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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 주의보' 나도희의 이상한 투정, 연장 방송의 폐해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못난이 주의보

'못난이 주의보' 나도희의 이상한 투정, 연장 방송의 폐해

빛무리~ 2013. 11. 9.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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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고민하고 아파했던 것에 비해 근본적 문제 해결은 허망하도록 쉽게 이루어지는 느낌이다. 자기 영혼을 팔아서라도 공씨 형제를 파멸시키고 싶어하는 듯했던 이경태의 부친(안석환)은 뜻밖에도 울며 불며 사죄하는 공준수(임주환)의 진심을 받아들였고, 죽은 아들의 복수를 위해 별다른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미국으로 돌아갔다. 동생을 위해 자기 목숨까지 버리려(...다가 말았지만)는 공준수의 희생 정신을 목격하긴 했으나, 그것만으로 완고한 노인의 피맺힌 원한이 삽시간에 풀린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결과였다.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과 친구들을 모두 외면하고 진실을 감추기 위해 죽음을 택하려던 공준수의 선택은 몹시 실망스러웠는데, 그 억지 설정이 노인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구실로 사용되니 더욱 실망스러웠다. 어쨌든 복수심을 내려놓고 갑자기 신선의 도량을 갖추게 된 이노인은 한국을 떠나기 전, 눈에 불을 켜고 공씨 형제의 덜미를 잡으려는 이한서(김영훈) 변호사에게 점잖은 충고까지 해주었다.

 

 

하지만 공나리(설현)의 기억이 완전히 돌아오고 그 순간의 충격으로 나리가 교통사고(?) 비슷한 것을 당하게 되면서, 공준수가 목숨을 걸면서까지 숨기려던 그 살인 사건의 진실은 모두에게 알려지고 말았다. 공준수는 이경태의 죽음에 아무런 책임이 없으며, 실수였든 고의였든 사고였든 그 죽음의 원인 제공자는 공현석(최태준)이었다는 진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모두 깊은 충격에 빠진다. 그 중에도 가장 심한 타격을 입은 사람은 물론 공현석이었다.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지조차 명확히 모른 채 어렴풋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지난 10년을 견디어 왔던 공현석은, 자기를 지켜주기 위해 아낌없이 인생을 바쳤던 형 공준수의 마음을 생각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뒤늦게라도 형에게서 살인자의 굴레를 벗겨주고 싶은 공현석은 직접 경찰서를 찾아가 자수하기에 이른다. 더불어 다시 진행되는 면밀한 수사를 통해 형과 자신조차 명확히 알지 못하는 그 사건의 진짜 진실을 밝혀내고 싶기도 했다.

 

이미 공준수가 충분한, 아니 오히려 과분한 처벌을 받아 10년의 형기를 마치고 완료된 사건인데 그걸 새삼 들쑤셔 벌집을 만들다니, 얼핏 바보같은 선택이라고 비춰질 수도 있었지만 나는 공현석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꼬장꼬장한 성격으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입을 다물고 덮어 둔 채 살아간다면 그는 평생 마음의 감옥에서 풀려날 수 없을 테니까, 누구보다 자기가 살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괜한 불씨를 지폈다며 다들 걱정했지만, 재수사는 너무 쉽고 간단하게 끝나 버렸다. 모든 증거와 증언을 꼼꼼히 종합해 본 결과 공현석에게는 살인 혐의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과실치사의 혐의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것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기소할 수 없는 상태였다. 공현석은 즉시 풀려났고, 마음의 자유를 얻었다. 후련해진 것은 공준수도 마찬가지였다. 그 동안은 자나깨나 그 비밀이 밝혀져서 동생 현석이가 위험해질까봐 두려워했는데, 오히려 모든 진실이 밝혀지고 나니 평생 아무것도 거리낄 게 없어진 셈이다.

 

 

이것만으로도 해피엔딩의 준비는 거의 완벽한데, 정지우 작가는 기어이 마지막 남은 매듭까지 풀어내고 있다. 유일한 악역이었던 이변호사에게 그럴듯한 면죄부와 뉘우칠 기회를 줌으로써, 악인이라고는 단 한 명도 없는 천사들의 드라마를 완성하고 싶은 모양이다. 공현석이 자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신주영(신소율)은 그 동안의 내키지 않았던 생쇼를 모두 집어치우고, 대뜸 할아버지 나상만(이순재) 회장 앞에 나아가 모든 것을 말했다. 공준수는 살인자가 아니며, 그 날의 불명확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공현석이 자수하여 조사를 받는 중이라는 말을 듣고 나회장은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다. 공준수가 살인자가 아니라면 자신의 사람보는 눈도 틀리지 않았음이 증명된 셈이라 기뻤고, 더불어 공준수를 사랑하는 손녀 나도희(강소라)의 앞날에도 큰 문제가 없을 듯하니 마음이 놓였나보다. 노구를 이끌고 친히 공씨 형제를 찾아가 따뜻한 말로 격려해 준 나회장은 회사로 돌아와 이한서를 불러들였다. 공현석을 사랑하는 외손녀 신주영의 약점을 잡아 강제로 결혼하려던 괘씸한 그 놈을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인간 같지도 않은 너에게 인간답게 물러날 수 있는 최후의 기회를 주겠다는 나회장의 통첩은 이한서의 독한 심기를 무너뜨렸다. 사실 그 동안 이한서는 유일한 악역이란 이유로 사방팔방에서 뺨을 맞고 모욕을 당하며 고생 많았으니 이쯤이면 지칠 때도 되었다. 하지만 지쳤다며, 더 이상 싸우고 싶은 의지가 없다며 돌아가고 싶어하는 이한서의 애원을 그의 부친은 차갑게 외면했다. 재벌 회장인 그는 애초부터 BY그룹을 집어삼킬 목적으로 아들을 투입시켰던 것이다. "네가 지금까지 한 게 뭐 있다고 지쳐? 인간은 딱 두 종류밖에 없어.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 이 꼴로 돌아와봤자 너는 지배당하는 자가 될 수밖에 없어. 내 아들이란 걸 증명해 보여 봐!" 마치 '상속자들'에 나오는 최영도(김우빈)의 부친을 보는 듯하다. 자식을 짐승으로 키워내는 짐승같은 아버지... 그런 부친에게서 교육받고 억압당하며 이제껏 살아왔으니 이한서가 그런 인격을 갖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과연 그는 부친을 거역하고 개과천선하여 새로 태어날 수 있을까?

