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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인간적 관점으로 성경을 재해석한 영화 본문

책과 영화와 연극

'노아' 인간적 관점으로 성경을 재해석한 영화

빛무리~ 2014. 3. 22.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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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영화 '노아'를 보게 되었다. 사전 정보는 전혀 없는 상태에서 갑작스레 주어진 기회였고, 나는 가톨릭 신자로서 성경 속의 인물 '노아'가 어떻게 그려졌는지 궁금한 마음에 이 영화를 선택했다. 웅장한 스케일이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기는 했는데, 영화의 사운드에 따라 진동하게 만들어진 좌석은 매우 불편했다. 진동이 부담스러우면 컵홀더 아래의 스위치를 끄라는 안내가 나오길래 스위치를 찾아 껐는데도, 주변 의자들이 한꺼번에 진동하기 때문인지 별 효과가 없었다. 영화를 보면서 그런 진동을 느끼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까? 내 경우는 오히려 영화 관람에 큰 방해가 되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스마트폰에 설치되어 있는 '가톨릭 굿뉴스' 앱을 열어 성경의 창세기 부분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나는 오래 전에 신약과 구약을 모두 읽었지만, 성서 중에서도 동화책처럼 재미있는 창세기는 어려서부터 너덜너덜해지도록 읽었던 것이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표현된 노아의 모습과 그의 생각은 창세기를 바탕으로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무척 달라서, 혹시라도 내 기억이 잘못되었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살펴 본 결과 성서의 내용은 나의 기억과 같았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성서를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과감히 재해석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개신교에서는 창조주를 '하나님'이라고 호칭하지만 천주교에서는 '하느님'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천주교 신자인 나는 이 리뷰에서도 '하느님'이라는 호칭을 쓰도록 하겠다. 성서에 따르면 하느님이 홍수를 내려 타락한 인간을 징벌하실 때, 단 한 명의 인간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씨를 말려 버리겠다고 하셨다는 대목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의롭고 흠 없는 자로서 주님의 눈에 들었던 노아와 그 가족은 살려주겠다고 하셨다. 창세기 6장의 내용 일부를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이제 내가 세상에 홍수를 일으켜, 하늘 아래 숨쉬는 모든 살덩어리들을 없애 버리겠다.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이 숨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내가 너와는 내 계약을 세우겠다. 너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로 들어가거라. 그리고 온갖 생물 가운데에서, 온갖 살덩어리 가운데에서 한 쌍씩 방주에 데리고 들어가, 너와 함께 살아남게 하여라. 그것들은 수컷과 암컷이어야 한다." 처음부터 노아와 그 가족에게 내려진 명은 한 쌍씩의 동물들과 함께 살아남는 것이었다. 이어지는 창세기 9장의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하느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내리시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워라!'"

 

 

그런데 영화 속의 노아(러셀 크로우)는 하느님의 명을 "동물들을 살려내는 임무만 마치면, 너희도 똑같은 인간이니 모두 죽어 사라져야 한다" 라고 해석했다. 종교적 성서적 관점에서 본다면 매우 잘못된 해석이었다. 하지만 종교와 신앙을 배제하고 철저히 인간적인 관점으로만 본다면, 영화 속 노아의 생각은 일견 신선하기도 했다. 사실 이 세상에 흠 없는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죄를 짓고 산다. 그런데 살아 숨 쉬는 모든 인간들 중 오직 노아와 그 가족들만 콕 집어 구원을 받고, 다른 사람들은 모조리 죽어야만 한다는 것이 논리적으로는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의 명을 받았을 때 노아가 느낀 감정은 성서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어쩌면 영화 속 노아처럼 다른 사람들은 모두 죽어가는데 자신과 가족들만 살아남는다는 것 때문에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종교적 신앙적 관점에서 보면 하느님의 명을 받아 실행함에 있어 인간의 생각이나 의지는 개입할 여지가 없는 것이기에, 노아는 털끝만치의 반항이나 이의제기는 커녕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자신의 주관적인 해석에 의지하여 시키지도 않은 가족 살해를 도모하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신앙인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평범한 인간으로서 깊이 고뇌하는 노아의 모습이 가득하다.

(이후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

 

 

영화 속 노아는 하느님의 명을 받들어 방주를 만들고 온갖 길짐승과 날짐승들을 한 쌍씩 받아들였다. 그러나 밀려오는 홍수 속에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방주를 향해 달려드는 사람들을 외면한 채 자신과 가족들만 살아남았다는 것에 깊은 죄책감을 느끼며, 자신들 역시 죽은 그들과 마찬가지로 악한 인간이기에 결국은 모두 사라져야 한다고 결론 내린다. 그러므로 가장 어린 막내아들 야벳은 세상의 마지막 인간이 될 거라고 단언한다. 그런데 맏아들 셈의 아내이며 노아의 며느리인 일라(엠마 왓슨)는 임신을 하게 된다. 일라는 원래 불임의 몸이었으나, 방주에 오르기 직전 노아의 조부 므두셀라(안소니 홉킨스)가 그녀를 치유시켜 임신 가능한 몸으로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물론 하느님의 허락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는 어디서 무슨 엉뚱한 소리를 들었는지, 아니면 죄책감 때문에 정신이 이상해진 탓인지, 혼자서 무시무시한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인간은 무조건 멸종되어야 하기 때문에, 셈과 일라의 아기가 사내아이면 야벳을 대신해서 마지막 인간이 되겠지만, 엄마가 될 수 있는 여자아이가 태어난다면 자기 손으로 직접 죽이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좀 웃기는 얘기 아닌가? 남자와 여자가 결합해야 아이가 생기는 것인데, 엄마는 뭐 여자 혼자서 되나? 직접 죽여서라도 인간의 씨를 꼭 말려야겠다면 손녀가 태어나기를 기다릴 필요도 없이, 아내와 아들들과 며느리를 모두 죽이고 자기도 죽어버리면 간단한 일 아닌가?

 

 

또한 이 영화에는 카인의 후손 두발가인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인간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이며 인간의 자유의지가 모든 것에 우선한다고 주장하는 그의 캐릭터는 현대인을 닮았다. 마치 악역처럼 묘사되고 있지만 사실상 악역은 아니다. 오히려 신앙을 갖지 않은 대다수 사람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두발가인은 홍수에 휩쓸리기 직전 방주의 한쪽 벽에 구멍을 뚫고 몰래 잠입하는데, 아버지 노아에 대한 반항심과 원망으로 가득차 있던 둘째아들 함은 두발가인을 만나 그의 하수인이 된다.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과 애증과 나약함을 드러내는 함에게서도 방황하는 현대인의 모습이 뚜렷하게 비친다.

 

가차없는 징벌의 소용돌이 속에 일라는 쌍둥이 딸을 출산하는데, 신의 뜻을 잘못 해석하고 손녀들을 죽이겠다는 노아 때문에 가족 살해의 비극이 눈앞에 닥친다. 과연 살아남은 인간들의 마지막 희망은 무엇으로 지켜질 수 있을까? 참 신기한 사실은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의 주제가, 결론만 놓고 보면 종교적 관점과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노아'와 같은 영화를 감상하고 해석함에 있어 종교인과 비종교인의 견해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결론과 주제가 같다면 근본적으로는 문제될 게 없는 셈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마지막 해결책이며, 타락한 세상과 죄 많은 인간들을 구원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은 오직 사랑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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