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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 서영이' 최종회, 사랑스런 호정이의 낡은 슬리퍼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내 딸 서영이

'내 딸 서영이' 최종회, 사랑스런 호정이의 낡은 슬리퍼

빛무리~ 2013. 3. 4.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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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반부터 후반에 이르기까지의 스토리가 굉장히 독특하게 진행되길래, 엽기적일 만큼은 아니어도 약간은 특이한 엔딩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내심 있었더랬습니다. 그토록 엷은 기대감마저 민망해질 만큼 식상한 엔딩... 어찌 보면 동화에 가깝다 싶을 만큼 작위적인 해피엔딩에 조금은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모든 등장인물이 약속이나 한 듯 너그러운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중년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저마다의 꿈을 이루고, 외로움에 시달리던 청춘들은 또 저마다의 짝을 찾고...

 

 

저는 다만 이삼재(천호진)가 죽지 않기만을 바랐을 뿐인데, 주인공 서영이(이보영)가 너무 불쌍해지지 않기만을 바랐을 뿐인데, 이건 행복해도 너무 행복해져 버렸으니 염려했던 마음조차 뻘쭘해지네요. 현실 속에서라면 어느 한쪽에서는 삐끗거릴 수도 있으련만, 이해 못하는 사람도 있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법 하건만, "그래서 모두 모두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라는 전래동화의 결말처럼, 서영이와 그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티끌 하나 없는 행복 속으로 푹 잠겨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경각에 달렸던 이삼재의 목숨은 별 드라마틱한 계기도 없이 그냥 슥 하고 되돌아 오더니 곧바로 건강해졌습니다. 물론 그가 죽을 뻔했던 덕분에 아들과 딸이 각성하는 계기는 되었죠. 차갑게 마음의 문을 닫고 그 누구에게도 진심을 털어놓지 못하던 딸 이서영은 아버지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야 처음으로 강우재(이상윤)에게 오랫동안 품어왔던 사랑을 고백했고, 그 결과 이혼수속까지 밟았던 두 사람은 행복한 재결합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무뚝뚝한 성격 때문에 늘 표현에 서툴던 아들 이상우(박해진)는 더 늦기 전에, 아직 시간이 있을 때 마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애타게 기다리던 아내 최호정(최윤영)에게 드디어 사랑과 고마움을 표시하기에 이르렀죠. 어차피 이런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이삼재가 쓰러졌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갑자기 너무 쉽게 빨리 회복되어 버리는 노인네의 모습은 좀 황당하기도 했답니다..ㅎㅎ

 

 

호정이네 시아버지가 바로 서영이의 죽었다던 친아버지이며 자신들의 사돈이라는 사실을 느닷없이 알게 된 강기범(최정우)과 차지선(김혜옥)의 반응 역시 아름다움을 위해 창조된, 더할 수 없이 바람직한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아들 우재를 위험에서 구해 준 은인이기 때문에 놀람보다 고마움이 컸을 수는 있지만 그래도 당황스런 심정을 억누르기가 쉽지는 않았을텐데, 맘 약한 차지선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까칠한 강기범마저 냉큼 이삼재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며 이혼한 며느리 서영을 먼저 손잡아 끌어들이는 계기가 되었으니,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했던 인물들이 오히려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된 셈이라, 이것도 나름대로는 반전이라 해야 할까요?

냉혈한 강기범은 한 술 더 떠서 아내 차지선이 손녀를 업어 주느라 허리가 아프다고 하면 쩔쩔 매면서 안마까지 해주고, 요즘 아내와의 대화시간이 줄었다면서 투정하는 애처가로 변신했습니다. 30년의 설움을 이렇게 보상받을 수만 있다면, 어머님들, 진지하게 이혼선언하고 집 나가는 것도 한 번쯤 해보실만한 일이겠네요..ㅎㅎ  

 

 

