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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 오영(송혜교)이 그래도 행복한 이유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그 겨울, 바람이 분다

'그 겨울' 오영(송혜교)이 그래도 행복한 이유

빛무리~ 2013. 3. 15.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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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오영(송혜교)의 극심한 두통은 뇌종양이 재발한 결과였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그녀를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헤매게 만들었던 그 병이 다시 목을 죄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국내 최고의 의료진도 그녀의 뇌 사진을 보고는 가망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을 만큼 오영의 상태는 심각합니다. 최초 발병이 아니고 재발이기 때문에 그녀가 삶을 되찾을 수 있는 가능성은 더욱 희박한 상황입니다. 이제 그녀의 나이 스물 일곱... 생각해 보면 이렇게 불행한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또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오영의 삶은 비참 그 자체였네요.

 

 

부모가 이혼해서 엄마를 잃고 오빠와 헤어졌을 때 오영은 겨우 여섯 살에 불과했는데, 그 이별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찾아온 뇌종양으로 죽음의 공포를 겪고, 그 충격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에 R.P(망막색소변성증)에 걸려 시력을 잃고, 이상한 집착을 보이는 비서 왕혜지(배종옥) 때문에 자유를 억압받으며 집안에 갇혀 살아야 했던 오영... 돈이 아무리 많아봤자 그녀에겐 족쇄일 뿐이었습니다.

 

 

뱀 같은 왕비서... 그런 왕비서를 사랑하는 변호사 장성(김규철)... 유일한 친구처럼 곁에 남아 있지만 사실은 왕비서에게 돈을 받고 오영의 일거수 일투족을 일러바치는 미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돈 때문에 오영과 결혼하겠다는 이명호(김영훈)... 21년만에 오빠랍시고 찾아왔지만 사실은 돈을 노리고 계획적으로 접근한 오수(조인성)... 이런 사람들 틈바구니에 눈 먼 영이를 혼자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 주위에 믿을 사람 하나 없는 영이가 어찌나 불쌍하던지, 그 외롭고 답답한 심정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아 볼 때마다 가슴이 쓰려오곤 했습니다. 하지만 11회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과연 재발한 뇌종양을 치료하고 삶을 더 누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와 상관없이 오영은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말이죠.

 

 

왕비서와 장변호사는 현재 집안에 침투해 있는 오수의 존재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증거까지 입수했습니다. 두 사람은 더 이상 고민할 필요없이 오수를 당장 내쫓기로 합의하는데, 돌연 그 계획을 전면 취소할 수밖에 없는 사태가 벌어졌군요. 죽고 싶어하던 영이가, 한사코 수술을 거부하던 영이가 수술을 받겠다고 나선 겁니다. 이 놀라운 변화를 이끌어낸 사람이 바로 오수였기에, 왕혜지와 장성은 오수를 잠시나마 더 그녀의 곁에 머물도록 할 수밖에 없었죠. 왜냐하면 두 사람은 영이가 죽지 않고 살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 그렇군요. 오수와 마찬가지로 왕혜지와 장성도 각자의 방식대로 영이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저는 새삼 깨달았습니다. 온통 못 믿을 사람 투성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뜻밖에도 오영의 주변에는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던 거예요.
 
 

 

그들의 사랑이 처음부터 순수했던 건 아니지만, 그들이 선택한 사랑의 방식도 옳다고 말하기는 힘든 부분이 많았지만, 최소한 오영을 아끼는 그들의 마음만은 진짜였습니다. 비록 돈을 받기는 했지만 진심으로 영이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기며 도와주고 싶어했던 미라... 처음에는 돈 때문에 접근했지만 오영을 사랑하게 되면서, 자기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녀에게 새로운 삶을 되찾아 주려는 오수... 왕혜지를 사랑하지만 영이를 슬프게 하는 일은 하지 않으려 애썼던 장성... 오수를 끝없이 의심하고 경계하면서도 아픈 영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보고는 차 문을 열어 오수의 옆자리에 태워주던 왕혜지의 모습까지... 앞으로 오영의 삶이 얼마나 더 남았을지는 모르나, 남은 기간과 상관없이 그녀가 행복하다고 여기는 한 가지 이유는 사랑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녀 자신은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뚜렷이 인식 못하고 있지만요.

 

 

오영이 행복한 또 한 가지 이유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진짜 사랑'을 해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뇌 수술의 고통을 체험해 본 그녀로서는, 다시 수술대에 오른다는 것 자체가 죽음보다 더 깊은 공포일 겁니다. 게다가 성공할 가능성도 희박한 수술인데, 희망보다 큰 불안을 안고 수술을 받은 후 모진 고통을 겪으며 오빠와의 짧은 나날을 흘려보내는 것보다, 함께 있는 동안 좋은 추억이나 만들어 놓자고 생각한 게 너무 당연한 일이죠. 그런데도 오영은 수술을 받기로 결심합니다. 그건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이라기보다, 오히려 세상에 남아있게 될 오수를 위한 것입니다. 끝까지 한 방울의 노력이라도 다하지 않는다면 자기가 떠난 후 자책과 회한으로 오랫동안 괴로워할 오수를 위해, 오영은 자기를 희생하기로 한 거죠. 어쩌면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남아있는 짧은 시간들을 기꺼이 희생할 만큼, 수를 향한 영의 사랑은 잔잔하면서도 강렬합니다.

 

 

오수 역시 사랑하는 오영을 위해 온갖 희생을 감수하는 중입니다. 국내 최고의 명의인 조선(정경순)에게 영이의 치료를 맡길 수만 있다면, 조무철(김태우) 앞에 무릎 꿇고 사정하는 것쯤이야 아무 일도 아니죠. 시시각각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지만, 영이를 위해서라면 남아있는 시간을 5일씩 팍팍 줄인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이렇게 수와 영은 상대를 위해 기꺼이 자기 삶을 희생하고 고통을 감수할 만큼 서로를 사랑하고 있군요.

 

 

이제 격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수가 영의 입술에 입맞춤을 하면서, 남매로 위장하고 있던 마지막 금기의 선이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영이도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을지 모르나, 이로써 확실히 알게 되었겠죠. 이 뜨거운 눈물과 가쁜 숨결이 절대 오빠일 수는 없음을 말입니다. 이런 사랑을 일생 한 번도 체험 못 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인데, 능동적으로 깊이 사랑하고 그 상대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오영은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요?

 

 

어쩌면 지금 자기가 불행하다 여기는 많은 사람들 역시, 오영과 같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육신의 눈은 멀쩡하되 마음의 눈이 멀어, 사랑하고 사랑받으면서도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아까운 시간을 눈물과 함께 흘려버리는 바보... 어쩌면 나 자신도 그런 바보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따지고 보면 모두 가엾은 사람들일 뿐, 악역처럼 보여도 진짜 나쁜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 같네요. 천천히 다가가고, 조금씩 이해하며, 증오는 연민으로 변해가고, 연민은 사랑으로 변해가며... 그렇게 잊지 못할 이 겨울에 불어오는 바람은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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