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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 서영이' 차라리 무너져라 서영아, 그게 낫다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내 딸 서영이

'내 딸 서영이' 차라리 무너져라 서영아, 그게 낫다

빛무리~ 2013. 1. 13.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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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내 딸 서영이'에는 정말 깜찍하게 주변 사람들을 속여 온 두 명의 여성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하나는 아버지와 남동생이 있는데도 없는 것처럼 고아라고 거짓말한 채 강우재(이상윤)와 결혼해 3년 동안이나 속이며 살아 온 여주인공 이서영(이보영)이고, 또 하나는 상사 강기범(최정우)의 아들 강성재(이정신)를 낳아 업둥이로 위장해 몰래 생부의 집에 들여보낸 후 20여 년 동안이나 자기 정체를 숨긴 채 그 주변을 맴돌며 살아 온 여비서 윤소미(조은숙)입니다.

 

두 여자 모두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을 저질렀지만, 굳이 비교한다면 윤소미가 이서영보다 훨씬 더 뻔뻔하지요. 진심으로 뉘우치거나 사죄하는 태도는 눈꼽만치도 없이 그저 건성으로 "죄송합니다" 맘에도 없는 사과의 말 한마디만 던진 채, 스무 살이 넘은 성재를 이제 와 생모의 자격으로 데려가겠다는 윤소미의 태도는, 막상 피해자인 차지선(김혜옥) 뿐만 아니라 시청자의 분통마저 터지게 할 지경입니다.

 

 

어떻게든 아내 차지선의 마음을 달래고 집안을 안정시키려는 강기범은 윤소미에게 떠날 것을 종용합니다. "우선 네가 멀리 떠나야, 네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성재엄마 마음을 진정시키고 성재를 불러올 수 있어!" 그러자 윤소미는 이렇게 대답하죠. "이제 성재엄마는 저예요! 사모님은 성재 찾지도 않으시잖아요!" 정말이지 한 대 후려치고 싶을 정도의 뻔뻔함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지금까지 성재를 진심어린 사랑으로 키워 온 차지선이 느낄 배신감과 고통에, 윤소미는 전혀 미안함을 느끼고 있지 않습니다. 시어머니를 가엾게 여긴 이서영이 그 뻔뻔함을 탓하자 윤소미는 "제 입장에서는 사모님의 상처보다 성재 걱정이 우선이니까요. 엄마는 어쩔 수 없는 거예요!"라고 대답했지만, 제가 보기에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이기심에 불과합니다. 엄마로서 정말 성재를 사랑한다면 그럴 수는 없는 일이거든요. 이제 와 성재를 자기가 데려와서 얼마나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으나, 누가 보더라도 성재는 '윤실장 아줌마'를 엄마라고 부르며 행복할 수 없습니다. 차지선이 성재를 사랑한 만큼, 성재도 진심으로 '엄마' 차지선을 사랑했거든요.

 

 

결국 배신감과 분노와 복수심보다 훨씬 앞서는 그 '사랑' 앞에 무너져내린 차지선은 제 발로 막내아들 성재를 찾아 나섰습니다. 집에도 못 들어가고 노숙까지 하면서 생애 처음으로 '돈 없는 설움'을 만끽하던 성재는, 자기를 찾아나선 엄마와 만나자 곧바로 무릎을 꿇고 사과부터 하는군요. "죄송해요.." / "네가 왜 죄송해?" / "엄마한테는 내가... 배신의 씨앗이니까요!" 참 우습죠. 진짜 죄를 지은 윤소미와 강기범은 가식적인 말 한 마디만 툭 던졌을 뿐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았건만, 아무 죄 없는 성재가 눈물로 쏟아내는 사과는 더할 수 없는 진심이었습니다. 엄마를 사랑하는 성재는 자신의 존재가 엄마에게 상처가 되었다는 이유 때문에 진심으로 미안했던 거죠. 다시 뜨겁게 얼싸안고 변함없는 사랑을 확인하는 엄마와 아들...

