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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처럼 널 사랑해' 장나라 캐릭터의 한 가지 모순 본문

드라마를 보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 장나라 캐릭터의 한 가지 모순

빛무리~ 2014. 7. 19.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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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남주인공 이건(장혁)과 기이한 운명으로 만나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김미영(장나라)의 캐릭터는 지극히 평범하고 현실적이었다. 로펌이라는 화려한 직장에 다니지만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는 말단 여직원, 게다가 한없이 여리고 순하기만 한 김미영은 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치명적 문제 때문에 직장 상사 및 동료들로부터 거의 하녀 취급을 받고 있었다. 동료들은 툭하면 자신의 업무를 미영에게 떠맡기면서도 미안한 줄 몰랐고, 심지어 포스트잇에 '오늘의 할 일'을 적어 미영의 몸에 붙여놓는 무례한 행동조차 서슴지 않았다.

 

 

상사들은 직장 업무뿐 아니라 사적인 일에까지 김미영을 알뜰히 부려먹었다. 속으로는 이게 아니다 싶으면서도 한 마디 거절의 말을 하지 못해서 그저 웃는 얼굴로 모든 부탁을 들어주는 김미영... 드라마 속 캐릭터라서 좀 과장되긴 했지만, 현실 속에도 그와 비슷한 사람들은 적잖이 찾아볼 수 있다. 솔직히 나로서는 그러한 성품을 이해하거나 좋게 여기기 어려웠다. 공적인 일이든 사적인 일이든, 거절해야 할 때는 산뜻하고 확실하게 거절해 주는 편이 서로를 위해 가장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절하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과 사회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물론 김미영에게 막무가내식으로 부당한 선의를 강요하는 사람들이 더 문제긴 하다. 아무리 순하고 만만해 보여도 원칙적으로 그러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원칙을 지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슬슬 눈치를 보다가 조금이라도 빈틈이 보인다 싶으면 거리낌없이 남의 자리에 발을 올려놓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어쩌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와 같은 몰염치함은 모든 사람에게 내재된 본성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김미영처럼 '거절 못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주변 인물들은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몰염치한 본성이 극대화되게 마련이다. 처음엔 그들도 부당하다고 생각했겠지만 아주 쉽게 당연한 일처럼 계속 받아들여지다 보면, 나중엔 부당하다는 생각조차 안 하는 뻔뻔한 인간들이 되어버린다.

 

 

이런 나의 주관에 비춰볼 때 '운명처럼 널 사랑해'(이하 '운널사')의 여주인공 김미영은 매우 답답할 뿐 아니라 사랑스럽지도 못한 캐릭터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운널사' 속에서 표현되는 김미영의 모습은 매우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다. 거절하지 못해서 동네북처럼 이리저리 치이는 김미영을 볼 때 평소 내 성격대로라면 답답하고 짜증이 나야 하는데, 의외로 안타까운 연민이 느껴지며 그녀를 보호해주고 싶은 감정마저 일어났던 것이다. 이는 99% 여배우 장나라의 힘이다. 애처롭도록 가녀린 장나라의 외모와 물오른 연기력이 아니었다면 그 누가 답답녀 김미영을 이처럼 곱게 형상화시킬 수 있었을까?

 

특히 개인적으로 나는 '운널사' 속 장나라의 패션이 마음에 든다. 촌스러운 듯하면서도 청순함과 여성성을 극대화시킨 장나라의 옷차림을 보고 있노라면, 때묻지 않은 그녀의 수줍은 내면이 보이는 것만 같다. 좀 오버해서 표현한다면 장나라의 모습은 마치 '글래머'와 '섹시코드'로 점철된 방송의 현세태에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것처럼 느껴져서 가슴이 울컥하도록 대견하고 흐뭇하다. 물론 장나라의 외모와 연기력뿐 아니라 김미영의 캐릭터에는 또 한 가지의 결정적인 사랑스러움이 존재한다. 진심으로 자기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선량함이다. 마음 약해서 거절 못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녀처럼 선량한 것은 아니다.

 

 

김미영이 마카오 여행중에 겪게 된 사건은 지나치게 황당해서 드라마의 개연성을 해치는 수준이었다. 박사장(정은표)가 최씨(임형준)가 실수로 떨어뜨린 흥분제가 담긴 음료수를 하필 김미영이 마시게 되었다는 부분에서 황당함은 극치를 이룬다. 아무리 기침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해도 느닷없이 호텔 운하 위로 둥둥 떠내려온 물병을 집어들어 벌컥벌컥 마신다는 것은 무리한 설정이었다. 그 속에 든 게 뭔지도 모르는데 선뜻 마실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아무튼 흥분제를 마시고 정신이 몽롱해진 미영은 호텔방을 잘못 찾아 남주인공 이건의 침대로 기어들어갔고, 역시 흥분제 때문에 골아떨어졌던 이건은 김미영을 자신의 애인인 강세라(왕지원)로 착각하여 하룻밤 거사를 치른다.

