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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별' 미궁에 빠진 여진구의 정체, 금보라의 확신은 무엇 때문일까?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감자별 2013QR3

'감자별' 미궁에 빠진 여진구의 정체, 금보라의 확신은 무엇 때문일까?

빛무리~ 2013. 11. 8.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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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욱 시트콤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웃음의 미학과 슬픔의 미학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뿜어내는 중독적 카타르시스라 할 것이다. 등장인물 각각의 캐릭터가 아주 극적이면서도 뚜렷하게 표현되어 시청자의 강한 몰입을 이끌어 낸다는 특징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외에 또 한 가지 독특한 점이 있다면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미스테리 요소를 집어넣어 추리물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것인데, 김병욱의 모든 작품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단 미스테리가 삽입되면 극의 전개는 훨씬 생동감 있고 흥미로워진다. 대표적으로는 '하이킥' 시리즈의 첫 작품이었던 '거침없이 하이킥'을 들 수 있겠다. 풍파 고등학교의 히로인 강유미(박민영)와 그 가족들의 미스테리한 정체는 무려 167회에 달하는 긴 시트콤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며 끝없는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냈다. 덕분에 자칫 늘어지기 쉬운 일일 시트콤의 전개가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미스테리 요소들은 호기심을 자극하며 긴장감을 유지시켜 줄 뿐만 아니라, 기이한 슬픔까지 자아내는 효과가 있다. 솔직히 강유미는 예쁜 얼굴을 제외하면 별다른 매력이 없는 캐릭터였다. 전교에서 꼴등할 만큼 공부를 못하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성격마저 안하무인에 이기적이고, 최소한의 기본적 상식도 갖추지 못한 무식함은 번번히 남자친구 민호(김혜성)를 식겁하게 만들곤 했다. 하지만 그 미스테리한 정체의 일부가 살짝 살짝 공개될 때면, 전혀 예상치 못한 강유미의 매혹적인 모습들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나이는 스물 한 살, 미모의 여성 스파이, 유창한 영어 실력, 과감한 운전 솜씨... 

 

그 모든 것이 충격적이었지만 가장 놀라웠던 반전 매력은 단순 골통 강유미에게서 풍겨나오는 비극적 분위기였다. 이중간첩 무리들은 그녀의 부모를 처참히 살해한 후 그녀마저 없애려고 달려든다. 숨막히는 추격전... 다리에 총상을 입고 도주하며 첫사랑 민호와 영영 이별할 때, 그 애틋하고 처연했던 강유미의 모습을 어떻게 형언할 수 있을까?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라는 민호의 나레이션과 맞물려, 그 모습은 내 머릿속에 '거침킥' 최고의 슬픈 장면 중 하나로 각인되어 있다.

 

 

'감자별'에서는 그만큼 거대하지는 않지만 홍혜성(여진구)의 정체가 미스테리 요소로 첨가되어 흥미를 더한다. 지금까지는 노수동(노주현)과 왕유정(금보라)의 잃어버린 막내아들 노준혁이 당연히 홍혜성일 거라고 여겼기 때문에 딱히 미스테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한참 늦게 밝혀질 줄 알았던 홍혜성의 정체가 초반부터 수면 위로 떠오르며 모든 예상이 뒤엉켜 버렸다. 유전자 검사 결과는 친자가 맞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아들의 생환을 눈물로 반겨야 할 엄마 왕유정의 차가운 태도는 심각한 의문으로 남았다.

 

홍혜성과의 전화를 끊고는 충격받은 듯 멍하니 수화기를 든 채 허공을 응시하는 오이사(김광규)의 표정을 보았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홍혜성이 노씨 집안 막내아들임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한밤중까지 잠 못 이루며 고민에 빠졌던 왕유정이 드디어 결론을 내리고 "그 애는 준혁이가 아니야. 뭔가 잘못된 것 같아. 누가 장난을 쳤든지... 아무리 봐도 그 애는 우리 준혁이가 아니야!" 하고 선언하는 순간, 나의 확신은 무너졌다.

 

 

홍혜성이 갑자기 인사도 없이 사라진 까닭은 오이사의 농간 때문이었다. 그 동안 배우 김광규는 코믹하면서 선량하고 귀여운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 '감자별' 속 오이사의 캐릭터는 코믹하면서 악랄하고 비열하다. 그의 오버스런 말투와 허술한 몸짓들을 보면 저절로 웃음이 터지는데, 그렇게 코믹한 사람이 속으로는 더없이 악독한 심보를 품고 있는 셈이라, 더욱 섬뜩하고 무섭게 느껴진다. 오이사는 수십년 동안이나 노수동을 보좌하며 장난감 회사 (주)콩콩을 이끌어 왔던 중역이지만, 현재는 노씨 집안을 무너뜨리고 회사를 통째로 차지하려는 야심을 불태우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중이다. 짐작컨대 노민혁(고경표)의 추락사고는 우연이 아니라, 오이사와 그 일당이 치밀한 계획하에 저지른 일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잖아도 경계대상 1순위인 노민혁이 설상가상 자신들의 비밀이 담겨있는 USB를 가져갔으니 똥줄이 타듯 다급해졌을 것은 뻔한 일이다.

