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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노 바탈리를 '이탈리아의 쉰들러'라고 부르지 말라 본문

예능과 다큐멘터리

지노 바탈리를 '이탈리아의 쉰들러'라고 부르지 말라

빛무리~ 2014. 5. 1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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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신비한TV 서프라이즈'는 '쉰들러 리스트의 진실'에 관한 내용을 방송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통해 세계적 유명인사가 된 체코 사람 오스카 쉰들러는 사실 영화에서 그려진 것처럼 정의롭고 희생적인 인물이 아니라 탐욕스런 악덕기업주에 불과했다는 내용이었다. 쉰들러는 값싼 임금으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나치 군인들에게 뒷돈을 주고 유대인들을 인계받았으며, 쉰들러 리스트는 그의 공장에서 일했던 유대인 노동자의 명단일 뿐이라고 했다. 심지어 그의 아내와 내연녀는 쉰들러를 가리켜 '호색한에다가 반인도주의적인 사람' 이라 칭했으며, 공장에서 일하는 유대인들의 금품을 빼앗아 되판 돈으로 술을 퍼마시는 알콜중독자였다고 증언했다.

 

 

쉰들러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쉰들러 리스트' 영화를 만든 스필버그 측에서는 "의도야 어떻든 일부 유대인들은 쉰들러로 인해 목숨을 구했으며, 역사적 증거가 아닌 생존자의 증언으로만 그를 재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쉰들러 덕분에 살아남은 유대인들과 그 후손들은 아직도 쉰들러를 은인으로 여기고 있다고 하며, 쉰들러가 나치에 협력했던 과거로 전범 재판에 섰을 때 그의 편에 서서 유리한 증언을 해줌으로써 무죄 판결을 받아내 주었다고도 한다. 하긴 온 가족이 비참하게 몰살당할 위기에서 '쉰들러 리스트'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면, 쉰들러가 어떤 인간이었든 무슨 의도를 갖고 있었든 결과적으로는 은인이 된 셈이다.

 

하지만 정말 순수한 의도와 희생적인 행동으로 타인의 목숨을 구해낸 사람들과 비교할 때, 쉰들러는 결코 그들보다 높이 평가받을 수 없다. 결코 그래서는 안 될 일이다. 결과가 좋았다고 해서 불순한 의도까지 정화되는 것은 아니며, 반대로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해서 숭고한 의도가 폄하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2014년 5월 11일에 방송된 '신비한TV 서프라이즈'는 4년 전에 방송되었던 내용과 비교할 때 모순된 부분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에 거주하던 유대인 800여명의 목숨을 구해낸 영웅 '지노 바탈리'를 소개하면서 그를 '이탈리아의 쉰들러'라고 거듭 칭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노 바탈리는 오스카 쉰들러보다 훨씬 숭고하고 뛰어난 의인이었다.

 

 

이탈리아가 연합군에게 항복하자 그에 분노한 독일은 단숨에 이탈리아를 점령하고 유대인 탄압을 시작했다. 수천 명의 유대인이 나치스에 학살당했고, 그들 중에는 가난한 청년 지노 바탈리를 후원하여 유럽 최고의 사이클 선수가 될 수 있게끔 도와주었던 유대인 스타인버그도 포함되어 있었다. 더 이상 무력하게 지켜볼 수만은 없다고 결심한 지노 바탈리는 안젤로 추기경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추기경과 함께 위조 여권을 만들어 유대인들을 중립국으로 탈출시킬 계획을 세운다. 유대인 가정을 방문해 위조 여권을 만드는 데 필요한 서류들을 받아오고, 완성된 위조 여권을 다시 유대인 가정에 전달하는 역할은 지노 바탈리의 몫이었는데 그것은 정말 위험하고도 어려운 역할이었다.

 

하지만 유명한 사이클 선수였던 지노 바탈리는 서류와 위조 여권을 자전거 안장에 숨긴 채 대회 연습을 핑계로 나치 군인들의 검문을 피해 다니며 밤낮으로 질주했다.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해 그가 자전거로 달린 거리는 무려 80만km에 달했다고 한다. 안장에 숨긴 서류와 여권이 발각되는 날에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지노 바탈리는 죽음을 무릅쓰고 타인을 구하기 위해 달렸던 것이다. 이탈리아에 거주하던 유대인 800여명은 지노 바탈리의 헌신적인 도움을 받아 무사히 중립국으로 탈출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예루살렘의 홀로코스트 기념재단(제2차 세계대전의 대학살로 희생당한 유대인을 추모하는 재단)은 지노 바탈리를 '이탈리아의 쉰들러'라 칭하며 특별 명예상을 수여했다고 한다. 그리고 '서프라이즈'에서도 수차례 지노 바탈리를 '이탈리아의 쉰들러'라 칭하는 자막과 해설이 등장했다. 그런데 과연 '이탈리아의 쉰들러'라는 호칭이 지노 바탈리에게 명예로운 것일까? 오스카 쉰들러의 인품과 행실은 이미 그 주변인들의 증언에 의해 세상에 드러났다. 의도야 어쨌든 결과적으로 독일의 수많은 유대인을 살려냈으니 칭찬할만한 업적을 남긴 셈이긴 하지만, 사실상 그것은 코끼리가 뒷걸음질치다가 생쥐를 잡은 것처럼 운좋게 주어진 명예일 뿐이다. 지노 바탈리의 숭고한 뜻과 희생적인 행동을 어찌 그에 비할 수 있단 말인가?

 

'이탈리아의 쉰들러'라는 호칭은 지노 바탈리에게 어울리는 것이 아니다. 좀 더 강하게 표현한다면, 명예는 커녕 모욕이 될 수도 있는 이름이다. 그러니 우리는 지노 바탈리를 '이탈리아의 쉰들러'라고 부르지 말자. 쉰들러는 쉰들러고, 바탈리는 바탈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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