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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별' 회자정리(會者定離)의 마침표를 향해 가는 먹먹함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감자별 2013QR3

'감자별' 회자정리(會者定離)의 마침표를 향해 가는 먹먹함

빛무리~ 2014. 5. 14.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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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이란 법화경의 한 구절로서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어느 정도 인생을 알아갈 때쯤이 되면 '회자정리'의 먹먹한 슬픔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비해 '거자필반'에는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떠났다가 돌아오는 것은 떠나기보다 훨씬 어렵고,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것 또한 헤어지기보다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자필반'까지는 도달하지 못하고 '회자정리'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짐작컨대 '거자필반'을 '회자정리' 뒤에 붙여둔 것은 중생의 애달픔을 불쌍히 여긴 성현들의 위로가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아주 가끔씩은 '거자필반'의 기적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작년 가을부터 소소한 즐거움을 주었던 시트콤 '감자별 2013QR3'은 이제 종영까지 불과 2회를 앞두고 있다. 김병욱 PD의 이전 작품들에 비해 화제성도 낮았고 시청자를 사로잡는 흡입력도 약했지만, 특유의 시니컬함과 따스함이 조화를 이루어 진행되는 이야기들은 언제나처럼 시리고도 아련한 그리움을 남겼다. 시청률과 화제성이 낮았던 이유는 케이블에서 방송된 때문도 있겠지만 역시 주인공들의 러브라인이 강력히 어필되지 못한 탓이라 여겨진다. 나진아(하연수)와 노준혁(여진구)의 러브라인은 초반부터 너무 일찍 확정된 느낌이 있었고, 아무 변화 없이 밋밋한 상태로 줄곧 이어져 왔다.

 

'지붕뚫고 하이킥'의 '신세경-최다니엘-황정음'처럼 끝까지 아리송하게 그런 듯 아닌 듯 애를 태우든가, 아니면 '거침없이 하이킥'의 '서민정-최민용-신지'처럼 만남과 다툼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스펙터클한 볼거리를 주어야 했는데 '여진구-하연수-고경표'의 역할은 시종일관 어정쩡한 상태로 머물러 있었다. 스텐레스김은 이제 더 이상 꼬이고 꼬인 러브라인으로 장난치기가 싫어진 것일까? 노민혁(고경표)의 뒤늦은 고백과 변화 이후 루즈한 삼각관계에도 일말의 변화가 생기려나 기대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제자리로 돌아간 그들은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을 반복했다. 실망스러웠다.

 

 

이전까지의 나는 항상 스뎅김이 설정한 메인 커플에게 무한 애정을 쏟아 왔는데, 여주인공의 운명적 상대가 아님을 알면서도 희망없는 짝사랑남에게 더 큰 설렘을 느끼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감자별' 이전에는 솔직히 배우 고경표에게 매력을 느껴 본 적이 없었는데, 노민혁이라는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해내는 모습을 보며 연기자 고경표마저 좋아하게 되었다. 특히 머리를 다쳐 기억을 잃고 7살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노민혁을 연기할 때, 고경표의 눈빛과 표정은 가슴이 저리도록 해맑고 애틋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겐 그 모습이 무엇보다도 아찔하고 치명적이었다. 떠올리기만 해도 한가득 눈물이 고일만큼.

 

처음에 홍혜성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을 때는 숨이 막히도록 매혹적이더니, 노준혁으로 변신한 이후의 여진구는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었다. 자신들도 분명히 알고 남들도 다 눈치챌 만큼 분명한 사랑인 것을 왜 그렇게 오랫동안 아닌 척 하고 지냈는지, 사랑한다는 한 마디 고백이 왜 그토록 늦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우유부단한 모습은 매력을 현저히 반감시켰다. 늘푸른 소나무처럼 그녀의 곁을 든든히 지켜주는 모습은 믿음직하기도 했지만, 관계를 확정짓기 두려워하는 모습은 언젠가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 이유 역시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어쨌든 종방이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완벽히 풀리지 않은 것은 그 세 사람의 관계와 운명뿐이다.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는 모두 정리되었다. 눈만 마주치면 아옹다옹하던 시아버지 노송(이순재)과 며느리 왕유정(금보라)은 극적으로 화해했고, 냉랭하던 왕유정과 남편 노수동(노주현)의 관계도 갑자기 따스해졌다. 노보영(최송현)과 김도상(김정민) 부부의 금슬은 셋째아이를 갖게 되면서 더욱 좋아졌고, 노수영(서예지)와 장율(장기하) 부부 역시 작은 부딪힘 속에 조화를 찾아가는 중이다. (솔직히 노수영-장율 커플이 잘되는 것은 좀 뜻밖이다.) 

 

줄리엔강과 후지이 미나 커플은 각자 고향 나라로 돌아가면서 자연스런 이별을 맞이했다. 헤어지며 1년 후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지만, 그녀의 두 눈에 맺힌 눈물은 지켜질 수 없는 약속임을 말하고 있었다. 김병욱 시트콤의 엔딩에는 반드시 '회자정리'의 법칙이 등장하는데, 주로 친한 친구나 연인 사이에 적용된다. '거침킥'이 종영될 즈음 범이네 가족의 해외이민이 결정되면서, 그토록 붙어살던 단짝 친구 민호(김혜성)와 범이(김범)가 얼마나 허망하게 헤어졌던지를 기억하시는가? 커플 폐인들에게 기나긴 아픔과 후유증을 남겼던, 수많은 연인들의 가슴아픈 이별이야 말할 나위도 없다.

 

 

이제 나진아는 엄마 길선자(오영실)와 더불어 차고 생활을 청산하고 인간이 살만한 집으로 이사를 가는데, 진아를 사랑하는 노씨 형제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조용히 그녀를 돕는다. 한집에 살던 그녀를 보내려니 허전함이 오죽할까만, 그녀의 행복을 바란다면 붙잡을 수도 없는 일이다. 자기가 가짜 아들인 줄 알고 있는 노준혁은 유학 시기가 닥쳐오자 묵묵히 떠날 준비를 하는데, 몰락한 오이사(김광규)는 그에게 최후의 일격을 준비한다. 위태로운 노준혁과 달리 노민혁의 위치는 굳건하지만, 나진아의 마음은 그에게로 향해 있지 않다. 줄리엔과 미나처럼 그들의 사랑도 결국은 회자정리로 끝나는 것일까?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해피엔딩의 기미는 보이질 않는다.

 

'감자별'의 심상찮은 변화는 어린 규영이(김단율)를 통해 전해졌다. 천체망원경 화면에 쏙 들어오던 감자별이 더 이상 그 테두리 안에 갇혀있지 않고 훨씬 커졌다는 것이다. 이는 감자별과 지구의 거리가 그만큼 가까워졌다는 뜻이니 아무래도 희극보다는 비극에 가까운 조짐이라 하겠다. (초등학생 규영이도 발견할 수 있을 만큼 커다란 변화인데, 어째서 아무도 모르는 것일까? 왜 뉴스에는 발표되지 않은 것일까?) 제목을 '감자별'이라 정한 것을 보면 그것은 매우 중요한 소재인데, 설마 지구와 충돌하여 모두 죽는 것은 아닐테고, 어떤 식으로 엔딩에 활용될지는 좀처럼 예상할 수가 없다. 그저 기다릴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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