 

하지만 계획은 틀어졌다. 노민혁이 죽지 않고 살아난 데다가, USB는 아무리 찾아도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머리를 다친 노민혁은 기억상실증에 걸려 7살 어린아이가 되었지만, 혹시라도 다른 누군가 USB를 발견하여 비밀이 새어나간다면 오이사의 원대한 야심은 그대로 뿌리 뽑히게 될 위기였다. 회사에서 USB를 찾아내지 못하자 노민혁이 집안에 숨겼을 거라 생각한 오이사는 가정부 소유진을 매수해서 찾으려고 해 보았지만, 불행히도 소유진은 첫날부터 노송(이순재)의 비위를 건드리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다. 철거촌에서 쫓겨난 나진아(하연수)가 엄마 길선자(오영실)와 함께 노씨 집안의 차고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나진아를 이용하려 해 보았지만 역시 실패였다. 그런데 이렇게 자잘한 실패들이 거듭되는 동안 오이사는 회심의 한 방을 준비하고 있었으니, 바로 홍혜성의 존재였다. 실종된 노준혁과 같은 나이의 천애고아로서 그 신분을 증명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홍혜성.

 

노준혁 실종 당시의 모든 정황을 홍혜성의 그것과 짜맞추며, 오이사는 단 며칠이나마 그를 노씨 집안에 침투시킬 계획을 세운다. 유전자 검사는 당연히 불일치겠지만, 결과가 나올 때까지 그 집에 머물며 USB를 찾아내게 하려는 것이었다. 홍혜성에게는 노씨 집안 사람들이 지독한 사기꾼이며, 자기의 소중한 USB를 훔쳐갔기 때문에 되찾으려 하는 것뿐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좋은 일도 하고 돈도 벌게 해준다는 말에 홍혜성은 별 의심 없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어리둥절한 채로 노씨 집안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모든 게 달라졌다. 노수동과 노송은 홍혜성을 보는 순간부터 유전자 검사든 뭐든 상관없이 준혁이가 맞다며 덥석 끌어안았다. 갈 곳이 없다는 핑계로 며칠간 거실에 묵도록 허락받은 홍혜성은 깊은 밤 홀로 집 안을 기웃거려 보았지만, 애상에 잠긴 듯한 그의 눈빛은 USB를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낀 듯했다. 혹시 어린 시절의 기억이 어렴풋이나마 떠오른 걸까? 하지만 아직까지는 누구도 그 실체를 알지 못한다.

 

 

USB를 찾지 못한 채 사흘의 시간이 흘렀다. 민망한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제 발로 나갈 것을 결심한 홍혜성은 이른 아침에 몰래 짐을 싸서 현관을 나서는데, 대문 앞에 섰을 때 환희로 가득찬 노수동의 외침이 들려왔다. "준혁아~ 준혁아~!" 놀랍게도 유전자 검사 결과가 일치로 드러난 것이었다. 아빠 노수동과 할아버지 노송은 기뻐서 펄펄 뛰며 어쩔 줄을 모르고, 작은 누나 노수영(서예지)은 쿨하게 포옹하며 보고 싶었다는 인사를 전한다. 홍혜성의 두 눈이 충격으로 휘둥그래졌다. 이럴 리가 없는데, 나는 가짜인데!!! 너무 놀란 나머지, 엄마 왕유정의 냉랭하고 떨떠름한 표정에는 주목할 여유도 없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황급히 오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오이사의 태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되긴, 할 수 없어서 내가 손을 좀 썼지. 넌 USB나 빨리 찾아!" 아, 그럼 그렇지... 의문은 풀렸는데 오히려 가슴 한 구석은 찌릿하게 아파 온다. "손을 쓰다뇨, 이건 범죄잖아요!" 바로 좀전에 자기를 반갑게 끌어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아빠와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그 사람들을 속여야 한다니 저절로 죄책감이 든다. 노씨 집안 식구들을 헐뜯는 오이사의 말도 듣기 싫어졌다. 아무리 봐도 그렇게 나쁜 사람들은 아닌 것 같다. 아들이 아닌데 아들인 척, 손자가 아닌데 손자인 척하면서 계속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걸까? 모든 게 혼란스럽다. 당장 사실을 밝히고 집을 나가자니, 잃어버린 자식을 찾았다면서 기뻐하던 그들의 마음에 너무 큰 상처를 줄 것만 같다. 오이사의 말대로 그냥 눌러앉자니 꺼림칙함과 죄책감에 숨을 쉴 수가 없을 것 같다. 진퇴양난이다.

