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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앨리스'에 공감하기 힘든 이유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청담동 앨리스

'청담동 앨리스'에 공감하기 힘든 이유

빛무리~ 2013. 1. 11.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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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런 부분이긴 합니다. 만약 이 드라마의 주제(?)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다면, 저의 색다른 의견에 불쾌감을 느낄 사람도 그만큼 많을 테니까요. 하지만 같은 드라마를 보아도 사람마다의 생각과 감상이 다를 수 있듯이, 같은 세상을 살면서도 체험한 삶 자체의 내용과 느낌은 사람마다 천양지차일 수 있는 법이죠. 심지어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났어도 어떤 사람에겐 세상이 분홍빛인 반면 어떤 사람에게는 짙은 회색일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극심한 가난과 부모의 학대에 시달려 온 아이라고 해서 모두 불량 청소년이 되는 것도 아니며, 사이코패스 등의 끔찍한 범죄자가 늘어나는 것도 어떤 사회적 현상 때문이라고만 해석하기는 어렵습니다. 네, 저는 예전부터 항상 그랬습니다. 물론 사회적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개인의 내면적 문제가 더 우선한다는 입장에서 생각해 왔던 거죠.

 

게다가 이제 10회까지 진행된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는 궁극적인 주제가 뭔지조차 헛갈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설정 자체도 엉성하거니와, 그래서 도대체 뭘 어쩌자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 드라마의 초점은 철저히 여주인공 한세경(문근영)에게 맞춰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보면 볼수록 남주인공 차승조(박시후)의 존재감이 한세경을 압도하면서 작품 자체는 산으로 가고 있는 느낌이 드는군요.

 

정말 그런 것일까? 정말 1%의 가능성도 없는 것일까?

 

어느 사이엔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은 삶의 모든 가치 기준을 '돈'에 귀속시키고 있습니다. 모든 불행은 돈이 없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때로는 가난하다는 것이 무슨 짓을 해도 이해받을 수 있는 정도의 면죄부가 되기도 합니다. 또한 '돈 있는 자'와 '돈 없는 자' 사이에 놓여진 거대한 벽은 '노력'으로 넘을 수 없는 것이기에, 이 캄캄한 시대에 성실한 자세로 노력하는 것은 아무 소용 없는 허망한 일이라 여기기도 합니다. 이 드라마도 애초에는 그런 자세에서 출발하지 않았나 싶은데요. 어차피 있는 놈들끼리 다 해먹는 세상이라, 가난한 여주인공 한세경은 충분한 능력도 있고 최선을 다한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밑바닥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죠. 그러다가 '남자 하나 잘 꼬셔서 인생을 바꾼' 친구 서윤주(소이현)을 보고는 자극받아, 이제까지의 성실한 삶을 버리고 된장녀 신데렐라가 되어 보기로 결심하며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마련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런 걸까요? 이 세상은 정말 그렇기만 할까요? 저는 그 부분에서부터 의문이 생깁니다. 저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처음에는 맨땅에 헤딩하듯 가진 것 없이 시작했지만 순수한 '노력'으로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고 나름대로의 풍요로운 삶을 이루는 데 성공한 사람들을 분명히 보았거든요. 한 두 명 정도가 아니라 차분히 세어보면 꽤 많습니다. 물론 재벌처럼 돈을 많이 번 것은 아니죠. '청담동'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겠지만, 성실한 직장 생활로 차근차근 월급을 모아 알콩달콩한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도 낳아서 잘 키우는 그 정도로는 성공했다 말할 수 없는 걸까요? 가진 것은 평범한 재능과 성실한 노력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아주 큰 결핍 없이 소박하면 소박한 대로의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 제 주변에는 꽤 많거든요. 꼭 청담동에서 큰소리 치며 살아가는 수준이 되어야만 행복한 삶이고 성공한 인생인가요?

