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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리는 가슴-제3화' 슬픔은 생각보다 일찍 시작되었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떨리는 가슴

'떨리는 가슴-제3화' 슬픔은 생각보다 일찍 시작되었다

빛무리~ 2013. 2. 2.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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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2005년작 드라마 '떨리는 가슴' 리뷰입니다. 어제는 '제1화-사랑' 편을 다루었으니 순서대로라면 오늘은 '제2화-기쁨' 편이 되어야겠지만, 그건 리뷰를 쓰고 싶은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아서 그냥 건너뛰겠습니다. 큰 줄거리만 가볍게 짚고 넘어가자면, 제2화의 주인공은 김창완의 동생으로 등장한 하리수였습니다. 원래는 남동생 '김창우'였는데, 가출한지 몇 년만에 다시 돌아왔을 때는 여동생 '김혜정'으로 바뀌어 있는 인물이죠. 실제 트랜스젠더인 하리수를 등장시켜,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그들만의 아픔을 꽤나 실감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처음에는 성별이 바뀌어 버린 김혜정을 받아들이는 데 가족들조차도 어려움을 겪지만, 결국은 그녀의 아픔을 진심으로 이해하며 감싸주게 되지요. 몰이해의 두터운 벽을 허물고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는 것... 해당 에피소드의 소제(小題)가 '기쁨'으로 정해진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오늘 리뷰에서 다루게 될 제3화의 소제(小題)는 '슬픔'입니다. 그런데 '슬픔'이라는 묵직한 제목에 어울리지 않게(?)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어린아이들이군요. 주인공은 김창완 배종옥 부부의 외동딸로 등장하는 고아성입니다. 1992년생인 고아성은 벌써 22세가 되었고 작년에는 멜로영화 '듀엣'의 주인공을 맡았을 만큼 어엿한 성인 여배우로 성장했지만, 이 작품이 만들어지던 2005년 당시에는 아직 14세의 소녀였죠. 극 중에서는 실제보다도 한 살 어린 13세의 초등학생 역할을 맡았습니다. 고아성의 짝꿍 '신찬' 역을 맡은 아역배우는 그 무렵 브라운관에 자주 등장하던 김학준으로서 1992년생 동갑내기입니다. 어린아이들의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인데, 도대체 왜 '슬픔'이라는 제목이 붙었을까요? 이 에피소드를 집필한 박정화 작가의 대표작으로는 가족드라마 '무동이네 집', 청소년 드라마 '사춘기' 등이 있습니다. 

 

 

당돌한 초등학교 6학년 김보미(고아성)는 좋아하는 남학생 지훈에게 공개적으로 마음을 고백하지만 보기좋게 차이고 맙니다. 짖궂게 놀려대는 동급생들 때문에 창피해서 학교에도 가지 않으려던 보미는 갑자기 흑기사처럼 달려와 자기를 보호해 주는 남학생 신찬(김학준)과 가까워지면서 실연(?)의 아픔을 훌훌 털어버리는군요. 원래 1년 넘도록 혼자 보미를 좋아하고 있던 찬이는 보미를 놀려대는 동급생들과 치고받고 싸우면서까지 그녀를 지켜주었고, 학교 앞 바바리맨 때문에 혼비백산한 보미를 위해 보디가드를 자청하며 매일 집까지 데려다 주기도 했답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보미의 우산이 연두색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찬이는 어린 나이에도 여심을 사로잡는 섬세함과 다정다감함을 지녔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보미의 엄마 종옥과 찬이의 엄마 미란(유혜정)은 학창시절부터 원수(?)지간이었네요. 종옥과 사귀던 남자를 미란이 유혹해서 헤어지게 만든 후부터 둘 사이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던 겁니다. 게다가 알고 보니 사는 집마저 같은 아파트의 옆 동으로 코 닿을 곳에 있었군요! 미란을 몹시 싫어하는 종옥은 평소 합리적인 성격에 맞지 않게 감정적으로 대응하며, 보미에게도 찬이와 놀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엄마와 심하게 다툰 보미는 슬픔에 잠겨 이모 배두나의 오피스텔을 찾아갑니다. "이모, 난 정말 찬이가 좋은데 어떡하지? 내가 그렇게 착한 애는 아니지만 그래도 엄마가 하라는 대로 다 하게 되잖아. 모든 게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전부 다 엄마 뜻대로 되는 거 같아.." 그러자 배두나는 조카에게 말해 줍니다. "어쩌면 이번에는 아닐 수도 있어. 아주 간절히 원하는 게 있으면, 온 우주가 힘을 합쳐서 도와준대. 그러니까 너무 쉽게 포기하지 말고 힘들어도 잘 견뎌봐. 온 우주가 너를 도와줄 때까지!"

