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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별' 여진구-하연수, 초고속 러브라인에 혼이 빠진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감자별 2013QR3

'감자별' 여진구-하연수, 초고속 러브라인에 혼이 빠진다

빛무리~ 2013. 9. 2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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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별' 2회까지 시청한 느낌이 매우 좋다. 개인적으로는 '하이킥' 시리즈나 그 이전의 명작들보다 출발이 훨씬 좋은 듯하다. 각각의 캐릭터 구축이 확실함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내가 김병욱표 시트콤에서 유난히 즐기는 그 뭐랄까, 아련하고 애틋한 느낌이 초반부터 여실히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경우 스텐레스 김은 청춘남녀의 러브라인을 복잡하고 아리송하게 꼬아서 중반을 넘기도록 예측 불가하게 만들곤 하는데, 이번에는 어찌 된 셈인지 단 2회만에 두 남녀의 러브라인이 아주 또렷한 선을 그리며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물론 이대로 확정이라고 볼 수야 없겠지만, 어쨌든 김병욱의 다른 작품에서는 거의 본 적 없는 독특한 전개인 것만은 확실하다. 아, 그런데 미처 감정이 무르익을 새도 없이 초고속으로 진행되는 러브라인이 어쩌면 이토록 달달할 수 있단 말인가? 충분한 시간을 두고 뜸을 들여도 극 중 인물에게 시청자의 감정을 몰입시키기는 쉽지 않은 일인데, 스뎅김은 정말 대단하다.

 

여주인공 나진아(하연수)는 극도의 빈곤과 취업난에 시달리면서도 늘상 밝은 웃음을 잃지 않는 초긍정의 에너지가 얼핏 '하이킥3'의 백진희를 연상시킨다. 나진아의 어둠 트라우마는 또한 백진희의 몽유병과 연결된다. 게다가 공포에 질려 허둥지둥하면서도 괴력을 발휘해 연쇄살인범을 제압하는 모습은 어딘가 '지붕킥' 황정음의 오버액션을 떠올리게도 한다. 이제껏 신세경과 김지원의 차분한 캐릭터로 묘사되던 김병욱의 뮤즈와는 상당한 차이점을 보인다. 나진아는 오히려 여주인공과 상반된 매력으로 쌍벽을 이루던 서브 여주를 많이 닮았다. 그래서 혹시 진짜 여주는 유학 중인 것으로 설정되어 아직 등장하지 않은 노수동(노주현)의 막내딸 노수영(서예지)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아닌 듯 싶다. 아무리 봐도 '감자별'의 히로인은 나진아가 분명한데, 혹시 김병욱은 번번이 사랑을 빼앗겼던 서브 여주들의 설움을 이번 기회에 풀어 주려는 걸까?

 

 

여주인공에게만 허락되는 아련함과 애틋함 역시 나진아에게 집중되고 있다. 서브 여주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가질 수 없었던 그것... 좌절의 순간도 코믹으로 덮어지고, 어린 시절의 슬픈 기억도 단순한 대사로 처리되는 것이 서브 여주의 운명이었다. 하지만 나진아가 고된 일상을 마치고 찌그러진 햄버거로 혼자 저녁을 먹을 때면 그녀의 전신에서 외로움이 묻어났고, 어둠 속에 있을 때마다 클로즈업되는 눈물 그렁한 눈동자는 형언할 수 없는 애틋함을 불러 일으켰다. 아빠와 함께 했던 어린 시절의 행복한 추억과 어둠 트라우마의 원인이 되었던 고통스런 기억들은 아역 배우와 강남길의 특별 출연까지 동원하여 실감나는 회상 장면으로 처리되었다. 아련함의 극치다. 김병욱이 이렇게 공을 들이는 것만 봐도 나진아는 '감자별'의 히로인이 확실하다.

 

남주인공 캐릭터도 전작들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하이킥' 시리즈에서 여주를 사랑하는 두 남자는 언제나 삼촌과 조카 사이였고, 승리자는 언제나 삼촌 쪽이었다. 최민용처럼 까칠하고 엉뚱하거나, 이지훈(최다니엘)처럼 시크하고 무심하거나, 윤계상처럼 다정하고 섬세하거나, 모두 개성은 달랐지만 이제껏 스뎅김의 남주들은 모두 멀끔한 신사였으며 외면적 조건으로는 결핍된 부분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감자별'의 홍혜성(여진구)는 온통 결핍 투성이다. 아니, 결핍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현재 홍혜성은 완전한 무소유의 상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다. 가족도 친구도 집도 절도 돈도 밥도... 그래서 가뜩이나 궁핍한 나진아 모녀에게 신세를 지며 밥을 얻어먹고 구차하게 화장실을 빌려 똥을 싸야 할 지경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녀석은 찌질하거나 궁상맞아 보이질 않는다.

