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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별' 작별 인사... 사랑할 수 있어서 참 고마웠다고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감자별 2013QR3

'감자별' 작별 인사... 사랑할 수 있어서 참 고마웠다고

빛무리~ 2014. 5. 16.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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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준혁... 아니, 홍혜성(여진구)은 그렇게 떠나 버렸다. 그가 남긴 휴대폰과 베개 등으로 실시한 두번째 유전자 검사 결과는 놀랍게도 '불일치'였다. 부모의 유전자와 일치한다고 나왔던 첫번째 유전자 검사는 원인불명의 오류였던 것이다. 우리는 홍혜성이 오이사(김광규)의 농간에 속아서 자기가 진짜 아들인 것을 모른 채 가짜라고 착각하며 죄책감에 시달린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착각하고 있던 것은 우리였다. 홍혜성은 자신의 정체를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유전자 검사에 따라 가족이었다가도 아니게 된다는 현실이 어쩌면 이리도 허망할까? 지난 8개월 동안 그들은 분명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가족이었는데.

 

'감자별'이 지구로 돌진해 오자 공포를 느낀 지구인들은 급기야 핵무기를 탑재한 인공위성으로 별을 파괴했다.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먼 훗날까지도 인류는 그렇게 말할 것이다. 그러나 감자별은 지구인들에게 단지 '낯선' 존재였을 뿐이다. 어쩌면 '감자별'은 지구와 친해지고 싶어서 그렇게 다가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류는 '낯선 존재'의 접근을 단호히 거부했고, 급기야 거대한 살상무기를 동원하여 '감자별'을 파괴했다. 지상 3만km에서 며칠간이나 지속된 화려한 불꽃쇼... 그렇게 무섭고도 아름답게 '감자별'은 최후를 맞이했다. 그리고 동시에 '홍혜성'도 사라졌다. 그 이름 혜성처럼 빠르게 다가왔다가 순식간에 멀어져갔다. 돌이켜 보면 밤하늘에 달과 나란히 떠 있던 '감자별'은 흰 달에 비해 약간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홍.혜.성. 

 

 

떠나간 후 나진아(하연수)에게 도착한 두번째 편지에는 과테말라 소인이 찍혀 있었고, 언젠가 그녀가 꼭 방문해 보고 싶다던 아티틀란 호수에 관한 내용이 가득했다. "이제 내가 바라보는 아티틀란 호수는 너처럼 맑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진아야, 이게 내 마지막 인사가 될 것 같아. 사랑해, 안녕..." 끈 떨어진 연처럼 세상에 홀로 던져졌던 홍혜성. 그는 '감자별' 만큼이나 낯선 존재였고 끝내 '감자별'처럼 거부당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타인들의 거부로 인해 밀려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스스로 떠난 것이지만, 그 안에 내포된 의미는 다르다. 이 세상 사람들이 저마다 구축하고 있는 '자신들만의 세계'가 얼마나 견고한지, 그 테두리 밖에서 '낯선 존재'가 접근하려 할 때 얼마나 잔인하게 거부당할 수 있는지를 의미하는 것이다.

 

홍혜성의 마지막 편지가 나진아에게 전달되었을 때 그것은 이미 한 달 전에 쓰여진 것이었고, 편지가 도착함과 거의 동시에 '감자별'은 파괴되었다. 이 작품이 김병욱... 다름아닌 스텐레스김의 작품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홍혜성은 '감자별'의 소멸과 동시에 죽음을 맞이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머나먼 과테말라의 아티틀란 호수 근처였을까? 아니면 사랑하는 그녀와 처음 인연을 맺고 이웃으로 기대어 살던 황량한 철거촌의 빈 집이었을까? 어디에서 눈을 감았든, 그의 입술과 가슴에는 최후까지 나진아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을 것이다. (종영 후 여진구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을 보니, 극 중에서는 한 번도 드러난 적 없지만 사실 홍혜성은 병을 앓고 있으며 시한부 판정을 받은 캐릭터였다고 한다.) 

 

시한부 판정을 모르는 상태에서, 감자별과 홍혜성을 동일시하지 않고 인간적으로만 생각하면, 노씨 집안의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나진아와의 사랑까지 포기해야 했을까 싶었다. 다시 가난한 청년 홍버그로 돌아갔다 해서 나진아가 그를 거부하지는 않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오래 전 별장에서의 하룻밤, 노민혁(고경표)과 나누었던 짧은 대화를 들으니 알 것도 같았다. "형은 정말, 지금은 진아 안 좋아해?" 혜성이 물었을 때 민혁은 대답했다. "네가 원하는 답이 어떤 건지 몰라서 그냥 솔직하게 대답할게. 너한테 거짓말하기 싫기도 하고... 사람 마음은 쉽게 안 변해. 그렇지만 너한테서 어떤 것도 뺏을 생각은 없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혜성의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었다.

