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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 서영이' 꼿꼿한 그녀의 흔치않은 외로움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내 딸 서영이

'내 딸 서영이' 꼿꼿한 그녀의 흔치않은 외로움

빛무리~ 2013. 2. 1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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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 학원에서 차지선(김혜옥)에게 접근해 왔던 마술사 배영택(전노민)의 정체는 안타깝게도 좋은 친구가 아니라 사기꾼이었습니다. 위너스 그룹의 하청업체를 운영하면서 각종 비리를 저지르다가 회장 강기범(최정우)에게 축출당한 안사장이 앙심을 먹고 일부러 배영택 부부를 사주해서 차지선을 이용하려 했던 것이지요. 가뜩이나 외로움 많이 타고 심기가 약한 차지선에게 최근 불어닥치는 시련들은 참으로 모질기만 하군요.

 

사랑하는 막내아들 강성재(이정신)가 남편 강기범의 혼외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믿었던 며느리 이서영(이보영)이 엄청난 거짓말을 하고 시집왔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는데, 이제는 제비한테 당해서 억울한 누명까지 쓰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남편의 비서 윤소미(조은숙)에게 속고, 며느리에게 속고, 제비에게 속고... 이 철없고 어리숙한 귀부인이 감당하기에는 이 세상의 비밀과 거짓이 너무도 많습니다.

 

하지만 연달아 세 번이나 뒤통수를 얻어맞은 충격보다 더 큰 것은 남편의 철저한 무관심이었습니다. 강기범이 차지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거야 알고 있었지만 최소한의 믿음 정도는 있을 줄 알았는데, 강기범은 그저 위너스의 안주인이 추한 사건에 휘말렸다는 소문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막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할 뿐 차지선이 누구를 만나서 무엇을 했든 그 진실에는 관심도 없는 사람이었네요.

 

 

"믿고 안 믿고가 뭐 중요해? 내가 문제 안 삼겠다는데!" 강기범의 생각과 달리, 그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차지선이 이혼을 결심한 이유는 강기범에게 자신의 존재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거든요. 강기범이 하필 그 자리에 이서영을 불러 변호를 맡김으로써 이혼한 며느리에게 못 볼 꼴을 보이게 했다는 수치심도 작용했겠지만 그건 부수적인 문제였습니다.

 

어쨌든 전 며느리이자 유능한 변호사 이서영의 활약으로 차지선의 간통 조작 사건은 예상보다 아주 쉽게 해결되었습니다.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인 안사장은 꼼짝없이 덜미를 잡혔는데도 배째라는 식으로 발악을 하며, 언론플레이를 통해 위너스의 이미지를 추락시키겠다고 말도 안 되는 협박을 계속했지만, 얼음장 같던 부사장 강우재(이상윤)는 뜻밖에도 그를 고발하는 대신, 사진의 원본과 필름을 넘기면 물품 대금을 결제해 주겠다고 너그러운 처사를 약속했군요.

 

사랑하는 아내 이서영의 비밀을 알게 되고 그녀의 아버지 이삼재(천호진)를 만나면서 강우재는 견고했던 자신의 성을 많이 허물어뜨렸습니다. 사람마다 다른 입장의 차이를 절실히 느낌으로써 타인의 내면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예전에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의 범주에 넣었던 것들도 이제는 사람의 입장과 경우에 따라 '그럴 수도 있는 일'이 된 것입니다. 이서영에 대한 사랑 하나로 강우재가 이렇게 변해 버렸으니 정말 사랑의 힘이란 위대한 것이군요.

 

 

하지만 강우재와 이서영의 재결합은 점점 불가능에 가까운 방향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차지선이 불륜 누명을 쓰고 경찰서로 끌려가던 43회의 충격적인 엔딩을 접할 때만 해도, 남녀 주인공을 재결합시키기 위해 차지선을 이용하는 게 아닌가 싶어 황당했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에요. 이서영의 도움으로 잘 해결되긴 했지만 그 사건의 결과로 집안 분위기가 누그러지기는 커녕 강기범과 차지선 부부는 심각한 이혼 위기에 처했으니까요. 서영에게 고마움을 느낀 시부모가 그녀를 다시 받아줌으로써 화기애애한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예상은 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이서영이 다시 들어오란다고 들어갈 캐릭터도 아니고 말이죠.

 

현재 이서영은 어느 때보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유와 행복을 누리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속 편히 지내다 보니 지난 시절의 앙금도 꽤나 풀렸는지, 제 발로 집을 찾아가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 정도로 내면적인 발전도 있었죠. 쌍둥이 남동생 이상우(박해진)가 최호정(최윤영)과 결혼해서 알콩달콩 사는 모습도 흐뭇하게 바라보며, 이제야 비로소 이서영도 사람사는 행복을 좀 누리게 되나 싶었는데...

 

상우의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들 속에서 뜻밖에도 시누이 강미경(박정아)의 모습을 발견한 이서영은 그대로 얼어붙고 맙니다. 산 너머 산이요 강 건너 또 강이라더니, 이제 서영이는 어쩌면 좋을까요? 남동생과 시누이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다름아닌 자기 때문에 그 사랑을 포기했음을 알게 되었으니, 그 꼿꼿한 성격에 마음의 괴로움을 어찌 견뎌낼 수 있을까요? 강우재를 사랑하는 마음이 적잖이 남아있다 해도 이제 다시 그의 곁으로 돌아갈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친동생 상우의 얼굴을 보는 것도 괴로운데, 어찌 다시 위너스에 들어가 미경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까요?

