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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경, 드라마처럼 열정적인 삶 본문

책과 영화와 연극

노희경, 드라마처럼 열정적인 삶

빛무리~ 2009. 7. 20.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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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연말에 출간된 드라마작가 노희경의 에세이집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를 이제야 읽었다. 원래 이 책을 구매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을 보고, 그 드라마에 관해 다른 분들이 쓰신 여러 편의 리뷰를 재미있게 읽었으면 그뿐이지, 에세이는 읽고 싶지 않았다.



나는 수필이라면 전문 수필가의 작품, 또는 예술과는 좀 거리가 있는 사람들의 수필을 좋아한다. 막노동하시는 아저씨의 수필도 좋고, 식당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의 수필도 좋고, 평범한 회사원의 수필도 좋고, 정신과 의사선생님의 수필도 좋고, 물리학과 교수님의 수필도 좋다. 그러나... 소설가의 수필, 드라마작가의 수필, 영화배우의 수필, 화가의 수필, 음악가의 수필 등... 예술과 관련된 직업을 가진 사람의 수필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좀 나중에 밝히도록 한다.

나는 노희경이라는 작가를 좋아하지만, 매니아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내게도 좋아하는 작가가 있고 음악가가 있고 연기자가 있지만, 그냥 좋아하는 것일 뿐 매니아라고 자처하지는 않는다. 매니아가 되기엔 나는 너무 담담하거나 많이 건조하다.

그런데 다른 책을 구매하기 위해 오랜만에 들른 대형서점에서 이 책을 보았다. 무심히 집어 들고 넘기던 나는 1장에서 그만 맥을 놓고 말았다.

"사랑은 내가 먼저 다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는 말...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미치게 보고 싶어 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는 말... 이 말들이 순간 나를 서점에 우뚝 선 채 멍하니 맥놓게 만들었다.

물론 내게도 처음에는 열정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한 발짝 물러서서 마치 내 일이 아닌 듯 나의 일과 사랑을 바라보았던 것 같은, 그런 내 모습이 그녀의 글에서 느껴졌다. 왠지 모를 동질감으로 나는 원래 구입하려던 책과 함께 생각지도 않았던 드라마작가 노희경의 에세이집을 함께 구입해서 들고 왔다.

노희경, 그녀는 드라마를 참 맛깔스럽게 쓰는 작가다. 그녀의 드라마를 보면, 재미와 깊이와 감동을 함께 느낄 수가 있다. 그녀의 에세이집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역시 그녀의 드라마처럼 재미와 감동을 주는 좋은 책이었다. 그러나 책을 다 읽은 지금 내 머릿속에 남은 생각은 “역시 예술 하는 사람의 수필집을 구입하는 게 아니었어.” 라는 생각이다.




사람이 책을 읽고,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감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이유를 “동질감 찾기” 라고 생각한다.

자기와 코드가 맞는, 자기 취향의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우리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올라오는 무엇인가를 느낀다. “아, 나도 저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는데, 나도 저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저 사람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나와 같은 느낌을 가졌구나.” 바로 이거다.

동질감은 사람을 조금 덜 외롭게 해준다. 가족이나 친구나 연인 등 사람에게서 동질감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니, 어떤 경우에는 예술로 인해 느끼는 동질감의 효과가 더 크고 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미 세상에 발표되어 유명해진 문학이나 음악 작품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았기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내가 그 작품을 보면서 나 역시 깊은 공감을 느낀다면, 나는 그 수많은 사람들과 같은 생각이나 느낌을 공유한다는 결과가 된다. 그 순간 내게는 생각과 감정의 동지가 수없이 많이 생겨나고, 그래서 나는 외롭지 않게 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예술의 존재 이유이다. 우리를 좀 덜 외롭게 해주는 것.

그런데 예술가의 수필을 읽으면, 그 동질감이 무너진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내가 예술가의 수필을 읽지 않으려는 이유다.

