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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가 들려' 가슴 찢어지는 새드엔딩의 전주곡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너의 목소리가 들려

'너의 목소리가 들려' 가슴 찢어지는 새드엔딩의 전주곡

빛무리~ 2013. 7. 26.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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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저는 해피엔딩보다 새드엔딩을 선호하는 편이었습니다. 가슴 아릿하게 오랫동안 지속되는 새드엔딩의 여운이 저는 무척이나 좋더라고요. 정통 멜로라든가 진지한 분위기의 드라마는 말할 것도 없고, 시트콤에서마저 새드엔딩을 즐기는 저의 취향은 다른 사람들과 무척 달라서 외롭기도 했습니다. 시트콤의 거장이라 불리는 김병욱 PD의 작품이 방송될 때는 선풍적 인기를 끌다가 종영 이후에는 매번 욕을 먹는 이유도 바로 새드엔딩 때문이었죠. 다수 시청자들의 생각에 시트콤은 가볍게 웃으며 즐기자고 보는 것인데, 실컷 달달한 분위기를 조성해 놓고서는 갑작스레 슬프고 허망한 엔딩을 선보이니, 무방비 상태에서 뒤통수를 맞은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거센 비난을 쏟아붓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어요. 하지만 사상 최악의 엔딩으로 손꼽히는 '지붕뚫고 하이킥'의 엔딩에도 저는 만족했습니다. 그 작품의 치명적 문제는 엔딩이 아니라 중반의 전개였다고 저는 아직도 꿋꿋이 주장하고 있다죠.

 

그런데 제가 생전 처음으로 간절히 해피엔딩을 바라는 작품이 탄생했으니, 현재 인기리에 방영 중인 '너의 목소리가 들려' 입니다. 이렇게 황당할 만큼 드라마 속 인물들에게 빠져버린 자신이 너무나 신기한데, 어쨌든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아쉬움을 접을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네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너목들'은 종영을 2회 앞둔 시점에서 어두운 새드엔딩의 기운을 스멀스멀 내뿜고 있습니다. 장혜성(이보영)과 박수하(이종석)는 꼭 행복해져야만 하는데, 둘 중 한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살아남은 한 사람의 슬픔이 제게로 전달되어 가슴이 찢어지는군요. 음침한 표정으로 밧줄과 몽키스패너 등의 도구를 준비하는 민준국(정웅인)의 모습이 화면에 비칠 때는 분노가 치밀어 손이 떨릴 지경이었어요.

 

 

당최 무슨 원한이 그토록 맺혔다고 혜성이 엄마와 수하 아빠를 죽인 것으로도 모자라, 죄 없는 어린 친구들에게 끝내 포악한 살의를 불태우는 민준국은 온전한 악마였습니다. 민준국이 가족 모두를 잃어야 했던 처참한 과거가 비로소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지만, 그 쪽에는 전혀 관심이 끌리지 않았어요. 아마도 민준국의 아내는 우성식 교수에게 심장 수술을 받다가 의료사고로 죽었던 모양이죠. 그리고 수하 아빠인 박주혁 기자는 우성식 교수 편에 서서 거짓 기사를 썼던가 봅니다. 민준국은 아내를 살려내라며 병원에서 온갖 난동을 부리다가 구속되었고, 설상가상 치매를 앓던 그의 어머니와 어린 아들은 돌봐줄 사람이 없게 되자 거리를 헤매다가 굶어 죽었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아무도 민준국의 말은 들어주질 않았으니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했을까, 그 심정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민준국은 이미 오래 전에 우성식과 박주혁을 살해함으로써 원수를 갚았지요. 물론 그것도 안 되는 일이지만, 어쨌든 복수는 거기서 멈췄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분노의 화살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는 순간, 민준국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버리고 말았네요. 단지 사건 현장을 목격하고 증언했다는 이유만으로 18세 여고생 장혜성에게 악랄한 원한을 품고 10년 동안이나 복수를 별러 오다니... 어린 아이의 눈 앞에서 아버지를 때려 죽여 놓고, 나중엔 그 아이를 살인자로 만들기 위해 자기 왼손을 스스로 절단하다니... 그 소름끼치도록 독한 마음은 도저히 인간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악마가 되기 전의 민준국은 '우리가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사회적 약자'를 상징했지만, 악마가 된 후의 민준국은 '우리가 굳건히 맞서 싸워야 할 세상의 절대악'을 상징하는 존재로 변해 버렸군요.

