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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 결혼하는 여자' 손여은(한채린)은 악녀가 아니다! 본문

드라마를 보다

'세 번 결혼하는 여자' 손여은(한채린)은 악녀가 아니다!

빛무리~ 2014. 3. 16.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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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반 부진을 면치 못하던 김수현 작가의 최신작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이하 '세결여')의 뒷심이 발휘되고 있다. 근소한 차이긴 하지만 시청률 면에서도 경쟁작 '황금무지개'를 앞섰고, 대중적 화제성도 높아졌다. 그런데 화제의 중심에 있는 인물은 여주인공 오은수(이지아)도 아니고 남주인공격인 정태원(송창의)이나 김준구(하석진)도 아니다. 놀랍게도 주변 인물들 중 하나에 불과한 한채린(손여은)이 밤낮으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뜨거운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한채린의 캐릭터는 독특하고 신선하다. 그래서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신기하고 재미있다.

 

하지만 나는 한채린을 악역이라 규정짓고 악녀라 부르는 데는 동의할 수가 없다. 악역이라면 최소한 옳고 그름에 대한 기본적 인식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 자기가 하는 행동이 옳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행하는 사람이 악인이다. 그런데 한채린을 보면 옳고 그름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다. 그 머릿속에 들어있는 생각이란 모두 유아기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들이다. 한 마디로 그녀는 몸과 나이만 어른일 뿐 정신적으로는 일곱 살 가량의 어린아이에 불과한 것이다. 아역 정슬기(김지영)가 극 중 여덟 살인데, 한채린은 슬기보다도 유치한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고 있으니 더욱 어리다고 봐야 한다. 시어머니 최여사(김용림)는 한채린을 가리켜 '천지분간 못하는 애'라고 표현한 적 있는데 아주 정확했다.

 

 

어린 슬기를 괴롭히는 행동 때문에 얼핏 악녀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 한채린은 그게 나쁘다거나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정신 연령에 맞추어 슬기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머릿속에는 어른과 아이의 구분 자체가 없는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은 성장 과정에서 조금씩 아이의 껍질을 깨고 나와 어른이 되어가는데, 좀 특별한 사정을 지닌 어떠한 사람들은 끝내 아이의 껍질 속에 갇혀 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 껍질 속에서 보면 누구나 자기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로 보일 뿐이다. 그러니 연장자를 존중할 줄도 모르고, 자기보다 어린 사람을 포용할 줄도 모른다. 시어머니 최여사의 호통에 "뭐!!!" 라고 대거리하며 정면으로 맞서던 모습과 슬기를 괴롭히던 모습은 사실상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채린이 슬기에게 가한 행동은 어른으로서 아이를 괴롭힌다는 인식을 갖고 한 게 아니다. 처음 슬기 방에 들어가 "할머니도 고모도 임실댁 아줌마도 없어. 지금 이 집에 너랑 나 둘 뿐이야!" 하고 말을 걸 때부터 매우 섬찟한 느낌은 들었지만, 그 역시 자기가 어른이고 상대가 어린애임을 인식해서 한 말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초등학교 저학년 학급에서 덩치 크고 힘 센 아이가 작고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것 같은 차원의 유치한 으름장이었을 뿐이다. 마치 짝꿍을 사이에 두고 다투는 아이들처럼, 슬기한테 남편 정태원의 사랑을 빼앗긴다고 생각하는 채린은 슬기와 똑같은 입장에서 질투하고 경쟁한다.

 

어른이 아이를 때리고 밀치고 아이의 물건을 밟아서 부순 것은, 만약 정상인이라면 결코 변명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잘못이다. 그러나 한채린은 슬기와 자신이 대등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잘못을 인식하지 못한다. 많이도 아니고 "겨우 한 대 때린 게 그렇게 큰 일이에요? 그까짓 녹음기 좀 부순 게 대수예요?" 라고 항변한다. 친엄마의 목소리가 담겨있는 녹음기를 슬기의 눈앞에서 짓밟아 산산조각을 낼 때, 단 둘이 있던 빈 집에서 슬기한테 손찌검을 할 때, 어른인 자신 앞에서 무력한 어린애인 슬기가 느꼈을 충격과 공포를 한채린은 전혀 상상도 못하는 것이다. "왜 이 집 식구들은 하나같이 슬기 편만 들어요? 어떻게 내 편은 하나도 없어요?" 자신이 어른이고 슬기가 어린애임을 인식하고 있었다면 저런 말은 나올 수가 없다.

 

 

채린은 새엄마랍시고 나서며 슬기의 교육에 관해서도 이런저런 참견을 했다. 응석을 너무 받아주면 안 좋다는 둥, 혼자 자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둥, 편식하는 습관은 강제로라도 고쳐주어야 한다는 둥... 하지만 그것은 책을 읽어서 머릿속에 주입된 교육 방식일 뿐, 어른의 마음으로 아이를 대하는 교육 방식은 아니었다.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는 교육이 목적이라기보다 남편 정태원이 슬기와의 시간을 오래 갖지 못하도록 방해하려는 게 목적이었다. 그녀는 자기중심적 사고에 갇혀 있고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타인의 마음을 얻는 요령도 전혀 깨우치지 못했다. 남편의 사랑을 받고 싶다면 아이를 질투하는 게 아니라 더욱 감싸주어야 한다는 기본조차, 안타깝게도 채린은 몰랐던 것이다.




