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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가의 서' 그 이후, 왠지 더 궁금해지는 최강치의 삶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구가의 서

'구가의 서' 그 이후, 왠지 더 궁금해지는 최강치의 삶

빛무리~ 2013. 6. 26.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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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완성도 면에서 보자면 많이 허술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악역 조관웅(이성재)의 너무 쉬운 몰락과 최후는 실소를 금할 수 없을 만큼 허탈했다죠. 이제껏 그 놈 하나 때문에 얼마나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이 모진 고통을 받아 왔는데, 막상 이순신(유동근)이 좌수영 군사들을 이끌고 백년객관으로 들이닥치자 속수무책, 저항다운 저항 한 번 못 해보고 꽁지가 빠져라 도망치기 바쁘더군요. 물 건너 일본에서 왔노라며 마치 끝판왕이라도 되는 양 온갖 폼을 다 잡던 궁본 사람들, 재령과 가케시마 노조도 별 수 없었습니다. 분노한 이순신의 한 방에 강아지처럼 겁 먹고 짐 싸서 다시 물 건너 도망쳐 버렸죠. 이렇게 쉬운 거면 왜 그토록 오랫동안 상처입고 피 흘리면서 그들의 온갖 악행을 견디어 왔던 건지... 설마 조관웅이 자기 입으로 역적질을 하고 있노라 얼떨결에 실토했던 그 한 마디 때문에 이 모든 일이 가능해진 걸까요?

 

 

나라를 팔아넘기려 했을 뿐만 아니라 그간의 엄청난 악행을 볼 때 조관웅의 최후는 마땅히 능지처참 같은 끔찍한 형벌을 받으며 엄청난 고통 속에 마무리되어야 할 것 같은데, 고즈넉한 감옥에 앉은 채 술 한 잔을 멋지게 마시며 평온한 최후를 맞이했으니 이 또한 허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박청조(이유비)는 무슨 바보도 아니고, 그렇게 편안히 죽여 주면 오히려 은혜를 베풀게 되는 셈이란 걸 몰랐나요? 정갈한 주안상을 차려와서 "내 손으로 너를 죽이고 싶었던 것뿐이다" 라고 말하며 술을 따라주는 모습이 참 어처구니 없더군요. 게다가 조관웅은 모든 악행의 이유가 "욕심 때문이 아니라 삶이 너무나 심심하고 무료해서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었던 것뿐이다" 라는,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며 죽어가고...

 

모처럼 실존인물 이순신을 등장시킨 걸 보면, 이 드라마는 꽤나 큰 그림을 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주인공 최강치(이승기)가 무형도관 사람들과 함께 이순신을 도와 왜적을 물리치는데 공을 세운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죠. 비록 구가의 서는 찾지 못한다 해도, 육체적인 인간으로 거듭나지는 못한다 해도, 비극적인 역사의 한 시점을 살아가면서 나라와 동포를 위해 숨겨진 공을 세울 수 있다면, 그 어떤 인간보다도 훌륭하고 보람있는 삶이 될 테니까요. 하지만 최강치는 사랑하는 담여울(배수지)이 조총에 맞는 순간, 그녀 이외의 모든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일단 조관웅의 손목을 잘라 관아에 넘긴 후에는 그 철천지 원수가 어떤 처벌을 받는지 어떻게 죽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고, 왜구가 쳐들어오는지 어떤지의 여부도 안중에 없었습니다. 그녀 없는 세상이라면, 최강치에겐 그 무엇도 의미가 없었나봐요.

 

 

그래서 꽤나 거창한 스토리를 이어 왔던 '구가의 서'는 결말 무렵에 급격히 규모가 줄어들며, 오직 이승기와 수지 주연의 판타지 멜로물로 국한되었습니다. 뭐 그것도 나쁘진 않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했죠. 처음 이 드라마에 빠져들기 시작했던 이유도 최강치의 부모인 구월령(최진혁)과 윤서화(이연희)의 가슴 절절한 멜로 때문이었으니까요. 단지 그 멜로만을 위해서 기껏 마련해 두었던 아까운 소스들을 모두 버린 셈이 되었으니 허탈감은 지울 수 없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엔딩을 시청한 제 느낌은 놀랍게도 꽤나 감동적이었습니다. 최강치는 역시 구월령의 아들답게 평생 한 여자만 바라보고 사랑했으나, 아버지와는 또 다른 자기만의 방식대로 그 사랑을 완성시켰군요. 구월령은 윤서화의 곁에 누워 영원히 잠드는 길을 선택했지만, 최강치는 이 시끄러운 세상에 혼자 외로이 살아남아,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녀와의 재회를 한없이 기다려 왔던 겁니다.