 

노민혁의 순수한 마음은 홍혜성의 의사 결정에 늘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유전자 검사 결과를 조작해 두었으니 가짜 아들 노릇을 하라는 오이사의 강요에 홍혜성은 절대 그럴 수 없다며 거부했었다. 하지만 자신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가족들의 모습에 조금씩 흔들렸고, 기억을 잃은 형 노민혁과의 만남은 그의 마음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준혁아, 왜 이제 왔어?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일곱 살 어린아이의 반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얼싸안는 민혁의 품에 안겨, 혜성은 주르륵 눈물을 흘렸더랬다. 당분간이나마 가짜 아들 노릇을 하며 눌러앉기로 결심한 이유는 차마 그 천진스런 기쁨을 망가뜨릴 수 없어서였는지도 모른다.  

 

홍혜성은 떠나기 전에 모든 가족들과 진아에게 편지를 남겼지만, 그가 마지막 통화 상대로 결정한 사람은 다름 아닌 노민혁이었다. 오직 형에게만, 자신의 목소리로 모든 것을 털어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녀를 부탁했는지도 모른다. 본능적으로 자기는 이 세상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는 '감자별' 같은 존재임을 느꼈던 게 아닐까? 자기가 떠난 후에도 그녀는 이 별에 남아야 하니까... 누군가는 곁에서 그녀를 지켜주고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하니까. 그렇게 노민혁은 홍혜성이 떠나간 빈 자리에 그녀와 함께 남겨졌다. 슬픔에 빠져 자신을 돌아볼 겨를이 없는 그녀의 등 뒤에서 1년을 묵묵히 기다렸다. 그리고 그녀의 생일... 결재서류 형식으로 그녀에게 정식 데이트 신청을 한다. 

 

그리움은 피한다고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아파도 정면으로 마주보고 끌어안아야 차라리 견딜 수 있는 것이다. 굳이 혜성과의 추억이 서린 그 별장을 다시 방문한 것은 그리움마저 함께 하겠다는 뜻이었을까? 잊으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안고 가자는 뜻이었을까? "다음에 다른 기획서 또 올리면 결제해 줄 건가?" 생일이 아니라도, 아무 이유 없이도 만날 수 있겠느냐고 묻자, 그녀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봐서요!"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 대답은 두 사람의 미래 만큼이나 불확실하다. 만약 그들이 사랑을 시작한다 해도 (주)콩콩의 후계자인 노민혁과 말단사원 나진아의 결합이 그리 쉽지는 않을 터이고, 꼭 그 이유가 아니라도 청춘의 사랑이란 참으로 불안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불안해서 더욱 애틋한. 

 

물음표 투성이 인생은 어두운 밤길 만큼이나 두려운 것이지만, 이제 나진아는 어둠 공포증에서 해방되었다. 혜성이 떠나던 날, 위치추적 어플에 잡히는 그의 신호를 따라 진아는 무작정 달려갔다. 도착한 곳은 예전에 살던 철거촌의 빈 집이었다. 어플의 신호는 꺼져 버렸지만 그래도 진아는 기다렸다. 어느 덧 해가 지고, 가로등 하나 없는 철거촌에 짙은 어둠이 내렸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그가 뚜벅뚜벅 걸어올 것만 같은 골목 어귀 어둠 속을 응시할 때, 그녀의 마음 속에 두려움 따위가 자리잡을 공간은 없었다. 저 어둠 속에 그가 나타난다면, 한 걸음에 달려가 그와 함께 어둠까지도 포옹할 수 있을 것 같던 그 밤의 간절한 기다림... 홍혜성은 그렇게 마지막 선물을 주고 떠났다. 자기 없이 어둠 속에 홀로 남겨질 그녀를 위해.

 

이별의 아픔은 영원히 남겠지만 그래도 사랑할 수 있어서 고마웠다고... 네가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고... 어느 날 내게 다가온 너는 정말 소중한 선물이었다고... 나진아는 홍혜성에게 속삭이듯 작별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이젠 눈물 없이 길을 걷고, 밥을 먹고, 일을 하면서 계속 살아갈 것이다. 참 우연이라기엔 너무도 얄궂지만... 거대한 이별의 비극 때문에 온 세상이 통곡했던 최근의 일들이 떠올랐다. 속절없이 떠나간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할 사랑이 아니었겠는가!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김병욱은 홍혜성이라는 존재를 통해, 작별 인사조차 전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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