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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 용서는 어디까지 가능한 것일까? 본문

책과 영화와 연극

'방황하는 칼날' 용서는 어디까지 가능한 것일까?

빛무리~ 2014. 4. 11.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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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내용은 지극히 단순하다. 방황하는 칼날... 한 소녀가 잔인하게 성폭행 당하며 살해되었는데 가해자들은 미성년이라 붙잡혀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게 될 상황이다. 소녀의 아버지는 직접 가해자들을 찾아다니며 피의 복수를 진행하고, 자식 잃은 아버지의 심정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살인을 막기 위해 그를 체포해야만 하는 형사들은 깊은 고뇌를 한다. 어차피 이와 같은 스토리에 해피엔딩이란 있을 수 없다. 복수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아버지는 그토록 사랑하던 딸을 이 세상에서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다. 복수에 실패했을 경우 남는 것은 뼈아픈 절망뿐이며, 복수에 성공했을 경우 남는 것은 자식을 잃어버린 또 다른 부모들이다. 결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건이 벌어지는 순간, 행복의 가능성은 말끔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 영화는 일면 법의 구멍과 부조리에 관해서도 꼬집고 있는 것 같다. 강력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너무나 가벼운 처벌을 내리는 것이며, 직접적 사인이 폭행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살인죄를 적용시킬 수 없다는 것 등, 피해자의 입장에 몰입해서 보면 그놈의 법은 당장 쓰레기통에 처넣어도 시원치 않을 만큼 엉터리다. 하지만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러한 법이 반드시 불합리하다고 단정지을 수도 없다. 영화를 감상하는 동안 내 마음을 어지럽힌 것은 법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다. 죄와 벌... 상처와 용서... 과연 인간은 어디까지 악랄해질 수 있는 것이며, 화해와 용서의 의무는 어디까지 적용할 수 있는 것일까? 영원히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어려운 화두가 다시 던져졌다. (이후 영화 내용의 스포 있음)

 

 

딸의 복수를 위해 스스로 손에 피를 묻힐 수밖에 없는 이유를 두고 아버지는 말했다. "수진이한테 미안해서... 너무 미안해서..." 아내가 오랜 암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자 이상현(정재영)의 심신은 극도로 피폐해졌다. 너무 힘들다 보니 엄마 잃은 딸 수진(이수빈)을 살갑게 챙겨주지도 못했다. "내가 아무것도 못 해줬어요. 아무것도..." 넋나간 듯 중얼거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형사 장억관(이성민)은 착잡한 심경으로 바라본다. 어린 것이 끔찍한 일을 당하고 시궁창에 버려져 홀로 죽어가는 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아버지의 피 토하는 심경을 정재영은 시종일관 리얼하게 표현해냈다. 살아서도 잘 해준 게 없었는데 최후의 순간까지도 지켜주지 못한 아버지는 너무 미안해서 복수의 칼날을 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자식을 잃은 또 다른 부모들의 심경도 이상현의 그것보다 약해 보이지는 않았다. 상현의 복수에 첫번째로 희생된 고교생 김철용(김지혁)의 부모는 제 자식을 죽인 살인마를 저주하며 울부짖었다. 경찰은 수십 차례나 성폭행 범죄를 저지르고 동영상을 찍어 둔 철용의 가공할 악행을 말해 주었지만 부모는 믿지 않았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자기 아들은 피해자일 뿐이라고 철용의 어머니는 절규했다. 분명 수진이를 죽음으로 몰아간 범죄에서 가해자는 김철용이고 피해자는 수진아빠 이상현이었지만, 상현이 철용을 살해하는 범죄가 일어나면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 것이다. 감정적으로는 이상현의 복수를 100% 응원하는 마음이었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 소설은 어떤 결말을 맞이했을까? 

 

 

김철용을 죽인 후 공범 조두식(이주승)을 찾아 헤매는 이상현의 여정은 험난 그 자체였다. 맨손으로 눈밭에 파묻히고 수없이 뒹굴며 열연을 펼치는 정재영은 과연 명품 배우였다. 버스 안에서 수상한 낌새를 알아채고 상현이 이름을 묻자 '김민기'라고 거짓말을 하며 마치 약올리듯 씨익 웃음짓는 조두식의 표정은 또 어찌나 섬뜩하던지! 신인배우 이주승의 연기도 꽤 볼만했다. 결국 아버지의 핏빛 복수는 미완의 비극으로 막을 내리고,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빠진 형사들의 고뇌는 계속된다. "조두식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수진이 생각을 몇 번이나 할까?" 소년원을 방문한 억관은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만약 범죄를 저지른 아이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을 평생 간직한 채, 희생적인 삶으로 죄를 갚아 나간다면 그보다 더 바람직한 결말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슬프게도 그렇지 못한 경우가 너무 많았다. 한낱 게임기 때문에 친구를 무참히 살해하고도 소년은 죄책감을 거의 느끼지 않았다. 고작 소년원에서 잠시 지낸 것으로 "나는 죗값을 다 치렀다고 생각한다"며 뻔뻔하게 외친다. 이렇게 되면 피해자의 죽음은 억울할 뿐만 아니라 지극히 허망하다. 가해자는 피해자를 까맣게 잊은 채 웃으며 살아갈 것이고, 어쩌면 또 다시 유사 범죄를 저지를지도 모른다. 비극의 악순환... 그 고리를 끊을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용서는 지극히 숭고한 미덕이지만, 때로는 더없이 잔인한 횡포일 수 있다. 끔찍한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가해자를 용서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것은 내가 보기엔 횡포와 다름없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용서는 인간의 삶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드는 필수 요소이기 때문에 용서 자체를 부인할 수도 없는 일이다. '남자의 자격'에서 김태원이 이끌던 실버 합창단은 소년원을 방문하여 노래 선물을 해준 적이 있다. 그 소년원에도 합창단이 있었는데 그들은 실버 합창단의 노래에 화답하여 'You Raise Me Up'을 불렀다. 그런데 아이들의 목소리가 어찌나 맑고 투명한지 저절로 눈물이 흐를 지경이었다. 어린 나이에 한 순간의 실수로 인생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된 아이들이 참으로 가여웠고, 당연히 용서해야 한다고 그 때는 생각했다.

 

그러나 어쩌면 그들의 범죄로 상처를 입은 피해자와 가족들은 화면에 모자이크 처리되어 나오는 소년들의 모습을 증오에 불타는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을지 모른다.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못난 짓해서 죄송하고, 이제 밖에 나가면 좋은 모습만 보여드리겠습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그 감동적인 뉘우침의 고백마저도 피해자의 눈으로 볼 때는 역겨운 사치였을 것이다. 가해자에겐 인생의 수많은 기회가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수진이같은 피해자는 인생 자체를 잃어버렸으니까. 그러니 어쩌면 좋을까? 결국은 어른들의 잘못이겠지만, 언제부턴가 괴물이 되어버린 세상 속에서 덩달아 괴물이 되어가는 아이들... 용서할 수도 용서하지 않을 수도 없는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다시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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