 

 

한편 '귀신 살인사건'의 주인공 황달중(김병옥)은 사실상 무죄 판결을 받게 되었습니다. 변호사 장혜성은 열 명의 배심원으로부터 만장일치의 무죄 주장을 이끌어냈고, 검사 서도연(이다희)은 징계를 각오하면서까지 공소 취소를 결정했거든요. 친아버지의 존재를 애써 부정하던 서도연은 이 고통스런 경험을 통해 훌쩍 성장했습니다. 11년 전 폭죽 사건의 잘못을 인정하고 장혜성에게 사과까지 할 정도로 말이죠. 서도연에게 모든 이야기를 듣게 된 양어머니는 남편 서대석(정동환)의 비열함에 실망하여 딸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 버렸네요. 서대석은 아직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지만, 텅 빈 집에 홀로 남은 그의 외로운 처지는 결국 벌을 받은 셈이 되었습니다. 서도연은 생부 황달중의 병실을 찾아가 크레파스로 초상화를 그려주고 함께 셀카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군요. 그들 부녀에게는 지금의 하루 하루가 얼마나 천금같이 소중할까요? 하마터면 감옥에서 보낼 뻔했던 그 시간들을 딸과 함께할 수 있었으니, 이제 황달중의 최후는 분명 행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신상덕(윤주상) 변호사는 얼마 안 남은 황달중의 삶을 생각하며 울적한 마음을 쉽게 달래지 못합니다. 26년 전에 자기보다 더 훌륭한 변호사를 만났더라면 그 가여운 인생도 구원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자책이 늙은 변호사의 선량한 마음을 끝없이 괴롭히고 있었죠. 그런 신상덕을 위로하기 위해, 차관우(윤상현)는 숨겨두었던 과거의 작은 진실 하나를 털어놓게 됩니다. 7년 전, 신상덕의 차에 똥을 뿌리고 달아났던 사람이 바로 자기였다는 황당한 진실을 말이죠. 우울해하던 신상덕은 너무 기막힌 고백에 놀라 벌떡 일어서고 마는데...

 

 

당시 아직 경찰 신분이었던 차관우는 열흘간의 힘겨운 잠복 끝에 불량배 '빨간 양말'을 강간 살인 혐의로 체포합니다. '빨간 양말'은 범죄 사실을 완강히 부인했지만 현장엔 수많은 증거들이 남아 있었죠. 그 중에도 '빨간 양말'의 정액과 피해 여성의 혈흔이 함께 묻어 있는 휴지 한 장은 결정적인 증거였습니다. '빨간 양말'의 유죄를 확신한 차관우는 잠을 재우지 않는 강압적 심문으로 결국 자백을 받아냈고, 피해자의 어머니로부터 눈물의 감사 인사까지 받았죠. 그런데 막상 재판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합리적 의심과 증거 불충분을 내세우며 '빨간 양말'을 열정적으로 변호한 국선전담 변호사 신상덕의 활약에 힘입어 무죄 판결이 나고 말았던 거예요. 얼마나 고생해서 잡은 범인인데 그걸 꼴랑 말 몇 마디로 놓아 주다니, 차관우는 분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신상덕의 차에 똥을 뿌렸더랍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반년 후에 해당 사건의 진범이 잡혔습니다. '빨간 양말'은 무죄가 맞았던 거죠. 피해자의 유류품과 흉기가 증거로 나왔고, 진범은 범죄 사실 일체를 자백했습니다. 이전의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증거품이었던 휴지는, 알고 보니 '빨간 양말'이 쓰고 버린 휴지에 피해자의 혈액이 튀어서 묻은 것뿐이었어요. 그 날 이후로 차관우는 경찰을 그만두고 사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신상덕 변호사를 향한 존경심이 극에 달해, 그와 같은 국선 변호사가 되려고 결심했던 것이죠. "신변호사님은 두 사람을 구하셨습니다. 억울하게 감옥에 갈 뻔한 빨간양말과, 억울하게 사람 골로 보낼 뻔한 경찰을 구하셨어요. 신변호사님은 저의 시작이십니다. 그러니까 자책하지 마시고 계속 그 자리에 있어 주세요. 잔소리도 하고 호통도 치시면서 계속 그렇게..." 황달중에 대한 미안함으로 눈물짓던 신상덕의 얼굴에 비로소 흐뭇한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저는 "의사와 마찬가지로 법조인 역시 할 짓이 못되는구나" 생각했죠. 의사는 자칫 실수하면 타인의 생명을 죽이게 되고, 검사 판사 변호사 등의 법조인은 자칫 실수하면 타인의 인생을 망가뜨리게 되니까요. 한 번의 실수가 돌에 새겨질 만큼 치명적이니, 마음 약하거나 예민한 사람은 심장 떨려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직업 같더군요. 그런 심적 고초(?)를 겪으면서도 최선을 다해 업무에 임하고 있는 의사와 법조인들 (물론 부정부패 인사는 빼고..ㅎ) 에게 새삼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박수하의 꿈에 나타난 장혜성은 눈부시도록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었죠. 그 모습을 황홀하게 바라보던 수하는 혜성의 이마와 볼에 다정히 입맞추고 마음껏 포옹합니다. 달콤한 행복을 만끽하던 그 순간, 수하를 안고 있던 혜성의 두 팔이 힘 없이 툭 떨어지는군요. (가슴이 철렁했다는..;;) 박수하가 놀라서 포옹을 풀고 그녀의 몸에 닿았던 자기 손을 보니 피투성이가 되어 있습니다. 하얀 드레스 위에서 더욱 섬뜩했던 핏빛... 축 늘어진 혜성의 몸을 부축하며 제발 깨어나 달라고 울부짖는 수하... 어쩌면 이토록 불길한 꿈이 있을까요? '너목들' 제7회의 타이틀은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였습니다. 어춘심(김해숙)의 꿈 속에서 죽음을 직면한 사람은 딸 혜성이었는데, 현실에서 죽은 사람은 어춘심 자신이었죠. 혹시 이번에도 마찬가지라면, 이 슬픈 예감이 틀리지 않는다면, 꿈에서는 장혜성이 죽었지만 현실에서는 꿈을 꾼 박수하 자신이 죽게 될 것입니다.