 

찬이는 현재 엄마와, 엄마보다 어린 새아빠와 같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엄마와 새아빠는 걸핏하면 부부싸움을 하고, 그럴 때마다 집은 난장판이 되고 엄마는 새아빠에게 맞아서 멍이 들곤 합니다. 찬이가 "아빠~"라고 부르면 새아빠는 "이 새꺄, 내가 왜 니 아빠야?" 라고 대답하는군요. 학부모 모임이 있던 날, 종옥과 미란은 서로 아이들 문제까지 언급하면서 대판 싸우게 되고 (자식 교육 잘 시키라는 둥), 엄마들의 관계 악화로 인해 보미와 찬의 사랑은 점점 어려워져만 갑니다. 엄마와 찬이,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종옥에게 "찬이!" 라고 대답한 보미는 화가 나서 나가라고 소리치는 엄마에게 반항하며 정말로 집을 나와 버렸네요.

 

  

방황하던 보미는 친아빠를 만나러 인천에 가는 찬이와 마주칩니다. 전화도 잘 받지 않고, 어쩌다 연락이 되어도 바쁘다며 아들을 만나려 하지 않는 아빠지만 그래도 찬이는 잠깐이나마 아빠의 얼굴을 보고 싶었던 겁니다. 보미는 얼른 집에 들어가라는 찬이의 말을 듣지 않고 인천까지 따라가는데, 어렵게 만난 찬이의 친아빠는 그 사이에 재혼을 해서 임신한 아내와 함께 있네요.

 

"이 애는 누구예요?" 아내의 질문에 찬이 아빠는 "어, 그냥 좀 아는 애야" 라고 대답합니다. 아내를 사무실로 들여보낸 후, 아빠는 찬이에게 돈 몇 만원을 쥐어주며 돌려보내려 하는데 찬이는 받지 않고 그냥 담담히 돌아서는군요. 이 광경을 지켜보던 보미는 눈물을 글썽이며 큰 돌을 집어 찬이 아빠의 차 유리창에 던지고 소리칩니다. "아저씨는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이에요!"
 
 

 

보미와 찬이는 인천에서 집으로 돌아가다가 버스를 잘못 타서 헤매게 됩니다. 봄이지만 아직은 차가운 밤바람에 꼭 붙어 앉은 두 아이는 손을 잡기도 하고 팔짱을 끼기도 하다가, 망설이던 찬이는 보미의 뺨에 수줍은 입맞춤을 합니다. 설레는 첫사랑의 느낌이 물씬 풍겨나는 예쁜 모습들이네요.

 

 

그런데 하필 지나가던 불량배들이 두 아이에게 시비를 걸어옵니다. 순순히 주머니에서 천원짜리 몇 장을 꺼내주던 찬이는 불량배 중 한 명이 귀엽다면서 보미에게 집적거리자 화를 내며 대들다가 몹시 얻어맞는군요. 다행히 보미의 전화를 받은 배두나가 경찰에 신고해서 불량배들은 잡혀가고, 배두나는 두 아이를 자신의 오피스텔로 데려옵니다. 보미는 내일 집으로 돌아가면 찬이와 영영 헤어지게 될 것 같다면서 불안에 떠는데, 배두나는 자신의 귀걸이 한 쌍을 두 아이에게 나누어 주는군요. "이걸 하나씩 나눠갖고 있으면 헤어져 있을 때도 너희 마음은 하나가 될 수 있거든. 그럼 결국에는 너희들 사랑이 이루어질 거야!"

 

하지만 종옥은 결국 찬이를 만나서 보미와 놀지 말라고 합니다. 사실은 오해가 좀 있었지요. 제비뽑기에 걸린 찬이가 문구점에서 내키지 않는 도둑질을 할 때 하필 종옥이 그 모습을 보았고, 보미가 집을 나가 하루종일 찬이와 함께 돌아다닌 것도 모두 찬이가 꼬여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가뜩이나 그런 엄마의 아들인 것도 싫은데, 찬이와 어울리면서부터 보미가 불량스럽게 변했다고 생각한 거예요. 종옥을 만난 후 보미가 자기 때문에 엄마와 불편하게 지낸다는 것을 알게 된 찬이는 보미를 냉정하게 멀리하고, 충격받은 보미는 저금통을 털어 백합꽃을 잔뜩 사서 침대 머리맡에 놓고 흰 원피스를 입고 잠이 듭니다. 그리고 꿈을 꾸는데, 의사의 목소리가 들리는군요. "백합의 강한 향기로 인한 질식사입니다!" 하지만 꿈은 속절없이 깨어지고, 눈을 뜨니 다시금 슬픈 현실입니다. 몹시 흐느껴 우는 보미.