 

 

이렇게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려가고 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어찌 보면 메인 커플인 공준수-나도희의 최대 위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냥 어처구니 없고 답답할 뿐이다. 자기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며 동생을 위해 스스로 누명을 썼을 뿐이라고, 공준수가 미리 나도희에게 말하지 않았던 게 화근이었다. 자기에게 진실을 숨겼다는 이유로 나도희는 배신감을 느꼈고, 분노했고, 더 이상 공준수를 사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폭탄 선언까지 해 버렸다. 우리는 서로 완벽히 사랑하고 완벽히 믿는 줄 알았는데, 너는 곧 나이고 나는 곧 너인 줄만 알았는데, 네가 나를 믿지 못했으니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게 나도희가 밝힌 입장이었다. 얼핏 논리적으로는 말이 되는 듯도 싶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런 답답이가 없다. 세상 어디에 완벽한 믿음과 사랑이 있길래? 설령 나도희를 믿지 못해서 그 사실 하나를 숨겼다 해도, 공준수는 그만하면 99점 짜리다.

 

티끌 한 점이 발견되었다고 대들보를 엎어 버리겠다는 나도희의 투정은 솔직히 어이없고 한심해 보일 지경이다. 동생을 위해 자기 인생을 포기하고 목숨마저 버리려 했던 사람이 공준수다. 그런 공준수를 사랑한 게 자신 아니었나? 동생을 그만큼 사랑하니까, 혹시 만에 하나라도 현석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될까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공준수의 심정을 헤아릴 수 없단 말인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한테는 꼭 말했어야 한다고? 낮말은 새가 듣는다는데, 누가 엿듣기라도 한다면 비밀이 새어나가는 건 순식간이다. 공준수의 입장에서는 나도희에게 진실을 숨기는 미안함보다, 그 진실이 밝혀지면 심각한 충격을 받게 될 동생들을 염려하는 마음이 앞설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 당연한 선택을 이해하지 못하고 정색을 하며 화를 내다니, 나도희는 혹시 공준수의 동생들을 질투라도 하는 것인가? 자기는 언제나 공준수의 최우선 순위라야 하는데 아닌 것 같아서?

 

 

솔직히 내가 공준수라도 나도희에게는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희는 매우 이성적이고 치밀해 보이지만, 가끔씩은 매우 즉흥적이고 무모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타인들의 입장은 전혀 배려하지 않고 오직 공준수를 위한다는 일념하에 그 엄청난 비극을 무려 웹툰으로 제작해 퍼뜨렸던 사람이 바로 나도희 아닌가? 그 경솔한 행동의 결과는 어떠했나? 웹툰이 세상에 퍼지자 공나리는 어린 마음에 충격을 받고 앓아 누웠으며, 외국에 있던 이경태의 아버지는 노발대발하여 한국으로 날아왔다. 다행히 그 노인이 쉽게 마음을 바꾸고 물러서긴 했지만, 끝내 포악을 떨었다면 얼마나 커다란 폭풍이 몰아쳤을지 모를 일이다. 나도희는 그렇게 심각한 사고를 쳤던 전력이 있으면서, 자기에게 모든 비밀을 다 말해주길 바라다니 어불성설 아닌가? 게다가 예전 동대문 시장에서 일할 때는 재벌가의 딸이라는 사실을 나도희도 공준수에게 숨겼었다. 자기는 그래 놓고 왜 공준수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것인가?

 

아무리 다각도에서 생각해 봐도, 지금 나도희가 공준수에게 부리고 있는 투정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토록 생뚱맞은 사태가 발생한 이유는 필시 쓸데없는 연장 때문일 것이다. 반토막 내서 60회 정도로 만들었다면 대단한 명작이 될 수 있었던 소재를 120회까지 끌어오느라 망가뜨린 것도 서글픈데, 설상가상 연장까지 결정되었으니 당최 무슨 내용으로 그 분량을 채워야 한단 말인가? (꽤 잘 나가는 일일드라마니까 광고주들의 연장 요청도 있었을 테고, 거부할 수 없는 윗선의 억압도 있었을 듯하다...) 118회까지 방송된 현재의 진행을 보면, 작가는 정확히 120회 엔딩에 맞추어 집필을 끝낸 상태였음이 짐작된다. 모든 갈등이 해결되었으니 앞으로 남은 2회 동안, 사랑하는 커플들은 결혼에 골인하고 출산을 앞둔 공진주(강별)는 건강한 아이도 낳고 하면서 자연스런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할 일만 남은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13회가 늘어나 버렸으니, 작가로서는 청천벽력이 아니었을까? 결국 우리의 귀한 여주인공, 쿨하고 멋있던 나도희는 순식간에 답답한 철부지로 전락해 버렸다. 정말 한심하고 안타깝지만, 현실이 그러하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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