있는 아버지를 없는 척하고 치렀던 3년 전의 결혼식이 온전한 거였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번거롭게 웨딩드레스 다시 입고 하객들까지 다시 초청해서 다시 결혼식을 치를 필요까지 있을까 싶은 게 솔직한 저의 생각이었죠. 그냥 모두들 곱게 차려입고 사진관에 가서 가족사진이나 한 방 찍으면 되는 일 같았거든요. 어차피 한 가족이 되는데 중요한 건 형식이 아니라 마음이니까요. 그런데 서영이와 우재 부부만이 아니라 생뚱맞게 상우와 호정이 부부까지 덩달아 결혼식을 다시 치르는데는 좀 어이가 없더군요. 도대체 왜... 그 때 결혼사진에 누나 서영이가 없어서?? 하여튼 돈이 시어빠질 정도로 차고 넘치는 집안이라선지 장난처럼 두 쌍의 결혼식을 다시 치렀는데, 그래도 딸 부부와 아들 부부 사이에 당당히 자리잡고 서 있는 아버지 이삼재의 모습은 나름 흐뭇하더군요. 상우네까지 다시 결혼시킨 진짜 이유는 이거였나봐요. 서영이네만 다시 결혼했다면 아버지가 한가운데서 미소짓는 훈훈한 사진으로 엔딩을 장식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재결합 후 2년의 세월이 평온히 흘렀습니다. 미국으로 연수를 떠난 강미경(박정아)과 서울에 남은 최경호(심형탁) 사이에는 장거리 전화 연애가 무르익는 중이고, 우재와 서영이는 어느 새 예쁜 딸까지 낳아서 더욱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서영이는 유능한 변호사로서 활발히 활동 중이며, 아이가 없어 고민하던 상우와 호정에게는 정말 반가운 쌍둥이 임신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가구 기술자가 되고 싶었던 청운의 꿈을 늦게나마 이룬 아버지 이삼재가 직접 "내 딸 서영이에게"라고 새겨서 만들어 준 흔들의자는 서영과 그녀의 딸 솔이에게 가장 편안한 휴식처가 되어주고 있네요. 너무 뻔한 해피엔딩이라서 약간 김이 새기는 했지만, 아무도 불행해지지 않았으니 좋기도 했습니다. 소현경 작가에게 기대가 커서 조금은 특별한 엔딩을 원했기에 실망스럽다는 어조로 리뷰를 써내려갔지만, 행복한 서영이의 모습은 아름답고 흐뭇했어요.

 

 

그런데 최종회에서 제 마음을 가장 따스하게 했던 장면은 따로 있었습니다. 방 정리를 하던 상우가 우연히 발견한 낡은 슬리퍼 한 켤레... 그건 바로 호정이가 상우를 짝사랑하던 시절, 맨발로 집 앞까지 쫓아와 울며 떨고 섰을 때, 그 딱한 모습을 차마 볼 수 없던 상우가 신고 가라며 내어준 슬리퍼였죠. 그 때만해도 호정이를 전혀 사랑하지 않던 상우가 단순한 동정심에 던져주었던 그 슬리퍼를 호정이는 다이아몬드 반지처럼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던 겁니다. 호정에게 신발을 선물한 기억이 전혀 없던 상우는 분명히 신발 선물을 받은 적 있다는 호정이의 말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는데, 신주단지처럼 모셔둔 슬리퍼를 보는 순간 그녀의 진심을 새삼 느낄 수 있었죠. 상우는 그 낡은 슬리퍼를 쓰레기봉투에 버리고, 그것이 들어있던 상자 안에는 예쁜 새 구두를 넣어 두었습니다. 비로소 그가 마음을 담아 사랑하는 호정에게 선물하는 첫 신발이었습니다.

 

 

예쁜 새 구두를 신고 좋아하는 호정이와 그녀에게 꽃다발을 내밀며 처음으로 사랑 고백을 하는 상우의 모습도 아름다웠지만, 그보다 제 가슴을 찡하게 한 것은 낡은 슬리퍼 한 켤레가 비취지던 그 장면이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던, 언제 쓰레기통에 던져져도 상관없었던 그 낡은 슬리퍼 한 켤레가, 결국은 원하던 모든 것을 호정에게 안겨준 셈이니 정말 놀랍지 않나요? 호정에게 그 낡은 슬리퍼는 간절한 사랑이었고, 설레는 소망이었습니다. 상우가 미경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소망을 아프게 접었을 때조차도, 호정은 그 낡은 슬리퍼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건 응답받지 못한 현실과 상관없이, 자기 안에 남아있는 사랑을 그만큼 소중히 여기고 존중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호정이의 낡은 슬리퍼는 저에게 무엇보다 귀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정말 행복해지고 싶다면, 절대로 자기 감정을 무시하거나 속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 설령 타인에게 무시당하고 버려진 감정일지라도, 자기 자신만은 소중히 여기면서 아끼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모두가 호정이만큼 행복한 결과를 맞이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최소한 스스로에게 짓밟힌 감정을 품고 사는 것보다야 백배 천배 행복하지 않을까요? 상우를 향한 호정이의 굳건하고 지침없는 사랑은 어쩌면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심에서 비롯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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