 

이런 아이를 자기 옆으로 데려오겠다는 윤소미의 광적인 집착이 사랑입니까? 모정입니까? 아니죠. 그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욕심에 불과합니다. 하긴 윤소미의 욕심은 예전부터 속속 드러나곤 했었죠. 연예인이 되고 싶어하는 성재의 꿈을 인정하고 응원해주던 엄마 차지선의 사랑은 무척이나 순수했지만, "강제로라도 후계자 수업을 받게 하고 아버지 회사에 다니도록 해야 한다"며 간섭하던 윤소미의 비틀린 모정은 욕심의 또 다른 얼굴이었을 뿐입니다. 윤소미가 생모로서 성재를 정말 사랑했다면 이제라도 진심으로 사과하고 깨끗이 물러나 주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성재가 행복할 수 있으니까요. 성재를 데려가겠다고 떼쓰는 그녀의 태도는 흡사 솔로몬의 판결에 동조하며 "아기를 둘로 나눠서 그 반쪽이라도 갖겠다"던 가짜 엄마의 태도와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여주인공 이서영은 불행히도(?) 윤소미같은 철면피가 아닙니다. 그녀는 본질적으로 당당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누구보다 뼈저리게 잘 알고 있으며, 남편 강우재(이상윤)를 비롯한 시집 식구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도 갖고 있죠. "속인 사람에게도 사정이 있고, 말 못할 심정이 있어요. 서영씨는 안 겪어봐서 모르겠지만..." 윤소미의 뻔뻔한 저 한 마디에, 마치 심장이라도 찔린 것처럼 얼어붙으며 눈물을 흘리는 서영입니다. 그토록 다정하던 남편 강우재가 다른 사람처럼 차갑게 변해버린 후, 아마 그녀도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겠죠. 자신을 향한 남편의 분노가 일상의 작은 거짓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자신의 가장 큰 거짓말이 어느 새 들통나 버렸음을 말입니다. 하지만 그 말을 자기 입으로 털어놓기에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서영은 애써 모르는 척 하면서 남편의 요구에 따라 이혼할 것을 결심합니다.

 

첫사랑 강우재를 잊지 못해 갖은 방법으로 이서영에게 태클을 걸어오는 정선우(장희진)의 캐릭터는 상당히 비현실적이죠. 예쁘고 집안 좋고 돈 많고 능력있는 변호사가 대체 뭐가 부족해서 그토록 찌질하게 산답니까?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역할입니다. 그런 인물이 있어야 드라마의 갈등구조가 빚어지고, 비밀이 풀어지고, 갖은 에피소드가 발생하니까요. 35회에서 드디어 비밀을 알게 된 정선우는 이서영에게 회심의 일격을 가합니다. 하지만 그를 상대하는 이서영의 태도는 놀랍게도 당당하네요. 물론 정선우는 이서영에게 속은 피해 당사자가 아니고, 따라서 이서영이 미안한 감정을 가져야 할 상대도 아니긴 하지요.

 

 

정선우는 강우재와 그 가족들에게 비밀을 말하거나 심지어 기자들에게 '위너스 그룹 며느리의 패륜행각'을 폭로할 수도 있다며 이서영을 협박(?)했지만 그 방식이 너무나 어설펐습니다. 아직도 강우재를 사랑하는 정선우가 결코 그런 행동까지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서영은 알고 있었죠. "집안 일 해결되면, 내 입으로 말하고 떠날 거예요. 대신 그 전에 절대 먼저 돌 던지지 말아요. 그럴 권리 있는 사람 아니에요 정선우씨는!" / "아니, 내가 봐준다는데..." / "착각하지 말아요. 정선우씨 때문에 떠난다는 거 아니니까! 괜히 나 봐주는 척도 하지 말아요. 당신도 우재씨한테 밑바닥까지 보이기 싫어서 나한테 기회주는 척했던 거 아닌가?... 내가 말할 때까지 기다려 주면 나도 당신이 나한테 했던 제안, 입 다물어 줄게요!"