 

"2013년 7월 26일 오후 3시 10분, 그녀가 민준국에게 납치됐다. 그로부터 2시간 30분 후, 우리의 11년간의 이야기는 종지부를 찍게 된다." 아... 안돼... 어쩌라고, 이렇게 끝내 버리면 앞으로 일주일을 얼마나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리라고 이러는 걸까요? 분명 차관우는 그녀를 재판정 앞까지 데려다 주었고 법원 앞에서는 경찰이 보디가드처럼 지키고 있었는데도, 장혜성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녀는 실종되기 직전, 민준국이 보낸 우편물을 발견하고 차관우를 추궁하여 수하 아버지와 관련된 대부분의 진실을 알게 된 상태였죠. 가방을 소매치기 당해 휴대폰을 잃어버린 박수하는 공중전화에서 그녀에게 전화를 거는데, 수화기에서 들려온 것은 민준국의 차디찬 목소리였습니다. 절망과 공포와 분노에 떨며 절규하는 박수하... 앞으로 2시간 30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차마 상상조차 하기 두렵군요.

 

 

제 신랑은 예상하기를 "둘 다 죽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하긴 홈페이지의 소개처럼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를 모티브 삼아 만들어진 작품이라면, 왕자와 제비는 둘 다 죽는 게 맞기는 하죠. 왕자의 심부름을 하느라 따뜻한 곳으로 날아가지 못한 제비는 추운 날씨에 얼어 죽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석을 전부 떼어주느라 볼품 없어진 왕자 동상은 사람들에 의해 녹여져 버립니다. 이 때 도시에서 가장 귀한 두 가지를 가져오라는 하느님의 명을 받고 날아온 천사는 주저없이 행복한 왕자의 쪼개진 심장과 죽은 제비를 가져다 바치고, 그리하여 그들은 천국에서 행복하게 살았다나 뭐라나... 정말 혜성과 수하의 사랑도 천국에서의 재회를 기약해야만 하는 걸까요?

 

장혜성은 어떨지 몰라도, 왠지 박수하의 죽음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듭니다. 코흘리개 어린 시절부터 가슴에 품었던 단 하나의 사랑... 그녀를 지키기 위해 각종 무술까지 연마하며 재회를 기다려 온 10년의 세월... 다시 만난 후에도 오직 그녀만 생각하고 바라보다가 그녀를 위해 불꽃같은 생을 마감하는, 그것이 처음부터 박수하에게 주어진 운명이었다면 거역할 수는 없겠죠. 어쩐지 처음부터 이 세상엔 없을 것 같은, 그런 사람이더라니... 그 낡은 일기장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어떤 내용이 쓰여질까, 저는 이제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다음 주의 엔딩을 기다립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슬픔의 카타르시스를 만끽할 수 있겠다 생각하니, 불안함 속에 설렘도 찾아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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