 

문득 2004년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이 떠오릅니다. 여주인공 이수정(하지원)은 지긋지긋한 가난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던 중 운명처럼 다가온 두 남자(소지섭, 조인성)의 사랑을 받게 되지요. 그 작품에서도 저는 이수정의 캐릭터를 이해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당장 한 끼니를 때울 수 없을 만큼 가난한데 아무리 취업을 하려 해도 되지 않아, 급기야 친구와 함께 노래방 도우미까지 하게 되는 내용이 있었는데요. 현실적으로 25살의 젊은 여자가 팔다리 멀쩡하고 눈 코 입 기능 제대로 하고 말도 잘 하고 더불어 생긴 것까지 멀쩡한데, 그렇게까지 할 일이 없다고는 생각되지 않거든요. 적극적으로 찾아만 보면, 굳이 술 취한 남자들을 상대하며 역겨운 스킨십까지 허용해야 하는 노래방 도우미 같은 일 말고도, 입에 풀칠할 정도의 일거리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텔레마케터 같은 직종은 취업 사이트에서 찾아 보면 사시사철 일자리가 넘쳐나는 게 현실입니다. 물론 업종을 불문하고 고객센터에서 전화를 받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죠. 불특정 다수의 별의별 인간들을 하루종일 전화로 상대해야 한다는 건 너무나 스트레스가 심한 일이기 때문에 이직율이 엄청 높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상당히 문은 넓어요. 경력이 없어도, 나이가 많아도 상관없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 자신도 4년제 대학의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다른 곳에 있었지만, 예전에 정말 급할 때는 몇 개월 동안 아르바이트 식으로 홈쇼핑이나 택배회사 등에서 텔레마케터 일을 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제 경우는 그랬지만, 전화받는 일이 정 싫다면 편의점이나 식당에서 알바를 하더라도 설마 노래방 도우미보다야 못하겠습니까?

 

그러니까 키포인트는 이겁니다. 눈높이(기준)을 어디에 두느냐 따라 인생은 달라지는 거죠. 제가 그 쪽 일은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고작 시급 몇 천 원의 텔레마케터나 편의점 알바보다야 노래방 도우미가 훨씬 수입이 좋지 않겠습니까? 짐작컨대 최소한 시급 몇 만원 정도는 될 테니까요. 술 취한 남자들에게 그까짓 몸뚱아리 몇 시간 주무르라고 맡겨두기만 하면 다른 아르바이트로 며칠 동안 힘들게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 금방 손에 들어올 테니까요. 제가 보기에 그건 명백한 '선택'의 문제였을 뿐입니다. 절대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일도 아니었습니다. 좀 더 쉽게 돈을 벌고 싶었을 뿐이고, 좀 더 쉽게 부자가 되고 싶었을 뿐입니다. 느릿느릿 한 걸음씩 나아가는 인생이 감질나고 싫었던 것뿐입니다.

 

 