 

초승달이 걸린 도화나무에서 만난 인연... 가만히 보면 소정법사(김희원)는 은근 허당이라 꼭 맞는 말만 하는 것도 아니기에, 강치와 여울의 만남을 두고 '둘 중 하나가 죽어야 할 악연'이라 규정지어 놓은 그 예언이 충분히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요. 설령 그 예언이 맞다 해도, 강치와 여울은 순수하고 강인한 사랑의 힘으로 운명을 바꾸거나 이겨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이 불행한 연인들은 운명을 비켜가지 못했군요. 엉터리 저격수 서부관(윤주만)은 분명 최강치를 겨누어 쏜 것 같은데 그 총에 맞은 것은 여울이었고, 신수의 피로 살려낼 수 있는 기회는 한 생명당 한 번뿐이라는 원칙(?) 때문에, 강치는 뻔히 눈앞에서 죽어가는 여울이를 속절없이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나는 너에게 슬픈 기억이 아니라 행복한 기억으로 남고 싶어. 나를 생각할 때,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총에 맞아 죽어가는 사람치고는 너무 긴 시간을 멀쩡한 모습으로 버틴다 싶어 이상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여울이는 그 짧은 인생 만큼이나 아름다운 유언을 남기며 강치의 품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군요. "우리 꼭 다시 만나자! 다시 만나면, 그 때는 내가 먼저 너를 알아볼게. 그 때는 내가 먼저 너를 사랑할게!" 축 늘어져가는 그녀의 몸을 부둥켜 안고 애끓는 목소리로 다짐했던 강치의 약속...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나겠다는 건지, 그 때만 해도 저는 상상조차 못 했네요.

 

여울이가 죽은 후 무형도관을 홀로 떠나는 최강치에게 사부 담평준(조성하)이 물었습니다. "이제 구가의 서를 찾아가는 것이냐?" 그러자 강치가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당분간은 좀 더 신수로 이 세상을 살아 볼 생각입니다. 함께 늙어갈 누군가를 다시 만날 때까지는, 좀 더 기다려 볼까 합니다." 이런 말까지 하는데도 눈치를 못 채다니 저는 진짜 먹통인 걸까요? 여울이가 죽었는데 함께 늙어갈 누군가를 또 다시 만나겠다니, 그게 외동딸을 잃은 아버지 앞에서 할 소린가, 뭐 이런 생각만 했다니까요..;; 그런데 '좀 더' 라는 말로 가볍게 시작된 최강치의 기다림은...

  

 

422년 후, 불빛 휘황 찬란한 2013년의 서울에서, 말끔한 청년 사업가의 모습을 한 최강치는 창문 밖으로 밤하늘의 초승달을 올려다 보며 조용히 되뇌입니다. "나 혼자 맞이하는 오천 이백 스물 한 번째 초승달..." 그 순간 왠지 가슴 한 켠이 먹먹해져 오는 느낌이었죠. 5221번의 초승달을 혼자 맞이하며, 그 때마다 곁에 없는 여울이의 존재를 실감하고, 그 때마다 사무치는 그리움과 외로움을 견디어 왔을 최강치의 잔인한 기다림의 세월이, 그 말 한 마디에 담겨져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려 온 422년의 세월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때가 되자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그 시절의 친구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으니까요. 양부였던 최마름(김동균)은 강치를 보필하는 집사가 되고, 아끼던 동생 억만이(김기방)는 발렛파킹원으로, 건달 마봉출(조재윤)은 여전한 거리의 건달 사채업자로 다시 등장했습니다. 마지막엔 뜬금없이 국가안전관리국 요원의 명찰을 들이밀며 곤이(방성준)와 이순신까지 나타나고... 약간 우습고 오글거리긴 했지만, 나름 유쾌한 설정이었어요.

 

 

그리고 드디어 한없는 기다림의 목표였던 그녀... 오래 전 그 때처럼 여울이라는 이름을 갖고 이 시대에 태어난 그녀를 다시 만났습니다. "나를... 알아요?" 사백여 년 전의 기억을 잊어버린 여울은 그저 해맑은 눈빛으로 이렇게 물어오는군요. 그래서 최강치는 "다시 만나면 내가 먼저 알아보고 사랑하겠노라" 한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멈춰졌던 최강치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는 그녀를 기다려야 했기에, 늙지도 죽지도 않는 신수의 몸으로 멈취진 시간을 견디어 왔지만, 이제는 다시 만났으니 그녀 곁에서 그녀와 함께 늙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구가의 서를 찾는 최강치의 진짜 여정은 이제부터가 시작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저는 왜 점점 더 궁금해질까요? 422년의 지난 세월 동안 강치는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여울이를 찾아 헤매는 틈틈이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기도 했는지... 담평준과 이순신에게서 배운 대로 가장 인간답게 사는 법을 실천하며 지내왔는지... 그리고 이제 여울이를 다시 만난 후의 삶은 어떻게 될지... 정말로 어딘가에 존재하는 구가의 서를 찾아 인간이 되고 그녀와 해피엔딩을 이룰 수 있을지... 드라마는 끝났는데, 어쩌자고 점점 더 궁금해집니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반인반수 최강치, 어느 사이엔가 그 녀석에게 정이 깊이 들었던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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