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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방의 선물' 신기한 흥행코드, 유치함과 촌스러움의 미학?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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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방의 선물' 신기한 흥행코드, 유치함과 촌스러움의 미학?

빛무리~ 2013. 2. 20.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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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판이 워낙 좋길래 뒤늦게나마 발품을 팔아 상영관까지 보러 갔습니다. 그러나 역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대원칙을 깨뜨릴만한 명작은 아니더군요. 물론 나름대로의 장점을 가진 영화이긴 했지만, 제게는 장점보다 단점이 훨씬 많고 크게 느껴졌습니다. 혹자는 이처럼 동화같은 환타지를 표방하는 영화에서 리얼리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태도라고도 하더군요. 하지만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기엔 지나치게 유치하고, 아이들을 위한 동화라기엔 걸맞지 않는 성인물의 분위기가 풍겼습니다. 일단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부터가 어린이 대상의 영화로는 적합치 않거니와, 지적장애인 이용구(류승룡)를 향한 경찰청장(조덕현)의 무차별적 폭력 장면이라든가, 심지어 "당신이 죽어야 딸이 산다"고 회유하는 변호사의 모습이라든가, 이런 부분들 어른이 봐도 섬뜩할 정도였으니 결코 아이들을 위한 동화라고는 생각할 수 없더군요.

 

 

그렇다면 결국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이야긴데, 환타지를 표방하려면 아예 리얼리티를 무시할만한 몽환적 분위기를 전체적으로 깔아 주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팅커벨 같은 요정이 소녀의 머리 위로 등장한다든가, 무지개 위에서 강아지와 뛰어 논다든가..;; 이런 설정이라면 아무도 그 영화에서 리얼리티를 기대하지 않겠죠. 하지만 이 영화는 현실 중에서도 지극히 살벌한 현실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지적장애인을 대하는 사회의 편견, 자기 편의를 위해 아무 거리낌 없이 약자를 희생시키며 공권력을 휘두르는 자들, 교도소 안에서 자행되는 그들끼리의 폭력, 등 어떤 장면들만 떼어놓고 봤을 때는 어두운 사회고발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할 정도예요. 그런 영화를 보면서 리얼리티를 완전 무시하기란 솔직히 어렵죠. 동화 감상의 마인드와 성인영화 감상의 마인드를 동시에 가지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봐야 하는 걸까요? ㅎ

 

이후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지적장애인 이용구가 어린 소녀 최지영의 강간살해범으로 몰리게 된 결정적 이유는 어설픈 '인명구조' 시도 때문이었습니다. 골목길을 뛰어가던 지영이는 빙판에 미끄러져 뒤로 넘어졌고, 등에 멘 책가방의 무게 때문에 곧장 뒤통수를 땅바닥에 부딪히며 사망하고 말았죠. 그런데 유일한 목격자였던 이용구는 언젠가 어디선가 배웠던 '인명구조' 요법을 떠올립니다. 우선 혈액순환을 위해 허리의 벨트를 풀어 바지를 살짝 벗겨놓고, 인공호흡을 위해 흉부 압박을 하다가, 나중에는 구강 대 구강법까지 실시합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이용구의 행위는 누가 봐도 제대로 된 응급처치가 아니었고, 심지어 흥분한 나머지 미친 것처럼 보였거든요. 즉시 오해받고 체포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어요.

 

 

제가 잘 모르는 부분이라서 말하기가 조심스럽긴 한데, 정말 지적장애인들에게 인명구조 훈련을 시키는 기관이 있나요? 제 생각에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지극히 위험한 일인 듯 싶거든요. 사람의 목숨이 위급해지는 경우는 제각각 모두 다른 법인데, 체계적인 인명구조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면 그 때마다 정확한 상황 판단으로 정확한 응급처치를 할 수 있겠지만, 지적장애인의 경우는 아무래도 상황 판단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어 목뼈를 다쳐 경추가 손상된 사람의 경우는 절대로 움직이거나 건드리지 말고 구조팀이 올 때까지 그냥 두는 것이 최선의 응급조치인데, 엉뚱하게 인공호흡을 한답시고 마구 건드렸다가는 오히려 멀쩡히 회복될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과연 지적장애인에게 응급처치 교육을 시켜도 되는 걸까요?

 

소녀 최지영의 사망 사건은 영화 스토리 전체의 핵심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중요한 내용입니다. 이용구가 끔찍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기 때문에 딸 예승이(갈소원)와의 애달픈 이별이 있었고, 부녀의 사정을 안타깝게 여긴 7번방 죄수들의 휴먼스토리도 전개될 수 있었던 거죠. 그런데 이 중요한 사건이 지적장애인의 생뚱맞은 응급처치에서 비롯되었으니, 저는 보면서도 그저 황당하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사건의 시발점에서부터 저를 설득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한 거였죠.
 