 

 

물론 상우와 미경의 입장에서는 이제 다 지난 일일 뿐, 아무렇지 않다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상우는 그야말로 '백점 만점에 백점'이라고 할 수 있는 좋은 아내 호정이의 사랑과 헌신을 듬뿍 받으며 바야흐로 신혼의 재미에 푹 젖어가는 중이고, 미경도 어느 덧 최경호(심형탁)와의 러브라인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중이니까요. 최씨 남매의 구원을 받아 상우와 미경은 각자의 행복을 찾았으니 괜찮다고, 아무 문제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서영은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사람이 못 됩니다.

 

자존심을 지키느라 애써 뻔뻔한 척 했지만 사실은 변명할 염치조차 없어서 묵묵히 우재의 곁을 떠났을 만큼, 이서영은 얼굴이 두껍지 못한 사람이거든요. 작은 실수에도 스스로를 좀처럼 용서 못하는 그녀는 누구보다 섬세하고 깊은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거든요.
 

요즘 새댁 호정이 때문에 이 드라마를 본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물론 제 눈에도 그녀는 흠잡을 데 하나 없이 너무나 사랑스러운 인물이에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그녀가 나오는 장면이 썩 편하게 느껴지지 않더군요. 호정이가 사랑스러울수록, 그런 호정을 차츰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 상우의 모습이 역력히 보일수록, 목에 가시가 걸린 듯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그 정확한 이유를 오늘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네요.  

 

 

사실 최호정은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 중 가장 완벽한 인물입니다. 간단한 찌개 하나도 못 끓일 정도로 형편없는 음식 솜씨에 학벌도 내세울 것 없고 덤벙대는 성격에 실수 투성이지만, 그건 최호정이라는 완벽한 캐릭터에 티끌조차 될 수 없을 만큼 하찮은 결점들이죠. 그녀처럼 따뜻하고 마음 넓고 큰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어디 흔하겠습니까? 보통 사람은 사랑에도 이기심이 적잖이 섞여들게 마련인데, 최호정처럼 상대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이타적인 사랑을 아무나 할 수 있을까요?

 

물론 호정이도 초반에는 부잣집의 철부지 외동딸에 불과했지만, 이상우를 알게 되고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서 그 사랑에 의해 차츰 변해갔습니다. (역시 위대한 사랑의 힘!) 참으로 놀라운 것은 사람이 성숙해지고 어른스러워지면 보통의 경우는 그 와중에 세상의 때도 적잖이 묻고 영악해지기도 하게 마련인데, 호정이는 내면의 성숙을 이루는 과정 중에도 예전의 순수함을 전혀 잃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100%에 가깝게 완벽한 인간형으로 탄생할 수밖에 없는 거지요. 아마도 그래서였나 봅니다. 호정이를 볼 때마다 불편했던 이유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은, 이 세상 사람같지 않은 그 완벽함 때문이었나봐요.

 

이삼재는 자기 딸 서영이를 가리켜 '모나고 못나고 비뚤어진 아이'라고 말했죠. 그런데 저는 묘하게도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서영이가 좋아졌습니다. 황사 속을 걸어다녀도 옷깃에 먼지 한 톨 안 묻을 것처럼 완벽해 보이던 이서영이 사실은 '모나고 못나고 비뚤어진 아이'였음을 알게 되니까 너무 좋았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사람 같았고, 타인에게 제 못난 모습을 들킬까봐 오픈하지 못하는 그 마음조차 애틋하게 느껴졌습니다. 호정이처럼 쉽게 마음을 열고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야 얼마나 좋을까만... 저는 어느 순간부터 너무 완벽한 최호정보다 못나고 비뚤어진 이서영에게 더욱 정이 끌리기 시작했어요.

 

 

이서영의 그 모난 성격을 약간 좋은 말로 바꿔서 표현한다면 꼿꼿하다고 해도 되겠지요. 그 꼿꼿한 성격 때문에 앞으로도 이서영은 오랫동안 혼자 외로움을 견뎌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위너스의 디자인을 빼돌려 팔아먹고 차지선의 불륜을 조작했던 안사장같은 인물이야 죄를 지어 놓고도 얼마든지 다시 얼굴을 들이밀며 뻔뻔한 웃음을 지을 수 있겠지만, 이서영은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극단적인 예를 들어서 좀 그렇지만, 행복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게도 좀 너그러울 필요가 있는데, 이서영은 그 누구보다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입니다. 어쩌면 지금 따뜻하게 다가오는 강우재를 자꾸만 밀어내며 차갑게 대하는 이유도, 아직까지 자신을 용서 못했기 때문이에요. 오히려 강우재는 다 털어버리고 용서했는데, 그를 3년 동안이나 감쪽같이 속이며 거짓말을 해 온 자신을 이서영은 아직도 용서 못한 겁니다. 강우재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만큼, 자신을 용서하기가 더욱 힘들겠지요.

 

이렇게 꼿꼿한 자존심 못지 않게 꼿꼿한 죄책감이 그녀의 사랑을 가로막고 있는데, 이제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상우와 미경에게까지 엄청난 부채감을 느끼게 되었으니 앞으로 이서영은 흔치 않은 고통과 싸워야 할 것입니다. 이런 그녀의 모습이 새장에 갇힌 새처럼 안타깝지만, 함부로 막무가내로 깨뜨릴 수도 없으니 어려운 일이군요. 소현경 작가가 특별히 사랑하는 여주인공 서영이를 어떤 방식으로 행복하게 해 줄지, 예측할 수는 없는데 점점 더 궁금해지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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