 

이후 김미영은 임신을 하게 되고, 하룻밤의 후폭풍은 예정에 없던 결혼으로 이어진다. 그 과정 중에서 김미영은 바보가 아닐까 싶을 만큼 지극한 이타심과 선량함을 보여주었다. 정숙한 여자로서 타인의 계략에 휘말려 모르는 남자와 동침을 하고 임신까지 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충격과 상처일 수밖에 없다. 따지고 보면 그녀의 잘못은 이상한 물병을 집어서 마신 것밖에 없기 때문에, 남의 탓을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김미영은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며 혼자 감당하려 했고, 연인이 있는 이건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결혼까지도 사양하려 했다.

 

 

심지어 태어날 아기의 미래가 불행해질 것을 염려하여 낙태를 결심하기도 했는데, 비록 옳은 선택은 아니었지만 수술을 앞두고 눈물로 기도하는 김미영의 모습은 그 순수한 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너무 못난 엄마를 만난 아기를 불쌍하게 여기셔서 좋은 곳으로 가게 해 주십시오. 아기를 지키지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렇게 보내고 나면 죽을 때까지 죄책감에 시달릴 것을 알지만, 김미영은 아기의 불행을 막기 위해 평생 무거운 멍에를 짊어지려 했던 것이다. 다행히 늦지 않게 달려온 이건의 만류로 아기는 무사할 수 있었고, 형식적이나마 두 사람은 부부가 된다.

 

대대로 단명하는 집안이니 하루빨리 자손을 보아야 한다는 문중의 재촉에 못 이겨 임신한 김미영과 결혼했지만, 이건의 마음은 여전히 오랜 연인 강세라에게 머물러 있었다. 어쩌면 미영이 자기 집안의 돈을 보고 달라붙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출산 후 즉시 10억의 위자료를 받고 이혼에 응한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요구할 때, 이건의 마음속에 김미영을 향한 사랑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진실한 고백이 이건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나는 건이씨가 고마웠어요.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나타나서 도와준 게 진심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당신이 아기 아빠라는 게 안심이 됐고요. 그래서 진심으로 따르고 싶었고, 결혼도 한 거예요!"

 

 

머쓱해진 이건에게 김미영은 수정된 이혼 합의서를 내밀었다. 10억의 위자료 부분이 검게 지워져 있었다. "돈은 필요 없어요. 대신 아기는 내가 낳아서 내가 키울 거예요!" 그 순간 이건 자신은 느끼지 못했지만, 이미 그의 마음은 김미영의 순수한 영혼에 푹 빠지고 말았다. 이기적인 강세라를 오랫동안 사랑하며 외롭고 상처받았던 마음이 김미영의 따스함으로 치유되기 시작했다. 바쁘게 일하다가도 문득 김미영의 커다란 눈망울이 떠오르면 "밥은 먹었나?" 싶어서 궁금해지고, 미국에 있는 강세라와 통화를 하다가도 김미영의 비명소리가 들려오면 즉시 끊어버리곤 미영에게 달려갔다. 미영의 실수 때문에 욕실에서 양복과 머리칼이 흠뻑 젖었지만 짜증을 내기는 커녕, 연약한 그녀가 감기에라도 걸릴까봐 대형 타월로 꽁꽁 감싸주는 이건이었다.

 

어쩌면 이것은 가장 아름답고 긍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이다. 너무 여리고 바보같이 순해서 누구한테나 짓밟히던 여주인공이 기적같은 운명으로 행복해지는 이야기니까 말이다. 무릇 현대의 신데렐라 스토리란 능력있고 똑똑하고 씩씩한 여주인공이 사회의 장벽에 부딪혀 좌절하다가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 그 장벽을 넘어서게 되는 식인데, 김미영은 씩씩하지도 않고 똑똑하지도 않고 이렇다할 능력도 없는 여주인공이라서 오히려 특별하다. 여타의 신데렐라들과 공통점이 있다면 그저 집안이 가난하다는 사실뿐이다. 가장 약하고 못난 사람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가 참 흐뭇하고 좋기는 한데, 어딘가 찜찜하고 거북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나라는 정말 예쁘다. 세상에 보기 드물게 예쁜 데다가,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듯한 가녀린 몸매는 저절로 보호 본능을 불러 일으킨다. 만약 김미영이 그렇게 예쁘지 않았다면, 만약 못생기고 뚱뚱하고 우락부락한 외모의 여자였다면 과연 이건 왕자님의 사랑을 얻을 수 있었을까? 그와 같은 그림이 상상이나 되는가? 착한 것도 좋고 순수한 것도 좋지만 우선은 예쁘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 속의 수많은 김미영들은 결코 장나라처럼 예쁘지 않다. 솔직히 장나라만큼 예쁜 여자가 포스트잇처럼 남들에게 무시를 당하는 경우 자체가 흔치 않다. 김미영의 캐릭터가 사랑스러운 이유는 절반 이상이 장나라의 외모 덕분인데, 모순되게도 너무 예쁜 장나라의 외모 때문에 작품의 메시지는 희석되고 마는 셈이니 참 우습고도 서글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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