 

내가 노민혁(고경표)이 아니라 홍혜성을 남주인공으로 확신하는 이유는 즉각적인 느낌 때문이지만, 굳이 설명하자면 그 묘한 당당함의 매력 때문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노민혁의 자신감보다야, 아무 것도 갖지 못한 홍혜성의 자신감이 더욱 빛나지 않겠는가? 물론 쥐뿔도 없는 주제에 큰소리만 탕탕 치고, 아무 죄의식 없이 주변에 지속적으로 민폐를 끼치는 캐릭터라면 그야말로 질색이다. 하지만 홍혜성은 왠지 신뢰감이 간다. 그가 개발 중인 스마트폰 앱은 머지 않아 대박을 칠 것만 같고, 근거 없어 보이는 자신감인데도 왠지 확고한 결실을 맺을 것만 같다. 그냥 느낌이 그렇다. 하지만 결코 사랑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전작들에서는 남주인공의 연적이 모두 고등학생 신분의 조카였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나진아와 홍혜성은 강렬한 첫 만남 이후 고작 며칠만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서로 끌리며 연인 모드로 접어들었다. 혜성은 자신이 개발한 '운세보기' 앱이 오차 범위 0.3% 이내의 적중률을 자랑한다고 허풍을 떨었는데, 나진아가 (주)콩콩의 입사 시험을 두고 테스트해 본 결과는 모두 틀리게 나타났다. 하지만 동갑내기 남녀는 그렇게 아침 저녁으로 티격태격하며 급속도로 정이 들었고, 사실 운세의 결과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혜성은 진아 엄마 선자(오영실)의 부탁을 받고 마지 못해 퇴근길의 진아를 마중 나오지만, 정작 가로등 꺼진 어두운 길에서 연쇄살인범의 그림자를 발견하고는 당장 그녀의 안위가 걱정되어 흥분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작 그 살인마는 진아에게 실컷 얻어터지고 도망가는 중이었지만... (극명한 현실 속에 이토록 황당스런 판타지가 아무렇지 않게 첨가된 스뎅김 특유의 세상이 참으로 정겹다..^^) 

 

상남자다운 터프함으로 겁에 질린 진아를 토닥이던 혜성은 다리가 후들거려서 잘 걷지 못하는 그녀에게 등을 내밀고, 잠깐 사양하던 진아도 결국 서슴없이 그의 등에 몸을 맡긴다. 업힌 채 다시 운세보기 앱을 가동하여 면접 결과를 살펴보는데 역시 응답은 '탈락'이다. 혜성은 그게 적중률이 엄청 높은 거라며 다시 약올리는데, 진아는 "알았다구!" 하면서 혜성의 뒷덜미에 얼굴을 파묻는다. 역시 운세의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기댈 곳 없는 청춘들이 그 작은 프로그램에 의지하여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품어 보려던 것이지만, 이제 두 사람에겐 서로의 체온이 있기 때문이다.

 

오래 소망하던 (주)콩콩의 합격 통지서를 받은 나진아는 뛸듯이 기뻐하지만, 장장 6개월이나 무급 인턴 생활을 거쳐야 한다는 현실에 고민한다. 당장 월급이 끊기면 철부지 엄마와 함께 하루 하루 먹고 살아갈 생활비가 없다. 설상가상 5년 동안 근무해 온 햄버거 체인점에서는 때맞춰 그녀를 부점장으로 승진시켜 주었다. 부점장이 되면 급여도 오를테니 한결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일상은 평온해도 깨어져야 제맛이고, 꿈은 불안해도 저질러야 제맛 아니겠는가! 나진아는 아쉬움과 두려움에 눈가가 촉촉해지면서도 끝내 정든 햄버거집을 박차고 나왔다. 내일부터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대책도 없으면서, 무모한 꿈을 향해 몸을 날린다. 그런 진아의 곁에서, 그녀보다 더 무모한 혜성이 그녀를 응원한다.

 

 

어느 덧 진아의 귀가길이 염려되기 시작한 혜성은 퇴근 시간에 맞추어 그녀의 직장으로 찾아와 햄버거를 시킨다. 구구절절한 설명은 필요 없다. 그녀도 왜냐고 묻지 않고, 그도 왜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당연한 것처럼 "끝나고 집에 같이 가자!" 하면 "그래!"하고 대답할 뿐이다. 밥 한 숟갈, 숨결 한 모금이 버거운 이 청춘들에게 피곤한 밀당 따위는 할 여유도 없다. 그냥 곁에 있으면 기대고, 손을 내밀면 붙잡고, 그렇게 의지하며 또 하루를 버텨낼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감정이 무르익을 새도 없이 너무 빨리 진행된 러브라인임에도 전혀 무리하거나 부자연스런 느낌이 없는 것은, 두 사람이 너무 닮았기 때문일까?

 

어떻게든 6개월만 버티면 (주)콩콩의 정직원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한 조각 희망으로 진아는 다시 운세 앱을 가동시켜 보건만, 결과는 또 탈락이다. 이번에는 혜성이 더 안타까워하며 그녀의 손을 잡아 다시 지문을 찍어 보는데, 어느 새 그녀는 꾸벅꾸벅 졸고 있다. 제 어깨 위에 놓인 진아의 머리 무게를 고스란히 느끼며 혜성은 또 다시, 또 다시 그녀의 운세를 점쳐 본다. '합격'이라는 응답이 나오면 그녀보다 더 기뻐하면서, 그렇게 고단한 하루가 또 저물어 간다. 편안하면서도 설레고, 아프면서도 기쁘다. 이런 초고속 러브라인에 이토록 급격히 몰입하며 혼이 빠져 보기는 또 생전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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