난 속살과 마주하는 그 시간이 장재열에겐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까?

 

 

"이... 이런 말, 하지 마? 그럼... 네가 가나?" 장재열은 어린애처럼 지해수의 눈치를 본다. "또 올게." 해수가 차분한 어조로 말한다. "그래도 붙잡으면 또 주사를 주겠지?" 주사와 약물이 극도로 싫고 공포스러운데도 거칠게 반항하지 않고 매맞는 어린애처럼 받아들이는 재열의 모습이 안타깝다. 지해수는 간신히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를 믿어야 해. 강우는 환시야. 내가 진짜야. 약은 한계가 있어. 강우가 보여도 그게 환시라는 걸 알아야 병을 고쳐. 강우는 네가 만들어낸 너 자신이라는 걸 알아야 해. 그 착각과 모순을 찾는 건 의사가 아니라 너 자신이야." 재열이 다시 한 번 떼를 쓴다. "집에 가서 찾을게." 그러자 해수는 더 이상 받아주지 않고 일어선다. "내가 나가도 부르지 마. 그래야 내가 너한테 또 와."

 

붙잡은 손을 매몰차게 떼어내고 나가버리는 해수의 등 뒤에서 재열이 목 쉰 소리로 부른다. "해수야... 해수야..." 하지만 해수는 돌아보지 않고, 문 밖으로 나와서야 참았던 울음을 터뜨린다. "영진 선배한테 약물 절대 줄이지 말라고 하고, 입원 기간도 예상보다 늘려야 할 것 같다!" 장재열의 증세는 쉽게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나, 그래도 해수는 자신이 그의 손을 놓을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해수는 엄마를 닮았으니까. 차라리 자기 자신을 시궁창에 처넣을 지언정 아프다고 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지는 못하는 그 죽일놈의 의리를 꼭 닮았으니까. 이것은 참으로 슬프면서도 따뜻한 유전자가 아닐 수 없다.

 

 

장재열을 사윗감으로 여기고 무척이나 예뻐하던 해수엄마는 그가 정신분열증이라는 소식에 하늘이 무너진다. 딸자식이 평생 자기처럼 살게 될까봐, 빌어먹을 사랑인지 의리인지 지킨답시고 아픈 남자 곁에서 평생을 고통받을까봐 엄마는 가슴이 타들어간다. 딸이 근무하는 병원까지 쫓아가서 퇴근할 때를 기다렸다가 집으로 끌고 온 엄마는 "장재열과 헤어졌다"고 거짓말하는 해수의 뺨을 거세게 후려친다. "어디서 엄마를 속여? 남자한테 의리 지키는 걸 네가 나한테 배웠다고? 진짜 그래?", "엄마한테 본 게..." 해수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엄마는 다시 뺨을 친다. "네가 나랑 살면서 본 게 그것밖에 없어? 네 아빠 진절머리나고 버거워, 내가 너희들 재워놓고 김사장 만나고 다닌 건 왜 잊어? 환자랑 사는 게 어떤 건지 네가 알아?"

 

하지만 해수는 알고 있다. 엄마가 김사장을 만났던 것은 아빠한테 진절머리나서가 아니라, 네 식구 생활비와 아빠의 병원비와 두 딸의 교육비를 혼자 감당할 수 없어서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픈 남편을 지켜냈다는 것을,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엄마..." 눈물을 흘리며 해수가 불렀지만 엄마는 잘라냈다. "네가 엄마라고 안 불러도 난 네 엄마야. 됐고, 너는 장재열하고 진짜 끝내는 거야. 진심으로... 가!" 그렇게 딸을 외면하고 방으로 들어서니, 몸을 움직이지도 못한 채 모녀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남편의 눈가에 눈물이 흥건하다. 엄마는 수건으로 아빠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한다. "울지 말어... 해수, 나처럼 살라고 난 못 해. 당신이 서운해도 절대 안 돼!"

 

 

그러나 어쩌랴, 사랑은 뜻대로 버려지는 게 아닌 것을, 더욱이 그들 모녀 같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인 것을. 힘겨워도 사랑하니까 괜찮다고 되뇌이면서, 지해수는 그렇게 장재열의 곁을 지킬 것이다. 이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나는 너무 많은 공감을 느꼈기에, 오히려 점점 더 리뷰를 쓰기가 힘들어졌다. 특히 인간의 트라우마를 사막의 낙타에 비유한 대목에서는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아침이 되어 자유롭게 풀어주어도 밤새 꽁꽁 묶여 있던 기억에 사로잡혀 도망치지 못하는 낙타처럼, 이미 지나버린 과거의 감옥에 갇혀 현재를 자유롭게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 장재열처럼 극심한 증상으로 나타나지 않을 뿐, 그런 사람이 어디 한둘일까? 나 역시 그런 것을.

 

'괜찮아 사랑이야'는 마음이 아픈 사람들, 정신이 병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안방극장에서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육체에 병이 들면 "아프다"면서 동정하지만, 정신에 병이 들면 "미쳤다"면서 기피하던 사람들에게 아주 조금은 인식의 변화를 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그 시도만으로도 이 작품의 가치는 얼마나 큰 것일까? 환자뿐만 아니라 주변인들의 고통까지도 매우 섬세하게 따뜻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는 노희경 작가에게 한없이 감탄하며 감사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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