 

와, 정말 대단하더군요. 절대적으로 약점을 잡힌 상황에서 조금도 기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상대의 작은 헛점에 정확히 바늘을 찔러넣음으로써 효과적인 반격을 가하는 기술이라니... 과연 유능한 변호사다운 모습이었어요. 서영의 그런 태도에 오히려 말문이 막힌 정선우가 물었죠. "정말 다 털어놓고 이혼하겠다는 건가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현재 서영이 처한 상황을 모르는 정선우로서는 당연한 의문이었습니다. 그러자 서영이 대답합니다. "속인다는 게... 속는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알았거든요!" 그런데 말이죠. 최근 겪은 윤소미 사건 때문에 느낀 것이 많아 그랬겠지만... 너무 지나치다 싶을 만큼 당당한 이서영의 태도는 비호감스럽기까지 했습니다.

 

 

만약 남편 강우재가 변해버리지 않았다면, 아무리 윤소미 사건이 터졌어도 이서영이 헤어질 결심을 했을까요? 아무리 "속인다는 게, 속는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를" 깨달았다고 해도, 남편의 태도가 예전과 다름없었다면 이서영은 절대, 결코, never, 이혼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윤소미의 비밀이 밝혀짐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타격과 상처를 교휸삼아 "나는 절대로 끝까지 들키지 말아야겠다"는 식의 생각이나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어차피 들킨 것 같으니까, 아무래도 남편이 다 알고 있는 듯한 눈치가 엿보이니까, 그렇다면 남편의 성격상 절대로 봐주고 넘어가지 않을 것 같으니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혼을 결심했으면서, 정선우 앞에서는 마치 '더 이상 남편과 시집 식구들을 속이기 싫어서 자발적으로" 떠나는 것처럼 당당하게 구는 이서영의 모습이 그 순간 제 눈에는 추하게 보이더군요.

 

 

속으로는 당당하지 못하면서 겉으로만 당당한 척하는 게, 자존심을 지키는 길일까요? 정선우 앞에서는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남편 강우재 앞에서도 그런 식으로 군다는 건 이서영의 치명적인 문제점이죠. 차라리 그녀는 무너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밑바닥을 보이는 것이 정말 싫겠지만, 아무리 굴욕적이더라도 차라리 모든 것을 털어놓고 남편 앞에 무릎 꿇는 것이 낫습니다. 제발 용서해 달라고, 한 번만 봐달라고, 당신 놓치기 싫어서 순간 잘못 판단하고 실수했는데, 후회할 때는 이미 너무 늦어 돌이킬 수 없었노라고, 울며 애원하며 헤어질 수 없다고 매달리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왜냐하면 서영은 아직도 우재를 사랑하니까요.

 

아내의 커다란 거짓말과 자신을 속여 온 세월 때문에 분노를 참지 못하는 강우재도 사실은 아직 서영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우재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아내와 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아내를 용서하고 싶어합니다. 고통 속에 방황하면서도 우재가 간절히 찾는 것은 '아내를 용서할 수 있는 빌미'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녀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런 남편 앞에, 이서영은 어리석게도 버티고 있습니다. 남편에게 들통났다는 사실을 눈치채고도 모른 척, 남편의 요구를 받아들여 쿨하게 이혼에 동의해 버렸던 거죠. 하지만 그녀의 그런 태도는 강우재를 더욱 더 화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눈물 흘리며 빌어도 모자랄 판인데 끝내 잘난 척만 하고 있으니까요.

 

 

진정한 사랑 앞에서는, 때로 자존심을 꺾는 것이 정말 자존심을 지키는 길일 수 있습니다. 정말 얄미울 만큼 꼿꼿하게 버티고 있는 이서영의 모습이 보는 사람마저 지치게 하는군요. 이제 남은 해답은 '진실' 그리고 '진심' 뿐입니다. 부친 강기범을 닮아 냉혈한 구석이 있는 강우재이지만 아직도 분명 이서영을 사랑하기에, 그녀의 진심을 알게 된다면 해피엔딩도 불가능하진 않을 거예요. 그러니 서영은 쿨한 척 떠날 생각을 할 게 아니라 차라리 남편 앞에 무너져 내려야 합니다. 그녀의 성격과는 맞지 않는 일이지만, 소중한 사랑을 지킬 수만 있다면 한 번쯤은 밑바닥을 보이는 것도 괜찮지 않겠어요? 그것이 진짜 행복을 지키는 길이라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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