이 외에도 한채린이 갖고 있는 아이의 특성은 무수히 많다. 말과 행동이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직접적이다. 기분 내키는 대로 말하고 제멋대로 행동한다. 인내심과 자제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수틀리면 악을 쓰고 울어대는 어린애처럼 미친듯이 소리를 질러댄다. 뒷일을 생각 안 하고 금방 들통날 일을 번번이 저지른다. 슬기에게 처음 손찌검하던 날, 아이가 충격받고 집을 나가 버렸는데도 태평스레 아이스크림을 떠먹고 있던 채린의 모습이 생각난다. "슬기야, 미안해. 아줌마가 실수했어. 아빠랑 할머니한테 말 안 할거지?" 몇 마디 사과를 하고 아이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기로소니, 그걸로 완벽히 화해가 되었다 믿는 철부지가 어디 있을까? 슬기가 유난히 어른스러워 입을 다물었을 뿐, 여느 아이 같았으면 화해고 뭐고 당장 아빠한테 일러바쳤을텐데 말이다.

 

현실 속에도 아이의 껍질을 다 깨지 못한 어른들이 있지만, 한채린의 경우는 너무 극심한 예라서 매우 충격적이다. 보면 볼수록 점입가경이라 때로는 오싹하니 소름까지 돋는데, 나는 이상하게도 그런 채린이 밉기보다는 가여워진다. 일부 시청자들은 못된 시어머니와 무심한 남편 탓이 크다고도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한채린이라는 인물을 이렇듯 잘못 키워낸 그 친정 부모에게 있다. 단언컨대 한채린의 친정 아버지는 냉혹한 이중인격자이다. 무려 470억 원의 재산을 기부 형식으로 사회에 환원시켰다는데, 외부적으로는 그렇게 성인군자인 양 생색을 내면서 가족들에게는 어찌 그리 잔혹한가? 자기 가족조차 사랑으로 품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남들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470억이 아니라 4700억을 기부했어도 그는 위선자에 불과하다.

 

 

남편 태원과의 사이가 괜찮았을 때, 채린은 자기 어린 시절 이야기를 짧게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냉정하고 강압적인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는 평생 외로워하셨다고... 자기는 어머니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인형같은 존재였다고... 다 커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어머니가 목욕을 시켜 주셨다고... 대충 그런 이야기였다. 나중에 채린이 슬기를 학대한 사실이 밝혀져 태원이 이혼하겠다고 나서자, 채린의 친정 아버지는 재산을 기부해서 이젠 받아먹을 유산이 없게 되었기 때문이냐며 태원을 다그친다. 또 얼마 후 채린은 친정 어머니와 통화를 하는데, 너희 아버지가 너무 화를 내서 곁에 있는 내가 죽을 지경이라고, 이혼은 절대 안 되니까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고, 채린의 엄마는 그렇게 말했더란다.

 

언젠가 채린은 슬기를 야단칠 때 "말 안 들으면 발가벗겨 내쫓을 거야" 라는 험악한 말까지 내뱉은 적 있는데, 그것은 어린 시절 자기 부친에게서 들었던 말일 가능성이 높다. 아이는 항상 어른의 말과 행동을 따라하는 법이니, 채린은 상처받으면서도 아빠의 그런 말과 행동을 배우고 익힌 것이다. 채린부는 혹시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최여사의 탐욕을 잘 알면서, 딸에게는 한 푼의 유산도 남겨줄 생각이 없으면서, 왜 그런 집으로 딸을 시집보냈을까? 일부러 인생 고달파지라고? (결혼 파탄과 재산 기부는 직접적 연관이 없었지만) 결국 시집 식구들 모두한테서 미움받게 되고 남편이 이혼을 요구한다는데 무조건 절대 이혼만은 안 된다고 윽박지르다니, 부모로서의 측은지심은 커녕 오히려 가학적 쾌감마저 느껴진다. 채린이 외로운 섬처럼 떠돌면서도 그 집에서 나가지 않고 버티는 이유는 정태원을 향한 미련이나 어린애다운 고집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두번째 이혼 후 친정으로 돌아갔을 때 아버지를 만날 일에 대한 두려움 때문 아닐까?

 

40회 종영까지 불과 5회를 남겨둔 지금의 상황을 보면, 여주인공 오은수의 세번째 결혼 상대는 첫번째 남편이었던 정태원일 가능성이 높다. 이 시점에서 또 새로운 남자와의 에피소드를 전개할 시간적 여유도 없거니와, 한채린에게 완전히 질려버린 최여사가 은수와 태원의 재결합을 슬쩍 원하고 있으니 말이다. 은수는 그럴 생각 없다고 하지만 여전히 태원과의 사이는 좋은 편이고, 이제 두 사람 모두 이혼해서 싱글이 된다면 소중한 슬기를 위해서라도 재결합이 자연스런 수순이다. 한채린의 발악과 히스테리는 오히려 두 사람의 결합을 재촉하게 될 뿐인데, 이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한채린의 처량한 운명은 오직 그녀의 책임일까? 처음부터 잘못 만들어진 불량품처럼,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그녀가 나는 참 많이 가엾고 안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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