 

얼마 전 사고를 당해서 많이 아프다는 형 노민혁의 병실을 찾았다. 일곱 살 민혁은 두살배기 아가였던 준혁을 무척이나 귀여워하며 잘 데리고 놀았다는데, 혼자 그 시절로 돌아가 있는 노민혁은 며칠 전부터 계속 동생을 찾으며 "왜 준혁이는 안 와요?" 라고 보채던 참이었다. 이제 그들의 나이는 스물 아홉, 스물 넷... 하지만 "이 애가 네 동생 준혁이란다!" 하는 아빠의 말을 듣자마자 일곱 살 형아는 벌떡 일어나 건장한 동생의 목을 꼭 끌어안으며 외쳤다. "왜 이제 와...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어린아이의 감정은 어른들의 그것보다 훨씬 순도가 높고 강렬하다. 그래서일까? 민혁의 포옹을 받는 순간, 그 마음의 순수한 기쁨과 반가움이 저절로 홍혜성의 가슴에 전달된 것일까? 이제껏 한 번도 울지 않았던 홍혜성의 두 눈에 그렁하게 눈물이 맺혔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모르겠다... 뭐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건지...!" 

 

 

여진구의 눈에 맺힌 눈물을 보는데, 나의 눈시울이 저절로 뜨거워졌다. 여진구의 연기에 몰입하다 보면 무슨 마법에 걸린 듯, 저절로 혼이 빠져나가는 것만 같다. 그 먹먹한 심경을 추스르지도 못했는데, 왕유정의 앙칼지고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애는 준혁이가 아니야!" 가슴이 철렁한다. 왕유정은 큰 딸 노보영(최송현)과 통화중이었다. 유전자 검사 결과도 맞게 나왔는데 왜 그러느냐고 보영이 묻자 유정은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아. 누가 장난을 쳤든지... 아무리 봐도 그 애는 우리 준혁이가 아니야!" 가족들 모두 기뻐하는데 유독 덤덤하던 왕유정의 태도가 좀 이상하긴 했지만, 노수동의 말대로 아들을 잃은 후 찾아 헤매는 과정 중에 너무 많이 속고 상처를 받아서 그러려니 했었다. 하지만 그런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었다.

 

왕유정은 사실상 (주)콩콩의 기반을 잡고 일으켜 세운 장본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대단한 여장부다. 비록 올바른 방법은 아니었지만, 시류를 읽고 사태를 파악하는 영민함과 그에 대처하는 능력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무능하고 우유부단한 노수동을 대기업 사장으로 끌어올린 것은 바로 아내 왕유정의 영리한 두뇌와 재빠른 판단력, 그리고 과감한 결단력이었다. 비록 나이가 들었지만 아직도 왕유정의 예리한 두뇌와 판단력은 무뎌지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이종석의 초능력은 갖추지 못했어도, 시아버지 노송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도는 단박에 알아차릴 만큼 눈치가 번뜩이는 그녀였다. 그런데 이런 왕유정이 홍혜성을 보고 자기 아들이 아니라 한다. 유전자 검사 결과까지 나왔는데도 믿을 수 없다고 한다. 무엇 때문일까?

 

 

물론 홍혜성이 노준혁일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홍혜성으로부터 유전자 검사 결과를 듣고 나서, 전화를 끊은 후 오이사가 지었던 당혹스런 표정은 오히려 긍정적인 복선으로 작용한다. 현재로서는 모든 화살표가 "그렇다" 쪽을 가리키고 있는데, 오직 왕유정의 화살표만 "아니다" 쪽으로 돌아서 있다. 하지만 왕유정의 확신을 결코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는 없다. 그녀의 눈치와 영민함 때문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왕유정이 열 달 동안 노준혁을 뱃속에 담고 있다가 피를 쏟아 낳았으며, 품에 끌어안고 젖을 먹여 길러낸 엄마라는 사실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의 직감을 무시할 수 있을까? 더욱이 그토록 촉이 예민한 여자인데, 의심 정도가 아니라 확신할 정도라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이로써 쉽게 풀리는 줄 알았던 홍혜성의 정체는 다시금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물론 궁금하기도 하지만, 내게는 호기심보다 더 중요한 소망이 있다. 준혁이든 아니든, 혜성이가 무조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 애절한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을 깨끗한 손수건으로 닦아주고 싶던 마음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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