 

 

하지만 보미를 잊지 못한 찬이는 밤중에 다시 찾아와 그녀의 창문으로 초콜릿을 올려보내고, 두 아이의 사랑은 점점 무르익어 가는데... 결국 찬이 엄마는 새아빠와 두번째 이혼을 하게 되고 제주도로 이사할 것을 결정합니다. 이별을 피할 수 없음을 알게 된 찬이는 보미를 위한 마지막 선물을 준비하는군요. 평소 친하게 지내던 폭주족 삼촌(?)에게 부탁해서 보미가 무서워하는 바바리맨을 멀리 쫓아주고, 물컵을 이용해 투명한 햇빛을 움직여 보미의 손가락에 햇빛 반지를 끼워줍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우리는 햇빛으로 맺어진 커플"이라면서 좋아하는 보미와 슬픈 미소로 그녀를 바라보는 찬이.

 

찬이네가 이사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보미는 급히 달려가 찬이에게 말합니다. "안 가면 안 돼? 네가 안 가겠다고 우기면 안 갈 수도 있는 거 아냐?" 하지만 찬이는 어른스럽게 대답하는군요. "엄마가 어렵게 결정한 건데 따라주고 싶어. 새아빠랑 헤어지는 문제로 많이 힘들었을 테니까... 애인으로는 괜찮은데 아내로서는 별론가봐. 하긴 엄마로서도 좀... 아니라고 봐야지. 그래도 난 울엄마 좋아. 불쌍하기도 하고..." 두 아이는 이모가 준 귀걸이를 한쪽 귀에 나누어 달고, 애써 웃으며 이별을 합니다. 찬이의 휴대폰으로 둘이 셀카도 찍고, 하루도 빠짐없이 이메일을 주고받기로 약속하면서 말이죠. 그 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요.

 

 

"아빠... 너무 슬프고 가슴이 아파서 잠이 안 와... 난 그 애를 좋아한 게 아니었나봐... 사랑하나봐... 여태까지 누구를 좋아하면서 이렇게 아프고 슬퍼본 적은 없었어..." 난생 처음으로 사랑과 이별을 겪으며 힘든 사춘기를 시작하는 딸에게 김창완은 말해 줍니다. "그래, 사랑 맞구나. 사랑 안에는 기쁨만 있는 게 아니라 아픔도 있고 슬픔도 있거든. 그 아픈 거 슬픈 거 잘 견뎌내야 사랑이 예쁘게 잘 크는 거야..." 보미는 끄덕이면서도 한숨을 쉬며 말합니다. "아, 너무 화가 난다. 내가 이렇게 가슴이 아픈데, 어째서 세상은 그대로인 거야?" 아빠는 보미를 위해 세상을 멈추게 하겠다면서 으랏차차 기합을 넣지만,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군요.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사랑의 슬픔을 통해 한층 성숙해진 소녀도 차츰 어른이 되어 갑니다.

 

어쩌면 말이죠. 우리 인생에서 가장 슬펐던 기억은 뜻밖에도 어린 시절에 존재했던 것 같습니다. 무엇 하나 제 뜻대로 할 수 없던 어린 시절, 어른들의 뜻대로 결정된 모든 일을 그냥 따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그 시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에 느꼈던 슬픔의 농도는 어른이 되고 나서 느낀 것보다 결코 연하지 않았어요. 얼마 전 3부작으로 기획되었던 다큐멘터리 '학교의 눈물'을 보며, 저의 학창시절을 떠올렸습니다. 자살까지 고민할 만큼 심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저 역시 기나긴 학창시절의 절반 이상을 왕따(혹은 은따)의 피해자로 지냈거든요. 그냥 무조건 견디어야 한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그 외에 다른 해결책은 전혀 몰랐죠. 제가 그 시절을 무사히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옹고집과, 그 당시만 해도 상당히 충만했던 자존감 덕분이었습니다. 지금은 자존심만 남았을 뿐 자존감은 미미한 수준이지만, 그 때는 아니었거든요.

 

 

그래도 날마다 학교에 가는 것은 지옥문으로 들어서는 것처럼 고통스런 일이었습니다. 솔직히 제 악몽의 시작은 유치원 때부터였어요. (어린아이들 특유의 잔인함은 어른들이 상상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거든요..) 아무리 가기 싫어도 그냥 꾹 참고 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던 그 시절, 너무 어렸기에 슬픔이 뭔지도 몰랐고, 내가 느끼는 것이 슬픔인 줄도 모른 채 지나갔지만, 이제 생각하면 엄청난 슬픔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학창시절을 떠올리면 한없이 그리워지고, 돌아갈 수만 있다면 돌아가고 싶다고도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억만금을 준다 해도 그 시절로는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훨씬 다양한 종류의 아픔과 슬픔을 알게 되었지만, 어린 시절에 느꼈던 단순한 슬픔이 농도 면에서는 훨씬 짙었기 때문이죠.

 

어린 시절의 일들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기 때문에 모두 아름다운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그건 착각입니다. 반드시 보미와 같은 이별의 슬픔은 아니더라도,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누구에게나 견디기 벅찬 슬픔이 있었을 테니까요. 알고 보면 우리 인생에서 슬픔은 생각보다 훨씬 일찍부터 시작되었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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