 

 

어떤 고등학생의 감상평에 의하면 이 영화는 "울어! 울어! 이래도 안 울어? 이래도 안 울 거야?" 계속 그러는 느낌이라고 하더군요. 영화를 보기 전에 그 이야기를 먼저 듣고는 왠지 별로일 것 같다는 안 좋은 예감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한창 감수성 풍부한 십여 세의 고등학생이 감정의 과잉을 느꼈을 정도라면 다 큰 어른의 메마른 감성으로 보았을 때는 얼마나 유치하겠습니까? 계속되는 뻔한 설정으로 눈물을 강요하는 듯한 기법은 정말 촌스럽다고 느껴질 뿐이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제가 유일하게 즐기며 보았던 것은 아역 스타계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갈소원 양의 깜찍한 표정과 연기였습니다. 물론 주연배우 류승룡을 비롯해 정진영, 김정태, 박원상, 오달수, 정만식 등 믿음직한 중년배우들이 포진한 만큼 각각의 연기력은 나쁘지 않았는데, 교도소 7번방 안의 풍경을 비현실적으로 지나치게 미화한 설정 때문에 몰입이 안 돼서인지 별로 공감되는 느낌은 없더군요. 웃음 코드 역시 저와는 좀 맞지 않는 듯, 남들은 배꼽잡고 웃었다는데 저는 그저 몇 번의 실소만 했을 뿐입니다. 심지어 모두 칭찬하는 류승룡의 지적장애인 연기조차도 저는 지나치게 과장되고 어색해 보이던데요. 제 생각에는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에서 정보석의 연기가 훨씬 지적장애인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표현한 듯한데, 물론 지적장애인도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겠죠.

 

 

이용구가 수감된 7번방에는 방장인 조폭 밀수범 소양호(오달수)를 비롯해 사기전과 7범의 최춘호(박원상), 소매치기범 신봉식(정만식), 간통범 강만범(김정태), 자해공갈범 서노인(김기천)이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린이 유괴와 강간살해범이라는 이용구의 죄목을 알고 그를 못마땅해하며 폭행하던 7번방 동기들은, 소양호에게 앙심을 품은 옆 방 죄수 박상면의 주머니칼 공격을 용구가 대신 맞아준 이후로 모두 그를 좋아하기 시작합니다. 용구의 순박함을 보며 모두들 그의 무죄를 믿게 되고, 소양호는 은혜를 갚기 위해 방법을 강구해서 용구가 그리워하는 딸 예승이를 잠시 감방으로 데려오게 되지요. (그 방법적인 면에서 말도 안 되는 설정이 등장하지만, 이건 뭐 패스~;;)

 

한편 교도소 보안과장 장민환(정진영)은 예전에 어린 아들이 유괴 살해되었던 상처가 있어 용구를 증오하지만, 교도소 내의 방화 사건이 일어났을 때 불길 속에서 용구가 목숨 걸고 자신을 구해주자, 그 후로는 역시 용구를 좋아하며 믿게 됩니다. 이용구는 비록 지적장애인이지만 보기 드물게 용감하고 주변 사람들을 위하는 인물이네요. 대신 칼을 맞아주고 불난 집에서 구해주고... 주인공이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과정이 너무 단순하게 처리되어서 뻔하고 안일해 보이지만 이것도 뭐 대충 패스하겟습니다. 하여튼 용구가 일구어낸 사람의 인연 중에도 장민환 과장은 대박이라, 이 사람은 먼 훗날까지 예승이의 후견인이 되어 든든한 아버지 역할을 해주게 됩니다.

 

 

운 나쁘게도 죽은 소녀 지영이는 하필 경찰청장의 딸이었고, 그 경찰청장은 하필 세상에 둘도 없는 밴댕이속의 못된 인간이었습니다. 딸을 잃은 슬픔이야 당연하겠지만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결코 이용구가 범인일 수 없다는 사실을 금세 알아차렸을텐데, 이 인간은 마치 이용구에게 화풀이라도 하는 것 같더군요. 경찰청장은 애써 무죄를 항변하려는 이용구를 독방으로 불러내 연거푸 뺨을 후려갈기면서 말했습니다. "순순히 죗값을 치러. 그렇지 않으면 네 딸, 내가 똑같이 만들어 줄 거야!" 청장의 사주를 받은 국선변호사 역시 "당신이 죽어야 딸이 산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이용구를 회유했죠. 어린 딸을 미끼삼아 힘없는 지적장애인을 협박하여 죽음으로 몰아가는 악마같은 두 사람..;; 결국 이용구는 딸 예승이를 보호하기 위해 없는 죄를 자백했고, 국선변호인의 무성의한 변론 후 가차없이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사형선고 후 불과 몇 개월도 안 되어서 집행 날짜가 정해진 것은 역시 경찰청장의 입김이었을까요? 용구를 이대로 보낼 수 없다고 결의한 7번방 동료들은 교도소 내 행사가 있던 날 용구와 예승이를 열기구에 태워 밖으로 내보내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비록 열기구의 끈이 철조망에 걸려 탈출에는 실패했지만, 사랑스런 두 부녀가 열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극단적인 환타지를 표방한 부분이었습니다. 더불어 가장 리얼리티가 떨어져서 대놓고 실소하게 만든 장면이기도 했지요. 설령 그 열기구를 타고 밖으로 나갔다 한들 그게 진짜 탈출이겠습니까? 게다가 "예승아, 지금 이 순간을 꼭 기억해!" 라는 최강 오글거림의 대사까지 곁들이니 정말 짜릿짜릿하더군요..;; 먼 훗날 법대생으로 성장한 예승이(박신혜)는 모의재판에서 이용구 측 변호인으로 나서고,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아냄으로써 뒤늦게나마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주게 됩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촌스럽고 유치하고 리얼리티 떨어지는 영화가 지금 이 시대에 흥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저는 매우 놀랍습니다. 나름대로 이유를 생각해 본다면, 요즘 사람들의 마음이 그만큼 외롭고 쓸쓸하며 상처에 시달리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그래서 순수한 동심과 전원으로의 회귀 본능이 자극된 거겠죠. (유치=동심? 촌스러움=전원?) 이렇게 영화 '7번방의 선물'은 현대인에게 얼마나 힐링이 간절히 필요한가를 저에게 깨우쳐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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