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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별' 이순재, 노년의 사랑을 통해 본 인생의 비극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감자별 2013QR3

'감자별' 이순재, 노년의 사랑을 통해 본 인생의 비극

빛무리~ 2013. 10. 1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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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정 같은 곳에서 홀로 되신 남녀 노인분들이 만나 교제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젊은 사람들은 흔히들 가볍게 생각한다. 답답한 일상을 달래주는 하나의 취미 생활처럼, 그저 무료한 대낮에 만나서 쌍화차를 마시며 손주들 이야기나 주고받는 그런 관계일 거라고 여긴다는 말이다. 청운의 꿈을 간직하거나 미래를 설계할 시기도 아니고 체력도 약해져 버린 나이에 연애를 시작한다 해서, 어찌 젊은 날처럼 뜨겁고 열정적인 사랑을 나눌 수 있겠는가 하는 선입견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고 한다. 늦은 나이일수록 일단 사랑을 시작하게 되면 '이것이 내 삶의 마지막 사랑'이라는 생각 때문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든다는 것이다. 가족과 전재산을 버릴 만큼 올인할 수도 있으며, 간혹 삼각관계가 형성되면 거친 몸싸움이나 칼부림조차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는 노인들의 과감한 성애(性愛)를 다룬 영화로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남녀 주인공은 각기 배우자와 사별하고 외롭게 살다가 70을 넘긴 나이에 서로 만나 사랑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배우가 아니라 실제 사연의 주인공들이 출연했다. 그런데 영화의 해석은 사람마다 달랐다. 젊은 사람들은 노년의 인생도 얼마든지 자신들처럼 열정적일 수 있음을 배우며 공연히 터부시해 왔던 노인들의 사랑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반면, 오히려 노인분들은 부정적 반응을 보이시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보기엔 그랬다)

 

 

어떤 할아버지는 "두 사람이 만나고 서로 좋아서 함께 새 인생을 시작했으면 그 다음엔 함께 '살아가는' 내용이 나와야 하는데, 온통 '그런' 이야기들 밖에 없으니 이게 무슨 영화냐"고 혹평도 하셨다. 그러고 보니 맞는 말씀이다. 젊은 감독의 입장에서는 그저 노인들의 성(性)을 터부시하는 사회 인식에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혁신적인 시도라고 볼 수 있었지만, 정작 노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성(性)은 사랑의 일부분이었을 뿐이다. 혈기방장한 젊은이들에게도 결코 성이 사랑의 전부는 아닌데, 노인들에게는 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그보다 더 근본적이고 소중한 무언가가 있기에, 인간은 숨을 거두는 날까지 사랑을 갈구하는 것 아니겠는가?

 

얼마 전 인터넷 신문 기사를 통해 '맥도날드 할머니'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젊은 날엔 지성과 미모를 자랑하며 외교통상부에서 근무했으나 말년엔 노숙자가 되고 말았던 사람이다. "태초에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존재이다. 이제는 자신의 본체인 '그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전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평생 미혼으로 살았다는 그녀의 가슴 속에 사랑을 향한 염원이 가득했음을 알 수 있다. 할머니의 딱한 사정을 듣고는 여고 동창생들과 방송국까지 나서서 도움을 주겠다고 했지만, 할머니는 꿋꿋이 홀로 고행을 계속하며 '그 사람'을 기다리겠노라 고집했다고 한다. 쇠잔해가는 육체로 노숙의 고통을 견디면서까지 자신의 반쪽을 찾고 싶어했던 맥도날드 할머니를 떠올리니, 과연 사랑에 대한 욕망은 청춘의 전유물이 아님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감자별' 리뷰를 쓴다면서 서론이 길었던 이유는, 실제 나이보다도 10년이나 올려서 아흔 노인으로 출연하는 노송(이순재)의 불꽃같은 사랑이 가슴 아프게 느껴진 까닭이다. 물론 30세 연하의 미숙(박정수)을 붙잡으려던 것은 과욕이긴 했다. 1952년생이면 이제 겨우 62세의 한창 나이인데, 구순 노인의 곁에서 남은 평생을 보내고 싶어할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아직은 할머니보다 아줌마라는 호칭이 더 어울리는 동안 미모의 그녀임에랴! 노인들의 '소개팅'이라는 아이템은 그 자체만으로도 신선했지만, 이렇게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웠다. 꽃다운 스무 살 여대생이 소개팅에 나갔다가 쉰 살 아저씨를 만나게 된 셈이다. 40년 전에는 결코 일어날 수 없었던 일이, 노년의 삶에서는 일어난다. 노송은 상대가 그토록 젊을 줄 상상도 못 했고, 미숙은 상대가 그렇게까지 연상일 줄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몇 마디 대화 속에서 나이는 속절없이 드러나고 만다. "우리 고등학교 때는 일제 강점기라, 시대는 불운했어도 가슴은 참 뜨겁지 않았습니까? 손기정 선수요, 감동적이었잖아요! 우리 담임 선생이 나까무라라고 그게 아주 악질이었는데, 손기정 선수가 일본 사람이라고 어찌나 우겨대는지!" 노송이 말하자 미숙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아니, 선생님 고등학생 때가 일제시대였어요?" 잠시 어리둥절하던 노송은 미소지으며 되물었다. "아, 미숙씨는 광복 이후에 학교를 다니셨나봐요?" 그러자 미숙이 말했다. "아니요. 전 그 때 태어나지도 않았는데요?" 알고 보니 그녀는 노송의 큰아들 노주현보다도 어린 1952년생이었다. 하지만 나이차를 알고 나서도 그녀에게 끌리는 노송의 마음은 멈출 수가 없었다.