********

오래 전, 나는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떤 작가의 매니아 행세를 한 적이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평론가들이 그에게 어떤 비평을 하든 상관없었다. 그의 소설에서 느껴지는 시원스런 동질감은, 뜨겁고 답답하게 부글거리기만 하던 내 속을 알싸한 탄산음료처럼 씻어내려 주었던 것이다. 그의 소설을 읽을 때, 나는 정말 행복했다. 다른 어디에서도 느껴 본 적 없던 행복을 주었기에 나는 마음속으로 그를 연인처럼 사랑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서점에서 그의 수필집이 나온 것을 발견하고 집어 들었다. 몇 장 읽는데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 이건 아닌데 싶었다. 그래도 여기저기 골라가며 몇 장을 더 읽었다. 대충 1/5 정도는 읽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미련 없이 책을 내려놓고 바로 서점을 나왔다. 그 당시 정확한 이유는 몰랐지만 굉장히 기분이 안 좋았다.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배신감이었다. 내가 알고, 내가 사랑하던 하루키가 아니었다. 내가 사랑했던 하루키는 소설 속에 등장한 주인공과 같은, 일종의 캐릭터화 된 하루키였는데, 수필 속의 하루키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작가 자신이었던 거다. 게다가 그 두 가지가 좀 비슷하기라도 하면 나았을 텐데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은 일상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보여준다. 꽉 짜여진 일상에 얽매여 헉헉대며 지겨움을 참고 살아가던 중에, 그토록 자유로운 하루키의 주인공을 만나면 갑자기 삶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처럼 나는 느꼈었다.

그런데 수필 속의 하루키는 철저하게 계획된 삶을 살고, 스스로를 무섭게 채찍질하고 절제한다. 심지어는 아마추어로서 마라톤 풀코스를 뛰기까지 한다. 가벼운 자유는 무슨... 아주 계획적이고 독한 사람이라고 나는 느꼈다.

이것은 하루키를 폄하하려는 말이 아니다. 그토록 노력하는 삶을 사는 작가이니 오히려 더 존경받을만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머릿속의 생각일 뿐이고 감정은 그게 아니었다. 나에게 있어 그것은 뼈아픈 배신이라고까지 할만 했다.

나는 하루키라는 인간이 실제로 어떤 인간인지를 알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그가 만들어낸 세상이 나에게 행복을 주었기에 그를 사랑했을 뿐이다. 그런데 수필을 통하여 그의 실제 모습이 드러남으로써 하루키로 인한 나의 행복은 절반 이상이 부서져 내리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수필을 발표하기보다는, 자기의 예술로만 세상에 말하기를 바란다. 음악가는 음악으로, 화가는 그림으로, 소설가는 소설로, 연기자는 연기로 세상에 외치기를 바란다. 그들이 수필이라는 형식을 통해 자기가 갖고 있는 본연의 모습을 드러낼 때, 그들을 사랑했던 누군가는 뜻하지 않게 상처를 받고, 그들을 사랑했던 마음과 행복했던 세상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

하루키에 비해 노희경의 에세이집은 그래도 훨씬 나았다. 철모르고 너무 빠져들었던 하루키에 비해 훨씬 뒤에 알게 되어서, 그만큼 대책 없이 사랑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겠고, 드라마에서 느낀 그녀의 모습과 에세이에서 느낀 그녀의 모습 사이에 괴리감이 별로 크지 않아서일 수도 있겠다.

드라마에서처럼 수필에서도 그녀는 사려 깊고, 강단 있고, 따뜻하고, 재미있었다. 그녀가 털어놓은 가족 이야기도 그랬다. 분명 아픈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도, 아프기보다는 따뜻하고 재미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능력이다.



그런데도 마지막 장을 덮은 후, 나는 역시 약간의 배신감을 느꼈다.

아까 서두에 밝혔듯이, 예정에 없던 이 수필집을 사서 들고 온 이유는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미치게 보고 싶어 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는 대목에서 느껴지는 그 건조함 때문이었다. 그 건조함에서 나와의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스스로 한 발짝 물러서 있었다고, 모든 것을 바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그게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비록 그녀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독자인 내가 느끼기에 그녀는 항상 남김없이 모든 것을 다 바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왔으며,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나의 속에는 거의 메말라 버렸다고 느껴지는 열정이, 그녀의 수필 속에서는 흘러넘치도록 느껴졌다.... 아... 동질감은 무슨... 배신이다. (ㅎㅎㅎ)

비록 약간의 배신감을 느꼈지만, 그녀의 에세이집 구입은 내게 있어 실패한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처음에 생각했던 동질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곳 저곳에서 나와의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으며, 또한 나보다 훨씬 언니뻘인 그녀에게서, 그토록 작은 체구의 그녀에게서 발견한 열정이 나를 조금이나마 일으켜 주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의 열정은 메말라버린 것이 아니라 잠자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해주었으니, 나는 앞으로도 계속 노희경 그녀를 좋아하게 될 것 같다.


*사진 출처 - KBS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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