'청담동 신데렐라'의 꿈을 이루어낸 서윤주의 선택도 마찬가지입니다. 힘든 저수익 알바가 아니라 손쉬운 고수익 알바를 선택했던 '발리'의 이수정과 다를 게 무엇입니까? 소박한 행복에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욕심이 많기 때문에, 눈높이를 꼭대기에 두었기 때문에, 온갖 치사스런 행태를 벌여가며,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자존심까지 버려가며,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몸과 마음까지 다 팔아가며 얻어낸 자리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해서 다다른 꼭대기가 정말 행복한 곳인지는 의문이죠. 서윤주가 외부에서 침투한 인물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저는 오리지날 청담녀인 신인화(김유리)의 캐릭터도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거든요. 그런 삶이 부러워 미치겠다면 저 역시 오래 전에 서윤주처럼 되어 보려고 발악을 하다가 인생에 좌절하고 말았을 텐데, 단 한 번도 그런 게 부럽다는 느낌을 가져 본 적이 없으니 저는 참 행복한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한세경의 경우는 약간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는 게, 그녀와 주변 인물들은 너무나 지독히 운 나쁜 편이긴 했습니다. 특히 그녀의 오래된 연인이었던 소인찬(남궁민)의 캐릭터는 이 세상의 모든 불운을 혼자 떠맡은 듯, 가난한 고학생이었던 그에게 학자금 대출과 전세 대출만도 등허리가 휘는데, 설상가상 홀어머니는 재발하는 암으로 끝없이 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으니 그 엄청난 치료비를 감당할 수가 없었죠. 게다가 한세경의 아버지 한득기(정인기)는 판단착오로 시기가 좋지 않을 때 무리한 대출까지 받아서 집을 샀는데 집값이 폭락하는 바람에 이자만 한 달에 몇 백씩 내고 있으며, 30년 가까이 동네 빵집을 운영하고 있지만 인근에 오픈한 대형마트 때문에 이제는 가게 문까지 닫게 생겼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매일처럼 시달리던 한세경이 모처럼 힘들게 취직을 했는데, 하필 고교동창 서윤주가 재벌가의 사모님이 되어 온갖 폼이라곤 다 재고 있는 꼴을 보았으니, 순간 욱하는 심정에 잘못 판단했을 수도 있겠다 싶군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세경의 선택에 썩 공감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자꾸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몰아가지만, 제가 보기엔 그렇지 않거든요.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과 목표가 뚜렷하고 성실한 노력이 꾸준히 뒷받침된다면, 아무리 취직 시험에 여러 번 떨어졌어도 결국은 어디서든 문이 열릴 거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입맛에 맞는 취업이 쉽게 되지 않는다면 시선을 좀 낮춰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자기 실력은 A급이라고 생각하는데 B급도 아니고 C급 정도의 회사에 들어가려면 물론 억울하겠지만 일단은 막힌 물꼬를 트는 게 중요하고, 무엇보다 한세경은 '급한 입장'이니까요. 처음에는 미미하게 시작했어도 나중에는 커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처음부터 눈높이를 꼭대기에 놓고, A급 아니면 안 된다를 고집하고 있으면 당연히 "모든 문이 막힌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런 말을 했다가는 욕을 바가지로 먹을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저는 극심한 취업난의 상당 부분은 젊은이들의 시선이 너무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낮은 곳에서부터 찾아보면, 그렇게까지 없지는 않아요. 소인찬처럼 극한 상황에 몰린 입장만 아니라면, 무슨 일을 하더라도 굶어 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건 뭐... 이제껏 단 한 번도 재벌을 부러워해 본 적 없고, 단 한 번도 명품을 욕심내 본 적 없는, 3만원 짜리 보세 구두와 2만원 짜리 천가방 핸드백이면 충분히 만족하며 살아왔던, 저 같은 좀 특이한 사람의 생각일 뿐인지도 모르겠네요. 어려서부터 저는 좀 다른 방향으로 욕심이 많았고, 지금도 마찬가지거든요..^^

 

 

'청담동 앨리스'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제목이 '신데렐라'가 아니라 '앨리스'이기 때문에, 결국 이상한 나라 청담동을 여행하던 앨리스 한세경은 자기가 원래 살던 세상으로 돌아오게 될 거라고, 허황된 꿈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속의 행복을 깨닫게 될 거라고 많은 사람들은 예측하고 있습니다만, 그렇기에는 재벌남 차승조의 캐릭터가 너무나 매력적입니다. 돈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이토록 맑고 순수한 남자의 진심어린 사랑을 받았던 한세경이 자의로든 타의로든 그 사랑을 잃거나 빼앗기게 된다면 과연 지독한 상실감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단지 '이상한 나라에서의 꿈 같은 경험'이라 생각하며 툴툴 털어버리고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앨리스'가 진짜 '앨리스'이기 위해서는 '왕자님' 장 띠엘샤가 이렇게 인간적인 매력이 넘치는 인물이어서는 안 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의 분위기로 본다면 한세경은 '앨리스'가 아니라 '신데렐라'가 되어야 마땅할 듯 싶군요. 물론 유치하기 짝이 없는 전형적인 스토리가 되겠지만, 오히려 그래야만 극의 진행도 자연스럽고, 한세경도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결국 이 드라마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요? 가뜩이나 여주인공의 캐릭터에 공감이 어려워서 몰입도 안 되는 참인데, 설상가상 멋있으면 안 되는 남주인공은 너무 멋있으니 갈수록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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