 

 

미숙은 한동안 노송과의 데이트(?)를 허락했지만 그 속마음은 완연히 달라 보였다. 노송의 귀에서 떨어진 보청기를 보고 그녀는 "청각이 많이 나빠지기 전부터 사용하시는 게 좋대요. 저희 아버지도 쓰시거든요!" 라고 말했다. 신개념 문자메시지 '까톡'을 사용할 수 없는 노송의 구형 휴대폰을 보고도 놀라지 않으며 "하긴 어르신들은 이게 편하죠. 걸고 받는 것만 하시니까요!"라고 말했다. 짐작컨대 미숙은 살아계신 친정 아버지와 비슷한 연배의 노송에게서 일종의 부성애(?)와 연민을 느꼈던 모양이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너무 매정하게 빨리 끊어내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싶었을 수도 있다. 그저 아버지 대하듯이 가볍게 차나 마시고 산책이나 하면서 좋은 관계 유지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송의 정열적인 사랑은 그녀의 마음과 상관없이 불타올랐다. 그는 미숙이 애용하는 '까톡' 메시지를 함께 나누고 싶어 일부러 스마트폰을 구입하고, 손녀 수영(서예지)의 도움을 받아 '까톡' 삼매경에 빠져든다. 20대의 발랄한 노수영은 할아버지의 연애 카운셀러를 해주며 떨어지는 떡고물 받아 먹기에 여념이 없다. 굳이 비싼 명품백을 선물하라고 부추긴 이유도 할아버지와 함께 백화점엘 가면 덩달아 자기 몫도 떨어질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손녀의 조언에 따라 선물한 명품백은 이별을 부추기는 신호탄이 되고 말았다. 부담을 느낀 미숙은 그 다음 번 만남에서 선물을 고스란히 되돌려 주고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이별을 고했던 것이다. 노송은 당혹스러웠지만, 그저 "죄송합니다"만 반복하는 그녀를 탓할 수도 없었다. "오케이, 괜찮습니다.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나게 되겠죠!"

 

 

이별의 후유증은 엄청났다. 혼자 막걸리에 취해 거리를 헤매던 노송은 집에 돌아와 그녀에게 '까톡'을 보낸다. "미숙씨와의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만남을 또 기대해 봅니다..." 하지만 그녀는 답장이 없다. 며칠이나 홀로 지저귀는 앵무새처럼 '까톡'을 날리던 노송은 결국 수영으로부터 미숙이 자기에게서 오는 메시지를 차단한 것 같다는 말을 듣게 된다. 차단이 뭐냐고 묻자 수영이 대답한다. "백날 문을 두드려 봤자 집에 사람이 없는 거지, 아예!" 노송은 다시 절망하여 막걸리 한 병을 들고 거리를 헤맨다. 때로는 절규하다가 입 안의 막걸리를 뿜어내기도 한다. 시트콤다운 장면이다. 실제 상황을 떠올려 본다면 더없이 추레한 몰골이었지만, 그 사연을 알고 있는지라 혐오감보다는 측은지심이 먼저 들었다.

 

김병욱은 이렇게 또 한 번 서슬 퍼런 시선으로 인생을 조명한다. 인간은 평생토록 사랑을 갈구하지만, 정작 따뜻한 사랑 속에서 죽어가는 인생은 몇이나 될까? 자기 삶을 돌이켜 볼 때, 가득한 사랑의 행복 속에서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은 또 몇이나 될까? 사랑은 일생동안 충족되지 않는 목마름이다. 그 목마름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심해지는데, 어느 시대에도 청춘은 늙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노인은 더욱 쓸쓸하고 외로워진다. 하지만 어찌 영원한 젊음이 있으랴? 지금의 청춘도 언젠가는 늙을 것이니, 어쩌면 외로움이야말로 인생의 동반자이며 평생 친구가 아닐까?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요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 이번 에피소드는 인생을 가장 근접하여 들여다 본 비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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